22화
“……데이트?”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봤다. 강수현은 의외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물론 워낙 서글서글한 인상인데다가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기 때문에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았다.
근데 보통 같은 사내자식한테 데이트라는 표현을 쓰나? 아니면 이게 이쪽 세상 청소년들의 농담?
알 수가 없어 그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너랑 데이트를 왜 해?”
그러자 강수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해 못 할 딴말이나 해 댔다.
“저 오늘 학교 안 가요.”
“그래서?”
“시간 많이 남는다고요.”
“……?”
그러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자 강수현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맞다. 저 얼마 전에 각성했어요.”
“어? 어…… 축하한다?”
벌써 강수현이 각성할 때인가?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줍은 미소를 띤 강수현이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고맙습니다.”
“…….”
근데 좀 빠르지 않나? 얘가 원래 이때 각성을 했던가? 능력이 발현되고 길드에 들어가는 건 졸업하고 난 뒤였던 거 같은데. 아직 졸업 안 한 고3이잖아.
점점 더 내가 읽었던 소설과는 다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입 안이 바싹 말라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 안 가고 각성 신고랑 헌터 등록부터 했어요.”
“아하.”
그래서 이 이른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어슬렁거리고 있었구먼.
잠시 사복을 입은 강수현의 모습을 위아래로 짧게 훑었다. 첫 만남에서는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더 어려 보였었는데, 지금은 좀 나이가 들어 보였다. 보통 이 나이 땐 청바지에 티셔츠를 많이 입지 않나? 베이지색의 슬랙스에 갈색 니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제법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나저나 진짜 강유현이랑은 닮지 않았네. 형제가 이렇게나 닮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는데, 커다란 갈색 눈망울이 눈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은요?”
“뭐?”
강수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이민 거였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강수현의 얼굴을 피해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쭉 뺐다.
“무슨 대답?”
“데이트요.”
아, 그거.
벌써 각성했다는 말에 머리 한구석 저 멀리 밀어 놓았던 주제를 다시 가져왔다.
Q. 강수현이 당신과 데이트를 하자고 한다. 당신의 대답은?
1) 그래, 가자.
2) 미안, 바쁜 일이 있어서…….
……아니, 무슨 미연시 게임도 아니고.
상상 속의 말풍선을 향해 손을 휘휘 젓는 생각을 하며 강수현을 바라보았다.
“안 해.”
“왜요?”
“안 해. 형아는 할 일이 있단다.”
바로 네 형을 함정에 빠트리는 사악한 일이란다.
입으로는 내뱉지 못 할 말을 하고 씩 웃었다. 그러자 봄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살랑거리던 강수현의 얼굴이 조금 우울해졌다. 그게 마치 얼굴만은 애기 같은 큰 대형견이 시무룩해 하는 모양새라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했다.
“제가 방해돼요?”
“아니, 그렇다기보단…….”
울적한 얼굴로 물어보는데 차마 그렇다고 말하고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싸가지 없는 한이진의 몸도 가만있는 걸 보면 강수현의 불쌍한 얼굴은 정말이지 효과가 대단했다.
“어쨌든 놀고 싶으면 친구나 불러서…….”
놀아, 라고 말하려던 나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계속 강수현과 얼굴을 마주 보기 어려워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수상한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꽤 멀리 있었지만 확실했다. 나와 강수현에게 부자연스럽게 향해 있던 시선이.
만약 저놈이 장태산이 붙여 놓은 감시자라면, 내가 강유현의 동생인 강수현과 만난 사실을 알릴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곤란했다. 입술을 깨문 내가 다시 강수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능력 각성했다고 했지?”
“네? 네.”
소설에 나왔던 강수현의 능력을 떠올렸다. 강수현은 탐지 능력계의 S급 능력자였다.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같은 데서 나오는 레인저와 비슷한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던전에서 길 찾고 함정도 발견하는 그런 직업.
물론 강유현 같은 넘사벽은 혼자서 길도 찾고 탐지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헌터들이 훨씬 더 많다. 거기다 S급이라 스킬도 좋은 편이어서 주인공 일행 중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였다. 역시 먼치킨 주인공의 동생이라고 칭찬하는 독자들도 많았었지.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나는 고개를 올려 지그시 강수현을 응시했다.
“내 말 들어주면 데이트…… 해 줄게.”
“정말요?”
데이트…… 라는 부분에서 잠시 이를 악물긴 했지만, 어떻게 잘 말한 것 같다. 어차피 연인이나 썸 타는 부류의 데이트가 아니라 그냥 같이 놀자는 뜻이겠지만.
그런데 내 말에 또 금방 화색이 돌아 보이지 않는 꼬리를 붕붕 흔드는 것 같은 모양새에 기분이 좀 묘해졌다. 얘 진짜 친구가 없나? 형 때문에 그렇게나 아싸 역할에 충실했던 거?
“뭐 하면 되는데요?”
“아.”
강수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감시자가 도망치거나 본격적으로 몸을 숨기기 전에 찾아야 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뒤처리까지 맡기기는 힘들고, 그의 능력으로 추적만 부탁할 셈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누가 나한테 감시자를 붙여 놨는데.”
“아아, 11시 방향 저 새끼요?”
“어?”
내가 방금 눈이 마주친 남자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텅 비어 있었다.
뭐지? 오싹한 느낌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데 강수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튀려는 것 같은데 잡을까요?”
“……그럴 수 있어?”
“물론이죠.”
싱긋 웃은 강수현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억!’ 하는 비명이 들렸다.
“아니, 난……!”
“닥쳐요.”
상냥한 말투와 달리 그렇지 않은 손짓으로 강수현은 감시자의 목덜미를 잡고 꾹 눌렀다. 감시자는 목이 아픈지 컥컥거리며 바둥대지도 못했다. 이번엔 생뚱맞은 6시 방향이었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야.”
“…….”
역시 이번 감시자는 이든이 아니었다. 하긴, 길마 몰래 나를 도왔으니 이제 나와 만나게 해 주지 않을 터였다. 입 안이 씁쓸해지는 걸 느끼며 감시자의 얼굴을 뜯어봤다.
“너 장태산이 보낸 놈 맞지?”
“…….”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만약 한이진이 알고 있는 놈이면 몸이 아는 척이라도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잠시 미성년자의 앞에서 감시자를 심문해도 될지 고민했으나, 나 혼자 힘으로 제압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일단 놔두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강수현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또 웃었다.
“……한이진! 이 은혜도 모르는 개자식!”
“나? 나 말하는 거냐?”
셋만 남게 되자 이름 모를 감시자는 입을 열자마자 한이진 욕부터 해 댔다.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자, 감시자는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등급도 낮은 새끼가 알량한 스킬 믿고 나댔으면 길마한테 잘하기라도 하지, 너 때문에 이든은……!”
“…….”
“씨발.”
뭐, 같은 감시자로서 이든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한이진을 질투하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점점 더 시큰둥해졌다.
이든에게 부탁을 하긴 했지만 내 쪽에서 울고불고 매달린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건 이든의 선택이었다. 길마에게 들키면 잘못될 걸 알면서도 나를 도운 건 그의 의지였다. 그러니 상관없는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다냐?”
“뭐?”
전혀 타격받지 않은 듯한 내 얼굴을 보자 감시자는 얼굴을 왈칵 구겼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 강수현을 흘끗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한이진! 이 빌어먹을 자식! 강유현 동생은 왜 만난 거냐? 길마를 배신할 생각이냐?”
“아, 그래. 그거.”
“……뭐?”
“돌아가면 장태산한테 말할 거지?”
“다, 당연하지.”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감시자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 배신자 자식!”
“응, 헛소리 꺼지고.”
솔직히 곧 떠날 로키 길드의 길드원이 한이진을 얼마나 아니꼽게 보든 나랑은 상관없었다. 녀석들 입장에서 보면 한이진은 길마에게 단물만 빼먹을 대로 빼먹고 배신하는 모양새일 테니까. 구구절절이 한이진의 사정을 말하고 싶지도 않고.
대답 대신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냈다. 이든이 던전에서 주었던 그 총이었다. 일신상의 이유로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이럴 때 쓸 줄은 몰랐다.
“뭐, 뭐……!”
“나도 이러기는 싫은데 어쩔 수 없잖아.”
담담하게 말하고 감시자를 향해 총을 겨눴다. 확실히 몬스터를 향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과연 내가 사람을 쏠 수 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한이진의 몸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역시 넌 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 하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적성에 맞지도 않은 빌런 짓을 했겠어. 열혈 독자인 나도 깜빡 속았었다고.
달칵, 총이 장전되자 하얗게 질린 감시자가 덜덜 떨며 외쳤다.
“사, 살려 줘! 네가 말하는 건 뭐든 할게!”
“그걸 어떻게 믿고?”
“계, 계약하면 되잖아. 나 계약서 있어!”
“몇 급 계약서인데?”
“……B, B급.”
“장난하냐?”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눈을 부라리자 감시자의 눈꼬리가 축 늘어졌다.
“…….”
문제는 이걸 지켜보고 있는 강수현이었다. 과연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이런 장면을 보게 해도 괜찮은가.
아니, 절대 안 되겠지. 강유현이 알면 날 죽이려고 할 거다.
“저기.”
잠시 피해 있으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눈이 마주친 강수현이 씩 웃으며 물었다.
“결계 칠까요?”
“뭐?”
“아니면 이 새끼 시끄러운데 입을 막을까요?”
“…….”
대체 그사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자라나는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