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1)화 (21/228)

21화

5. 주인공 길들이기

“정말…… 그게 사실입니까?”

박윤성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강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로키 길드의 한이진은 대상자의 능력치를 증폭시키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등급은 최소 S급 이상.”

“아니, 대체 어디서 그런 능력자가…….”

버프 스킬을 가진 능력자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등급이 높은 버프 스킬도 능력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과를 부여하진 못했다. 스탯의 마지막, 99라는 숫자는 누구도 돌파하지 못한다. 그게 이 세상의 규칙이었다.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는 S급, 심지어 SS급인 강유현조차 99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능력치를 정점으로 찍은 능력자들은 스킬 숙련도에 열을 올렸다. 스킬은 쓰면 쓸수록 숙련도가 올라가 훨씬 뛰어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등급의 능력자라도 스탯 능력치가 같으면 스킬의 등급과 숙련도 차이로 우열이 가려졌다.

강유현의 말대로라면 그 한이진이라는 능력자가 가진 보조 스킬은 스탯뿐만이 아니라 스킬 숙련도를 포함한 모든 능력치를 오르게 하는 모양이었다. 곱씹을수록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 강유현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박윤성 역시 강유현이 혼자 SS급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길드원 모두에게 지급하는 호출기에서 연락이 들어왔을 때, 박윤성은 깜짝 놀랐다. 무려 S급 이상인 길드원에게 지급한 황금색 호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SS급인 강유현에게서.

서둘러 달려간 박윤성은 던전 입구 앞에서 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는 강유현을 발견했다. 박윤성을 보자마자 뭐라 뭐라 헛소리를 한 그가 정신을 잃고 며칠이 흘렀다. 강유현은 일어나자마자 S급 보조 스킬을 가진 한이진이라는 능력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유현 능력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그와 만나 봐야겠군요.”

박윤성은 우선 그의 말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허나 그가 로키 길드라는 게 좀 걸립니다.”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박윤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편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세계를 덮친 사상 초유의 재난 사태에서도 자기들 이익과 권력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이들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스킬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범죄자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민하는 박윤성에게 강유현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서를 더 철저히 작성하면 됩니다.”

강유현 역시 한이진의 능력이 필요한 것뿐이지 그를 믿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길드에 가입할 때 헌터들은 스킬을 건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다. 그걸 어기면 엄청난 페널티가 주어진다. 한이진의 경우 더욱 철저하게 조항을 손보면 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박윤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오딘 길드에 잠입한 빌런들에게 당한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로키 길드의 마스터인 장태산은 독사 같은 자였다. 그가 이미 한이진의 스킬을 알고 있다면, 그걸 빌미로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특이한 케이스군요. B급 능력자에게 S급 스킬이라. 그런데도 스킬을 자유자재로 쓴다니 말입니다.”

낮은 등급의 능력자가 감당할 수 없는 스킬은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운으로 S급 스킬을 가진다고 해도 B급의 역량으로는 마음껏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유현의 증언으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

의아해하는 박윤성과 달리 강유현은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300년이나 갇혀 있었던 니플헤임에는 워낙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라고 무시했는데, 갑자기 공격력이 확 뛰어올라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오히려 강유현에게는 규칙적인 이쪽 세상의 일들이 더 어색할 때가 많았다.

“뭐, 시스템이란 건 언제나 변덕스러우니까요.”

그를 비롯한 1세대 각성자들이 갑작스러운 게이트에 휘말린 것도, 휘말려 들어간 게이트 안에 300년이 넘게 갇혔던 것도, 모두 비현실적인 일투성이였다.

그 말을 들은 박윤성 역시 마지못해 수긍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어쨌든 한이진 능력자와는 접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부탁드립니다.”

“네, 그리고 오늘 있을 기자 회견 말입니다만…….”

똑똑.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윤성이 눈짓하자 비서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문을 열자 보인 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의 뒤로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형!”

“……강수현?”

생각지도 못한 동생의 모습에 강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던전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 만난 동생은 어딘지 전과는 다른 기운을 풍겼다.

아, 그러고 보니 그도 이제 각성했다고 했던가. 던전에서 돌아온 후 막 깨어난 그에게 박윤성이 넌지시 말하긴 했지만 그다지 귀담아듣진 않았었다.

“여기는 왜…….”

“내가 손님 데려왔어. 꼭 형을 만나야 한다고 해서. 근데…….”

머뭇거리던 강수현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더니, 문에서 살짝 비켜났다.

“안녕? 강유현.”

“…….”

“…….”

“음, 오랜만?”

방금 전까지 강유현과 박윤성의 대화 주제였던 남자가 뻘쭘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할 말을 잃고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한지, 한이진은 살짝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나는 일시적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빌어먹을 장태산이 한이진의 능력을 써먹어야 하는 일이 또 생겼다는 말이었다.

“하…….”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다들 행복해 보이셔서 좋겠네요.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채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인데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다들 나보다는 행복할 테니까!

“씨발, 장태산 개새끼.”

이 새끼를 어떻게 엿 먹여야 하지?

며칠 동안 나를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장태산을 엿 먹일 힘이 없었다. 적어도 혼자서는 말이다.

‘역시 다른 인물들에게 접근해야 하나.’

비록 나로 인해 소설의 내용이 어그러져 시간 순서가 엉망이 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는 정보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주요 인물들 자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우선 강유현이 있고, 곧 그의 동생 강수현이 들어갈 오딘 길드.

여기가 제일 도움을 요청하기 좋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선역이었고, 로키 길드를 능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한이진과 동생을 잘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선역 중의 선역이기 때문에 나를 못 믿을 확률이 높다. 언제라도 뒤통수칠지 모른다고 경계하면서 아니꼽게 볼 텐데, 그런 걸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다 강 씨 형제도 직접 만나 보니 뭔가 싸하고.

그다음으로는 프레이야 길드.

여기는 사실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길드인데, 오히려 그 점이 더 편할 수 있었다. 굳이 그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계약 관계를 맺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여긴 나중에 강유현과 진득하게 엮일 히로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전투에 미친 걸 크러쉬 캐릭터들이라 연애 비중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인공과 자주 마주치는 건 마땅치 않았다.

음, 그래도 전투 부대 발키리는 실제로 보고 싶긴 한데. 소설에서 읽을 때 정말 멋있어 보였단 말이지.

‘아니, 아니. 덕질하려는 거 아니잖아. 정신 차리자고!’

나는 어디까지나 S급 보조 스킬을 빌미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세력과 접촉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니 최대한 사심을 덜고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다음은 토르 길드?

근데 여긴 진짜 전투광들만 모여서 싫은데. 던전 한 번 끌려가면 한 달 동안은 붙잡혀서 나오지 못할걸.

“하…….”

아니면 헤임달 길드…….

반대로 여긴 벽창호들만 모여 있어서 싫다.

아니, 이렇게 따지고 보니까 멀쩡한 길드가 하나도 없잖아?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어?”

“……?”

지나가던 누군가가 갑자기 멈춰 서서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하늘을 보던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강수현?”

“아, 그때 그 형 맞죠?”

강수현이 왜 여기 있지?

의아해서 계속 쳐다보니, 강수현은 두 눈을 사르르 접으며 활짝 웃었다. 여전히 그는 갈색 털을 가진 레트리버처럼 생겼다. 보이지 않는 꼬리를 맹렬히 흔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와, 반가워요.”

“내가 반갑다고?”

거기다 날 보자마자 하는 행동이 정상이 아니다. 나를 보고 반갑다는 말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아, 경찰에 연락했니? 아니면 헌터 협회?”

“네?”

“안 그럼 날 반가워할 리가 없잖아.”

“…….”

내가 주춤거리며 경계하자, 강수현은 순간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큰 눈망울에 괜히 움찔했다. 왜 내가 죄책감이란 감정을 느껴야 하지?

“경찰 안 불러요. 협회에도 연락 안 할 거고요.”

“아니…….”

“믿어 주세요.”

“…….”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와.”

정말로 기쁜 듯이 웃는 강수현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은데 땡땡이라도 치고 있는 건가, 이 녀석.

사회인으로서 따끔한 충고를 해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강수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응? 나?”

“네.”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지. 착각인가.

“뭐, 그냥. 사람 구경?”

빌어먹을 길마 놈이 너한테 했던 것처럼 또 범죄를 저지르라고 명령했단다. 그런 말을 솔직히 할 수는 없으니 대충 대답했다. 실제로 약간 멍 때리고 있기도 했고.

“하하, 그게 뭐예요?”

“무시하지 마라. 사람 구경 재밌다.”

대충 한 대답에 해사한 미소를 지은 강수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 그럼 나랑 데이트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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