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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20)화 (20/228)

20화

발작하듯이 소리를 지른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에 열이 몰려 화끈거리고, 귓가에 쿵쿵거리는 이명이 울렸다. 손에 든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힘을 줘 꽉 잡았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모조리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란 존재가 있었다는 증거도, 의미도, 이제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허탈했다. 그렇게 아득바득 살려고 애를 썼는데. 어떻게 해서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미련하게 굴었는데.

그 모든 게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기, 한이진 씨? 아니, 그러니까…….]

“…….”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욕을 더 퍼붓고 싶었지만 입술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냥 한이진이라고 불러.”

[아, 넵.]

이제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이름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한이진.

동생이 볼모로 잡혀 있는 빌런. 성격은 더럽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껴 빌런 길드를 빠져나가고 싶어 했던 녀석. 그러다 죽어 버린 미련한 놈.

너는 내가 있던 세계로 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방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동생이 죽을까 봐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을까?

어찌 되었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다시 내 몸을 돌려받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했다.

“야, 너 나 도와준다고 했었지? 보상 차원으로.”

[네? 네, 그랬죠.]

나는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이진의 수첩을 들어 올렸다. 녀석이 지우지 않은 병원 목록을 눈으로 쭉 훑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병원 위주로 사람 찾아봐. 나이는 열에서 열셋 정도의 남자애. 머리를 싹 밀었는데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이름은…….”

그러고 보니, 한이진 동생 이름이 뭐였지?

아무리 정신없어도 길마 새끼한테 유도 질문해서 알아냈었어야 했는데. 입술을 꽉 깨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도결아.’

울음 섞인 슬픈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걸 듣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도결. 아마 그 이름일 거야.”

[아니, 자, 잠깐만요.]

명백히 당황한 목소리로 심단테가 물었다.

[지금 저더러 사람을 찾으라는 건가요?]

“왜, 못 해?”

[그건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이든도 몰래 나를 돕다가 잘못될 뻔했었고. 그런 의미에서 심단테는 참으로 막 이용해도 괜찮은 상대였다.

“그 빌어먹을 기계 돌려보낼 테니 꼭 연구해라. 알았냐?”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S급 부화기 가지고 있냐?”

[네? S급 부화기요?]

당황한 심단테가 놀란 어조로 물었다.

[그런 게 왜 필요하시죠? 설마 전설급 드래곤 알이라도 가지고 있어요?]

“묻지 마. 다쳐.”

SS급 던전에서 얻은 거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 일부러 험악하게 말을 내뱉었다. 결국 심단테는 준비하겠다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필요한 게 있으면 또…….”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던 나는 멈칫했다.

이거 발신 번호 표시 제한이잖아? 내 쪽에서는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챘다는 듯이 심단테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 지금은 도청당할 가능성이 있어서 일부러 우회해서 연락드린 거거든요. 조만간 제가 새로운 핸드폰을 보내 드릴 테니 앞으로는 그걸로 연락해 주세요.]

“……그래.”

안 그래도 길드에서 지급하는 건 모두 찝찝하던 참이었다. 한이진도 그래서 이 핸드폰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겠지.

더 이상은 생각하는 것도 힘들어서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복잡한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무언가가 뒤엉켰다.

그냥 차라리 저쪽 세계는 잊고 사는 게 편하려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데드 플래그가 사방에 널린 한이진의 몸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히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원래 세계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적당히 버티기만 하면 된다. 겸사겸사 한이진 동생도 좀 찾아 주고, 데드 플래그 좀 박살 내 주고. 그러다 한이진이 돌아오면 나머진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유일하게 살아남은 1세대 각성자. 세계 최초의 SS급 능력자. 5년 만에 게이트에서 귀환한 생존자.

강유현을 수식하는 말들은 많았다. 처음 게이트가 열린 후로 아직까지 세상은 그리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웅은 난세에 반드시 나타난다고 하였던가. 그야말로 5년 만에 극적으로 귀환한 강유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가 돌아오고 나서 생긴 던전 등급 이상 현상으로 일부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 전 들어간 D급 던전이 무려 SS급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이 들린 이후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무려 세계 최초로 등장한 SS급 던전을 공략한 것이다. 그것도 혈혈단신 혼자만의 힘으로 말이다.

오딘 길드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로 기사를 내보냈고, 곧 전 세계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정작 당사자인 강유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통은 던전 클리어를 완료하자마자 인터뷰나 기자 회견을 여는 헌터들이 많기에 조금 이상한 행보였다.

어떤 이들은 강유현이 혼자 무리하게 SS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다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SS급 던전의 출현 자체가 거짓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나 헌터 공식 관리 기관인 협회의 정식 조사관들이 확인한 바로는 알브헤임-D29에 던전 이상 현상이 일어난 건 확실하다고 알렸다. 등급 변경은 최소 S급 이상이라고 밝히자 여론은 또다시 침묵하는 강유현에게로 집중됐다.

그가 모습을 감춘 이후 온갖 소문과 음모론이 난무하던 때, 드디어 강유현이 기자 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 회견이 열리는 회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기자뿐만이 아니고, 같은 헌터들조차 강유현을 보기 위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한 기자의 눈이 누군가를 향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확실했다. 기자가 옆에 있던 동료의 팔을 툭 쳤다.

“야, 저기. 성유빈 왔다.”

“뭐?”

그들은 회장 한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한 여인을 흘끗거렸다.

틀림없었다. 그녀는 프레이야 길드의 S급 능력자 성유빈이었다.

프레이야 길드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었다. 우선 ‘여성’만 길드원으로 받는다는 게 프레이야 길드 마스터의 철칙이었다.

그 때문에 길드를 만든 초기에는 여론을 비롯해 다른 길드들의 시선도 좋지 않았다. 왜 굳이 여성만 길드원으로 받느냐, 남성 혐오증이라도 있느냐 등의 숱한 질문을 받았음에도 프레이야 길드 마스터인 송차현은 묵묵부답이었다.

프레이야 길드원들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증명해 보였다. 길드 마스터인 송차현을 비롯해 성유빈, 한여름, 차민희가 주축이 된 전투 부대 ‘발키리’가 각종 난공불락의 던전들을 클리어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점차 바꾸어 나갔다.

지금의 프레이야 길드는 오딘 길드와도 견줄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투 부대 발키리의 리더인 성유빈은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강유현의 기자 회견장에는 왜 온 걸까. 궁금증을 표하던 기자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그 사실을 떠올렸다.

“성유빈, 쟤 오빠도 1세대 각성자였잖아.”

“아, 맞다.”

맞은편에 있던 기자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빈의 오빠인 성윤재 역시 강유현과 함께 첫 번째 게이트에 갇혔던 1세대 각성자였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건 강유현뿐이다. 그 외에는 다 죽었다고 한다. 유족들의 질문에 강유현은 그렇게 짧게 답했을 뿐이었다. 자신 외에는 다 죽었다고.

그 담담한 말에 분노한 유족들도 있었다. 혹은 슬퍼하며 자신의 가족이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남긴 말은 없었는지 물어본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강유현은 그런 질문에는 한 번도 답하지 않았다. 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다 무시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 성유빈이 직접 찾아오다니. 그녀를 알아본 기자들은 혹여나 기자 회견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특종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당최 입을 열지 않던 강유현의 기자 회견이 그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강유현 능력자님 들어오십니다.”

진행자의 말 한마디에 조금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강유현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수십 개의 카메라가 동시에 플래시를 터트려 댔다.

강유현은 여전히 지독히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무신경한 태도로 등장해 걸음을 옮겼다.

분명 자신들보다 훨씬 어려 보이건만, 묘하게 염세적인 얼굴은 가끔 노인보다도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주의 사항을 알리는 진행자의 말이 끝나고, 강유현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강유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 던전 공략은 저 혼자서 한 게 아닙니다.”

“…….”

갑작스러운 말에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섣불리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나마 회복이 빠른 베테랑 기자가 겨우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 대체 누구와…….”

“로키 길드의 한이진 능력자입니다.”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유현이 냉큼 대답했다.

기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게 누구야? 나도 몰라.

웅성거리는 기자들 사이에서 단 한 명만이 조용히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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