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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9)화 (19/228)

19화

“……!”

아니, 이게 무슨…….

심각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응시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의 그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전화였다.

“…….”

고민하던 나는 통화를 눌렀다.

“당신 뭐야?”

[하하, 그렇게 다짜고짜 전화를 끊으시면 곤란…….]

“당신 뭐냐고.”

[하하…….]

멋쩍은 듯한 남자의 음성이 귀에 거슬렸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상태인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보낸 수상한 남자를 좋게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그쪽과는 초면일 테니 다시 자기소개하도록 하죠.]

남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끄럽게 흐르는 목소리가 듣기에는 꽤 좋았다. 보이스 피싱에 최적화된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이 남자가 마음만 먹으면 옥침대 백만 개는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레긴 길드의 S급 아이템 제작자, 심단테라고 합니다.]

“레긴 길드?”

남자, 아니, 심단테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레긴 길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아이템 제작 스킬을 가진 제작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주요 인물인 심단테는 S급 스킬을 가진 무척이나 희귀한 제작자였다. 그런 남자가 한이진에게 전화를 하다니. 나는 약간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 진짜 심단테 맞아?”

소설에서 심단테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미스테리한 캐릭터였다. 실험에 미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고, 위험한 인체 실험도 서슴지 않게 해 대서 국가 기관에 구속되었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러나 그가 만든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뛰어나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곤 했다. 주인공들이 목을 맨 아이템들 대부분이 심단테가 만든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신비주의 컨셉인 심단테는 이름만 몇 번 언급되었을 뿐 실제로 소설에 등장했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읽은 회차에서는 그랬다. 그러니 사칭범이라고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었다.

[뭐, 못 믿겠으면 헌터 자격증이라도 찍어서 보내 드릴까?]

“그러든가.”

심단테로 추정되는 남자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헌터 자격증은 세계 헌터 관리 기관에서 특수하게 만든 신분증이었다. 등록한 본인이 아니면 가지고 다닐 수 없도록 치밀한 스킬을 걸어 놓아서 누가 훔쳐 가 도용할 걱정은 없었다.

띠링.

조금 기다리니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통화를 켜 놓은 상태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헌터 자격증

이름: 심단테

등록번호: 09S-00139

등급: S

소속: 레긴 길드」

“…….”

진짜 심단테잖아.

민트색의 헌터 자격증에 박힌 심단테의 사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심단테가 이렇게 생겼구만? 제법 멀끔하게 생긴 얼굴을 보며 아무 말 없이 혀만 차고 있는데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좀 믿겠습니까?]

“하, 뭐…… 저한테는 무슨 용건이죠? 메시지는 무슨 의미입니까.”

헌터 자격증 사진 위에 보이는 메시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당신 한이진 아니지?」

소름이 확 끼쳤다. 내가 빙의자라는 걸 이렇게 간단히 들킬 리가 없는데, 순간 찔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 그거.]

심단테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진짜 한이진 씨라면 전화를 그렇게 끊을 리가 없으니까.]

“그게 무슨…….”

[당신도 눈 뜨자마자 봤죠? 제 역작의 QED-Ver.7!]

“……뭐?”

생소한 명칭에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심단테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못 봤을 리가 없는데. 한이진 씨 몸이랑 연결되어 있던 기계 못 봤습니까?]

“아, 그거.”

그제야 빙의하자마자 봤던 흉물스러운 기계가 떠올랐다. 대충 봐서 몰랐는데 겉에 Q…… 어쩌고 하는 인식표가 붙어 있었던 것 같다.

“등급 올려 준다는 그 사기 아이템?”

[뭐, 사기라는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말하고 팔긴 했습니다만…….]

“허…….”

이 새끼 완전 사기꾼 아냐?

내 어이없는 한숨 소리에 심단테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한이진 능력자의 몸에 당신이 들어온 덕분에 능력치가 훨씬 높아졌을 테니까요.]

“……!”

처음 한이진의 몸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생판 모르는 남의 몸으로 눈을 떴으니까. 거기다 전날까지 줄기차게 읽어 댄 소설 속의 인물이라니. 꿈이라면 아주 지독한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적응력이 빨랐고, 생각보다 능숙하게 한이진을 연기할 수 있었다. 시스템 덕분에 몸과 동기화가 되기도 했고.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심단테에게 물었다.

“그 기계가, 단순한 불법 아이템이 아니야? 영혼을 바꾸는, 뭐 그런 거라도 돼?”

[불법 아이템이라뇨. 제 평생의 역작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죠. 아, 그리고 영혼을 바꾸는 기계인 건 맞습니다. 이게 양자 역학에 근거한 건데…….]

“야, 이 개새끼야!”

[헉……!]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심단테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러는 것도 나에게는 가식적으로만 들렸다. 이 미친놈이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이를 갈며 말했다.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네? 아뇨.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그야……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그쪽으로 간 진짜 한이진 씨를 찾아야 하는데 그건 아직 무리거든요.]

“아직 무리인 거면, 가능성은 있다는 거 아냐?”

[당연히 가능성 있죠. 제가 처음 서울에 열린 게이트를 봤을 때, 역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었죠. 게이트 덕분에 다른 차원의 존재가 증명되긴 했지만 아직 시스템이 아닌 일반 사람은 게이트를 만들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인간의 힘으로 게이트를 만들어 보자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연구한 양자 역학 이론을 적용해서…….]

“한 줄로 요약해.”

[시간을 주시면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후…….”

미친 사이코 과학자의 말을 들으니 머리가 더 무거워졌다. 나는 이 실험에 미친 새끼한테 운 나쁘게 걸려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였다.

제길, 제길.

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심단테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왜 돌아가고 싶으신 거죠?]

“왜라니?”

[그야, 시스템이 좋은 스킬을 주지 않았나요? 보통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유저한테는 후하던데.]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투가 마치 나처럼 이쪽 세계로 끌려온 사람들이 꽤 많다는 듯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 말고 또 넘어온 사람들이 있나?”

[아, 있죠. 아니, 있었죠.]

“있‘었’다?”

[네. 많지는 않고 초기 실험에서 성공한 사례가 딱 하나 있었죠. 그는 거의 베타 테스터였지만요.]

“근데 왜 과거형이야.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데?”

[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묻자, 심단테는 미적거리며 대답을 미뤘다. 사납게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툭툭 건드리자,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솔직히 저도 몰라요. 연락이 끊겼거든요.]

“뭐?”

[실험에 성공한 걸 알린 이후 잠적했어요. 제 예상으로는 트립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하고…….]

“하…….”

[뭐, 차원 이동이 워낙 매력적이잖습니까? 트립한 곳이 여간 마음에 들었었나 보죠. 하하.]

그 태평한 말을 듣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무리 시스템이 좋은 스킬을 줘도 여기는 싫다고. 거기다 한이진의 몸은 더더욱 싫다고!

[음, 베타 테스터와 달리 그쪽은 상당히 지금 상황이 싫은 것 같네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보상 차원에서.]

“당연히 그래야지. 개새끼야.”

[하,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린 심단테가 잠시 후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러면 제 예쁜이 QED-07을 회수하는 걸 도와주실래요? 간만에 나온 성공작이니 더 연구하고 싶어서요.]

“로키 길드 마스터가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

[네? 로키 길드…… 장태산이요?]

놀란 듯 목소리를 높인 심단테가 작게 탄식했다.

[아니, 어쩌다가…….]

“불량 아이템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곱게 봤겠어? 나도 걸려서 난감했었다고. 이 민폐 새끼야.”

[하, 하하…….]

심단테는 또다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은근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으음. 곤란한데요. 고양이 씨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려면 그걸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데…….]

“고양이는 누가 고양이야. 씨발.”

[아, 슈뢰딩거의 고양이 모르세요?]

“모르겠냐?”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누가 모르냐.

뜬금없는 말에 미간을 모으는데, 심단테가 명백히 즐거워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뿌린 QED 시리즈를 쓰는 능력자들을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떤 존재일지 알 수 없으니 딱 맞지 않아요?]

“시발.”

이 자기 역할에 지극히 충실한 사이코 과학자는 정말이지 끔찍하고 놀라웠다. 고양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다른 의미로 소름이 끼치는 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날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그러면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근데 원래 이름이 기억나긴 하세요?]

“당연하지. 내 원래 이름은…….”

내 이름.

내 이름이 뭐였지?

갑자기 머릿속이 텅텅 빈 느낌이 들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있는데, 심단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보아하니 이미 동기화도 끝나신 것 같은데, 원래 몸은 잊는 게 어떠세요? 어차피 다시 돌아가 봤자 적응도 잘할 수 있을지…….]

“시발,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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