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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8)화 (18/228)
  • 18화

    4. 슈뢰딩거의 고양이

    “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겨우 눈을 뜨니 흐릿했던 눈앞이 겨우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환한 불빛이 연신 눈을 찔러 댔다.

    “일어났네?”

    “……장태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상치 못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의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장태산이 불쾌한지 눈썹을 찌푸렸다.

    “야, 아무리 그래도 길마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냐.”

    “왜…….”

    “왜냐고?”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거기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목에 느껴지는 걸 보니 수갑 같은 게 채워져 있는 모양이었다.

    왜 장태산이 나를, 아니, 한이진을 그렇게 난폭하게 데려와서 이러는 거지?

    혼란스러운 머리로 생각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던전에 몰래 간 걸 들킨 거구나.

    “그러게 예쁘다고 봐줄 때 작작 하지 그랬어.”

    “…….”

    “멋대로 굴고 말이야. 응?”

    잔뜩 가라앉은 장태산의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눈만 돌려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장태산에게 들켰으면 감시 역인 이든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윽…….”

    “…….”

    예상대로 이든 역시 구속당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희미한 빛이 나는 쇠사슬이 그의 손을 묶고 있었고, 나와 달리 누군가에게 맞은 건지 잘생긴 얼굴이 쥐어 터져 있었다.

    아니, 얼굴 빼면 시체인 애한테 뭐 하는 짓이야! 화가 난 나는 속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몰래 어디 갔었어?”

    “…….”

    “이든 녀석은 죽어도 입을 열지 않더라고. 어디 갔었니? 응?”

    “…….”

    그 말에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이든은 끝까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태산에게 학대당하며 억지로 길들여졌던 그 이든이 말이다.

    하지만 나란 놈은 그런 이든을 이용할 생각만 했지.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말 안 할 거니?”

    “…….”

    장태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그가 만만해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겉모습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한이진은 그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것뿐이었다. 그 증거로 지금 한이진의 몸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네가 또 이런다니 실망스럽구나.”

    ‘……또?’

    장태산의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한이진은 이미 로키 길드에서 도망치려고 했었구나. 그게 실패해서 다시 잡혀 왔던 건가? 그리고 계속 감시를 받은 거고?

    근데 왜지? 한이진이 마음만 먹으면 감시가 허술했을 때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길마에게 숨긴 보조계 스킬도 있었고,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니까 치밀하게 계획만 세웠다면…….

    “하여간 고집은 세 가지고.”

    작게 투덜거린 장태산이 누군가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 동상처럼 서 있던 남자가 몸을 움직였다.

    퍽!

    “큭!”

    “……!”

    남자의 발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든의 등을 짓밟았다. 내가 놀라며 쳐다보자, 이든을 짓밟는 발길질이 더욱 거세졌다. 방 안은 이든을 때리는 소리와 아픔을 참는 이든의 신음으로 가득해졌다.

    퍽! 퍽!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자 손에 묶인 쇠사슬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이 묶인 나는 남자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능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

    손을 묶은 쇠사슬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능력을 막는 봉인 아이템인 것 같았다. 그러니 이든도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는 거겠지.

    “……그만해.”

    이든이 맞는 걸 더는 보지 못할 것 같아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무시하며 이든을 계속 때렸다.

    “큭……!”

    퍽, 남자의 발에 얼굴을 맞은 이든이 붉은 피를 토해 내자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만!”

    그러자 장태산이 손을 내저으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멈춰.”

    개자식.

    속으로 장태산을 욕한 나는 피떡이 된 이든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추궁하듯이 나를 보는 장태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던전에 다녀왔어요.”

    “던전?”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장태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레벨 업 좀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기분 전환 삼아 잠깐 나갔다 온 건데 이렇게 과민 반응하실 줄 몰랐어요.”

    공포심에 몸이 덜덜 떨려도 혀는 제법 매끄럽게 움직였다. 아마 한이진의 패시브 스킬 덕분인 것 같았다. 이 스킬로 다른 꿍꿍이가 없었다는 걸 장태산이 믿어 줬으면 좋겠다.

    “흠.”

    “…….”

    내 말을 들은 장태산이 고민하듯이 의자 팔걸이 끝 쪽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내 대답에도 그는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긴장한 나는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자꾸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럴까.”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장태산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쪽을 지키고 있던 남자에게 손짓했다.

    “그거 가져와.”

    “……?”

    곧 남자가 가지고 들어온 어떤 물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저게 왜 여기 있어?

    여기서 빙의하고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봤던, 그 흉물스러운 기계. 그걸 들고 온 남자가 장태산의 앞에 내려놨다. 어쩐지 방에서 없어졌다 했더니 장태산이 가져갔던 모양이었다.

    “이런 걸 몰래 사서 멋대로 등급을 올리려고 하고, 몰래 나가서 멋대로 레벨 업을 하려고 하고.”

    “…….”

    “왜 자꾸 앙큼한 짓을 하지? 응?”

    비꼬는 장태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러면 아무리 너라도 더 봐주기가 힘들어.”

    “…….”

    “동생 생각도 해야지. 응?”

    그 말에 번쩍 고개가 들렸다.

    “동생……?”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장태산을 똑바로 쳐다봤다. 왜인지 귓가가 홧홧하고 쿵쾅거리는 이명이 들렸다. 장태산은 당황하는 내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죽어 가는 동생 살려 달라고 먼저 빌었던 건 너였잖아. 응? 이진아.”

    “…….”

    “설마 잊은 건 아니지?”

    입꼬리를 올린 장태산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동생. 한이진의 동생.

    이제야 줄곧 마음속에 걸리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쓰지도 않고 방에 쌓아 두던 태블릿 피시. 한이진은 그다지 전자기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길드에서 지급한 핸드폰은 믿지 못해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대포 폰을 구해서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행이 지나면 새로 나온 버전의 태블릿을 계속 사서 모았다. 길마에게 잡혀 있는 동생에게 언젠가 주기 위해 모았다고 생각하면 제법 아귀가 들어맞았다.

    “……동생, 동생이…….”

    “응?”

    “동생이, 무사한지 알고 싶어.”

    자꾸만 바싹 마르는 목구멍 안으로 마른침을 겨우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장태산은 흔쾌히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 피시를 집어 들었다.

    “그래,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

    그가 튼 영상이 눈앞에 재생되었다. 나는 그걸 뚫어져라 응시했다. 작은 태블릿 피시 화면 속에는 왜소한 남자애가 병원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어려 보였다. 나이는 열? 열둘?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왜소한 몸이라 어쩌면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일 수도 있었다.

    한이진이랑 좀 닮았나? 잘 모르겠다. 이 작은 태블릿 피시 화면으로는 아이를 잘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한이진이 울컥한 건지 눈물이 앞을 가려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병원에 있잖아. 머리는 왜 깎았지? 백혈병인가? 아니면 뇌 쪽에 병이 있어서?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깨달았다.

    한이진은 섣불리 도망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수첩에 적혀 있는 종합병원 이름들은 한이진이 추적한, 동생이 입원했을지도 모르는 병원 목록들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직 병이 나은 것 같지는 않은데. 더 이상 나쁜 짓을 하는 게 심적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인가? 그런데도 동생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래서 허튼짓하다가 다시 잡혀 돌아왔었냐?

    “…….”

    원작에서 한이진이 죽고,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이진이 죽었으니 이용 가치가 사라진 동생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자 끔찍한 두통이 엄습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윽.”

    무력하게 주저앉아 신음하는 나를 향해 장태산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하던 대로 잘 좀 하자. 응?”

    “…….”

    “동생 만나고 싶지 않아? 임무 잘하면 만나게 해 준다니까 그러네.”

    장태산은 아무 말 없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남자들이 다가와 앉아 있는 나를 짐짝처럼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끌려가 다시 방 안에 그대로 갇혔다.

    “…….”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가족. 가족이란 뭘까.

    나에게 있어선 지긋지긋하고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들이었다. 내 인생에 도움 하나 되지 않은 머저리들.

    하지만 한이진에게는 그렇지 않았겠지. 가족이 동생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당연히 지키고 싶었겠지.

    “하아…….”

    왜 하필 나 같은 놈이 한이진의 몸에 빙의한 걸까. 좀 더 뭔가,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의욕적인 놈이 빙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력감에 휩싸인 나는 멍청하게 천장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삐삐삐삐.

    “……?”

    그때,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니던 한이진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슬쩍 보니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전화였다.

    ……뭐지.

    의심스러운 기분이 든 나는 선뜻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요란하게 울리는 탓에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한이진 씨?]

    “……그런데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불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객님, 이번에 또 좋은 물건이 들어와서 연락드렸는데…….]

    “안 사요.”

    [네? 아니, 잠깐……!]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야, 스팸 전화였어? 짜증이 난 나는 핸드폰을 휙 던져 버렸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그러나 스팸 전화는 포기하지 않을 셈인지 끊임없이 전화해 댔다. 아니, 보통은 이렇게 끊으면 다시 전화 안 하지 않나? 되게 끈질기네.

    짜증이 난 나는 아예 핸드폰을 끄려고 다시 터치했다. 그러나 잠금장치를 풀자마자 보이는 메시지에 손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신 한이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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