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긴, 똑똑한 주인공이니 내 보조 스킬이 어떤 건지 이번 전투로 잘 알았겠지. 지금의 그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SS급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으니, 내 보조 스킬이 탐나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나를 오딘 길드로 데려가겠다는 건가? 하지만 난 로키 길드 소속 빌런 캐릭터인데? 가면 감방부터 갔다가 나오는 거 아니야?
의심을 하게 되니 강유현의 권유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 썩은 로키 길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인공과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작의 한이진과 달리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선한 일만 한다고 해서 강유현에 의해 죽는 미래가 바뀐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곁에 있으면 불안하니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용하기 쉬운 이든이라면 몰라도 강유현은 쉽게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스킬 시간이 지속되고 있어서 그런지 흉흉한 기운이 하찮은 B급 몸뚱이를 자꾸만 찔러 댔다.
“혹시, 그, 거절하면…….”
“…….”
“아니, 나 일단 다른 길드 소속인데…….”
로키 길드 마스터가 그렇게 쩔게 감시질을 하는데 과연 순순히 보내 줄까도 의문이었다. 거기다 뒤가 너무 구린 게,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고민하는 나를 내려다보는 강유현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소설을 읽을 때 무표정의 대명사인 강유현이 드물게 얼굴을 찡그리며 감정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코앞에서 놓쳤을 때라고 했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가진, 혹은 가져야 할 ‘것’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순간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죽 훑었다. 아니겠지? 설마. 내가 막 그런 전설급 아이템 정도로 보이는 건 아니지? 나 사람이야. 사람. 너랑 같은 휴먼. 오케이?
……그러니까 우리 제발 말로 합시다.
“당장 따라와.”
“아니, 잠깐, 잠깐만!”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강유현은 나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다. 깜짝 놀란 내가 손을 휘저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대로 꼼짝없이 히어로 소굴인 오딘 길드에 잡혀가나 했는데, 멀쩡한 줄 알았던 강유현이 별안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윽……!”
“……!”
갑자기 왜 저러지?
그때 스킬 설명을 읽으며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문구가 떠올랐다.
「※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
부작용……, 설마 그 스킬 부작용이라는 게 강유현에게 온 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강유현의 신음이 더 커졌다. 어찌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위에서 이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진아! 한이진!”
“…….”
“지금이야, 어서!”
때마침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생성된 워프 포털이 열린 게 보였다.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마치 누가 도와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내 발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아파하는 강유현을 놓고 가는 게 조금 양심에 찔렸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강유현.”
“큭, 잠…….”
내가 곁에 남아 준다고 해서 부작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 스킬 덕에 SS급 보스 몬스터를 무찔렀으니 그걸로 만족해 주었으면 좋겠다.
워프 포털 쪽으로 몸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든이 내 몸을 낚아챘다.
“기다려! 한이진!”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꽉 감았다. 그러자 처음 워프 포털을 탔을 때의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 첫 번째 던전 공략이 끝났다.
***
던전 안에서 제법 멀쩡한 줄 알았던 한이진의 몸은 워프 포털을 타자마자 줄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그런 나를 짐짝처럼 들고 온 이든은 은신 스킬을 이용해서 몰래 길드 안에 잠입한 다음 나를 방 안에 고이 넣어 주었다. 첩보 영화처럼 재빠르고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으, 고맙다.”
“그렇게 고마우면…….”
“꺼져.”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정색하며 말하자 상처받았다는 듯이 울상 짓는 이든의 얼굴을 흘끗 올려다봤다.
뭐, 이 녀석 덕분에 던전도 갔고……. 비록 D급이 SS급이 되는 엉망진창인 던전이었지만 클리어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음이 조금 넓어진 나는 인심 쓰듯이 물었다.
“뭘 원하는데? 참고로 나 돈 없다.”
없다기보단, 정확히는 한이진의 돈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이놈은 대체 돈을 어디에 숨겨 놨는지 핸드폰 안에는 은행 앱도 하나 없었고 방을 뒤져도 통장 하나 나오지 않았다. 어디 산 깊숙한 곳에 묻어 놓은 거야, 뭐야. 처음 발견한 지갑에 넣어 둔 배추 잎 몇 장이 전 재산인 나는 몹시 가난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정 없게 무슨 돈이야.”
“그럼?”
시큰둥한 얼굴로 물으니 이든의 얼굴이 환해졌다. 머리카락이 분홍색이라 그런지 봄꽃이 활짝 핀 듯 화사했다. 덩달아 방 안도 확 밝아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한 번만 밟아 주라.”
“씨발! 꺼져!”
내 거친 욕설에도 이든은 싱글싱글 웃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물건을 아무거나 휙 던지니 가볍게 피하며 깝죽댔다.
“나 회피 스킬 AA야.”
“씨발!”
씩씩대는 나를 보며 역겹게 윙크한 이든이 문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오빠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하지 마, 개새끼야.”
소름이 돋아서 팔을 벅벅 긁으니, 이든은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문을 열기 전에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아, 혹시 들켰을지도 모르니까 길마 염탐 좀 하고 올게.”
“…….”
이든은 그 말을 남기고 방을 쏙 나가 버렸다.
베개를 들고 있었던 나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설마 길마에게 들키진 않았겠지? 금방 클리어할 줄 알았던 D급 던전이 갑자기 SS급으로 바뀌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긴 했지만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니, 설마 원작의 던전 이상 현상에 이든과 내가 딱 걸릴 줄 누가 알았겠어. 거기다 그 던전에 주인공이 올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워낙 초반의 일이라 던전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넘겼는데 그렇게 겹칠 줄은…….
거기다 던전 안에서 또 기막힌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맞다. 아이템.”
눈살을 찌푸리던 나는 깜박 잊고 있었던 걸 퍼뜩 기억해 냈다. 바로 SS급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분배받은 아이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선은 상태 창을 불렀다.
“상태 창!”
그러자 왠지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르게 더 번지르르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황금빛 상태 창이 자태를 드러냈다.
[한이진]
레벨: 45
등급: B(??)
칭호: 니플헤임을 제패한 자(L)
스탯
체력: 42 힘: 20 민첩: 22 정신력: 63 마력: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