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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화 (16/228)

16화

강유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야 당연히 놀라겠지. 갑자기 시커먼 사내놈이 달려들어서 키스를 하다니 말이야. 나라면 바로 싸대기 날린다. 그리고 X 패듯이 패겠지.

현타가 밀려왔다. 순간 눈에 보인 강유현의 붉은 입술에 막무가내로 갖다 대긴 했는데…….

‘혀……, 혀는 안 넣어도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현타가 더 밀려와서 어질어질했다. 겨우 입술을 뗀 나는 강유현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너…….”

강유현이 뭐라고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차마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반대편으로 몸을 돌린 드라우그 킹과 눈이 마주쳤다.

“키이이이!”

놈의 분노한 비명을 들으며 손을 휘저었다.

“야, 저기! 저기!”

“……!”

강유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던 강유현은 입을 다물더니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기다려라.”

“아.”

내 주위로 반투명한 벽 같은 게 촘촘히 세워졌다. 실드였다. 아까 하급 몬스터들을 마주했을 때 쳤던 실드와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업그레이드된 건가? 개박하 스킬이 제대로 먹힌 거야?

멍하니 생각하는 내 앞에서 강유현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콰광!

“윽!”

드라우그 킹과 격돌한 강유현의 몸이 푸른 불꽃이 넘실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아까와 달리 강유현의 스킬이 모두 적용되고 있었다.

[‘개박하를 흔들어 보세요(S)’의 영향으로 대상의 능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특수 조건에 부합하여 ‘히든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

[대상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동일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나누어 받습니다.]

“……뭐?”

나는 시스템 음성을 들으며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는 듯 문자가 뜬 상태 창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동일한 경험치와 아이템……! 무려 SS급 보스 몬스터가 드롭하는 아이템……!

‘강유현! 절대 지면 안 된다. 파이팅!’

곧바로 물욕의 화신이 된 내가 속으로 맹렬하게 강유현을 응원했다. 그러자 그 응원에 화답하듯 싸움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콰과과광!

“키에엑---!!!!!!!!”

놀랍게도 강유현이 드라우그 킹을 압도하고 있었다. 본래 지금의 그는 놈을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패시브 스킬들이 봉인당하고, 각종 스킬들도 억눌린 채 마검 티르빙만으로 겨루기에는 턱도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유현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억눌렸던 스킬들이 폭발하듯 흉흉하게 빛을 내서 강유현 자체가 푸른 불꽃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멋있네…….’

강유현을 응원하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첫 만남이 최악이긴 했지만, 그는 내가 열렬히 읽던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마치 덕질하던 팬이 직접 아이돌을 마주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설레는 마음이 들어 조금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정확히 강유현이 떡이 된 보스 몬스터를 땅에 메다꽂기 전까지였다.

***

시스템 창이 미친 듯이 빗발쳤다.

「스킬의 모든 등급이 일시적으로 올라갑니다.」

「황혼의 인도자(SS)가 활성화됩니다.」

「소멸하는 어둠(SS)의 효과가 강력해집니다.」

「엘리바가르의 가호(SSS)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한계를 돌파하여 새로운 영역에 도달합니다!」

「‘히든 스테이지’가 열렸습니다.」

“…….”

그 모든 시스템 창을 강유현은 무덤덤하게 응시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드라우그 킹에게 향했다.

그래. 일단은 저 증오스러운 괴물을 처치하는 게 먼저였다.

강유현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드라우그 킹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키에엑---!!!!!!!!”

얼마 가지 않아 드라우그 킹은 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보는 강유현의 얼굴도 조금 일그러졌다. 가면 같은 얼굴 아래 감추었던 감정의 편린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이렇게나 쉬운 거였나.

이 괴물을 잡기 전에 죽었던 수백 명의 목숨은, 그리고 잡기 위해 죽었던 수십 명의 목숨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강유현의 들끓는 심경에 호응하듯 마검이 푸른 검기를 토해 내는 것처럼 뱉어 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놓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반드시, 돌아갈게!

유현은 마지막에 성윤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한 윤재에게,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었다.

-그래서, 너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 줄게!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울부짖으면서, 안도하며 웃는 윤재의 얼굴을 뒤로 한 채 도망쳤다. 그는 그렇게 살아남았었다.

327명의 목숨을 희생해서.

“으아아아!”

광포하게 포효하며 마검을 내질렀다. 드라우그 킹은 자신의 몸보다 한참이나 작은 검에 꿰뚫려 뒤로 질질 떠밀렸다. 놈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졌다.

“키이, 키이이! 키이이이!!!”

망자의 왕, 지금까지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SS급의 보스 몬스터.

그 거대한 몸이 한낱 나약한 인간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필드가 초토화 되었다.

쿠우우웅, 쿠궁!

“키, 키이…….”

“…….”

바르작거리는 드라우그 킹에게 강유현은 천천히 다가갔다.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에는 이제 증오심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히도 무심한 얼굴이었다. 계속해서 열에 들뜬 감정을 내보이기에는 살기 위해 부단히 버틴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러니, 이제 다 끝내도록 하자.

강유현은 천천히 마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내리치자 푸른 궤적이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완전히 허물어진 드라우그 킹의 시체 위로 시스템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니플헤임-SS31의 보스 몬스터 ‘드라우그 킹’을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최초로 니플헤임-SS31을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니플헤임을 제패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히든 스테이지’가 종료되었습니다.」

「니플헤임-SS31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망자의 지배자’가 또 보자며 당신에게 손을 흔듭니다.」

“…….”

재가 되어 사라지는 드라우그 킹의 시체를 보며 강유현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의외로, 그는 이 순간 정말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전력 질주한 후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처럼 머릿속이 전보다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그의 코끝에 달콤한 향이 스쳤다. 어디선가 맡아 봤던 그 향기였다. 한 번 맡으면 속절없이 이끌려 버리는, 그를 미치게 만드는 그 내음.

강유현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생기 없이 가라앉았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처럼 순식간에 눈매가 매서워졌다.

‘한이진.’

그의 눈에 어떤 사내가 들어왔다. 주저앉아 있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멍해 보였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눈, 코, 입. 그리고 방금 전 닿았던 붉은 입술을 강유현은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

이제 그가 가진 스킬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제 입술을 혀로 핥은 강유현이 천천히 한이진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먹잇감을 찾은 짐승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

“와……!”

정말이지 감동의 순간이었다. 나는 마치 한일전에서 승리한 우리나라 선수를 보듯 경탄하고 기뻐했다.

강유현!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구나! 왜 저렇게 멋있지?

피떡이 된 드라우그 킹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반가운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떴다.

「니플헤임-SS31의 보스 몬스터 ‘드라우그 킹’을 귀속된 상대가 처치하였습니다. 일정량의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최초로 니플헤임-SS31을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니플헤임을 제패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히든 스테이지’가 종료되었습니다.」

「니플헤임-SS31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변덕스러운 자’가 당신에게 윙크를 날립니다.」

드디어!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아이템! SS급 보스 몬스터의 아이템이라니, 과연 뭐가 나왔을까?

신나서 인벤토리를 확인하려던 나는 갑작스럽게 싸한 기분이 들었다. 실드가 펼쳐져 반투명했던 눈앞에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

“…….”

강유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데 이 녀석……. 기분 탓인 것 같지만 눈빛이 어딘가 맛이 가 있는 것 같다.

아니,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차마 묻지는 못하고 그저 눈을 깜박거렸다.

“한이진.”

“응……?”

“…….”

이름을 불러 놓고선 정작 본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윽한 눈길로 내 몸을 쭉 훑어보았을 뿐이었다.

기, 기분 나빠.

왜인지 오한이 든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딱 그만큼 거리를 좁히며 강유현이 바짝 다가왔다.

“왜 피하는 거지?”

“아니, 그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자, 강유현이 긴 팔을 뻗어 왔다.

바보같이 쫄고 싶지 않은데, 저 손에 목이 졸렸던 일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그러자 강유현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왜…….”

“……?”

강유현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굵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어 빤히 쳐다보자, 강유현은 나에게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는 나에게 강유현이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자.”

생뚱맞은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를……?”

그리고 강유현의 그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엄청 복잡해졌다. 날, 아니, 한이진을 경찰에 넘기고 싶은 건가? 저번에 동생 납치했다고 그렇게 화를 냈는데, 그거 때문에……?

겁을 집어먹은 나를 강유현은 시커먼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네 스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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