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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4)화 (14/228)
  • 14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왜, 흔한 빙의물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빙의한 주인공이 작게 저지른 일들이 나비 효과처럼 커져서 사고를 내는 경우 말이다.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시스템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강수현을 납치했을 때 그를 때리거나 위협하지 않아서 정해진 시나리오가 어긋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나비 효과가 일어난다고? 진짜라면 심각하게 에바였다.

    “뒤로 물러나!”

    “……!”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강유현의 거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 손을 놓은 강유현이 팔을 휘둘러 주변에 실드를 치기 시작했다.

    설마 이 녀석, 나랑 이든을 지켜 줄 생각인가?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니, 그가 쏜살같이 튀어 나가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이진아, 괜찮아?”

    가까이 다가온 이든이 내 몸을 살피며 물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강유현을 주시했다. 그가 빼 든 마검이 무서울 정도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없애고 있었다.

    어떡하지. 도와줘야 하나? 그런데 우리가 도와줘 봤자 방해만 될 것 같은데…….

    A급 전투원인 이든과 B급 정신계인 나. 물론 내가 S급 보조계 스킬을 쓰면 이든이 전처럼 놀라운 힘을 쓸 수 있겠지만…….

    또 그렇게 소름 끼치는 짓을 해야 하다니, 이성이 강렬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이든의 곁에서 한걸음 물러서자, 의아한 눈으로 이든이 날 쳐다봤다.

    “잠깐, 거기…….”

    이든이 내 쪽으로 팔을 뻗는 게 어쩐지 느리게 보였다. 그걸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악귀처럼 생긴 새카만 몬스터가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으악!”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나는 장전한 채 인벤토리에 처박아 뒀던 권총을 꺼냈다. 사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손에 든 것에 가까웠다. 새하얀 권총을 들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쾅!

    자그마한 권총에서 어마어마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새빨간 화염은 몬스터를 감싸며 활활 타올랐다.

    “키에엑!”

    “헉……!”

    길게 울부짖으며 사라지는 몬스터를 경악하며 쳐다봤다. 곧 몬스터가 사라지고 일정한 경험치와 아이템이 나에게 들어왔다는 알림이 떴다.

    누군가가 죽인 몬스터의 경험치를 받은 게 아닌, 처음으로 내가 죽여서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실드의 빈틈을 뚫고 들어온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악!”

    “한이진, 이리 와!”

    이든이 다가와 나를 잡아끌었다. 아슬아슬하게 몬스터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식은땀을 흘리며 이든을 붙잡았다.

    “야, 날아!”

    “뭐?”

    “하늘로 날라고, 저번처럼!”

    “아.”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내가 닦달하자 알아들은 이든이 저번처럼 나를 안고 하늘 위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점만큼 작게 보였다. 다행히 하늘까지 쫓아와서 공격할 몬스터는 없어 보였다. 조금 안심한 내가 숨을 돌리며 다시 총을 장전했다.

    “너 뭐 하려고?”

    이든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지금 내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바람 능력 덕분인지 그것만으로도 내 몸은 안정적으로 떠올라 있었다.

    흔들림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총을 아래를 향해 겨누며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뭐 하긴.”

    군대 시절, 나는 나름 명사수였다.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허세가 아닌, 진짜 직업 군인을 권유받을 정도로의 실력이었다. 가족들을 피해 도피성으로 갔던 군대에서 예상치 못한 재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침착하게 총을 겨눴다. 방금 얼떨결에 쐈을 때의 화력을 보면, 이 총은 C급 스킬로 만든 아이템의 위력이 아니었다. 최소 A급 이상의 몬스터를 한 방에 처치하지 않았는가.

    시스템이 말하길, 나에게 ‘금손’ 특성이 있다고 했던가. 그 능력으로 총의 위력이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분명 승산이 있었다.

    “저것들 다 쓸어 버려야지.”

    담담하게 말한 내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연달아 쿵쿵 들려왔다. 총에서 내뿜은 화염이 폭발하며 땅에서 연쇄 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알림이 계속해서 귓가를 때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이동해 봐!”

    “……알았어.”

    완전히 셔틀이 된 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했다. 허리를 휘감는 단단한 팔을 느끼며 나는 미친 듯이 총을 쏴 댔다.

    곧 총구에서 나온 연기로 눈앞이 자욱해졌다.

    ***

    정신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를 처치하던 강유현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주변이 다소 한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키이이, 키이!”

    “키이이이!”

    “…….”

    큰소리를 내며 같잖은 위협을 하는 몬스터들은 여전했지만, 확실히 수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키이이익!”

    눈앞을 막아선 몬스터를 베어 낸 강유현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군가가 하늘 위에서 새빨간 화염을 쉴 새 없이 토해 내고 있었다.

    ‘……한이진.’

    강유현은 다소 복잡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거리가 멀어도 그의 시력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볼 수 있었다. 한이진과 그를 꼭 붙들고 있는 머리 색이 요란한 남자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허리를 가로지르는 팔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강유현은 굵은 눈썹을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마검을 휘둘렀다.

    후웅!

    어느덧 끝도 없이 쏟아졌던 몬스터들이 그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다. 강유현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가 쓰러트린 몬스터들이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검고 반투명한 모습의 몬스터들은 그가 갇혔던 니플헤임의 망자들과 모습이 흡사했다.

    알브헤임의 던전에서 니플헤임의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보통의 등급 이상 현상과 다른 형태에 강유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쾅, 쾅!

    하늘에서는 연신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그 소리가 잠시 끊겼을 때, 강유현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

    강유현이 가진 마검으로 인해 어그로의 상당수가 그에게 끌렸고, 그 때문에 망자들은 하늘 위에서 공격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강유현의 주위에는 망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망자의 특성은 비행이었다. 강유현에게서 멀리 떨어진 망자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칫.”

    혀를 찬 강유현이 땅을 박차며 뛰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멈춰야 했다.

    몬스터를 쏟아 내는 또 다른 빛의 고리가 그의 건너편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

    “으악!”

    하늘에서 신나게 총을 쏘던 나는 공중으로 튀어 오른 몬스터를 피하며 기겁했다.

    저것들은 땅에만 붙어 다니는 줄 알았더니 파리처럼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안 보이는 거 같은데, 모습이 좀 유령 같기도 하고…….

    휙!

    한눈팔던 사이에 얼굴 왼편으로 몬스터가 휙 지나갔다. 놀라서 총도 떨어트릴 뻔했다. 그런 나를 꽉 끌어안으며 이든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으아아악!”

    강유현 쪽을 보고 있던 몬스터들이 고개를 들어 나와 이든을 노려봤다. 게임에서 어그로를 끈 것 같은 모습이라 기분이 묘했다. 놈들은 곧바로 우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제길. 개처럼 달려드는 꼴이 마치 벌 떼를 연상케 했다.

    “꽉 잡아!”

    “으윽.”

    이든은 능력을 이용해서 능숙하게 움직였다. 따라오는 몬스터들을 피해 공중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그게 아주 죽을 맛이었다. 졸지에 같이 날아다니는 바람에 멀미가 나서 토기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만 참아. 이제 곧……!”

    “……?”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 사이로 이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문드문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 곧, 이제 곧 뭐?

    이든의 말을 곱씹던 나는 뒤따라오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제법 일정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든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몹 몰이를 해서 놈들을 소탕할 생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곳이 급이 낮은 D등급이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SS급으로 격상한 던전의 몬스터들을 과연 한꺼번에 격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역시 개박하 스킬을 써야 하나?’

    또다시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어 얼굴을 확 찌푸렸다. 하지만 그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한이진의 몸으로 죽고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았다. 이 젊은 나이에 천국으로 가는 건 너무 억울했다.

    좋아. 이번만 또 눈 딱 감고 쓰자. 대충 포켓X을 진화시키는 것처럼 게임하는 기분으로 쓰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큰 결심을 한 내가 저번처럼 이든의 몸에 손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키이이이----!!!!!!!!!!!”

    “으윽!!”

    “크윽!!!”

    엄청난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몬스터 떼를 피해 날아다니던 이든이 그 소리를 듣고 공중에 멈췄고, 우리를 쫓던 몬스터들마저도 홀린 듯이 움직임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귀를 막은 내가 눈을 찡그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다.

    강유현의 건너편 쪽이었다.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던 빛의 고리 아래에 무언가가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몬스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저게?’

    [몬스터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시스템 창은 냉정하게 말하며 몬스터의 정체를 알려 주지 않았지만, 나는 생김새를 보자마자 저 거대한 몬스터가 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망자의 왕, 드라우그 킹.

    무려 SS급의 보스 몬스터로 소설 중‧후반부에 등장했던 놈이었다. 소설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작가가 슬슬 강한 보스몹을 내보내곤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등장한 SS급이 바로 저 녀석이었다. 분명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모습을 보여야 할 보스몹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키, 키에!”

    “키에에에!”

    쭈뼛거리던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전처럼 나와 이든을 잡으려는 게 아니고, 소리를 내지른 보스 몬스터를 향해서였다. 그제야 나는 소설의 설정을 기억해냈다.

    드라우그 킹은 휘하의 몬스터들과 합쳐져서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뒤늦게 총을 들어 겨눴지만 이미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보스몹에게 흡수된 뒤였다.

    “제길!”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내가 아래를 훑었다. 강유현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였다. 놈은 SS급의 보스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도 태연히 마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걸로는 턱도 없어. 이 자식아!’

    답답한 마음을 속으로만 소리치고, 고개를 돌렸다.

    “야, 이든!”

    “어, 어?”

    처음 보는 SS급 몬스터의 기백에 이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제정신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날 던져!”

    “……뭐?”

    “날 강유현한테 던지라고!”

    그러자 이든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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