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3)화 (13/228)
  • 13화

    강유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천국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평화로운 풍경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보는 강유현의 눈은 지독히 어두웠다. 지옥 같은 니플헤임에서 300년이 넘게 떠돌았던 그에게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실상 그가 이렇게 낮은 등급의 던전에 발을 들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 때문에 세계가 뒤틀려 이상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한 번도 발걸음하지 않았을 곳이였다.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딘 길드에서 따라온 안내인이 강유현의 얼굴을 흘끗 보며 물었다. 그 소문의 SS급 헌터를 마주하고 있는 그의 눈이 연신 떨리고 있었다.

    “네, 다른 사람들은 방해만 됩니다.”

    “그럼, 아이템이라도…….”

    “필요 없습니다.”

    무뚝뚝하게 말한 강유현이 혼자서 발을 옮겼다. 뒤에 덩그러니 남겨진 안내인은 귀환 스크롤을 꺼냈다가 뻘쭘하게 다시 집어넣었다.

    생각해 보니 귀환 스크롤은 던전 클리어를 하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갈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저 강유현이 D급 던전을 클리어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안내인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깔끔하게 물러났다.

    혼자가 된 강유현은 우선 필드의 몬스터를 정리했다. 그에게 몰려드는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쾅, 콰광!

    그의 손에 들린 마검이 계속해서 검은빛을 뿌렸다. 칼집에서 뽑으면 반드시 생명을 죽여야 하는 이 고약한 마검은 아이러니하게도 망자를 죽이고 습득했다.

    망자의 세계인 니플헤임에서 마검을 가진 건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강유현은 마검을 소지했던 망자처럼 한순간도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은 니플헤임의 끝에 다다라 처음으로 생명을 가진 지성체를 죽였을 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 전설급 무기인 마검은 강유현의 인벤토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마검 티르빙은 그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 중 하나였다.

    “끼이이이!”

    자신에게 달려든 몬스터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인 강유현은 깨끗해진 주변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스킬을 사용해 보니 반경 1km 이내에 생명체가 포착되지 않았다. D급 던전이 그렇게 넓을 리가 없으니, 아무래도 다른 몬스터와 함께 보스도 같이 학살해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시스템 음성도, 귀환용 포털도 열리지 않았다.

    묵묵히 주변을 둘러보던 강유현이 발밑을 응시했다. 땅 아래에서는 스킬이 적용되지 않았던 적이 종종 있던 걸 그는 기억해 냈다. 강유현은 망설이지 않고 마검을 땅에 꽂았다.

    쿠우웅.

    마검이 공명하듯이 소리를 냈다. 검고 푸른빛이 위협적으로 그의 주위에 일렁거렸다.

    이윽고 지진이 온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쩌적, 소리를 내며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강유현은 평온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발밑이 순식간에 폭 꺼져 움푹 파이는데도 동요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강유현의 몸이 순식간에 갈라진 땅 사이로 사라졌다. 그는 능숙하게 갈라지는 땅의 파편을 피해 아래로 내려갔다. 퀴퀴한 흙의 냄새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지하 깊숙한 곳의 땅을 밟은 그가 실드로 몸을 감쌌다. 지상에서 떨어진 땅의 파편이 굉음을 내며 지하로 떨어졌다.

    파스슥, 공중을 날아다니는 먼지 사이로 강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의 지하는 위쪽과 전혀 다른 기운을 풍겼다. 어두운 동굴 안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고,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에서 희미한 색의 빛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어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니플헤임의 어둠 속에서 긴 시간을 살았던 그에겐 어둠 속의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끼에엑!”

    “끼엑!”

    땅울림에 놀랐던 몬스터들이 잠시 주춤거렸으나, 이내 강유현의 모습을 발견하고 곧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박쥐 모양을 한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위협적으로 발톱을 휘둘렀다.

    파앗!

    그러나 독을 바른 발톱과 송곳니도 별 소용이 없었다. 강유현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그를 둘러싼 검은 기운에 의해 하나도 남김없이 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적들을 모두 재로 만들어 버리는 패시브 스킬, ‘황혼의 인도자’는 니플헤임 안에서 얻었던 스킬이었다.

    재가 되어 흩어지는 몬스터들을 무감하게 바라보던 강유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예상한 대로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이곳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몸을 웅크린 몬스터가 강유현을 맞이했다. 땅속의 몬스터는 두 눈이 퇴화하여 기척만으로 강유현을 인식하고 공격했다.

    휘익!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강유현이 마검을 휘둘렀다. 살아 있는 생명의 피를 원하는 마검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새카만 검기를 날렸다.

    “크어어!”

    SS급 앞에서는 D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다른 몬스터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이 되었을 뿐이었다. 귀찮은 기색을 내보이며 마검을 한 번 더 휘두른 강유현이 쓰러지는 보스 몬스터를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끄르륵, 끄륵…….”

    보스 몬스터는 죽으면서도 독을 뿜으며 초록색 체액을 흘려 댔다. 하지만 그 역시 강유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낮은 등급의 상태 이상 따위는 이미 면역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흠.”

    「알브헤임-D29의 보스 몬스터 ‘어둠의 문지기’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예상한 대로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알림이 떴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아이템이 우르르 귀속되어 인벤토리에 쌓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이럴 때 길드에 들어간 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 안에 갇혔을 때는 아이템 처치도 곤란했었으니까.

    “…….”

    아이템을 확인하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귀환 포털이 열리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강유현이 혹시나 놓친 게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겨진 아이템을 발견하거나 고대 토템을 부숴서 귀환하는 방식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없군.”

    던전 안을 샅샅이 다 뒤지고 나서야 강유현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이곳에서 등급 변화 이상 현상이 제대로 일어났는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지금까지 계속 등급이 그대로인 채였다면…….

    그때, 강유현의 눈이 빛무리가 일렁거리는 천장을 향했다. 종유석이 잔뜩 달린 천장에서 새하얀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 모습이었다.

    “…….”

    그걸 본 강유현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유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빛무리 사이로 긴 손을 뻗어 집어넣었다.

    “으악!”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꽉 붙잡았는데, 그게 누군가의 팔이었다. 밖으로 나온 강유현이 놀란 얼굴의 한이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한이진?”

    강유현이 저도 모르게 틀어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이진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지는 걸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무감정한 시스템 음성이 그의 귓가에 꽂혔다.

    [……의 간섭에 의해 등급 조정이 이루어집니다.]

    [알브헤임-D29의 등급이 SS급으로 조정됩니다.]

    ***

    “아니, 이게 무슨…….”

    나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스템 음성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진동하며 땅이 흔들렸다. 마치 방금까지의 평화로운 풍경이 거짓이었다는 듯 빠르게 바뀌어 가는 모습이 전혀 적응되지 않았다.

    “이진아!”

    만렙 토끼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이든이 나와 강유현을 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강유현, 네가 여기 왜…….”

    “나야말로 묻고 싶군.”

    경악한 이든의 물음에 강유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빌런 새끼들이 쥐새끼처럼 이곳에 숨어들었는지 말이야.”

    “윽……!”

    틀어쥔 손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이대로 가면 정말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 손 안 놔?”

    “안 놓겠다면?”

    이든과 강유현이 기 싸움을 하며 서로를 노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든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었다. 무려 A급과 SS급의 차이가 있으니까.

    한숨을 내쉰 내가 강유현에게 잡힌 팔을 살짝 흔들었다.

    “저기, 강유현.”

    “…….”

    강유현의 이글거리는 눈이 나를 향했다. 솔직히 아직도 무서웠다. 손을 뿌리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픈데 좀 놓지 그래? 여기선 저번처럼 도망가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야.”

    “…….”

    그러나 강유현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며 계속 나를 노려봤다. 물론 저번에 그렇게 도망간 건 좀 무책임한 행동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짜고짜 족치려고 했던 강유현이 더 너무한 거 아닌가?

    속으로 연신 스스로를 변명하며 강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이 자리에서 바로 정의 구현을 하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곧바로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졌다. 마치 세기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두침침해진 하늘 곳곳에서 시커먼 고리가 생겨나더니 끔찍한 모습의 몬스터들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거……!”

    “……!”

    최대한 눈치를 주며 호들갑을 떨자, 강유현의 얼굴도 굳어 갔다. SS급인 강유현이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가 많았다.

    ‘이거 못 막으면 세계 멸망 수준인데?’

    쌍스급의 세계관에서는 던전을 클리어하면 게임처럼 리셋되곤 했다. 높은 등급의 던전은 클리어하면 사라지기도 하지만, 낮은 등급의 던전들은 대부분 사라지지 않고 리셋되기만 했다. 마치 그걸로 레벨 업이라도 하라는 것처럼.

    그러나 그렇다고 클리어하지 않고 계속 두면 몬스터들이 범람해 던전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게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그래서 던전을 관리하는 길드들은 주기적으로 던전을 소탕해야 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의 수는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한이진의 등급으로 몬스터 열람이 되지 않는 걸 봐서 최소 A급 이상의 몬스터들이었다. 던전 등급이 SS급으로 변경되었다고 했으니 보스 몬스터도 최소한 SS급일 터였다.

    ‘SS급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건 원작의 중반 이후부터였는데.’

    근데 왜 벌써부터 뜬금없이 SS급 던전이 등장하는 거지? 아직은 강유현이 등급 이상 현상이 일어난 던전들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근데 대체 뭐 때문에 틀어진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멈칫했다.

    ‘설마…… 나 때문인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