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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8)화 (8/228)
  • 8화

    “납치당했다고 이상한 놈들이 지랄하던데 멀쩡하네.”

    “…….”

    혈육에게 건네는 말 치곤 지나치게 냉담했다. 마치 멀쩡해서 유감스럽다는 말투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 상황도 잊고 멍하니 강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은 내가 미치도록 빠져 읽었던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표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가 금손인 줄 알았는데, 실물을 마주하니 생각이 확 바뀌었다.

    그 일러스트레이터, 똥손임이 분명하다. 저 존잘 얼굴을 그렇게밖에 그리지 못하다니.

    그만큼 강유현의 실물은 나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능력을 쓸 때 파란빛이 나는 그의 눈이 강수현을 떠나 나에게 닿았을 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경보음이 들렸으나, 내 몸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형.”

    “…….”

    억눌린 음성이 강수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기 형을 보고 놀라면서도 내 손목을 잡은 손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나는 난감한 얼굴로 형제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까 어떤 새끼들을 만났는데.”

    음산한 어조로 다시 말문을 연 강유현은 짜증 섞인 시선으로 내 몸을 쭉 훑어 내렸다.

    “널 납치하고 있으니 자기들 말을 들으라고 하더라고.”

    “…….”

    망할 빌런 새끼들. 그렇게 허술하게 강유현한테 접근했다고? 소설을 읽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분통 터졌다. 누구는 개고생하면서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했는데 말이지.

    조용히 혼자 이를 갈고 있는데 강유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개무시하려고 했는데 가까이서 찍은 네 명찰 사진을 보여 줘서 말이야.”

    아, 그거 내가 찍은 거다. 강수현을 골목으로 데려오면서 무음 카메라 앱으로 몰래 찍어서 보내 줬지.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빌런 놈들이 원한 건 더 적나라한 사진이었다. 맞아서 얼굴이 엉망이라거나 묶여서 꼼짝도 못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원작의 한이진은 그 말대로 하려고 강수현을 안쓰러울 정도로 팼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괜히 주인공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타협한 게 옆에서 몰래 찍은 명찰 사진이었는데, 설마 이걸로 화를 내진 않겠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강유현을 보자, 그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너 납치했다는 새끼 얼굴이나 좀 보려고 왔지.”

    “……!”

    강유현의 말투는 지극히 무심했다. 마치 지나가다가 심심해서 잠깐 들렸다는 듯 태도가 한가롭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뭔가 현실성이 없었다. 눈앞에 있던 강유현이 사라져도 나는 그저 두 눈을 깜박였을 뿐이었다.

    “윽……!”

    숨이 턱 막혔다.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인지했다. 그대로 난 강유현에게 목이 잡힌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한이진!”

    놀란 이든이 소리쳤는데, 놀랍게도 난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시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강수현이 그렇게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이든 놈이 너무 쉽게 알려 줘 버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강유현의 팔을 붙잡았다.

    “한이진? 너 뭐 하는 놈이야?”

    “큭…….”

    아니, 목을 놔줘야 대답을 할 거 아니야. 나는 괴로운 와중에도 눈을 치켜뜨며 강유현을 노려봤다.

    강유현은 눈에서 새파란 빛을 뿌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동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가 지금 상당히 빡쳐 있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강유현과 마주치는 건 상정하지 않았다. 납치한 강수현을 적당히 달래서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니까.

    괴롭다. 굳어 버린 머릿속은 희박한 산소량 때문에 더욱 쪼그라들어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흠…….”

    강유현의 싸늘한 눈이 내 몸을 다시금 훑어 내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윽, 한, 이진…….”

    감시자로 따라붙었던 이든까지 무릎을 꿇고 이쪽을 겨우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유현이 동생의 몸에 손을 댄 그에게도 능력을 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내 목을 잡고 있는 강유현의 존재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시발, 뭔 고질X도 아니고.’

    내 몸은 마치 괴수와 맞닥뜨린 사람과 같이 종이 인형처럼 흔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능력자인데, 이건 좀 심할 정도다.

    “야, 너 진짜 뭐냐?”

    “무, 큭, 무슨…….”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강유현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 보였다. 그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구긴 채 욕설을 내뱉었다.

    “하, 씹…….”

    “윽…….”

    더 이상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목이 너무 아프고 뜨거웠다. 눈동자가 점점 앞을 보지 못하고 위를 향했다.

    “형, 그만해!”

    퍽, 하고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강유현의 손이 목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서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헉……! 큭, 크헉, 헉…….”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나와 땅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귓속에서는 연신 쿵쿵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형제가 다투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비켜, 강수현.”

    “못 비켜.”

    “지금 널 납치한 범죄자 새끼를 감싸는 거냐?”

    “……나 납치당한 거 아니야.”

    아니, 그건 좀…….

    어렴풋한 강수현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착한 건지, 맹한 건지. 내가 저를 납치한 건 명백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강유현과 강수현, 둘은 그다지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다. 특히 강유현은 게이트 안에 들어간 후 비틀어진 시간축에 갇혀 300년이 넘게 다른 차원을 떠돌아다녔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았다. 같이 게이트에 들어간 수백 명의 사람이 미쳐 갈 동안, 오직 강유현만이 겨우 사람의 인격을 유지했다.

    그래도 300년이라는 세월은 어마어마했다. 그가 겨우 원래의 시간축으로 되돌아왔을 때, 강유현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동생의 존재를 마주하고 그가 떠올린 생각은 단 한 줄이었다. ‘아, 이런 것도 있었지.’라고.

    그러니 지금 강유현은 동생에 대한 걱정보단,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는 걸로 인식한 사람을 건드려 화가 난 것에 가까웠다. 이건 소설에서 직접 서술한 얘기이기도 했다.

    강유현은 주변 사람들로 인해 점차 예전의 선한 마음을 되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소설 초반, 강유현의 마음이 가장 불안정할 때였다. 그런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힘이 풀린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길, 종이 인형 같은 한이진 몸 같으니라고.

    속으로 욕을 하며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납치당한 게 아니면 뭔데?”

    “그니까, 그게…….”

    내 앞을 막아서고 있는 강수현의 뒷모습이 보였다. 넓은 등이 곤란한 듯 쩔쩔매고 있었다.

    “일단 비켜. 저 새끼 정체가 뭔지 조져 봐야…….”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은……!”

    강유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 그를 막고 있던 강수현이 크게 소리 질렀다.

    “내가, 학교 앞에서 꼬셨어!”

    “……뭐?”

    “꼬셨다고, 내가. 너무…….”

    머뭇거리던 강수현이 뒤에 있는 나를 흘끗거리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

    “예뻐서.”

    “…….”

    “…….”

    강수현의 어이없는 말에 강유현도 침묵하고, 나도 침묵했다.

    “개소리 작작 하고 비켜.”

    “형!”

    짜증 내며 동생을 확 밀치는 강유현을 보며 나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저 고질X 같은 미친 새끼에게 밟혀서 죽긴 싫었다. 내가 괴수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실제로 마주치는 건 아주 끔찍하다. 동경하던 주인공은 그렇게 한순간에 괴수가 되어 버렸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이든에게 다가갔다. 녀석도 강유현의 스킬 영향인지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야, 이든.”

    “윽.”

    “정신 차려!”

    강유현의 타깃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이든 놈은 그나마 멀쩡해 보였다. 놈의 등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팍팍 치며 옥신각신하는 형제를 흘끗 훔쳐보았다.

    어서 도망가야 한다. 그러려면 혼자 힘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고개를 든 이든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신호하면 능력 써.”

    “무, 뭐?”

    “그리고 눈 감아라.”

    “……?”

    그 스킬을 쓸 생각에 벌써부터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지난밤 정독한 ‘개박하’ 스킬을 떠올렸다.

    이름부터가 이상한 그 빌어먹을 스킬은 보조 계열로, 스킬을 건 대상의 능력치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스킬이 S급으로 변경되면서 추가된 주의 사항에 있었다. 상위 등급에게는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세한 설명을 열람했다. 그랬더니 쓰여 있는 설명이 가관이었다.

    바로 대상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 스킬 사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대상자가 여자라면 성추행이고, 남자라면 너무 역겨웠다. 대체 왜 스킬 발동 조건이 그따위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새도록 욕을 했던 나는 보조 스킬을 실제로 써야 하는 상황이 오자 또다시 버럭 화가 났다.

    “눈 감으라고!”

    “어? 어.”

    이든은 영문도 모르는 채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맹렬히 고민했다. 접촉, 접촉이라. 어쨌든 맨살이 서로 닿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

    나는 쉽게 생각하며 이든의 팔꿈치로 대충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서늘한 피부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시발, 시발, 시발!’

    대체 내가 왜 사내새끼의 맨살과 닿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건 살기 위해서다. 살아남기 위해서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능력을 썼다.

    “……응?”

    “뭐 해?”

    이든은 팔뚝을 붙잡힌 채 나를 멀뚱히 내려다봤다.

    왜 이러지? 동기화 막 끝났을 땐 멋대로 써지고 그랬잖아. 개박하! 이 망할 개박하 스킬!

    “지금 뭐 하는 거지?”

    경악하고 있는 내 귀로 섬뜩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기어코 강수현을 밀치고 다가온 강유현이 형형한 눈으로 나와 이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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