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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6)화 (6/228)
  • 6화

    아, 씨발. 깜짝이야.

    문 앞에 서 있던 백시후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자세로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흉흉한 눈빛에 괜히 쫄았다. 장승처럼 서 있는 시커먼 남자의 모습이 꼭 저승사자 같았다.

    “따라와라.”

    “……에?”

    무뚝뚝하게 말하고 몸을 휙 돌리는 백시후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전 할 일이…….”

    “따라와.”

    “…….”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입술을 비죽이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무리 싸가지 없는 한이진의 몸이라도 S급의 말은 거부할 수가 없는지 얌전히 움직였다. 꼭 도축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어디로 가나 했는데, 의외로 익숙한 길들이 이어졌다. 한이진의 방에서 길마 방으로 가는 길을 그대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을 물음표로 잔뜩 채웠을 무렵, 한이진의 방 앞에 도착했다. 나올 때는 몰랐는데 방문에 명패도 달려 있었다. 이름은 아니고 번호였다. B-06. 복도의 맨 끝에 있는 방이었다.

    “들어가.”

    “…….”

    의문 섞인 눈으로 백시후를 보다가, 이내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감시한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길드원들에게 신뢰도 바닥이구나, 한이진. 설마 길드에서 도망치려 한 적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다가 백시후의 살벌한 눈빛에 문고리를 잡았다. 주위를 슬쩍 보니 이든은 없었다. 길마가 내 말에 수긍하긴 했으니 앞으로 대놓고 감시하진 않겠지.

    조금 안심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탁.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방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처음 눈을 떴을 땐 낯설기 그지없었는데, 동기화했다고 그새 제법 익숙해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 몸도 마음도 한이진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끔찍한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붕붕 저었다. 시스템이 나를 새로운 각성자로 인식하고 등급까지 변경시켜 준 걸 보면 한이진과는 다른 존재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것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중요했다. 강수현을 납치하는 건 우선 원작의 흐름대로 하긴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 주인공한테 들켜서 개 패듯 맞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상태 창을 불러내어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방법을 연구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야.”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온몸에 추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나마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눈뿐이었다. 나는 눈을 움직여 앞에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몇 년 전에 손절한 가족들. 그들이 마치 빚쟁이처럼 누군가를 보며 재촉하고 있었다.

    “호수야. 이번만 네가 이해해 줘라. 응?”

    “…….”

    박호수.

    한이진에 빙의하기 전의 자신이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남색 블레이저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선 꽤 과거의 일인 것 같았다.

    “네가 그 대학을 가고 싶어 했던 건 알지만, 지금 사정이…….”

    “…….”

    아버지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의 말에서 저 때의 상황이 언제였는지 깨달았다.

    고3 겨울, 수능을 치른 직후였다. 나는 3살 위의 형만큼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그래도 손재주가 좋아서 발명상을 받아 최저 등급만 맞추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비록 부모님의 눈엔 차지 않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호수야. 응?”

    “…….”

    그동안 불안했던 아버지의 회사가 하필 그 해에 망했다. 사장인 아버지가 믿고 있던 거래처에 사기를 당했던 게 타격이 컸다. 어린 나에게 그다지 자세하게 속사정을 말해 주진 않았지만 추론하기론 그랬다.

    부드러우면서도 윽박지르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줄곧 침묵하던 어린 ‘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일해서 등록금 벌게요…….”

    등신같이 한다는 말이 저거다. 혈압이 올랐다. 그러나 그 뒤에 더 환장할 일이 벌어진다는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호수야. 그게…….”

    아버지의 뒤에서 연신 눈치를 보던 여자가 말했다. 새엄마였다. 평소 나랑 말도 잘 안 하던 그녀가 그날은 무슨 일인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게 의외였던 기억이 똑똑히 남아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희민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고, 당장 쓸 생활비도…… 모자라거든. 그러니까…….”

    “…….”

    “지금 다들 힘든 상황이잖니. 가족끼리 도와야지. 응?”

    아버지가 사업을 잘못 굴려 집이 망한 건 내 탓이 아니었다. 명문대에 갔던 형이 나쁜 물이 들어 술이나 처마시고 다니다가 장학금을 못 받은 건 내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만 희생을 강요했다. 대학이 내정되어 있던 나에게 등록금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스스로 등록금을 벌겠다고 한 나에게 생활비를 요구했다. 결국 대학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취업해서 돈을 벌어 오라는 말이었다.

    “…….”

    10년 전의 어린 나는 말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관심 한 번 받지 못하고, 미련하게 애정을 갈구하기만 한 바보 천치가 실망은커녕 기대 어린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고개 끄덕이지 마. 병신아.’

    그런 내 바람과 다르게 19살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습을 보면서, 다 지나간 일임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씨발.’

    저 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났던 형은 아버지의 신뢰를 받고 있었지만, 그보다 못한 나는 항상 겉돌기만 했다.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 막내가 태어난 후부턴 그 느낌이 훨씬 심해졌다.

    그러니 가족들이 힘든 이때 도움이 된다면 날 다시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정 그들이 나를 소중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 거라고 착각했다.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그 후 5년이 넘게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티면서 그들에게 편리한 ATM 취급이나 당했다. 단물 다 빨아먹은 형 새끼가 대기업에 취업하고 일방적으로 인연을 끊었을 때 나는 그걸 절실히 깨달았다.

    다시 저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꺼지라고 욕을 하고 친권 포기 각서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연을 끊고 집을 나갔겠지. 모기처럼 피를 쪽쪽 빠는 가족들에게 5년 넘게 시달릴 바엔 그게 훨씬 나았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 호수야.”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아버지의 얼굴이 역겨웠다. 그 옆에서 안심하는 새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주인의 손길을 바라는 개새끼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어린 나였다.

    ‘박호수. 이 호구 새끼야.’

    속으로 욕을 하며 나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점점 흐려졌다. 꿈이 끝나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다시는, 다시는 호구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을 떴다.

    젠장.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새하얀 천장에 욕설부터 내뱉었다. 아무리 봐도 내 집의 천장이 아니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박호수의 얼굴이 아닌, 한이진의 얼굴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후우…….”

    개같은 꿈을 꿨더니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과거의 내가 가족들의 앞에서 보인 순진한 표정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어차피 박호수의 삶에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가족들과 인연을 끊은 뒤에는 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이미 피폐해진 마음은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칙칙한 회색빛으로 얼룩진 청춘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들어 한이진의 얼굴을 다시 제대로 응시했다. 잠을 자고 막 일어난 얼굴도 봐 줄 만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굳이 능력자로 살지 않아도 연예인이든 뭐든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아, 한이진. 내가 너 대신 꿀 빨면서 살아 줄게.”

    피식 웃고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새로운 인생을 제대로 살아 볼 마음이 들었다.

    그러려면 우선 한이진의 데드 플래그를 없애야 하는데…….

    고민하던 나는 마저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깔끔한 옷을 골라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문 앞에 선 다음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끼익…….

    “…….”

    이번에는 다행히 방 앞에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길마가 그래도 내 말을 듣는 척은 하는구나.

    다른 데서 몰래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심적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길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후아.”

    맑은 공기가 폐를 찔렀다. 습관처럼 공기를 들이마신 다음 내쉬었다. 고작 하루 정도 갇혀 있었던 사람이 하기엔 유별난 행동이었다.

    그러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군가를 납치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입술을 끌어 올려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나는 걸음을 옮겼다.

    강수현이 다니는 학교는 여기서 멀지 않았다. 하교 시간에 맞춰 일하기로 했기 때문에 중간에 밥도 먹고 아이쇼핑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샛별 고등학교.

    참 구린 이름이 걸린 정문 앞에 도착했다. 아침에 꿨던 꿈 때문인지 교복을 입을 학생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정신을 차리고 조금 기다리자 눈에 익은 누군가가 정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햇살에 반사되는 투명한 갈색 머리카락, 커다란 눈. 틀림없는 강수현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단번에 능력을 썼다. 뜨거운 무형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든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에게 접근했다.

    “수현아!”

    “……?”

    무표정하던 강수현의 얼굴이 나를 보더니 반가운 빛을 띠었다.

    “어? 형, 여긴 웬일이에요?”

    미소를 짓자 단번에 환해진 얼굴이 햇살을 머금은 것 같았다. 보일 리 없는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아 나는 잠시 눈을 깜박거렸다. 강수현의 모습이 어떤 생물과 굉장히 비슷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골든 레트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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