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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3)화 (3/228)
  • 3화

    이 미친놈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뒤로 쓱 물러났다.

    “이진아, 응?”

    “저리 꺼져, 변태 새끼야.”

    “하, 좋아……, 더 말해 줘.”

    “꺼져! 좀 꺼지라고!”

    이든 새끼랑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동기화는 쭉쭉 진행되었다.

    [동기화율 20%……]

    [동기화율 25%……]

    이거 생각보다 동기화가 빠른데?

    쭉쭉 올라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이젠 아주 발을 붙잡고 질척거리는 이든 놈 때문에 미간이 왈칵 구겨졌다.

    이대로 한 번 더 차 버릴까?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러면 이 변태가 더 눈을 뒤집고 좋아할 것 같았다. 남성향 소설이지만 은근히 여독자들도 많아서 인기 있었던 캐릭터가 이런 놈이었다니.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빨리 동기화해서 스킬을 쓸 수 있으면 떼어 내 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얼음처럼 낮고 서늘한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물론 발치에 매달려 있던 이든도 흠칫 몸을 떨었다. 그만큼 남자의 목소리가 차고 시렸다. 그리고 어딘가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창백한 얼굴과 새카만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외모였다. 안색이 창백한 게 꼭 뱀파이어 같았다.

    칠흑같이 새카만 머리카락과 검은 눈. 핏줄이 다 비칠 정도로 창백한 얼굴. 여자 뺨치게 아름다운 외모와 반대로 금욕적으로 다물린 모양 좋은 입술.

    살다 살다 남자 얼굴을 보고 넋이 나가는 날이 오다니.

    당황하고 있는 내 귀로 다시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이든.”

    “……쳇.”

    이든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련을 한가득 담아 내 바짓가랑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긴 했으나, 재빨리 다리를 털어 쫓아 버렸다. 훠이훠이.

    “여기까진 웬일이에요? 시후 형.”

    “……!”

    시후……?

    백시후……? 그 살인 병기 백시후?

    놀란 눈으로 남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여자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꼈던 얼굴이 지금은 어쩐지 다르게 보였다.

    한이진이나 이든과 달리, 저 남자는 찐이다. 진짜 빌런 중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키 길드의 S급 능력자 백시후. 저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 괴팍해서 길마마저 쩔쩔매는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로 나와서 주인공 측의 중요한 인물들도 썰어 버린다. 긴장감 넘치는 에피소드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악역이었다.

    지금 보니 살벌한 눈이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 나는 긴장하며 두 손을 꽉 쥐었다.

    “뭐 하고 있었냐고 물었는데.”

    “…….”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가까이 다가온 백시후가 위협적으로 물었다. 그의 눈은 껄렁거리는 이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S급 특유의 기운이 그에게로 쏘아졌는지 이든의 입에서 신음이 조금 흘러나왔다.

    그의 위압을 느낀 건 옆에 서 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형의 기운이 뻗어 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윽…….”

    숨이 막혀 저도 모르게 미약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자 답답하게 누르던 기운이 빠르게 풀렸다.

    조금 놀라서 고개를 들자, 백시후의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왜…… 저렇게 쳐다보지?

    의도를 알 수 없어 주춤거리는데, 긴 손이 뻗어 와 내 어깨를 감쌌다.

    “우리 그냥 장난치고 있던 건데요. 형?”

    “…….”

    “얘 놀라니까 눈빛 좀 풀죠?”

    이든은 뻔뻔한 어조로 계속 나불거렸다. 나는 이든 놈의 팔을 뿌리칠 생각도 못 하고 경악했다.

    야, 백시후라고! 그딴 식으로 말해도 돼? 그래도 되는 거야?

    속으로 덜덜 떨고 있는데, 더 무서운 건 백시후의 시선이 집요하게 나만 계속 응시하고 있단 거였다.

    어쩌지. 혹시 이든보다 나한테 더 화가 난 건가? 조무래기가 감히 길드 복도에서 시끄럽게 굴어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나는 우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이든의 팔을 쳐서 떼어 냈다.

    [동기화율 40%……]

    [동기화율 45%……]

    이 와중에도 동기화율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무심한 시스템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나는 백시후와 눈을 마주쳤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형.”

    “……!”

    “……!”

    두 남자의 경악한 시선이 나를 따라 붙었다.

    설마, 이게 아니야?

    한이진, 너는 설마 백시후한테도 싸가지 없게 굴었던 거니? 그런 거야? 목숨이 여러 갠가. 고양이라도 돼?

    울고 싶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이 새끼가 먼저 시비 검.”

    “뭐?”

    내 손가락질에 이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그건 아니지!”

    “닥쳐.”

    억울한지 목소리를 높이는 이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별안간 문을 열고 걷어 차인 건 이든이지만, 한이진은 안하무인의 대명사였다. 자기가 먼저 선빵 날려도 상대방을 탓할 놈이란 말이지.

    백시후 앞에서 자꾸 얼빵한 모습을 보일 순 없잖아? 그러니 네가 이해해라.

    해야 할 말은 속으로 삼키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뻔뻔한 모습에 이든이 다시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만해라.”

    묵직한 목소리가 복도에 깔렸다. 그 한 마디에 이든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서늘한 검은 눈이 이든을 노려보았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게이트의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어쩌면 방해가 되는 사람들도 무참히 도륙했을 남자의 눈이 닿자 손끝이 뻣뻣하게 굳어 왔다.

    “따라와라. 한이진.”

    이어진 백시후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저요?”

    그러자 백시후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가 부른다.”

    “아…….”

    빌런 연합, 로키 길드의 마스터 장태산.

    원래는 조폭의 말단 따까리를 하던 인간인데 능력자로 각성하고 나서 소속되어 있던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빌런 연합에 들어온 인간이다.

    S급이긴 하지만 스킬이나 능력은 전투에 치중되어 있지 않아 소설에서는 부하들이 더 자주 등장하곤 했다. 머리가 좋고 권모술수에 능해서 정재계의 높은 인사들을 주무르며 주인공들을 압박하곤 했지.

    [동기화율 60%……]

    [동기화율 65%……]

    아직 동기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길마를 만난다니. 너무 갑작스러웠다. 할 수 있다면 동기화가 끝난 뒤 만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 주지 않겠지. 이든 놈은 쉽겠지만, 백시후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걸어갔다. 밀랍 인형처럼 아름답고 창백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가요.”

    “…….”

    또 온순한 척 말했더니 나를 보는 눈이 묘해졌다.

    역시 이게 아닌가? 한이진은 그렇게나 싸가지 없는 존재인 거야?

    자괴감을 느끼는 내 뒤로 누군가가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흘끗 고개를 돌리니 나와 백시후를 따라오는 이든의 모습이 보였다.

    “너는 왜 따라와?”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지.”

    “…….”

    그렇게 말한 이든의 입술이 씩 올라갔다. 화려한 얼굴에 잘 어울리는 미소였지만, 왜인지 화가 났다. 얼굴을 찌푸리자 이든 놈은 역겹게 눈웃음을 쳤다.

    시발…….

    그렇게 나는 졸지에 S급과 A급 능력자를 앞뒤로 매달고 걸어갔다. 참 호사스러운 호위가 아닐 수가 없었다. 현실은 감금과 감시에 가까운 취급인 것 같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이진이 뭐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아마 길마를 만나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동기화율 70%……]

    [동기화율 75%……]

    어째 아까보다 더디게 올라가는 것 같은 동기화율에 애가 탔다. 길마를 만나기 전까지 동기화가 끝날 수 있을까?

    초조해하면서 걷는데, 지나가던 길드원들이 우리를 흘끔거렸다. 척 봐도 등급이 낮은 말단 길드원들 같은데, 하나같이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시발, 뭐, 왜. 잘생긴 애 처음 보냐?

    그런 심정을 담아 노려봤더니 곧장 시선을 돌렸다.

    얘는 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빌런들이 모인 길드에서도 이런 눈길을 받는 거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 죽일까?”

    “……뭐?”

    이든의 분홍색 눈이 반짝거렸다. 그 눈은 숨길 수 없는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녀석은 단순한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당장 뒤돌아서 같은 길드원들을 도륙할 것 같은 위험한 눈빛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누가 빌런 아니랄까 봐.

    이든이 누군가에 의해 교화되는 건 소설 중반부쯤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놈은 그냥 피에 미친 악당에 불과했다. 이렇게 자극적인 말을 해서 남을 도발하는 또라이 말이다.

    “냅 둬.”

    “흥, 싱겁게. 평소에는 지가 더 난리 치면서.”

    “…….”

    역시 한이진은 참지 않았군. 누가 저렇게 흘끗거리면서 수군대면 쫓아가서 개지랄을 떨었었나 보지?

    그 모습이 어쩐지 눈에 선했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에게 패악을 떨었던 지문만 떠올려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은 이렇게 미남이면서 아깝게, 성격이 왜 그랬을까.

    [동기화율 80%……]

    [동기화율 85%……]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서 멈췄다. 백시후가 먼저 느릿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내가 따라갔고, 이든이 뒤에 붙었다. 여전히 앞뒤로 상급 능력자들을 달고 가는 모양새였다.

    로키 길드의 서울 지부는 흡사 대기업 건물처럼 생겼다. 티브이에서 종종 보았던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소설에서 빌런 길드들이 멀쩡한 척 사업도 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척 봐도 길드 마스터가 있을 법한 방이었다.

    “들어가라.”

    “아.”

    고개를 끄덕이려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몸이 흠칫 굳었다. 스멀거리는 열기가 배에서부터 시작되어 가슴 부근까지 치고 올라왔다.

    “윽.”

    “이진아!”

    [동기화율 90%……]

    [동기화율 95%……]

    비틀거리는 내 몸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그게 누구인지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식은땀이 솟아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동기화가……, 끝나가서 그런가?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너…….”

    마주친 백시후의 눈이 떨렸다.

    왜 저러지? 내가 갑자기 아파 보여서 당황했나?

    이제 괜찮다고 입을 열어 말하려던 찰나였다.

    “한이진, 당장 그거 멈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싸늘한 음성이 귀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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