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화 (1/228)

1화

1. 조무래기 빌런에 빙의했다

삐빅!

“헉……!”

큰 기계음이 들림과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시발,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방금 우렁찬 소리를 낸 것 같은 딱딱한 모양의 기계가 얌전한 척 작은 신호음을 내고 있었다.

비빅, 빅, 비빅…….

새로 놔둔 알람인가?

저런 걸 샀던 기억이 없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쓸데없이 큰 기계를 노려봤다. 투박한 모양의 네모난 기계에는 긴 끈이 달려 있었고, 그 끈은…….

“미친, 이게 뭐야.”

기계에 달린 끈은 내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줄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으윽.”

발작적으로 줄을 떼다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쌌다. 삐-, 거리는 이명이 계속해서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윽, 시발.”

두통이 가라앉길 기다리다가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땀에 젖은 축축한 이마가 거슬렸다. 닦을 것이 없나 둘러보다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디야, 여기.”

생전 처음 보는 방의 풍경에 나는 흠칫 놀랐다.

방 안은 꽤 넓고 깨끗했다. 돼지우리 같았던 내 작은 방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노톤의 벽지와 가구들, 그리고 칼같이 정돈되어 있는 물건들. 나는 긴장한 눈으로 아무도 없는 방 안을 훑어보았다.

“어떤 놈 집이야. 여긴?”

일 관련으로 낯선 장소를 많이 다니긴 하지만, 그래도 눈을 뜨자마자 모르는 사람의 방이라니. 소름이 돋았다.

거기다 가슴팍에는 이상한 기계가 연결된 줄이 달려 있었고, 무엇보다 상의 탈의를 한 상태였다. 날 이 꼴로 만든 상대에게 부득 이를 갈았다.

일단 위에 걸칠 옷이라도 찾으려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가까이 있던 전신 거울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

거울 속 창백한 인상의 남자가 나를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고 작은 얼굴은 꽤 반반한 편이었다. 밖에서 지나가다가 봤으면 아이돌 아니냐고 의심했을 듯한 외모였다. 크게 뜬 눈이 사슴 눈망울 같았고, 입술은 얼굴만큼 핏기가 없어 새파랗지만 작고 모양이 좋아서 유독 시선이 갔다.

몸도 전체적으로 말랐지만 어느 정도 잔 근육이 있고 꽤 보기 좋은 편이다. 나는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거울 안의 남자를 계속 쳐다봤다.

이쯤 되면 이 거울 안의 남자가 나라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어이없고 황당하긴 하지만, 볼을 꼬집어 보니 꿈은 아니었다.

“복근, 내 복근이…….”

평평하기만 한 배를 쓰다듬으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원래 내 몸도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 아니었다. 주변에 워낙 몸 좋은 놈들이 많아 콤플렉스를 느껴 열심히 운동을 하긴 했는데, 좀처럼 원하는 만큼 근육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노력 끝에 배에 왕(王)자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씩 갈라지던 복근이 생겼었는데. 어흐흑. 없어. 없다고!

“시발, 뭐냐고, 이 새끼는…….”

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주변을 마저 둘러보았다. 대충 눈에 보이는 티를 걸치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 몸 주인의 성격을 나타내듯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는 수첩과 펜, 그리고 지갑과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나는 우선 지갑으로 손을 뻗었다. 몸의 주인이 누군지 알려면 신분증부터 봐야겠지. 검은색 가죽 지갑을 열자 빳빳한 지폐 몇 장과 신용 카드가 보였다.

그렇게 계속 뒤지니 신분증으로 보이는 카드가 몇 개 보였다. 민증이랑 면허증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좀 묘한 색이었다.

“헌터…… 자격증?”

이 새끼 혹시 과몰입 오타쿠인가?

초록색 바탕의 신분증에는 떡하니 헌터 자격증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헌터? 헌터라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헌터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피식 웃었는데, 그 밑에 무시하지 못할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헌터 자격증

이름: 한이진

등록번호: 21B-32269

등급: B

소속: 로키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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