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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384)화 (384/393)

<던전리셋 외전 39화>

*   *   *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난이었다.

슈와아악!

엄청난 스케일의 유사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였다.

사막의 모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모래 괴수 정다운의 몸을 무럭무럭 키워 주었다.

“으헉!”

“어푸풉!”

모래로 이루어진 해일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신기루 백작들.

“몸을 움직일 수가 없……!”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꼼짝없이 모래 괴수의 몸과 하나로 뭉쳐진 채 입만 벙긋거리는 것뿐이었다.

그 광경을 토끼와 바하무트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란히 앉아 비웃고 있었다.

[모래 인간이 모래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라니. 되게 쪽팔리겠네요. 낄낄.]

[허허. 눈에 빠진 눈사람 꼴이군요.]

토끼가 정다운에게 귓말을 보냈다.

[님, 혹시 화났다고 진짜 인간들까지 잡아먹고 있는 거 아니죠?]

“내가 무슨 식인종이야? 당연히 신경 쓰고 있지.”

잔뜩 성나 보였던 모래 괴수에게서 생각보다 이성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재난급 모래 괴수의 몸에 휩쓸리고 있는 건 신기루 백작들 외에도 도시에서 굶어 죽어 가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마침 그 옆에는 모래 괴수 위를 자유자재로 싸돌아다니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그림벨들.

“먀옹?”

“애오옹.”

슈와악!

[앗?]

[저럴 수가!]

녀석들을 발견한 토끼와 바하무트는 바로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참고로 그림벨은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 그림자 마수였다.

게다가 정확히 정다운과 똑같은 수준으로 흙 뭉치기 스킬도 쓸 수 있었다.

그렇다. 그러니까 그림벨들은…….

[그렇다고 저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슈와아악!

“먀오옹!”

모래로 이루어진 해일 위를.

모래로 만든 서핑보드를 타고 다니며.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니!?] 

[크으! 역시 소인의 주인님이시로다!]

슈와악!

순식간에 모래 해일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온 그림자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냐앙!”

“사, 살려……!”

어푸풉!

이미 한참 전에 신기루 백작의 세뇌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림벨들은 그들의 손을 직접 잡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쑤욱!

“……!?”

사람들이 빠져 있던 모래를 통째로 뜯어내 버렸다.

“이 무슨!?”

두둥실!

공중 계단 스킬 발동. 

부유섬 생성.

모래로 이루어진 하늘 공원들이 모래 괴수 정다운의 몸 곳곳에서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얼떨떨한 표정의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히익. 스케일 쩌시네! 그런데…… 결국 저게 끝이잖아요?]

“흠흠.”

팩트를 후벼 파는 토끼의 말에 모래 괴수의 배꼽 밖에 나와 있는 정다운의 얼굴에 민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

사실 정다운의 능력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그저 평소보다 모래를 아주 크게 뭉쳤을 뿐. 

이다음부터는 그냥 한자리에 가만히 차렷하고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애초에 그에겐 이 거대한 모래 괴수의 몸을 만들기만 할 뿐, 움직이게 할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자유자재로 움직이기는커녕 한 발자국도 걷게 하지 못했다.

[풉. 기껏해야 덩치 키우는 것만 가능한 주제에 온갖 폼은 다 잡는 거 봐. 누가 보면 님이 지구의 최종 보스인 줄 알겠네요! 푸히힛!]

울컥?

오랜만에 기회를 포착한 토끼가 신나게 놀리는 말에 정다운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아니지? 잘하면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는 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으잉? 뭔 헛소리임?]

“여기서 흙 골렘의 핵들을 이용한다면 어떨까?”

토끼는 그의 아이디어를 곧장 비웃었다.

[벌써 까먹으심? 핵을 여러 개 쓴다고 골렘이 커지는 게 아니잖아요.]

골렘의 핵이 여러 개면 뇌가 여러 개인 것과 같다.

몸은 하나인데 주체만 늘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출력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사지가 따로 움직이거나 반대로 꼼짝도 못하게 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상황이 조금 다르지.”

정다운은 이미 확신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이 안에 골렘의 핵들을 직접 조종한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내가 이 거대 골렘의 유일한 주체가 되는 거지!”

[말은 누가 못해요? 그런 논리라면 님은 지구도 뭉치시겠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토끼가 잠시 깜빡한 것이 있었다.

지구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세계 하나쯤은 직접 뭉쳐 본 적 있는 진성 흙돌이가 바로 정다운이었다.

“열려라, 마법 창고!”

철커덕!

골렘들이 대기 중인 마법 창고의 문이 열렸다.

“골렘 핵들 전부 리턴!”

파파파팟!

정다운의 호출에 골렘들의 몸속에서 리턴 옵션이 걸려 있는 핵들이 전부 그에게 회수되었다.

정다운이 그것들을 움켜쥔 두 손을 사방으로 펼치며 외쳤다.

“아이템 지급! 위치는 모래 괴수의 각 관절들로!”

파바밧!

골렘의 핵들이 모래 괴수의 몸속을 타고 구석구석 흩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다운이 목표한 위치들을 향해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그리고 손목, 발목, 팔꿈치까지도 전부!

골렘은 정다운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지만, 머리가 나쁜 탓에 복잡한 명령은 못 알아듣는다.

하지만 단순한 동작만 반복하는 관절이라면 어떨까?

[……어, 잠깐? 그것들 뭐임? 왜 자꾸 나와요?]

그 순간 토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바바밧!

골렘 숫자에 비해 모래 괴수의 관절은 훨씬 많았다.

골렘의 핵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다운이 소지품 창 안에서 핵을 추가로 계속해서 꺼내는 것이 아닌가?

토끼는 진심으로 경악하고 말았다.

[골렘의 핵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거임!? 기껏해야 한 달에 하나씩만 구할 수 있던 아이템이잖아요!]

“아, 이거? 맞아. 한 달에 하나.”

정다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내가 지구에 오기 전에 에르테아에게 스테이지-1이 리셋될 때마다 골렘 핵만 좀 보내 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던전에서의 한 달은 여기에선 하루잖아?”

[……앗? 잠깐 설마.]

뚜둥!

그 순간 토끼가 질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우주 제일의 욕심쟁이를 발견한 표정으로.

욕심이 그득그득한 인간 말종이 세상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계속 오더라고. 당장은 쓸 일이 없어서 계속 쌓아 두고만 있었지만, 골렘은 언제나 다다익선이잖아?”

[이, 이 천하의 욕심쟁이가-!]

일평생 스테이지-1에 몸담고 있던 전직 도우미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지구까지 돌아와서도! 그렇게까지! 내 스테이지를 뼛속까지 우려먹어야 속이 후련했냐! 난이도가 떨어진다고욧!]

“뭐, 어때? 루갈이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 이렇게 잘 써먹고 있잖아?”

토끼가 뭐라 하건 정다운이 눈을 번뜩이는 순간. 

번쩍!

거대한 모래 괴수의 관절들에 자리를 잡은 흙 골렘의 핵들이 일제히 빛을 폭발시켰다.

“자, 움직여 봐라! 모래 괴수!”

그어어어!

정다운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모래 괴수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드디어 첫 걸음마를 뗐다.

쿠웅-!

엄청난 모래 먼지와 함께,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 큰 충격에 빠져 버렸다.

[와씨! 저게 진짜 된다고? 저건 진짜 인간의 영역이 아닌데!?]

[가짜 신의 영역이겠지.ㅇ_ㅇ]

첫 걸음마를 뗀 모래 괴수의 배꼽에서 정다운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음하하! 보았느냐! 이것은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골렘에게는 가장 위대한 도약이다!”

[분명 헛소리 같은데 진짜라는 게 짜증 나!]

토끼의 반응이 무색하게도, 때마침 정다운의 헛소리에 진심으로 공감해 버린 존재가 있었다.

바로 아기 세계수.

번쩍!

<최초 업적 달성!>

“타이탄 조종사!”

무지무지 큰 골렘 ‘타이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타이탄은 너무 커서 조종사가 없으면 꼼짝도 못한답니다!

- 보상 : 타이탄 조종 실력 상승!

“타이탄이라고?”

[아닛! 이름까지 지어 준다고!? 그건 너무하잖아! 내 미후왕보다도 훨씬 큰데 이름까지 있는 네임드 하수인이라니!]

그렇다. 

토끼는 진심으로 쪼잔했다.

정다운에게 미후왕보다 큰 골렘이 생기는 순간 질투심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어어어!

엄청 큰 타이탄이 울부짖었다.

타이탄은 너무 커서 서 있기만 해도 재앙이었다.

정다운은 타이탄 조종사 업적에 대한 보상을 몸소 체험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뭐야 이거? 타이탄이 갑자기 내 몸처럼 느껴지는데?”

그 순간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 버렸다.

그어어어!

하늘을 메울 정도로 거대한 모래 괴수가 갑자기 두 팔을 번쩍 들더니, 아침 체조를 시작했다.

정다운의 의지에 따라.

“헛둘! 헛둘! 셋넷! 와씨! 이번 보상 진짜 미쳤는데? 수동 운전이 오토가 됐어!”

그어어어!

엄청 큰 타이탄이 아침 체조만 하는데도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던 타클라마칸 사막이 진동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조차 타이탄은 사막 모래를 끌어들여 야금야금 몸집을 키우는 중이었다.

정다운은 완전히 신나 버렸다.

“와, 이쯤 되면 나 혼자 퀘르쿠스도 상대할 수 있겠는데? 야, 아기 세계수! 너는 진짜 최고야! 넌 내가 끝까지 키워 준다!”

솔깃?

정다운의 말에 토끼의 손에 들려 있던 아기 세계수가 떡잎을 쫑긋거렸다.

그리고 그 화분 한구석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이쑤시개집 주인.

“……미친. 이 세계는 진짜 미쳤어.”

모나카는 뽀뀨의 등에 올라탄 채로 하얗게 질려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어둠뿌리는 과연 짐작이나 했을까?

자신이 침략하려 했던 지구에 저런 미친 종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나카와 정확히 똑같은 심정인 존재가 있었으니.

“……맙소사. 이 세계는 미쳤어.”

모두에게 까마득히 잊혀 있던 신기루 백작은 타이탄의 몸에 뒤섞인 채로 탄식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대체 어떤 표정을 연기해야 할까?

나라 잃은 표정?

영혼이 가출한 표정?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굳이 인간을 흉내 내지 않아도 저절로 얼굴에 허망한 표정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모래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분신을 찍어 낼 수 있는 신기루 백작이라도 정다운을 흉내 내는 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영역이었다.

그는 결국 결심하고 말았다.

“항복! 완전히 항복입니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심을.

그가 정다운에게 간절히 외쳤다.

“사막의 신이시여! 부디 소인 신기루 백작을 수하로 받아 주시옵소서! 어차피 이대로라면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아? 맞다. 너 있었지?”

“…….”

그렇다.

정다운은 이미 신기루 백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일단 전부 모여 봐.”

그오오!

정다운이 타이탄의 두 손을 들어 하나로 모았다.

그러자 그곳을 향해 타이탄의 몸 곳곳에 박혀 있던 신기루 백작들이 스멀스멀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시 후, 타이탄의 두 손 위에는 신기루 백작들이 수북하게 쌓인 채 동그랗게 뭉쳐 있었다.

‘진짜 뭐가 이래!? 내 몸을 자기 멋대로 주무르고 있잖아! 대체 뭐하는 작자냐고!’

지금껏 자신은 영원불멸하리라 자신하며 살아온 신기루 백작.

그는 지금 생애 처음으로 항거할 수 없는 진정한 공포를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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