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82)화 (382/393)

<던전리셋 외전 37화>

동서 2,000km, 남북 600km.

한반도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사막 타클라마칸.

투르크어로 ‘돌아올 수 없는 땅’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고대 중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죽음의 사막이라 불려 왔다.

살인적인 모래 폭풍의 위협.

그로 인해 발생되는 유사.

즉, 흐르는 모래로 인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형들.

망망대해를 연상케 하는 사막과 작열하는 태양까지.

타클라마칸의 환경은 어딜 봐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잘만 살고 있네? 어떻게 된 거지?”

“뽀뀨?”

“알았어, 알았다고. 휴우.”

슥슥. 싹싹.

세계수의 화분에서 뽀뀨의 등을 빗질해 주고 있던 모나카가 미니맵을 보느라 잠깐 손을 멈추자, 뽀뀨가 그녀를 뚱하게 쳐다보며 눈치를 주었다.

모나카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빗질을 시작하자, 뽀뀨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이 그윽한 표정을 지었다.

뭐, 사막이 대수일까.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건 사실상 모나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정다운은 자신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에 떡하니 성도(省都)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국적인 성과 주변을 둘러싼 평화로운 도시.

다시 휘몰아쳐 온 모래 폭풍을 타고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평화롭고 활기찼다.

모래 폭풍이 다시 시야를 가리자 성도의 모습은 다시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때마침 만리장성도 끊기는 바람에 미니맵의 범위에서 벗어나자 정다운은 사방에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먼지도 좀 걷을 겸 이쯤에 전망대 하나 지어야겠다. 흙 뭉치기. 전망대 설치.”

슈오오오!

그 순간 마법과도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온 사방을 자욱하게 시야를 가리던 모래 폭풍이 강제로 뭉쳐지며, 사막 위에 전망대 하나가 우뚝 세워졌다.

[뭐임? 이제는 직접 지을 생각도 없어요? 어떻게 한 거임?]

토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정다운을 쳐다봤다.

“그냥 해 본 건데? 왠지 이래도 될 것 같아서 한 건데 진짜 되네.”

[얼씨구야. 이젠 아주 자기 마음대로시네?]

원래 전망대 스킬은 건설하는 속도만 빠르게 해 줄 뿐, 손으로 직접 건물을 지어야만 하는 스킬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다운은 단지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전망대를 만들어 냈다.

모래 폭풍을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가 좀 지나쳤다.

“어차피 모래도 많은데 짓는 김에 더 지어 볼까?”

모래 폭풍이 아무리 없애도 계속 불어오니까, 그냥 계속 짓기로 했다.

“전망대, 만리장성 버전.”

슈와아아악!

그의 손짓에 비행 문어 골렘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전망대들이 줄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만리장성처럼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성벽을 보며 종말의 서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가짜 신의 신격이 네놈의 스킬에 조금씩 영향을 주는 것 같구나.ㅇ_ㅇ]

원래 스킬이란 개념은 초월자의 능력을 보편화시킨 것에 불과했다.

마법사의 마법이 마법 스킬이 되고.

정령사의 정령술이 정령 스킬이 되었듯이.

원래대로라면 마법과 정령술을 부단히 연구하고 수련해야 경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을, 레벨 업이라는 방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경지를 올릴 수 있게 바꾼 것이다.

하지만 편법은 결국 편법일 뿐.

레벨 업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스터 레벨.]

레벨 업만으로는 절대 마스터 레벨 이상의 경지를 넘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반면 원래의 정석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능력의 활용법 또한 훨씬 다채로웠으며, 상상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연구와 경지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월의 길이지. ㅇ_ㅇ+]

정다운은 종말의 서의 설명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공부가 수학, 과학, 미술 같은 과목으로 분류되면서 성적 올리기는 좋아졌는데,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천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뭐, 대충 비슷한 느낌이긴 하군.ㅡ_ㅡ]

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을 쓴다 해서 누구나 초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깨달음. 

이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진 존재만이 늙어 죽기 전에 간신히 초월의 그림자라도 밟아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정다운은 ‘어쩌다 보니’ 레벨 업으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초월의 길을 차근차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다 보니 스킬의 한계를 벗어나 버렸다는 거네요. 이거 좀 오류 아님?]

“아닌데? 오류 아닌데? 그냥 요령이라고 해 줄래?”

[흥. 오류 인생 어디 가겠음?]

잠깐 수다를 떨며 전망대를 짓다 보니 어느덧 주변의 모래 폭풍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있는데 모래 먼지만 싹 걷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정다운이 탄 비행 문어 골렘은 사막 도시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알파가 재빨리 조언했다.

<수상한 지역은 그냥 모른 척 지나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아니. 내려가자.”

<왜죠.>

언제나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정다운이지만, 이번만큼은 표정이 너무 단호했다.

[뭘 그렇게 봐요? 오잉?]

정다운이 갑자기 미니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토끼도 미니맵으로 시선을 돌리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놀랍게도 도시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는 미니맵 너머에 낯익은 얼굴이 웃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정다운의 어머니 최민서였다.

[차, 찾아 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아니야. 뭔가 달라.”

소름이라며 소리를 빽 지르는 토끼 옆에서 정다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야.”

[이 사진이랑 완전 똑같은데 무슨 소리임?]

토끼가 정다운의 어머니 사진을 미니맵에 나란히 두고 비교해 보았지만, 역시나 완벽하게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확신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약간 달라. 내가 설마 우리 어머니를 몰라보겠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려가서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확실하겠죠.]

“그러자. 바하무트 착륙시켜.”

잠시 후, 비행 문어 골렘이 다짜고짜 정다운의 어머니를 닮은 사람 앞에 내려섰다.

“어머, 아들-!”

[앗? 역시 진짜였네!]

덥석!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정다운을 알아보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역시 다른 사람이네.”

그녀의 품에 안긴 채로 정다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토끼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이래도 아니라고요?]

“응. 우리 어머니가 아니야.”

“어머? 얘가 왜 이래?”

정다운이 어머니를 슥 밀어내더니,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아줌마 누구세요?”

“아줌마라니! 네 엄마 최민서지 누구겠어? 우리 아들이 갑자기 왜 이러실까?”

정다운의 이상한 반응에 당황하는 최민서였다.

하지만 정다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차분히 관찰했다.

“신기하긴 하네. 어머니한테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어머니인 척하는 거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얼굴, 헤어스타일, 표정까지도 완벽하게 자신의 어머니를 빼닮아 있었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서 정다운이 보기엔 위화감만이 들 뿐이었다.

자신을 최민서라 주장하는 여성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아들, 왜 그래? 엄마 안 반가워? 실망이야. 엄마는 반가워 죽겠는데.”

“……흐음.”

대답 대신 정다운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 도시의 모습을 관찰했다.

웅성웅성.

갑자기 도시 한복판에 내려선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를 보고 사람들이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의 국적과 인종이 다들 천차만별이었다.

“이태원이라도 온 기분인데?”

<사막 도시도 신기하지만,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성원도 상당히 이색적이군요. 혹시 모르니까 정화라도 걸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저주를 의심해 보는 알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정다운이 바로 정화 스킬을 펼쳤다.

“정화, 범위형.”

화아악!

그를 중심으로 새하얀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도,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했다.

하지만 딱 한 가지가 달라졌다.

바로 정다운의 어머니 최민서.

“……꽤 신기한 재주를 가진 분이셨군요.”

다양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던 그녀가 어느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형형색색의 그림이 한순간에 지워져 버린 듯한 무채색의 도화지처럼.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막처럼.

인간미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정다운이 토끼를 돌아보며 말했다.

“거봐. 내 말 맞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까?”

[와, 진짜였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자기 엄마라 그런가? 아니면 진짜 저주였음?]

둘의 태평한 대화를 지켜보던 최민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삐딱한 자세로 투덜거렸다.

“어쩐지 제 현혹에 걸리지 않더라니, 저주에 대한 면역이라도 있나 봅니다? 성자라도 되시나요?”

토끼는 큰 충격을 받았다.

[히익? 진짜 저주였나 보네요? 나는 저주에 걸린 기분도 안 들었는데 언제 걸린 거지? 설마 나를 속여 넘길 정도로 엄청 고난이도의 저주였던 것인가!]

“딱히 댁한테는 걸지도 않았습니다만? 애초에 제 ‘신기루’는 누군가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어서, 그렇게까지 엄청나지도 않다고요.”

[흥. 아님 말고요.]

“신기루라고?”

정다운의 말에 최민서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요.”

그리고 바로 이국의 귀족처럼 우아하게 허리를 굽히며 그에게 인사했다.

“사막의 성도에 방문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곳의 성주 ‘신기루(蜃氣樓)’ 백작이라고 합니다. 그럼 모쪼록 푹 쉬었다 가시길.”

휘오오!

그 순간 최민서의 발밑에서부터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며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몸이 모래바람에 섞여 그 자리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우와! 대박!”

[앗! 신기하다!]

엉겁결에 박수부터 치는 정다운과 토끼였다.

“긴장감 하나 없는 반응이네요. 재미없어라.”

허공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 재미가 문제가 아니었다.

인사를 마치고 사라지려는 그녀를 향해 정다운이 손을 뻗었다. 

“에이, 어디 가? 우리 어머니 흉내까지 내고 그냥 도망치려고?”

덥석!

“……!?”

정다운이 허공에 대고 주먹을 움켜쥐자, 모래바람이 강제로 뭉쳐지며 그 손에 끌려왔다.

“이게 무슨!?”

최민서는 아까와는 다르게 색깔 하나 없는 모래 인간이 되어 정다운의 손에 멱살이 잡혀 있었다.

경악하는 그녀, 아니 신기루 백작을 향해 정다운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일이라니? 사막이잖아. 여기선 내가 왕이야.”

“……!?”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루 백작은 그의 손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단단히 뭉쳐진 흙덩이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듯이.

정다운의 손에 완벽하게 뭉쳐져 버린 것이다.

[새로운 기록이군. ㅇ_ㅇ+]

종말의 서는 다른 것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모래가 되어 사라졌는데도,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어느 누구도 놀라는 이가 하나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그들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정다운이 타고 내려온 문어 골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신기한데?”

“문어가 날아다니는데?”

“별게 다 있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종말의 서가 중얼거렸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 아무래도 이번 세계수는 이 사막에 새겨진 ‘신기루’의 기록을 베꼈나 보구나. ㅇ_ㅇ]

유구한 세월 동안 사막에 새겨진 악명 높은 전설, 신기루.

지금에 와서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원리가 밝혀지긴 했지만, 그래 봐야 최근의 일에 불과했다.

뜨겁게 가열된 모래와 공기의 대류 현상, 빛의 굴절로 인한 착시 현상에 대해 전혀 모르던 옛날 사람들에게 신기루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여행객의 눈앞에 보고 싶은 환상을 보여 줘서 죽을 때까지 사막에서 방황하게 만드는 파멸의 기록.

“그게 바로 저, 신기루 백작입니다만. 저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헤헤.”

신기루 백작이 난처한 얼굴로 정다운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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