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외전 34화>
* * *
뽀뀨는 자신의 선물도 내팽개치고 발악하는 사령술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귀여웠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고 가녀린 생명체를 보자 모성애(?)를 느낀 것.
“뽀뀨!”
와락!
“꺄악!”
급기야 사령술사를 덥석 끌어안고 자신의 빵빵한 볼때기를 비비적거리는 뽀뀨였다.
그러자 그 순간 사령술사는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어째서 내 힘이!?”
뽀뀨가 양 볼에 저장해 둔 정화된 뼛조각의 양은 과장 좀 보태면 자기 몸집의 절반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성역인 셈.
그 볼때기에 직접적으로 닿게 된 사령술사가 힘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령술사가 악다구니를 썼다.
“설마 이 털짐승이 신수였어? 성자도 모자라서 신수까지 있는 세계가 있다!? 말도 안 돼!”
“신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뽀뀨가?”
들썩?
“뀨?”
정다운의 큰 손이 그들을 통째로 잡아 올렸다.
이중으로 붙잡힌 사령술사는 뽀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정다운에게 이를 갈았다.
“이 악마! 당장 나를 풀어 주지 않으면 너를 저주하리. 젠장! 얘도 성자라서 저주가 안 걸리잖아!?”
[많이 시끄러운 인형이네요. 마음에 드는데?]
“마음에 들지 마! 그리고 나는 인형 따위도 아니라고! 이거 내려놓지 못해!?”
손에 손을 거쳐 사령술사는 이제 토끼의 손에 ‘인형처럼’ 달랑달랑 붙들려 있었다. 뽀뀨와 함께.
토끼가 물었다.
[인형이 아니면 뭔데요? 어디 자기소개나 해 보셈.]
“이익! 누가 소개하라면 순순히 해 줄 줄 알아?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킁킁. 숲의 일족이로군.]
“호락하잖아!?”
사령술사의 냄새를 맡자마자 정체를 눈치챈 루갈이었다.
정다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루갈을 쳐다봤다.
“숲의 일족이라고? 내가 아는 숲의 일족이랑 크기가 많이 다른데?”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크흠. 너희들이 이번에 나를 불러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숲의 지배자인 나만큼 숲의 일족에 대해 잘 아는 존재는 없으니까.]
루갈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설명을 시작했다.
본디 숲의 일족이란 세계수를 지키고 가꾸기 위해 존재하는 종족이었다.
애초에 그 종족을 만들어 낸 것이 세계수라는 전설도 있었다.
[크륵. 던전 게임의 낙원에서 죽어 간 참가자들이 숲의 일족으로 다시 태어난 일을 보면, 아주 헛된 전설은 아니라는 거겠지.]
지서연과 윤진수를 비롯한 많은 참가자들이 세계수의 하얀 세상에서 목숨을 잃고 숲의 일족으로 부활한 적도 있었다.
[무튼, 오랜 옛날부터 세계수 근처에는 언제나 숲의 일족이 살았고, 그 모습과 능력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면, 숲의 일족의 존재 의의는 전적으로 세계수의 성장을 위한다는 것이지.]
“잘도 지껄이네. 흥. 누가 세계수를 위한다는 거야? 나는 뭐 이렇게 태어나고 싶었는 줄 알아?”
뚱한 표정으로 루갈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사령술사였다.
토끼가 히죽 웃으며 그녀를 살살 달랬다.
[자, 이미 다 까발려진 것 같은데 자기 입으로 소개해 보면 어때요? 어차피 곧 죽을 건데 죽기 전에 이름이나 남기시지?]
오싹.
“말투는 상냥한데 결론이 최악이잖아?”
협박에 못 이겨 사령술사는 결국 입을 열었다.
“나는…… 흑요정 모나카야.”
[흑요정?]
“숲속의 작은 난쟁이라고도 불러. 어둠 속에서 세계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태어난 종족이지.”
흑요정.
숲 속의 작은 난쟁이.
어둠의 파수꾼.
지금까지 모나카를 호칭하는 수식어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가장 최후의 순간에 그녀에게 붙여진 호칭은 바로 사령술사였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박멸되어야 하는 사령술사 모나카가 바로 나야. 지금까지도 용사들에게 쫓기고 있고. 아니지, 지금은 이렇게 결국 잡혀 버렸네.”
흑요정 모나카의 입에서 체념 어린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다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박멸해? 사령술사가 없어지면 평화가 찾아오나?”
“응. 그건 확실해. 나 같은 흑요정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에서 저절로 언데드들이 생겨나거든.”
[크륵! 과연 숲의 일족답군! 여기는 숲에 언데드들을 풀어서 세계수를 지키는 방식인가?]
루갈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무릇 숲의 일족의 모습과 능력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에르테아의 세계에서 숲의 일족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풀과 나무가 자라나 숲을 조성하는 종족이었다.
멸망해 가던 세계였기에 척박한 땅을 일궈 내 세계수에게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모나카의 세계는 달랐다.
“우리 세계는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세계수를 노리고 수시로 모험을 떠나. 그리고 우리는 그 인간들에게서 세계수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받고 태어났지.”
“뭐? 인간들이 세계수를 노린다고?”
[으잉? 그쪽 사람들은 세계수 없으면 세상 망하는 거 모른대요?]
“그야…….”
호기심 가득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사령술사 모나카는 괜히 쭈굴거리는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그러곤 작게 한숨을 쉬더니 주변에 만연한 어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야 우리 세계수가 먼저 사람들을 공격하니까 그러지.”
……!
* * *
세계수 어둠뿌리(Dark-Root).
이것이 바로 흑요정 모나카를 태어나게 한 세계수의 이름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 세계수는 이름과는 다르게 반드시 그 형태가 나무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모나카 쪽 세계수의 형태는 나무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어둠’ 그 자체였다.
모나카의 말에 따르면, 현재 중국과 몽골을 뒤덮고 있는 짙은 어둠의 정체는 사실 날씨 조작 결계 따위가 아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세계수가 지구로 뻗어 내린 어둠뿌리의 일부분이었던 것.
“어둠뿌리는 끝도 없이 성장하는 괴물이야.”
모나카의 설명을 들을수록 그쪽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모두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둠뿌리가 성장할수록 세상은 점점 어둠으로 뒤덮여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모나카 같은 숲의 일족 흑요정들이 하나둘씩 태어나게 되었고.
흑요정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주변에서 저절로 태어나는 언데드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옥이군. ㅇ_ㅇ]
종말의 서의 깔끔한 한 줄 요약이었다.
[역시 어디서나 세계수가 말썽이네요.]
에르테아의 세계처럼 모나카의 세계 또한 세계수의 무분별한 성장이 다른 방식의 종말을 가져오는 중이었다.
온 세상을 어둠으로 집어삼키려는 세계수와 그에 맞서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분투하는 용사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모나카 같은 흑요정, 즉 사령술사였다.
“사령술사가 죽으면 더 이상 언데드가 출몰하지 않는다는 게 알려진 뒤부터는 아예 사령술사를 사냥하는 척살조가 생겨났어. 그게 바로 성자나 성녀들이 포함된 용사 파티야.”
모나카는 결국 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제 입으로 실토하고 말았다.
자신을 죽여야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사태가 종결될 것이라는 말을.
그녀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줘! 나도 처음엔 사람들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었어! 언데드가 사람을 공격하는 건 본능이고, 저쪽 군대에서도 나를 먼저 자극하는 바람에 서로 시비가 붙은 거라고!”
처음부터 모나카가 지구로 넘어온 이계의 게이트의 위치는 탄광 지하 깊은 곳이었다.
그런데 게이트를 뚫은 존재가 바로 어둠뿌리였기에, 어둠뿌리는 탄광 터널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 마음껏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 어둠이 닿는 모든 땅에서 수많은 언데드들이 출몰하기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언데드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 그야말로 본능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명령하면 언데드들의 공격을 멈출 순 있지만, 그것조차 내 시야가 닿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해.”
모나카의 시야 범위는 어디까지나 수정 구슬의 탐지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나카의 통제에서 벗어난 언데드들은 그보다 더 높은 의지인 세계수 어둠뿌리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어둠뿌리의 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지구의 인간들을 공격해서 자신의 영양분을 추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응, 그럼 당연하지. 계속 말해.”
“…….”
모나카는 잠시 허탈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쳐다봤다.
아까부터 그가 더없이 신중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휴, 완성.”
잠시 후, 그가 보람찬 얼굴로 땀 한 방울 안 흐른 이마를 훔쳤다.
그러곤 모나카를 손으로 잡아 들고 지금 막 완성한 결과물 앞에 척 내려놓았다.
그곳은 바로 아기 세계수의 새싹이 자라고 있는 화분 위였다.
“세계수잖아!?”
아기 세계수의 존재를 목격한 모나카는 크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너무 작고 하찮은 수준이지만, 숲의 일족으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그래서 그 바로 옆에 정다운이 이쑤시개 300개를 꽂아서 만들어 둔 목재 건물을 한발 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정다운은 손가락 끝으로 모나카의 등을 그 건물 앞으로 떠밀며 말했다.
“어때, 좋지? 앞으로 네가 살 집이야.”
“갑자기!?”
모나카는 자신의 앞에 떡하니 나타난 이쑤시개 건물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나카 하우스]
앞에 떡하니 자신의 이름까지 써 있는 목제 건물이 세계수 새싹 옆에 세워져 있었다!
아니! 그 반대다!
자신의 집 앞마당에 세계수 새싹이 아름드리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소담스럽게 둘러져 있는 야트막한 나무 울타리까지!
모나카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무, 무슨 소리야? 이게 내 집이라니?”
“너 세계수 지키는 숲의 일족이라며? 마침 우리도 세계수를 하나 키우고 있거든.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세계수 옆에서 살면서 좀 돌봐 주라는 거지.”
[히히. 그래요. 어둠뿌리 버리고 우리 쪽으로 갈아타셈. 보시다시피 이쪽은 복지가 좋음. 집도 준다고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게 된 모나카였다.
하지만 안 될 일이었다.
“그건 불가능해. 애초에 어둠뿌리에게 애착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어둠뿌리에 의해서 태어난 흑요정이라고. 내 임의대로 소속을 바꾸는 건…….”
팔락.
그때 모나카의 앞에 종말의 서가 펼쳐졌다.
[들어오너라. 죽여서 강제로 영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기록되기를 원한다면 베끼는 것보다 가장 손실이 적을 테니. ㅇ_ㅇ+]
모처럼 인자하게 말하는 종말의 서였다.
죽여서 기록을 베껴 오는 것과 원본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
무엇이 더 효율이 좋을지는 뻔했다.
[숲의 일족의 기록은 정말 값진 기록이지.ㅇ_ㅇ+]
꿀꺽.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에 유혹당하고 있는 모나카였다.
물론 거부권은 없었다. 이 제안을 안 받으면 그냥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
모나카는 결국 종말의 서의 책장 위로 발을 들였고, 그 순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소속이 어둠뿌리에서 종말의 서, 아니 그 상위의 존재 생명의 용 에르테아에게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번쩍!
[최초 업적 달성!]
“세계수의 친구!”
숲속의 작은 난쟁이 흑요정과 친구가 되었어요!
숲의 일족이 늘어날수록 세계수가 자라는 속도도 점점 빨라질 거랍니다!
- 보상 : 세계수의 성장 속도 0.1배 상승!
[업적 달성!]
“떡잎 둘!”
세계수에 떡잎이 돋아났어요!
떡잎은 성장에 필요한 잉여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소랍니다!
- 보상 : 어둠을 물리치는 한 줄기 빛!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모나카 하우스의 아름드리나무, 세계수 새싹이 키가 쑤욱 자라나며, 두 번째 떡잎이 뿅 하고 나타난 것.
그리고 세계수의 새싹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화아악!
“……!”
[아윽! 눈뽕!]
토끼의 비명과 함께 세계수의 빛은 온 세상을 밝혔다.
그리고 내몽골자치구 탄광 지역에서 시작해서 섬서성 일대까지를 뒤덮고 있던 어둠뿌리의 어둠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키켈켈?
끼히이…….
와르르!
어둠 속에서 암약하던 언데드 군단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무너져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정화> 스킬이 상급 8레벨로 발전했습니다.]
“아싸! 이게 웬 횡재야!”
그 업적으로 인해 하루 만에 두 번이나 레벨 업을 경험하게 된 정다운은 뛸 듯이 기뻐했다.
흙뭉치기 마스터고 뭐고 간에, 그의 진정한 메인 스킬은 이 애물단지 정화 스킬 아니었던가.
점점 마스터 레벨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효율이 좋을 줄이야! 안 되겠다! 나 잠깐 모나카의 세계 좀 다녀올게! 어둠뿌리를 완전히 작살내고 오면 나도 이제 정화 마스터다!”
……라는 건 정다운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막상 모나카가 넘어온 이계의 게이트를 찾아가 보니, 모나카만큼이나 그 크기가 작아서 그는 들어갈 수 없었다.
[뽀뀨만 보내 볼까요?]
“……됐다.”
인생이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