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77)화 (377/393)

<던전리셋 외전 32화>

*   *   *

어느덧 어둠으로 뒤덮인 광활한 초원 지대를 지나 샤오진의 고향인 탄광 지역이 나타났다.

높은 계곡과 험준한 골짜기.

드넓은 산악 지대.

이곳이 바로 중국 제1의 석탄 생산지라고 불리는 내몽골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이 이렇게 짙은 어둠 속에서도 여실히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르륵!

중국 최대의 광산이…… 시뻘건 화마에 휩싸여 땅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히익. 완전 불바다네요? 하룬인 줄?]

화아악! 확! 확!

땅 밑에서 끊임없이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갈라진 틈새로 새빨간 불길이 훅훅 솟구쳐 올라온다.

그로 인해 유독 가스로 가득한 이 인세 불지옥이 바로 내몽골자치구의 안타까운 현 상황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건강이 축날 것 같은 유독 가스의 메케한 냄새에 정다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이건 하룬보다도 훨씬 심각하잖아?”

샤오진은 침통한 표정으로 불지옥으로 변해 버린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서 내몽골자치구의 군대와 언데드 군단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폭탄과 미사일이 빗발쳤고, 그로 인해 생겨난 화재가 결국 탄광 지역에 닿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게 끝나 버렸다.

중국 최대의 석탄 지대가 통째로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화재를 진압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데드 군단은 틈틈이 그 화재를 더욱 확산시키며 돌아다녔다.

불길 속에서도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언데드들과 불에 약한 인간의 군대.

화재가 확산될수록 전투의 양상은 언데드 군단에게로 승기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샤오진의 설명을 들은 정다운과 토끼가 기가 차다며 혀를 내둘렀다.

[멍청한 언데드들 주제에 똘똘하게 싸우네요.]

“확실히 뒤에 누가 있긴 한 것 같네. 아주 전략적이야.”

[언데드 군단을 부리는 사령술사라는 존재들은 언제나 전쟁에 능한 사령관이지. ㅇ_ㅇ]

<본인은 안전한 곳에 숨어서 일을 꾸미는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군요.>

[크흠. ㅇ_ㅇ]

알파의 일침에 아무 말도 못하는 종말의 서였다.

사실상 종말의 서야말로 오랫동안 낙원의 지하에 숨어 살며 부활을 위해 흉계를 꾸몄으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인니임…… 저어는 아무래도오 여기까지인 것 같나이다아…….]

“아, 맞다.”

뜨거운 열기가 점점 가까워지자 바하무트의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점점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다운은 별수 없이 바하무트를 다시 창고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기서부턴 착륙해 지상에서 이동해도 충분했다.

그가 코를 막고 있던 손을 풀어서 지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 한번 내려가 볼까? 정화, 범위형.”

화아악!

그 순간 비행 문어 골렘 밑으로 새하얀 빛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며, 일정 범위의 유독 가스를 정화시켰다.

[불은 어쩌게요?]

“어쩌긴? 찢어야지.”

정다운이 토끼와 샤오진에게 복제 주문서를 나눠 주며, 천천히 비행 문어 골렘을 아래로 내려가게 했다.

[마법 주문서(복제)]

내구력 : 100/100 (퍼센트)

특수 옵션 : 화염의 룬(1레벨)

주문서를 받아 든 샤오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요?”

[에헴. 내가 시범을 보여 드리지.]

토끼가 선심 쓰듯 먼저 주문서를 찢자, 토끼의 새하얀 털 위로 새빨간 불길이 휘감겨 올라왔다.

화르륵!

[짜잔. 이러면 불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져서 불에 안 탐.]

“……!?”

샤오진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화염의 주문서를 호기롭게 찢었다.

화르륵!

그러자 그의 몸에도 화염의 오라가 휘감겼고, 동시에 지상에서부터 느껴지던 뜨거운 열기가 확 반감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아이템이 존재할 줄이야!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놀랍고 신비로운 분들이시구나.’

물론 여전히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정도의 더운 느낌은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불지옥이 아니라 여름철의 평범한 온도에 불과했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급격히 허기가 지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정다운이 다 안다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응, 배고프지? 그거 마셔.”

척.

“……!?”

어느새 샤오진의 손엔 따뜻한 우유 한 잔이 강제로 들려 있었다.

토끼는 옆에서 이미 우유 한 잔을 꼴딱꼴딱 다 마시고, 머리 위에서 거꾸로 들고 터는 중이었다.

[크으! 역시 불귀신의 우유는 최고임! 고소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마시면 ‘불귀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지요! 게다가 화염의 룬과 효과가 중복된다는 말씀!]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훗. 별말씀을. 궁금한 표정이었음.]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이는 샤오진과 의기양양하게 우쭐대는 토끼였다.

그러다 문득 토끼의 시선이 아직도 화염 주문서도 안 찢고 불귀신의 우유도 안 마시는 정다운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님은 아직도 안 마시고 뭐해요? 더워 죽을 생각임요?]

“나는 이제 안 마셔도 괜찮은데?”

[네? 왜요?]

토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말에 정다운이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혼자만 몰래 숨어서 맛있는 거 먹다 들킨 사람처럼.

그가 토끼에게서 눈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흠흠. 그게…… 사실 그동안 심심할 때마다 우유를 습관적으로 꺼내 마셨더니, 내 면역력이 조금 좋아졌나 봐.”

[……그게 무슨 말임?]

토끼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즉, 이런 말입니다.>

알파가 냉큼 나타나, 언젠가 자신이 설명해 주었던 말을 고스란히 다시 읊어 주었다.

<불귀신의 우유를 섭취하게 되면 불귀신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귀신의 가호. 그리고 우유를 매일 꾸준히 섭취하게 되면.>

“……결국엔 불에 타지 않는 몸이 되더라고. 홍삼을 꾸준히 먹다 보면 감기에 안 걸리듯이.”

[자, 잠깐. 설마?]

들으면 들을수록 토끼의 표정이 점점 큰 배신을 당한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갔다.

정다운은 결국 숨겨 왔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더위를 안 타게 되더라고. 스킬은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불에 화상도 안 입고, 지금도 꽤 쾌적…….”

[야잇! 치사한 인간아! 그 좋은 걸 지금까지 혼자만 홀랑홀랑 먹고 다녔냐아! 나는, 나느은-!]

결국 서러움이 폭발해 버린 토끼였다.

정다운은 토끼를 달래기 위해 덥지도 않은데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니, 야.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진짜 그냥 습관적으로 물 마시듯 마신 거라니까? 너도 달라는 말 없었잖아?”

[달라고 하기 전에 챙겨 줬어야지! 이 치사뽕아! 대체 혼자 얼마나 많이 마셨기에 불귀신의 가호를 패시브로 받아 버린 거냐고욧-!]

대부분의 짐승들이 그렇듯이, 불귀신들도 어릴 때 어미 불귀신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모유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어엿한 어른 불귀신이 되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또다시 자기 새끼한테 모유를 먹여 키우는 것이 불귀신들의 인생이었다.

그렇다.

새끼 불귀신을 진정한 성체 불귀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불귀신의 우유.

그게 바로 불귀신의 가호의 정체.

그리고 아기 불귀신들이 평생 먹어야 하는 양보다도 훨씬 많은 불귀신의 우유를 섭취해 버린 정다운.

그 결과, 그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불귀신처럼 성장하고 말았다.

불귀신의 가호가 영구히 몸에 새겨진 것이다.

[흥. 그래도 화염 주문서는 찢으셈. 옷이 다 타 버려서 알몸 변태가 될 생각은 아니죠?]

“아, 그게…….”

투덜대며 주문서를 내미는 토끼의 모습에서 정다운은 또다시 양심에 찔려야 했다.

막상 불이 이글이글 올라오는 탄광 지역에 내려섰는데도, 정다운의 옷이 너무 멀쩡했던 것이다.

토끼는 당황했다.

[뭐, 뭐임? 왜 옷이 안 타요? 옷에도 우유 먹였음?]

이제 보니 불귀신의 가호는 그의 육체만 지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토끼의 눈빛이 또 이글이글 타오르며 질투에 눈이 멀어 가자, 알파가 눈치 없이 또 나타나 설명을 시작했다.

<불귀신의 가호가 정다운 님의 몸에서 흘러나와, 몸에 닿은 아이템들까지도 보호해 주는 겁니다. 세계수의 가호인 ‘생존자 전체 회복’이 상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아이템까지 회복시켜 주던 것과 비슷한 맥락…….>

[아! 안 물어봤음! 설명하지 마셈!]

<분명 물어봤…….>

[으아아! 몰라! 다 얄미워! 치사해! 나도 마실래! 나도 불토끼 될 거임!]

뒤늦게라도 미친 듯이 불귀신의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토끼였다.

그러다 빵빵해져 버린 토끼의 배를 정다운이 꾸욱 누르자 입에서 물총처럼 삐죽 우유가 발사되었다.

우유를 뿜어내며 토끼가 버럭 신경질을 냈다.

[아씨! 건드리지 말라고요! 내가 마시다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마시고 만다!]

“…….”

정다운은 토끼의 질투를 피해 불바다 속으로 피신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화염이 정다운의 몸을 뒤덮었지만, 전혀 뜨겁지 않은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흥! 이제 님은 따사로운 햇살의 행복을 못 느끼는 불행한 사람이 거임! 꼴좋다! 항상 추위에 떨어라!]

“아냐. 그건 또 괜찮더라고. 이게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가호이자 면역력이라.”

[아, 됐어요! 내 혼잣말이니까 말대꾸하지 말라고요!]

정다운과 토끼가 투덕거리는 사이에 샤오진만인 혼자서 극도로 신중한 눈빛으로 사방을 샅샅이 탐색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지옥 한가운데였으니까.

샤오진이 진지하게 그들을 위해 조언했다.

“아무리 정다운 님이라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곳은 모든 재난의 시작점. 갑자기 또 무슨 재난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 말이 맞다. 사령술사는 본디 음험한 존재. 놈은 이 불지옥에서도 가장 깊고 위험한 곳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ㅇ_ㅇ+]

결국 사령술사를 잡기 위해선 이 불타는 탄광 속을 탐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   *   *

그리고 종말의 서의 예측은 정확했다.

불지옥이 되어 버린 탄광 지대의 가장 어두운 심처.

내몽골자치구의 수많은 광부들이 석탄을 캐기 위해 뚫어 놓은 탄광 터널의 맨 밑바닥.

그곳에서 죽음을 연구 중이던 이계의 사령술사가 지금 막 자신의 구역에 침입자들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이것들 봐라?”

사령술사는 음험한 눈빛을 번뜩이며 커다란 수정 구슬로 세 명의 불청객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설마 화속성 저항력인가? 저 토끼는 또 뭐지?”

할짝.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사령술사는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새빨간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 표정은 마치 흥미로운 실험 재료를 발견한 과학자 같은 표정이었다.

“흥미롭구나. 그리고 너무 어리석어. 설마 주제도 모르고 고작 세 명이서 나를 찾아온 건가?”

사령술사의 입가에 냉혹한 비웃음이 지어졌다.

이 땅에 주둔해 있던 인간의 군대조차 감히 자신의 언데드 군단을 이겨 내지 못했었다.

처음에야 물론 생소한 화력 장비와 철갑 전차들에 의해 해골 병사들이 잠시 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수뇌부 몇 명에게 저주를 걸었더니 간단히 와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병력들은 고스란히 언데드로 변해 자신의 군단에 편입되었다.

‘인간이란 결국 그런 거지.’

사령술사는 지구의 병력과 직접 전쟁을 치러 봤던 경험으로 인해, 지구의 인간들을 진심으로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마법과 저주에 면역이 없는 인간들 따위는 자신에게 절대 해를 입힐 수 없노라고.

물론 이런 사령술사라 할지라도 단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긴 했다.

바로 범위 공격.

공격 범위가 넓은 포화나 멀리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포탄들에 의해 사령술사 본인이 공격당하게 되는 건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밑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지. 반면에 나는 이곳에서도 너희들을 똑똑히 감시할 수 있고 말이야. 후후. 귀여운 불청객들이여, 어디 한번 나를 재밌게 해 보거라.”

사령술사는 음험한 표정으로 저 가소로운 침입자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엿듣기 위해 수정구슬의 출력을 더욱 높였다.

그러자 수정 구슬 너머로 키가 큰 젊은 사내놈의 뺀질뺀질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루갈이나 부를까?

-루갈은 갑자기 왜요?

-하룬에서 불귀신들 좀 빌려오려고. 걔네가 불 빨아 먹고 살잖아.

‘누가 뭘 먹는다고?’

사령술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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