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67)화 (367/393)

<던전리셋 외전 22화>

여태껏 산동성 제남을 장악하고 있던 생태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림벨이라는 황소두꺼비로 인해서.

콰직! 콱! 쾅! 콰쾅! 

그림벨들은 돌 깨기 스킬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돌 원숭이들을 파괴하며 돌아다녔다.

그림벨의 수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천적을 상대로 먹잇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압도적인 무력으로 주변을 물리치고 나면, 그림벨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중하게 A조 대원들의 손에 식량을 들려 주었다.

먀옹?

“고, 고맙습니다. 아, 바로 먹으라고요?”

냥.

엉겁결에 전쟁터 한복판에서 밥을 먹게 된 A조 대원들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배를 채우고 나서 토끼가 준 복제 주문서를 찢은 순간.

파앗!

“이, 이건……!”

그들의 몸에 투명한 보호막이 코팅되었다.

“이거 설마 왕웨이 님의 수호의 보호막과 같은 건가?”

“맙소사. 이런 아이템이 있다니!”

이로써 그들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보호막이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맞아도 데미지를 입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 그리고 이건 예비용이니까 주머니에 챙겨 두셈. 어차피 남아도니까 사양은 말고요.”

“……!”

흑토끼에게서 조카에게 용돈 쥐어 주는 친척 같은 넉넉함을 느끼게 된 A조 대원들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왜애애앵-!

“……!”

하늘 위에서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전장의 나팔 소리처럼 장엄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작됐나!”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변을 감지한 세계수 화과산이 결국 두 번째 명령을 내린 것이다.

급기야 천지 사방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라락! 

그것은 화과산을 지키며 맴돌고 있던 괴물 말벌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소리였다. 

‘드디어 말벌들이 움직인다!’

괴물 말벌들로 새까맣게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는 왕웨이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산동성 제남의 경찰과 군인들을 쓸어버린 강력한 군대가 바로 저괴물들이었다.

그날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왕웨이는 이를 악물었다.

‘B조가 부디 잘해 줘야 할 텐데!’

다행히도 그들의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슈우웅- 쾅!

돌 원숭이들을 돕기 위해 A조가 있는 곳으로 몰려가던 괴물 말벌 떼의 중심부를 향해서 갑자기 불꽃놀이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사거리의 원거리 스킬이었다.

“……왜앵?”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일제히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괴물 말벌들.

“쇼 타임 시작이다, 이 괴물들아.”

왕웨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B조가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 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유우웅- 쾅! 

슈우웅- 콰쾅! 콰쾅쾅!

“왱!”

“왜애앵!”

결국 괴물 말벌들이 방향을 급격히 꺾었다. 

그리고 A조와 돌 원숭이들이 있는 곳이 아닌, 정반대 방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들에게 뒤덮여 새까맣던 하늘이 일시적으로 뻥 뚫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왕웨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주령 씨! 바로 지금입니다!”

“네! 반중력 최대치 개방!”

화아악!

주령이 양손을 뻗치자, 그녀를 중심으로 투명한 구체가 생성되어 점차 영역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안티 그래비티 필드(Anti-Gravity field)!

이 결계 안에선 중력이 뒤집힌다.

마침 주령이 서 있는 높이도 화과산을 등반하는 사람들의 중간쯤.

화아악!

반중력 결계가 그녀를 중심으로 화과산을 위아래로 아우르자,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몸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헉?”

“헉! 내 몸이!”

정다운도 예외는 없었다.

그의 몸이 부유석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올랐다.

“와, 대박. 이거 진짜 신기하네?” 

우주에 온 기분이 이런 걸까?

깊은 물속에 잠수한 느낌이었다.

“움직일 수도 있나? 웁파! 웁파!”

정다운이 허공에서 멋지게 접영과 배영을 번갈아 하며 토끼에게 자랑했다.

“토끼야, 나 보이냐! 부유석도 없는데 내가 날고 있어! 내가 난다고!”

[그게 뭐 대수라고 난리임? 난 태어날 때부터 날았다고요! 게다가 뜨기만 하고 자유자재로 날지는 못하시네 뭐!]

토끼의 귓말처럼 반중력 결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떠올랐을 뿐이었다.

아무리 팔다리를 허우적거려도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저를 따라 주세요. 이제 화과산은 제 영역이 되었습니다.”

주령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러자 중력의 방향이 뒤틀리며 화과산에 있던 사람들의 몸을 천천히 화과산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으아아!”

“무, 무서워! 사람 살려!”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두려워 마세요! 이제 밑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두둥실!

중력의 방향이 다시 바뀌며 사람들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 중심에서 힘을 쓰는 주령의 안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하얗게 질려 갔다.

“큭. 멀미가…….”

“얼레? 주령 님, 멀미 고쳐진 거 아니었음? 왜 또 멀미함?”

언제 돌아왔는지 흑토끼가 주령에게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주령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평소엔 괜찮은데, 이 정도까지 결계를 확장시키면 속이 뒤집혀. 우웁.”

“쯧쯧. 이런 분들 가끔 있죠. 자기 스킬이랑 적성이 궁합이 안 좋은 거임. 뭐, 힘내셈.”

“놀리지 마…….”

흑토끼는 혀를 차며 주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공중에서 방향을 빙글 돌려 정다운에게로 날아갔다.

정다운이 부러운 표정으로 흑토끼를 바라봤다.

“뭐야? 너는 왜 맘대로 날아다녀?”

“나처럼 원래 날아다니는 존재는 반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괴물 말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걸요.” 

“아하, 그래서 저 사람들이 말벌들을 먼저 다른 곳으로 유인한 거구나.”

“그런 거죠. 이쪽은 아무것도 못하고 떠 있는데, 말벌들은 제멋대로 활개 치며 날아다닐 테니까요. 단순하지만 나름 잔머리를 잘 굴린 작전이에요. 다만 문제는…….”

흑토끼가 문득 우뚝 솟아 있는 화과산을 힐끔 쳐다보며 혀를 찼다.

“이 사람들은 세계수를 너무 얕잡아 봤어요.”

[그 말이 맞다. 세계수씩이나 되는 존재는 절대 어리석지 않지.]

그 말에 동조하는 종말의 서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왜애애앵-!

“왜 저놈들이 다시 돌아와!?”

왕웨이는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B조를 향해 날아갔던 괴물 말벌들이 다시 화과산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왜앵- 왜애앵!

슈우웅! 콰쾅! 쾅!

그 뒤에선 여전히 B조의 원거리 공격들이 성대하게 폭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 말벌들은 그 모든 도발을 철저히 무시하고 화과산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안 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해요!”

주령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최선을 다해 중력을 조종했다.

하지만 지상까지 내려가려면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이제 막 그들이 있던 높이에서 옆으로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던전 게임이 진짜 게임이 아니듯이, 세계수와 세계수의 하수인들은 본능에 따라 사는 생각 없는 멍청이들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전략을 수정할 줄 아는 존재지. 크흐흐.]

종말의 서는 감히 세계수를 얕잡아 본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토끼는 오히려 세계수를 비웃었다.

“그런데 우리 쪽에는 하필 그딴 전략 따위 다 깽판 치는 오류종자가 있죠.”

그 순간 정다운이 소지품을 활짝 개방하며 말했다.

“하늘을 나는 것도 재밌지만, 역시 난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게 좋단 말이지. 나와라, 하늘 공원.”

슈와악!

그 순간 소지품 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하늘 공원의 조각들!

“흙 뭉치기!”

쮸와악!

정다운의 손짓에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보관됐던 하늘 공원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무, 무슨!?”

“갑자기 공원이?”

왕웨이와 주령은 갑자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공원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공원이었다.

가로등에 가로수, 벤치까지 세팅되어 있는 하늘 공원은 누가 봐도 잘 꾸며진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심지어 그 베이스가 부유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반중력 결계와 상관없이 정다운이 세팅한 높이에 오롯이 떠 있었다.

터벅.

정다운이 공원 위로 내려서며 왕웨이와 주령에게 손짓했다.

“자, 다들 데리고 이쪽으로 오세요. 하늘에서 날벌레들이랑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여기 서서 안전하게 싸우자고요.”

“……!”

안전하게 싸우자고?

그 지극히 당연한 말에 주령은 저도 모르게 반중력 결계를 해제할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황급히 저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안 돼요! 지금 제 스킬을 해제하면 우리와 다른 높이에 떠 있는 사람들이 곤두박질치게 된다고요! 그들을 버리고 우리만 살 수는 없어요!”

지금 하늘 공원은 정확히 정다운의 눈높이에 맞춰 부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화과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하늘 공원의 위쪽과 아래쪽, 제각각 다른 높이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고 수많은 괴물 말벌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런데 정다운이 갑자기 영문 모를 말을 했다.

“괜찮아요. 다른 층도 만들 거니까.”

“네? 그게 무슨…….”

“토끼야?”

“넴. 다 준비됐음.”

정다운이 부르자 흑토끼가 경례까지 척 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다른 손으로 마녀의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딸랑.

“이미 화과산 곳곳의 그림자에 방울들을 심어 놨죠. 나와라, 애들아.”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그 순간 화과산 곳곳에서 들려오는 영롱한 방울 소리들.

그 방울들은 화과산을 정확히 17등분 해서 그 높이마다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그림자 게이트를 열고 그림벨들이 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먀아앙! 니야옹!

주인을 향해 명랑한 울음소리를 내는 그들에게 정다운이 명령했다.

“저번에 내가 만든 거 봤지? 똑같이 만들어. 최대한 빨리.”

먀아옹!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림벨들 앞에 일제히 소지품이 열렸다.

그리고.

<스킬>

공중 계단 (Master)

- 공중 계단을 더 잘 만들 수 있다.

- 작업 속도 4배 상승

- 에너지 효율 5배 상승

- <부유섬> 제작 가능

정다운이 마스터한 스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하늘 공원 (X17)

먀아옹!

처처처척! 처처처처척!

그림벨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화과산 옆에 높이별로 부유섬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정다운이 만든 하늘 공원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으로.

“저게 무슨!?”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경악하는 사람들.

정다운이 완전히 얼이 빠진 주령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러면 되죠? 주령 씨, 이제 사람들을 가까운 공원에 내려 주세요.”

“그, 넵.”

여부가 있을까.

주령의 손짓에 화과산의 모든 제물들이 가까운 하늘 공원들 위로 무사히 착지했다.

“왜애앵!?”

그 모습에 화과산에 막 도착한 괴물 말벌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하수인들이었으나, 이런 이상한 변수는 아예 선택지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놈들에게 세계수의 직접적인 명령이 내려왔다.

[퀘스트]

“침입자를 제거하라!”

1) ‘화과산 돌 원숭이’의 재활용을 전면 중지!

2) 외부의 침입자를 우선적으로 처단하라!

3) 제물들을 전부 죽여 에테르를 확보하라!

왜애애앵!

명령이 떨어지자 괴물 말벌들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살벌한 기세로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다운은 감탄했다.

“이야. 이 세계수는 자기 하수인들한테 직접 미션도 주네?”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하수인들은 그 업적으로 격이라도 올려 줄 기세인데요?”

[하수인 따위에게 승격은 사치다. 기껏 생명 에너지를 좀 보태주고 레벨 업 정도는 시켜 주겠지.]

“하지만.”

“하지만.”

종말의 서의 말에 정다운과 토끼의 눈빛이 동시에 번뜩였다.

“그 생명 에너지는 이제 우리 것이죠.”

“앞으로 수동으로 날아가는 것도 끝이야. 생명 에너지만 충분하면 바하무트에게 비행 문어 운전을 시킬 수 있으니까. 열려라, 마법 창고.”

철커덕!

문이 열리고, 바하무트가 나왔다.

[생각보다 빨리 불러 주셨나이다. 외부의 도움이 있으셨습니까?]

바하무트는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오랜만에 알파가 바하무트에게 통 큰 제안을 했다.

<조만간 큰 수확이 있을 예정입니다. 지금 가진 생명 에너지를 모두 쓰는 걸 허락합니다.>

[오호.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블리자드!]

휘오오오!

화과산 주위로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파가 괴물 말벌들을 덮쳤다.

[그런데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놈들을 얼리기엔 생명 에너지가 많이 부족할 것 같나이다!]

“괜찮아. 메인은 이거니까.”

쿠웅!

그 순간 정다운이 하늘 공원 한가운데 거대한 흙벽돌을 쏟아 냈다.

구름 흙으로 만든 분홍색 벽돌이었다.

정다운은 얼굴에 마스크와 물안경을 뒤집어쓰면서 바하무트에게 명령했다. 

“중국 땅에 미세 먼지 좀 뿌려 주자.”

[호오. 이런 묘안이?] 

바하무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휘오오오!

바하무트가 내뿜는 바람의 칼날이 구름 흙을 깎아 내기 시작했다.

파바박!

“왜애액!?”

거대한 먼지 폭풍이 괴물 말벌들을 덮쳤다.

“흙 뭉치기!”

뒤이어 정다운이 손을 움켜쥐자, 그 먼지는 곧 핑크빛 뭉게구름이 되어 말벌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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