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64)화 (364/393)

<던전리셋 외전 19화>

*   *   *

산동성(山東省)의 성도 제남(济南)시는 아주 큰 도시였다.

인구는 약 1억.

중국 전체에서도 무려 2위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 세계수 화과산이 터를 잡은 뒤로 이곳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끼라락!

어느 날 화과산에서 내려온 수많은 돌 원숭이들.

그 공포스런 괴물들이 제남 시의 시민들을 무참히 폭행하고 그들을 화과산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반항이 있었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찰과 군대가 출동하고, 총화기가 돌 원숭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돌 원숭이들의 숫자는 나날이 불어났고, 급기야 하늘 위에서 사람만 한 말벌들까지 내려와 제남의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그리고 현재.

제남시의 인구는 결국 100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

늘 활기차던 거리는 스산하게 조용했고, 도시 곳곳엔 무너진 건물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졌을망정 시체나 핏자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은 시체들은 에테르로 변해 화과산으로 흘러갔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부상자들은 돌 원숭이들이 질질 끌고 갔으니까.

그 모든 희생자들의 끝에는 언제나 화과산이 존재했고, 그 덕분에 화과산은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수 화과산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인구수가 10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곤 하나, 본래 제남시의 인구는 1억.

즉, 아직도 이곳 어딘가엔 1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생존해 있다는 말이었다.

세계수 화과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계속해서 돌 원숭이들을 밑으로 내려 보내 생존자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돌 원숭이들은 포악한 성정만큼이나 지능이 떨어졌고, 덩치가 너무 컸다.

생존자들은 그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 가까스로 제남시의 지하 하수도로 숨어들어 놈들의 추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똑. 똑. 똑.

천장에서 떨어지는 하수도의 물방울.

습하고 냄새나는 이 어두운 터널 속. 

이곳이 바로 제남에서 유일하게 생존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화륵.

어두운 터널 한구석, 두꺼운 양초 하나가 불을 밝히며 어둠을 잠시 밀어냈다.

그 촛불을 중심으로 모인 수십 명의 각성자들의 눈빛은 비록 지쳤을지라도 날카로운 칼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중년 사내의 입이 무겁게 떨어졌다.

“오늘 저녁, 화과산을 치겠습니다.”

“……!”

술렁이는 각성자들.

이미 계획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마른침이 삼켜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여기저기서 우려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지극히 당연한 걱정이었다.

아무리 스킬을 각성했다 한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들이 화과산을 공격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었으니까. 

“왕웨이 님. 좀 더 준비를 하고 공격해야 성공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조금 더 돌 원숭이들을 각개격파해서 조금이라도 더 스킬 레벨을 올리는 편이…….”

“압니다. 위험하다는 것쯤은. 하지만 우리의 목적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

생존자들의 수장 왕웨이.

진중하고 무게 있는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모두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키가 무려 190이 넘는 이 험악한 인상의 중년 사내는 온몸이 수많은 흉터들로 난도질되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흉터들은 전부 한참 전에 아문 상처들뿐.

정작 화과산의 괴물들에 의해 생긴 상처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체 화과산이 출현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생존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이 신뢰하는 것은 현재.

왕웨이가 지금까지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지켜 줬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왕웨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화과산에 잡혀간 우리의 가족들을 구해 내는 것. 준비 시간이 더 늦어졌다간 그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꿀꺽.

그의 말에 각성자들은 비장한 얼굴이 되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가족들은 괴물들에게 구타당하면서 화과산을 억지로 등반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최대한 빨리 구해 내야 했다.

분위기가 잡히자 왕웨이는 심호흡을 하며 지도를 펼쳤다.

“자, 작전은 간단합니다. 이쪽에서 A조가 공격을 하면, 그곳으로 모든 돌 원숭이들이 몰릴 겁니다. 그때 B조가 반대쪽을 칩니다.”

“그러면 B조에게는 괴물 말벌들이 나타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때를 노려,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C조가 화과산에 올라가 사람들을 구해 낼 겁니다.”

왕웨이는 지도 위에 동선을 그어가며 작전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작전에는 빈틈이 너무 많았다.

미끼 역할인 A조와 B조는 차라리 나았다.

다양한 스킬들과 치고 빠지는 용병술로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투를 벌이면 되니까.

문제는 C조였다.

“왕웨이 님, 이미 저희 가족들이 화과산을 상당히 높이 올라갔을 텐데, 저희 C조만으로 괜찮을까요?”

C조에 속한 사내의 질문이 핵심을 짚었다.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먼저 돌 원숭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화과산을 올라갈 방법이 있나요?”

그 말에 왕웨이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우리 C조는 처음부터 돌 원숭이들에게 잡혀갈 계획이니까요.”

“……!”

“우리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것만 신경 쓰면 됩니다.”

A조와 B조의 역할이 미끼라면, C조의 역할은 바로 제물이었다.

왕웨이의 작전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돌 원숭이들에게 얻어맞는 것.

*   *   *

작전이 시작되었다.

“끄아악!”

“우끼끼!”

돌 원숭이들은 발아래에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왕웨이를 낄낄대며 비웃었다.

언제 들어도 맑고 좋은 소리.

인간의 비명은 돌 원숭이들에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천상의 나팔소리였으며, 동시에 클럽의 신나는 비트박스였다.

퍽! 퍽퍽! 퍽퍽!

“아악! 악!”

왕웨이는 누구보다도 크게 비명을 질렀다.

중간중간 돌 원숭이들을 씹어 먹을 것처럼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 반항적인 눈빛 때문에 몽둥이세례를 더 맞고 더 큰 비명을 질러야 했다.

퍽퍽 퍽퍽!

“아악! 그만 때리라고, 이 괴물들아! 제발 살려 줘!”

‘……사실은 엄살이지.’

왕웨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스킬 ‘수호의 보호막’은 전신을 투명한 보호막으로 코팅시켜 준다.

그리고 보호막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모든 고통과 데미지를 대신 맞아 준다.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었다.

“으아악! 아파요! 왕웨이 님! 이거 진짜……!”

그때 왕웨이의 곁에서 돌 원숭이들에게 걷어차이며 바닥을 구르는 다른 C조 대원들이 그를 향해 목 놓아 부르짖었다.

‘이거 진짜……! 하나도 안 아파요!’

비명을 지르면서도 척 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대원들.

돌 원숭이들의 발길질에 얻어맞고 바닥을 뒹구는 그들의 표정에 엄살이 가득했다.

왕웨이의 스킬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걸어 줄 수 있었다.

최대 7명까지.

이 제한 조건이 바로 제물 역할을 맡게 된 C조가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였다.

작전은 순조로웠다.

C조는 표면상으로는 계속 얻어맞으면서 돌 원숭이들에게 떠밀려 화과산 앞까지 결국 도착할 수 있었다.

왕웨이의 눈빛이 번뜩였다.

“좋아. 이제부턴 목 아프게 소리 지를 일도 없겠군.”

화과산을 휘감은 두꺼운 넝쿨들이 가파른 오르막길처럼 되어 있었다.

잡혀 온 제물들이 일단 화과산을 등반하기 시작하면 돌 원숭이들도 더 이상 그들을 때리지 않는다.

다만, 떨어뜨릴 뿐.

“으아악!”

……쿠웅!

한참 높은 곳에서부터 사람 한 명이 추락했다.

“큭.”

C조 대원들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괴물들은 화과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을 가차 없이 밑으로 던져 버린다.

그래서 여기까지 끌려온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이 오르막길 위에선 걸음을 멈추면 안 된다.

그리고 제물들에게 주어진 고난은 하나가 더 있었다.

“끼룩.”

돌 원숭이가 다가와서 C조 대원들의 손에 묵직한 돌덩이를 들려 주었다.

“큭. 그냥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이 무거운 돌까지 들고 가라는 건가?”

“이 미친놈들이 진짜.”

C조 대원들은 이를 악물고 돌 원숭이들을 노려봤다.

아무리 수호의 보호막이라도 돌의 무게까지 대신 짊어 주지는 못했다.

여기서부턴 진짜 고난이었다.

그들에게 왕웨이가 나직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돌은…… 돌 원숭이들의 재료가 분명합니다.”

“어쩐지 놈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더라니…….”

항상 이상하다 여겼다.

사람들의 시체는 죽으면 사라지는데, 어째서 저 돌 원숭이들이 죽으면 그 자리에 돌무덤이 그대로 남을까?

「화과산 꼭대기의 큰 바위에 영기(靈氣)가 깃들더니 돌 원숭이(石猿)가 태어났다.」

“아무래도 우리가 화과산에게 잡아먹히면, 그 힘으로 이 돌덩이들을 모아서 새로운 돌 원숭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군요.”

“빌어먹을 놈들.”

뿌득.

이가 갈렸다.

사람을 죽인 힘을 재활용해 사람을 죽이는 괴물을 찍어 내다니.

이보다 악랄한 재활용이 또 있을까?

“자, 이제 올라갑시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높이 올라가서…… 이 사람들을 전부 구해 냅시다.”

왕웨이의 말에 C조 대원들은 이를 악물고 화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

“거기 앞에 좀 비켜 주세요!”

우르르!

“……끼루룩?”

그들을 잡아 온 돌 원숭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활기차게 화과산을 뛰어 올라가는 제물들은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제물이 싱싱한 건 좋은 일이었다.

왕웨이가 외쳤다.

“역시 저 원숭이들은 우리가 걸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속도 따위는 신경 안 씁니다! 이 페이스로 계속 달립시다!”

“넵!”

그들은 들고 있는 묵직한 돌덩이를 마치 스티로폼 조각처럼 가뿐하게 들고 있었다.

심지어 등반하는 발걸음마저 사뿐사뿐 가벼웠다.

“감사합니다, 주령 씨! 당신의 반중력 스킬이 아니었다면 이 작전은 아예 불가능했을 겁니다!”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가족들을 찾아야 해요!”

대원들의 감사의 말에 주령이라는 이름의 각성자가 힘차게 대꾸했다.

스킬 반중력.

그녀의 스킬은 자신을 중심으로 일정 공간의 중력을 약화시킨다. 설령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사뿐하게 착지할 수 있을 만큼.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같이 밑으로 뛰어내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번 작전은 성공입니다!”

힘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올려 반중력이 적용되는 영역을 최대한 확장시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안전하게 착지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러다 공중에서 괴물들에게 공격을 당하면 큰일이었다.

그 적절한 타이밍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A조와 B조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발걸음이 가볍다 해도 빠른 속도로 두 다리를 앞뒤로 휘젓는 일은 원래 힘들다.

아무리 성냥개비처럼 가벼운 아령이라도 계속 팔을 굽히다 보면 근력에 부하가 걸리는 법이었으니까.

“헉헉. 이거 생각보다…….”

“너무 힘들…… 헉헉.”

어느새 그들의 등반 속도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져 있었다.

분명 중력이 가벼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정신이 혼미했다.

“끼히히!”

돌 원숭이들이 저럴 줄 알았다며 뒤에서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신나게 비웃고 있었다.

“물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나.”

왕웨이가 마른침을 삼키며 뒤늦은 후회를 하는 순간이었다.

“……!”

풀린 눈으로 앞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고 말았다.

“오이 맛있네요. 짭짭.”

“내 말 맞지? 역시 등산엔 오이라니까?”

와삭와삭.

저 앞에서 기다란 오이를 손에 하나씩 들고 히히덕거리는 등산객 2명이 보였다.

한 사람은 그냥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어째서인지 머리에 검은 토끼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인형 탈의 입을 벌려서 오이를 와삭와삭 잘도 씹어 먹고 있었다.

“아, 근데 여기 진짜 왜 이렇게 높음? 그냥 싹 베어 버리죠?”

“그랬다간 이 사람들 다 밑으로 추락할 거 아냐. 좀 더 올라가 보자고. 이거나 더 먹어.”

정다운이 투덜대는 흑토끼의 입에 새로운 오이를 물려 줬다.

오이를 몇 개나 먹었는데도 어디서 계속 오이가 튀어나왔다.

그러다 문득 정다운의 시선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왕웨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흠칫.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 버린 왕웨이.

그를 향해 정다운이 선뜻 오이를 내밀었다.

“아저씨도 오이 하나 드실래요?”

“대체 어떻게…….”

왕웨이가 놀란 건 고작 오이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의 눈은 볼 수 있었다.

정다운과 토끼의 몸에 코팅된 수호의 보호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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