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63)화 (363/393)

<던전리셋 외전 18화>

*   *   *

스킬 돌 깨기.

돌보다 단단한 장비로 돌을 쉽게 깨게 해 주는 정다운의 마스터 스킬.

그동안 이 스킬로 주구장창 노가다를 하며 살아온 그는 수많은 돌 깨기 노하우를 터득한 상태였다.

돌 깨는 방향을 조절하는 것? 

그거야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는 다양한 돌 깨기 방법을 터득했지만, 그보다 집중한 것은 바로 ‘돌보다 단단한 장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장비는 언제나 만들기 나름이었고, 취향과 상황에 맞춰서 여러 방식으로 개조가 가능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가죽 부츠 +2]

- 내구도 : 60/100(%)

- 옵션 1 : 마찰력 (1레벨)

- 옵션 2 : 충격 흡수 (1레벨)

정다운이 평소에 신고 다니는 신발에는 착용감을 위한 옵션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보다 방어력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신발 위에 얇은 철판을 덧대고 옵션까지 걸어 두었다.

[철판 보호대 +2]

- 내구도 : 88/100(%)

- 옵션 1 : 단단함 (1레벨)

- 옵션 2 : 가벼움 (1레벨)

그렇다.

그가 신고 다니는 신발은 아주 단단했다.

발로 차서 돌을 깰 수 있을 정도로.

“돌 깨기.”

콰쾅!

“끼룩-!”

정다운의 우악스런 앞차기에 돌 원숭이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나 버렸다.

땅굴을 파다가 섞여 나오는 암석층을 뚫고 나가던 그의 앞차기 한 방에 사람보다 2배나 큰 바위 괴물이 비명횡사한 것이다.

“끼히약!”

분노한 돌 원숭이들이 정다운을 일제히 에워싸고 주먹을 내리쳤다.

흡사 그 모습이 땅굴을 파던 중에 갑자기 천장에서 큼직한 돌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럴 경우를 대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아이템.

안전모가 그의 머리 위에 뿅 하고 착용되었다.

[튼튼 모자 +2]

- 내구도 : 97/100(%)

- 옵션 1 : 단단함 (1레벨)

- 옵션 2 : 충격 흡수 (1레벨)

“돌 깨기.”

퍼석!

“……끽?”

충격은 없었다.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내리친 돌 원숭이들의 주먹이 안전모에 닿자마자 오히려 두부처럼 으깨졌다.

역시 안전모는 최고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정다운의 단단한 장비는 그의 손가락에도 블링블링하게 끼워져 있었다.

[튼튼 금반지 +1]

- 내구도 : 71/100 (%)

- 옵션 1 : 단단함 (1레벨)

원래는 전기를 충전할 때 쓰기 위한 용도였지만, 평소에는 돌이 너무 가까워서 곡괭이를 휘두르기 애매할 때 쓰였다.

이렇게. 

툭.

정다운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돌 원숭이의 가슴팍을 금반지로 가볍게 노크하고 지나갔다.

돌 깨기.

콰직, 콰르르!

“……!?”

그의 예의 바른 노크에 거대한 괴물들이 조신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쯤 되자 처음에 정다운을 우습게 보고 덤벼들었던 돌 원숭이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끼라락!”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한낱 노리개에 불과했다!

때리면 맞고, 밟으면 밟히는 것이 인간! 

공포에 짓눌려 오줌을 지리고, 꽥꽥 비명만 지르는 것들이 바로 인간이라는 장난감이었단 말이다!

인간들이 엉엉 울며 도망이라도 가면 얼른 쫓아가서 압도적인 힘으로 굴복시키는 놀이는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던가!

그런데 이제는 하나도 재미없었다.

한순간에 놀이의 술래가 바뀐 것이다.

콰직! 쾅!

“끼히익!? 끼룩끼룩!”

공포를 느낀 돌 원숭이들은 등을 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정다운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찌나 급한지 바닥에 자빠지거나 구르기도 했고, 그러면 꼴사나운 비명을 꽥꽥 지르며 기어서라도 도망쳤다.

그리고 정다운은 그 뒤를 악귀처럼 바짝 쫓아 그들의 등짝을 발로 차고, 노크를 하고, 곡괭이로 내리쳤다.

그는 연약한 양떼 무리에 뛰어든 사자처럼 돌 원숭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 아니, 고작 그런 자상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파괴였으며, 동시에 예술적인 조각이었다.

“옆구리 살 좀 빼 줄까?”

콰직!

“끼룩?”

말하는 순간 돌 원숭이의 허리가 잘록해졌다.

잘록하다 못해 또각 부러졌다.

“너는 아까 이 다리로 사람을 차더라?”

콰직!

갑자기 다리 한 짝이 없어졌다.

“미안. 생각해 보니 반대쪽 다리였네.”

콰쾅!

잠깐 휘청거리는 새에 원 플러스 원으로 다리 한쪽도 마저 없어졌다.

“너는 아까 사람 때려 놓고 좋다고 쪼개더라?”

“우낍!?”

콰쾅!

사악하게 낄낄댔던 주둥이가 통째로 사라졌다.

그 바람에 머리통까지 사라졌다.

“우끼이!”

[앗! 저 겁쟁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데요?]

토끼는 마을 위를 날아다니며 도망치는 사냥감들의 위치를 일일이 정다운에게 일러바쳤다.

마을에 있는 돌 원숭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다운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모두 나와!”

미야옹!

그 순간 그의 그림자 속에서 일제히 튀어나오는 그림벨 군단!

“모두 곡괭이 꺼내! 한 마리도 놓치지 마!”

니야앙!

그림벨들이 제각각 소지품에서 곡괭이를 꺼내 들고 돌 원숭이들을 집요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먀옹!

콰직! 쾅! 콰쾅!

갑자기 정다운이 18배로 늘어나자, 마을 곳곳에서 돌 원숭이들이 비명횡사하는 속도도 18배가 되었다.

물론 그림벨의 방어력은 여전히 최악.

행여나 괴물들의 손에 살짝이라도 스쳤다간 바로 풍선처럼 펑펑 터져 버렸다.

하지만 닿자마자 파괴되는 건 돌 원숭이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림벨은 다시 일으켜 세우면 그만이었다.

마을의 상황은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다.

*   *   *

잠시 후.

정다운은 수많은 돌무덤 한가운데 곡괭이를 꽂고 오연히 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마을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그의 앞으로 점점 모여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크흐흑.”

북받친 감정을 쏟아 내며 뜨겁게 오열하는 마을 사람들.

토끼가 혀를 차며 그들을 달래 주었다.

[어허, 뚝! 그만 울고 누구 똘똘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서 설명 좀 해 보셈.]

“크흐흑…….”

사실 달래는 척만 하고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왜 이 돌 원숭이들이 님들을 안 죽이고 패기만 해요? 어지간하면 몇 대 때리다가도 죽여야 정상적인 괴물인데요.]

“그, 그것이…… 크흐흑.”

[에잉, 뚝! 뚝!]

돌 원숭이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패는 동네다 보니 토끼가 말을 한다 해도 놀라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다들 지쳐서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옷에 묻은 돌먼지를 툭툭 털고 있던 정다운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음. 일단 치료부터 해 줘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겠는데.”

[치료요?]

“전부 둥글게 앉으라 해.”

정다운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반강제로 둥글게 둘러앉혔다.

갑자기 수건돌리기 게임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한가운데에 정다운이 세계수 화분을 내려놓으며 마을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자, 힘드시겠지만 이 화분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세요. 눈 떼지 말고요.”

“……?”

영문을 알 수 없는 요구였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지만, 자신들을 구해 준 은인이 하는 말이니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순순히 세계수 화분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자, 그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멍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

‘저 새싹을 보기만 했는데 힘이 돌아오고 있어!’

아기 세계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존의 가호.

아직 1레벨이라 회복 속도가 느린 것이 아쉬웠지만, 그들은 착실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젊은 사내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아까 토끼가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   *   *

어느 날 열린 이계의 게이트.

그 안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나무뿌리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이 땅에 재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참혹한 재난이었다.

모든 나무와 농작물이 양분을 착취당해 빠른 속도로 시들어 갔고.

땅은 척박해졌으며, 물은 바짝 말라 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인 가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정없이 빨아들인 양분 덕분에 이계의 나무는 결국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내고 말았다.

얇고 가늘었던 뿌리들이 무한히 굵어지고 증식했으며, 그 뿌리들이 서로 얽히고 엮여서 마침내 ‘산처럼’ 커져 버렸다.

그렇다. 산이었다.

세계수가 지금 같은 모래시계 형태로 지붕을 만들어 낸 것은 겨우 얼마 전의 일.

그 전까지만 해도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으니, 진정으로 그 이계의 나무를 산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즈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나무의 이름을 ‘화과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화과산(花果山)은 이곳에서 몇 십 킬로 떨어진 강소성 연운항에 있는 산입니다만.”

젊은 사내의 설명은 이러했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생각해 보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실제로 위치한 화과산.

그 산에는 전설이 하나 있었다.

아니, 사실 전설까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록’은 중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천 년이 넘도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동승신주 바다 동쪽 오래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엔 화과산(花果山)이라는 일 년 사계절 꽃이 피고 일 년 내내 과일이 가득한 선인의 산이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바위에 영기(靈氣)가 깃들더니 돌 원숭이(石猿)가 태어났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서 정다운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화과산. 돌 원숭이.

만화로도 게임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손오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 그래서 화과산이라 부르게 된 거구나.”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보이는 이계의 세계수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기괴하긴 해도 엄청난 장관이었다.

모든 것이 메마르고 척박해진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푸르름으로 가득한 거대한 나무.

이 땅의 모든 양분을 빨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 풍성한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신비로운 산.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과산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종말의 서에겐 그 ‘기록’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흥미롭구나. 사계절 꽃이 피고 일 년 내내 과일이 가득한 선인의 산이라니. 세계수가 아주 좋아할 만한 기록이로군.ㅇ_ㅇ]

“세계수가?”

[좋아할 기록이라고요?]

순간 정다운과 토끼의 시선이 종말의 서에게로 집중되었다.

요즘 들어 종말의 서는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생명의 서에게 꼴사납게 잡아먹힌 상황에서, 자신의 지식과 현명함을 뽐내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보람이었다.

[저렇게 덩치만 크고 격 떨어지는 세계수라면, 자신의 기록 또한 비루할 것이다. 기록이 부족하면 거기서 파생되는 권능이나 하수인들의 역량도 형편없지.]

종말의 서가 하늘 위를 가득 날고 있는 괴물 말벌들을 내내 비웃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숫자만 많고 격이 떨어진다.

크기만 클 뿐 격이 떨어진다.

“하여튼 그놈의 격이 뭔지.”

혀를 차는 정다운에게 종말의 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그런데 그 형편없는 놈이 다른 세계에 와서 갑자기 졸부가 된 것이다. 그럼 여기서 그놈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겠나.ㅇ_ㅇ]

[우움…… 혹시 신분 세탁임?]

토끼가 정답을 맞혔다.

[크흐흐. 바로 그거다. 누군가의 그럴싸한 기록을 베끼고 흉내 내는 것. 이미 우리도 하고 있지 않나.]

[아하? 내 하수인들이랑 같은 원리구나!] 

놀라운 사실에 토끼가 탄성을 터뜨렸다.

이미 뿔 도마뱀과 코모도 도마뱀의 기록을 베껴서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던 토끼는 그 원리가 아주 익숙했다.

둘의 대화에 정다운의 시선이 문득 자신이 박살 낸 돌 무덤들에게로 향했다.

“그럼 설마 이 돌 원숭이들도 내가 아는 진짜 그거야?”

[아무래도 저 하찮은 세계수는 자신의 하수인보다도 이 땅에 새겨진 기록들이 더 마음에 든 것 같다. 기왕이면 이 지역에서 유명한 기록일수록 더 좋겠지.]

종말의 힘은 어느 세계나 비슷한 논리로 흘러간다.

화과산.

그곳에서 태어난 돌 원숭이들.

[아무래도 이계의 세계수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지구의 기록들을 제멋대로 베끼면서 즐기고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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