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외전 16화>
정다운의 앞으로의 계획은 간단했다.
1) 문어 열차를 타고 프랑스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2) 어머니의 마지막 연락이 있었던 프랑스 파리부터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이동한다.
이게 끝.
이 얼마나 심플하고 쉬운 계획이란 말인가.
하지만 막상 출발해 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저 과정을 직접 해 보니 상상 이상으로 너무 고되고 힘들었던 것이다.
“으아아!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
결국 정다운의 입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출발할 때만 해도 어머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의욕이 충만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을 정도로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니,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멘탈이 나가 버렸어요?]
“그럼 네가 운전하든가! 진짜 빡세다고 이거!”
애초에 근본적인 문제는 문어 열차를 운전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순서는 이러했다.
1) 정다운이 열차 앞에서 공중 철도를 ‘일일이’ 설치한다. (공중 계단 스킬 사용)
2) 철도 위를 문어 열차가 타고 지나간다. (문어 열차 밑에 광산 수레의 바퀴가 달려 있음)
3) 문어 열차 뒤에서 그림벨이 뒤로 지나간 공중철도를 소지품으로 ‘일일이’ 수거해서 재활용한다.
4)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
그렇다.
문어 열차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수동 운전이었던 것이다.
멍하니 앞만 응시하면서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철도를 설치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게 고된 일이었다.
“으아아! 이건 무슨 공장 알바 할 때보다도 더 괴롭잖아!”
마음 같아선 그냥 그림벨에게 철도 설치까지 다 맡기고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또 불가능했다.
맞바람을 맞으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다 보니, 앞에서 날아오는 먼지 한 톨도 그림벨에겐 치명타였다.
앞에서 그림벨이 공중 철도를 설치하다가 먼지에 맞고 펑 터져 버렸다간, 문어 열차는 그 즉시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 탓에 정다운은 눈물을 머금고 직접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날아가지 말고 땅굴을 파서 갈까? 땅굴을 파면 흙이 모이는 보람이라도 있지! 이건 진짜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이라고!”
[허허, 정말 힘드시겠구먼?]
옆에서 하릴없이 빈둥대기만 하던 토끼는 정다운의 계속되는 투정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맞장구나 쳐 줄 뿐이었다.
뚝.
마침내 정다운의 손이 멈췄다.
“안 되겠어.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
[그러든가요.]
덜컥.
미친 듯이 하늘 위를 질주하던 문어 열차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정다운은 열차 위로 몸을 일으키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뚜두두둑!
너무 오랜만에 일어났더니 찌뿌둥한 몸에서 모든 뼈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 아무래도 좀 걸어야겠어! 너무 꼼짝없이 앉아만 있었더니 미쳐 버릴 것 같아!”
[지상으로 내려가게요? 산책 고고싱?]
“아니! 그것도 귀찮아! 그러면 또 운전해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되잖아! 등산이랑 뭐가 달라!”
[왜 자꾸 혼자 화내심?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셨네. 쯧쯧.]
괜히 혼자 버럭 하는 정다운을 보며 토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다운이 결심했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산책은 하늘 위에서 할 테다!”
[음?]
“공중 계단! 공중 계단!”
파바밧!
[아니, 쉬겠다는 인간이 쉬기 위해 또 노가다를 하네? 노가다에 미친놈이신 듯.]
정다운이 주차된 문어 열차 바로 옆에 또다시 부유석을 뿌려 대기 시작하자, 토끼는 못 말린다며 혀를 찰 뿐이었다.
처처처척!
토끼가 뭐라 하든,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는 드넓은 평지로 이루어진 하늘 공원이 탄생했다.
여기서 멈출세라 정다운이 그 위로 힘차게 손을 휘저었다.
“공원이라면 역시 번듯한 산책로가 있어야겠지!”
파바밧!
하늘 공원 위로 뚝딱 산책로가 생겨났다.
어차피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은 평지였지만, 산책로 옆에는 공원 벤치가 줄지어 있었다.
[얼씨구? 이런 건 또 언제 챙겼데요?]
“학교 벤치 좀 뽑아 왔지! 그리고 산책로엔 역시 가로수가 있어야지.”
처처척!
장작으로 쓰려고 뽑아 뒀던 나무들이 벤치 뒤를 따라 줄지어 심겨졌다.
“그리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니까 가로등!”
처처척!
나무들 사이사이에는 또 주먹만 한 태양석들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완벽하다.
“크으! 내가 만들었지만 멋지네! 호연지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정다운은 정말 공원으로 산책 나온 사람처럼 크게 기지개를 펴며 숨을 들이켰다.
하늘 공원은 실로 장관이었다.
뭉게뭉게 구름 위에 떠 있는 하늘섬.
그 너머로 아름다운 노을빛이 저 멀리에서 아스라이 빛을 뽐내고 있었다.
거기에 예쁘게 세팅된 태양석 가로등과 가로수들이 함께 어우러지자, 제법 운치 있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자, 다들 나와! 쉴 때는 다 같이 쉬자!”
[에헤라! 친구들아 모여라!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철커덕!
“뽀뀨우!”
[오오, 주인님! 이곳은 또 어디입니까?]
이윽고 마법 창고의 문까지 개방되고, 그 안에서 뽀뀨와 바하무트가 나왔다.
“산책은 역시 같이해야 제맛이지. 내 옆으로 서!”
[……?]
“뀨?”
결국 바하무트와 뽀뀨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와 정다운과 나란히 산책을 해야 했다.
“휴우우, 이제야 좀 피곤이 풀리네.”
정다운은 조깅에 미친 사람처럼 산책로를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이 된 얼굴이었다.
그는 벤치에 늘어지게 앉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점점 어두워져 가는 하늘의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이제 어디까지 왔을까?”
지도도 없이 방향만 잡고 이동했더니 이곳이 어디쯤인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의외로 얼마 못 왔으려나? 비행기였으면 지금쯤 벌써 도착했을 텐데.”
문어 열차가 아무리 빨라 봐야 바퀴로 굴러가는 거라서 비행기보단 훨씬 속도가 느렸다.
산책로를 따라 정다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토끼가 선심 쓰듯 그에게 말했다.
[정 궁금하면 내가 밑으로 내려가서 어딘지 알아보고 올까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될 듯요?]
“아, 그래 주면 고맙고.”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토끼가 훌쩍 날아올라 하늘 공원 밑으로 사라졌다.
높이가 좀 있다 보니 그 밑은 바로 하얀 구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름을 뚫고 밑으로 내려간 토끼는 금방 다시 올라와 엄청나게 흥분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불렀다.
[우와! 이 밑에 온통 물밖에 없어요! 끝도 없는 호수임!]
“끝도 없으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겠지. 이제 겨우 한국을 벗어나서 서해를 지나고 있다는 말이잖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문어 열차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느렸다.
[바다? 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바다인가! 또 보고 와야지! 히히!]
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본 토끼는 잔뜩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못 참고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위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정다운이 저녁밥을 다 차리고 토끼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놀 거면 밥 먹고 놀든가 해.”
[이예! 밥이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게요?]
“응. 어차피 어두워져서 운전이 힘들어. 괜히 방향 잘못 잡았다간 도착지가 완전히 틀어질 수도 있거든.”
차려진 건 밥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정다운은 하늘 공원 위에 집을 지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흙으로 된 집이 아니라, 창문까지 달린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났어요?]
“한국대 운동장 비품 창고야. 안에 온돌도 깔아 놨으니까 오늘 밤은 이 안에서 자려고. 하늘 위라서 바람이 너무 춥잖아.”
[와, 도둑질 봐. 학교에서 엄청 훔쳐 오셨네.]
“안 훔쳤어. 거기 교수님들한테 물어보니까 흔쾌히 주시던데?”
[교수들이요? 누구?]
“음, 이름까진 모르겠고. 아버지가 성격 별로라 했던 높으신 분들인데, 이상하게 잘해 주시더라고?”
[아하. 딸랑이들?]
“딸랑이들?”
[있어요, 그런 거.]
입을 가리고 사악하게 낄낄대는 토끼를 보며 정다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식사는 컨테이너 안에서 했다.
밥을 안 먹는 바하무트는 컨테이너 밖에 멀뚱히 서 있었고, 나머지 토끼와 뽀뀨는 정다운과 오순도순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문득 토끼가 물었다.
[그런데 님, 뭔가 중요한 거 잊은 거 없어요?]
“중요한 거라니?”
[여기에 우리 세계수 심으러 온 거 아니었음?]
“그렇긴 하지. 근데 세계수를 아무 데나 심고 방치하면 오히려 위험하다며?”
<옳으신 말씀. 어린 세계수가 방치되어 있으면 이계의 세계수들이 잡아먹으려 들 겁니다. 세계수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곁에서 지켜 줘야 할 겁니다.>
조용하던 알파가 넙죽 말을 받았다.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일단은 먼저 어머니부터 찾고 나서 적당한 장소에 씨앗을 심을까 해.”
[하긴 급할 건 없죠. 우리가 지구에 도착한 지도 이제 고작 이틀 지났을 뿐이니까요. 다만 지구의 종말이 생각보다 너무 심해서 걱정임. 더 늦으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건 바로 에르테아의 세계처럼 완벽히 멸망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렇게 할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정다운이 갑자기 소지품을 열어 세계수의 씨앗을 꺼냈다.
[뭐하게요?]
“일단은 싹이라도 틔우자고.”
[어디에 심게요? 설마 이 하늘에요?]
“아니, 화분에.”
[엥? 그건 또 어디서 났음?]
정다운의 손에는 어느덧 손바닥만 한 작은 갈색 화분이 들려 있었다.
“컨테이너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더라고.”
정다운은 이 작은 화분을 정화 스킬까지 걸어 가며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그 안에 양질의 흙을 채우고, 세계수의 씨앗을 심은 뒤 손가락 끝으로 토닥여 주었다.
“짠. 이러면 들고 다니면서 키울 수 있잖아?”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어차피 스케일만 다르지 세계수가 원래 화분에서 큰다며?”
[말은 맞긴 한데…….]
“아, 잘 자라라고 좋은 말도 해 줘야겠다. 원래 화분 키울 때는 이러는 거라더라.”
정다운은 세계수의 씨앗이 심어진 귀여운 화분을 한 손으로 꼬옥 쥐고는 얼굴을 바싹 가까이 대곤 다정하게 속삭였다.
“너무 무럭무럭 자라지 말고 적당히 커라? 너무 크면 베어 버릴 거니까.”
오싹.
정다운의 다정한 말에 세계수 화분이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기분 탓이리라.
토끼가 어이없어하며 그를 꾸짖었다.
[에잇. 나쁜 말. 아직 싹도 안 틔운 씨앗한테 그런 협박을 하면 어떡해요? 애가 놀라서 안 자라면 어쩌려고?]
“안 자라면 꺼내서 볶아 먹고 다른 씨앗 심지 뭐.”
오싹.
그 말에 세계수 화분이 또 한 번 몸을 떨었다.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아니, 이번엔 기분 탓이 아니었다.
파아앗!
“응?”
[어라?]
갑자기 정다운 손에 들려 있던 세계수 화분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억지로 쥐어짜는 듯이 어딘가 부실한 빛이었지만, 그 빛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엔 화분 위로 손톱보다도 작고 여린 새싹 하나가 뿅 하고 솟구쳤다.
번쩍!
[업적 달성!]
세계수의 새싹이 돋아났어요!
예쁘게 잘 키워 주세요!
- 보상 : 생존의 가호 (1레벨)
“업적이라고?”
오랜만에 나타난 업적 메시지에 정다운과 토끼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던전이 아닌데도 업적 메시지가 떴네요? 역시 세계수가 있어야 메시지가 뜨는구나.]
“그런데 말투가 좀…… 어리다?”
<실제로 어린 세계수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보다 생존의 가호라니, 흥미롭군요.>
“이게 뭔데?”
알파의 말에 정다운이 업적 보상을 다시 집중해서 보았다.
그러자 스킬창처럼 생긴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세계수의 가호>
생존의 가호 (1레벨)
-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점점 회복된다.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점점 회복된다고? 아무래도 이거.”
[생존자 전체 회복의 최하위 버전인 것 같은데요?]
“그냥 쳐다만 보고 있으면 되나?”
정다운과 토끼는 생존의 가호를 시험해 보겠다며 한참 동안을 화분 앞에 우두커니 앉아 세계수의 새싹을 쳐다보았다.
“뀨?”
나중엔 뽀뀨도 동참했다.
다만 중간에 지루했는지 뽀뀨가 갑자기 화분의 흙을 후벼 파려는 걸 간신히 뜯어말렸다.
얼마 후, 정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가 있긴 하네. 하루 종일 찌뿌둥하던 몸이 조금 편해졌어.”
[눈 충혈된 것도 좀 사라졌는데요? 그런데 좀…….]
“응. 그런데 좀…… 효과가 약하다?”
[진짜 야금야금 회복되는 듯.]
귀엽다 못해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세계수가 태어나고 말았다.
정다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혹시 얘 불량인가? 그냥 뽑아 버리고 새로 키울까?”
오싹.
정다운의 말에 또 한 번 몸을 떠는 세계수 화분이었다.
세계수 정원사 정다운.
그는 세계수에게 있어 천적 그 이상의 존재, 상위 포식자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