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53)화 (353/393)

<던전리셋 외전 8화>

*   *   *

[오! 딱 봐도 저기네! 여봐라! 우리가 왔다!]

한국대학교가 가까워지자 토끼가 들떠서 환호성을 질렀다.

더 가까워지자, 한국대학교가 처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괴물들의 총공격과 그에 맞서는 각성자들.

그런데 괴물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급기야는 비각성자들까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호오, 괴물들이 우글우글한데요? 어찌어찌 막아 내고는 있는 데 사상자는 좀 나오겠어요. 저 사람들 중에 님네 아빠도 있어요?]

“여기선 잘 안 보여. 일단 도와주면서 찾아보자.”

수많은 사람들과 괴물들과 한데 뒤섞여 있어서 하늘 위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 게 힘들었다.

처처처척!

정다운은 문어 열차의 진로를 급격히 아래로 꺾었다.

그러자 새롭게 설치된 공중 철도를 따라 문어 열차가 롤러코스터처럼 급강하했다.

처처처처척!

“부오오오!”

“괴, 괴물이다! 하늘에서 괴물이 내려온다!”

갑작스런 문어 골렘의 출현에 전투 중이던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워, 원거리 스킬 가진 사람 없습니까!?”

가장 앞에서 싸우던 각성자가 뒤를 돌아보며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다들 경황없이 전투 중이라 누구 한 명 그의 말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항상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싸워 왔던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상황은 완전히 계획 밖이었다.

게다가 이미 사방이 적인 상황인데 머리 위까지 신경 쓰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자, 이 틈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정다운은 능숙하게 열차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문어 열차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착륙했다.

착륙? 아니, 그런 얌전한 표현은 맞지 않았다.

이건 그냥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부오오오!”

쿠와아앙!

“캬하악……!”

길고 두꺼운 채찍 8개가 인정사정없이 괴물들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으라차차!”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정다운은 쉴 새 없이 철도를 설치해 문어 열차의 이동 경로를 아예 8자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문어 열차가 무한궤도를 따라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괴물들 사이를 질주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르르쾅쾅!

퍼버버벅! 콰쾅 쾅!!

“캬학!?”

“샤하아……!”

열차에 치인 괴물들이 단말마를 지르며 사방팔방 튕겨 나갔다.

그 미친 회전력에 행여나 휘말릴까 봐 전투 중이던 사람들은 다급히 뒤로 빠지며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야! 왜 자기들끼리 공격해? 저거 괴물이 아닌가?”

그때 누군가 안에 타고 있던 정다운을 발견했다.

“어? 저 위에 사람이 타고 있다!”

“토끼도 타고 있어요!”

“토, 토끼는 왜?”

그들은 눈을 의심했다.

사람은 그렇다 치고, 웬 턱시도를 입은 토끼가 열차 안에서 꽥꽥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 나 어지러움! 어지럽다고요!]

“그럼 내려, 인마!”

[아항? 그러면 되는군.]

폴짝.

그 말에 열차 밖으로 사뿐히 뛰어내리는 토끼였다.

사실 비명 같은 건 다 엄살이었다.

[에헴, 흠흠.]

토끼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잠시 정리하고는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 정수호라는 인간 있어요?]

“아닛! 토끼가 말을 한다!?”

[아놔, 그런 반응은 이제 식상하다고요. 묻는 말에나 대답하셈.]

토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상황이다 보니, 토끼가 뭔 말을 하든 제대로 알아먹는 인간이 하나도 없었다.

토끼는 한숨을 폭 내쉬며 그들을 향해 손을 털며 말했다.

[에효, 일단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요. 괜히 저기에 휘말렸다간 무사하지 못할 거임.]

하지만 토끼의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괴물들의 2차 공격이 본격적으로 한국대학교를 덮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캬하악!

“젠장! 2차 공격이다!”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다 나오라 그래!”

그들의 외침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각성자들이 개조된 야구 방망이를 들고 학교 밖으로 우르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호할 스킬이나 체력이 없다 보니, 가장 위급한 순간까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입니다! 우리도 같이 싸웁시다!”

“비각성자들은 저 문어에게 튕겨 나간 괴물들부터 각개격파하세요!”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비각성자들은 기세등등하게 몰려다니며 괴물들을 전기방망이로 퍽퍽 후려치기 시작했다.

고작 이 정도 공격으로 괴물들에게 치명타를 줄 수는 없었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퍽. 꽥! 파직! 캭!

가뜩이나 문어 열차에 치여서 충격이 컸던 괴물들은 감전되는 순간 그대로 뒤로 고꾸라지며 기절해 버렸다.

“효과가 있다!”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자 비각성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전기 철조망을 통해 도마뱀들이 감전되는 것을 꺼려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때려 보니까 그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다.

“역시 정 선생님 말씀대로야!”

“도마뱀들 피부에 전기가 잘 통할 거라더니!”

[……정 선생님?]

생각보다 선전하는 비각성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토끼가 한쪽 눈을 씰룩였다.

그러곤 그 자리에서 스르륵 모습이 사라졌다.

*   *   *

부오오오!

우르르쾅쾅! 캬학! 퍽! 쾅!!

한편 철도를 무한궤도로 완성시키자 정다운은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제부턴 빙글빙글 따라 돌면서 특별한 변화가 필요할 때만 살짝 살짝 경로를 수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골렘들을 다 꺼낼 필요도 없겠네.”

오히려 꺼내도 문제였다.

괴물들과 사람들과 한데 뒤섞여 있어서 가뜩이나 머리 나쁜 골렘들이 많아지면 오히려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샤하아!

“어어, 거기 조심해요!”

도마뱀에게 팔을 물어뜯기기 직전인 사람이 보이자, 정다운이 손을 뻗어 ‘아이템 지급’ 능력을 펼쳤다.

쩍 벌어진 도마뱀의 입 속으로.

텁!

“그억?”

사람 팔 대신, 입에 한가득 동그란 흙뭉치가 물려진 괴물 도마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놈에게 물릴 뻔한 사람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도마뱀과 서로 쳐다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다운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설마 했는데 아이템 지급이 사람 손이 아니라도 적용되네? 이제 좀 요령을 알겠다.”

사람 입 속은 크기도 작고 각도도 어렵지만, 괴물의 입은 워낙 커서 아이템 지급이 충분히 가능했다.

원리를 알았으니, 그는 본격적으로 문어 열차를 타고 다니며 활기차게 양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좋았어! 어디 내 앞에서 입만 한번 벌려 봐! 거기 둘 당첨!”

헙? 학!?

본격적으로 또 다른 희생양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괴물 도마뱀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입만 벌리면, 득달같이 흙뭉치가 나타나 입속을 가득 채웠다.

순간 이동까지는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떨궈지는 방식이라 피하기가 당최 쉽지 않았다.

“으하하! 이거 진짜 재밌네!”

전장의 지휘자 정다운!

“캬압?”

“아, 이건 실수. 그건 너 먹어.”

물론 가끔은 실수로 흙이 아니라 큼직하게 썰어 둔 고깃덩이를 도마뱀 입에 물려주기도 했다.

그럼 그 도마뱀은 이게 웬 횡재냐 싶어서 고깃덩이를 물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조기 퇴근이었지만 외뿔멧돼지의 고기는 극상품의 고기였으니 오늘 일당으론 충분했으리라.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아버지가 안 보이시네.’

괴물들과 상대하면서도 눈으로는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있던 정다운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학교를 절대 떠날 리 없어.’

자신이 아는 아버지는 인생이 늘 한결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어차피 집에 와도 논문을 읽을 거라며, 최대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곤 했다.

오히려 도서관이 딸린 학교가 논문을 구하기 편하다면서.

‘그러니까 분명 게이트가 터진 날에도 학교에 끝까지 남아 계셨을 거야. 그건 확실해.’

정다운은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 헤맸다.

*   *   *

그 시각, 학교 안에서 정수호도 정다운이 탄 문어 열차를 멀리서 지켜보며 눈에 이채를 띠고 있었다.

“흠, 저건 우리 편인가. 정체는 모르겠지만 괴물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군.”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멀어서 누군지는 잘 안 보이지만,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정수호와 임 조교는 다른 비각성자들과 함께 나가지 않고, 학교 안에 남아서 여분의 무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야구 방망이에 태양광 배터리를 단 것까진 좋았지만,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물건이다 보니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 점이 못내 아쉬웠던 정수호는 문득 밖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는 문어 열차로 시선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전기 충격기를 저런 거에 달았으면 더 나았을 텐데. 몸뚱이에서 발전기를 돌리고 다리에서 전기를 뿜으면 직접적인 충격이 없으니 고장률이…….”

“그런 소리 마시고 이거나 빨리 도와주세요. 전기 방망이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놔야 안심이 된다고요.”

“임 조교, 나 알잖아? 나는 손재주가 없어서 이런 거 못해.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

항복이라도 하듯이 양손을 들어 보이는 정수호의 뻔뻔한 모습에 임 조교는 ‘어휴, 말이나 못하시면…….’이라며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말대로였다.

이 무기를 개발한 사람이 정수호 본인이었기에, 그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도 충분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제작팀 사람들 중 누구도 이 물건의 원리를 이해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호오, 이런 식으로 저 아이템을 만드는 거구나. 위력은 형편없지만 신기하긴 하네요.]

갑자기 그들 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괴, 괴물!”

갑작스런 토끼의 등장에 무기를 제작 중이던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제 뒤에 계세요!”

임 조교는 다급히 정수호를 자신의 뒤로 물리고, 자신이 만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 두 개를 양손에 집어 들고 호기롭게 토끼 앞을 막아섰다.

“여기는 제가 상대할 테니까 모두 도망치세요!”

임 조교의 얼굴에 비장함이 떠올랐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젠장, 하필이면 완성된 무기가 저 뒤에 모여 있어. 시선을 끌다가 뒤로 돌아가야 제대로 된 무기로 싸울 수 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토끼와 대치하는 임 조교.

그런 그의 모습을 확인한 토끼가 고개를 잠시 갸웃하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어라? 제법 용감하다 했더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네요?]

“뭐? 무슨 말을…….”

[아항, 기억을 잃었구나. 보아하니 아직 각성도 제대로 못한 것 같고.]

“……?”

토끼의 영문 모를 소리에 임 조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정수호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화가 통하는 걸 보니 괴물은 아닌가 보군. 새로운 타입의 괴물이 아니라면 자기소개부터 해 주면 어떨까 하는데?”

“선생님, 제발요! 쉿! 쉿!”

임 조교님이 화들짝 놀라며 눈치코치 없는 정수호의 행동을 뜯어말렸다.

토끼가 재밌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흐음? 용감한 인간이 또 있었네요. 자기소개를 원하신다면, 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내 이름은 토끼! 매니저임!]

“아니, 그건 누가 봐도…….”

[아놔, 이래서 이름 좀 제대로 지어 주라니까! 왜 하필 토끼 이름이 토끼야!]

토끼라는 이름의 토끼가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 준 인간을 떠올리며 버럭 짜증을 냈다.

[에잇, 아무튼! 그러는 댁은 누구신데 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심!?]

“나야 이 학교에서 일하는 평범한 교직원이지.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고.”

[교직원이 뭔데요?]

“교수들 뒤치다꺼리해 주면서 월급 받는 사람이다. 가끔 연구도 돕고 논문 자료도 찾고. 뭐, 부서에 따라 일은 다양하지만 아무튼 그래.”

[끙, 어려운 말 늘어놓지 말고 그냥 이름이나 말하셈. 혹시 이중에 정수호라는 양반 있어요?]

“내 이름인데?”

[엥?]

“그거 나라고.”

그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토끼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지, 진짜 당신이 정수호임? 아니, 그러고 보니 분위기가 좀 닮은 것 같기도…….]

호로록.

[응?]

“아, 미안.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커피 좀 탔어.”

[……!]

어느샌가 정수호의 손에 들려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

그걸 본 순간 토끼는 강하게 확신했다.

[차, 찾았다! 이 뺀질함!]

그 순간 토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사방에 울려 퍼졌고, 그것은 곧 귓말이 되어 정다운의 귓속까지 전달되었다.

*   *   *

[님네 아빠 여기 있음!!]

“진짜!?”

그 즉시 정다운이 문어 골렘을 딱 멈춰 세웠다.

마침 상황도 적당히 정리된 참이었다.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도마뱀의 입속에 동그란 흙덩이가 하나씩 물려 있었다. 꼴사나웠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정도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죠? 그럼 난 가족 모임이 있어서 이만!”

부오오오!

문어 열차가 다시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한국대학교의 담장을 뛰어넘어, 토끼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쿠웅!

정다운은 토끼의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정수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아, 무려 2년여 만에 보는 아버지였다.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정다운이 그를 불렀다.

“아버지, 오랜만이에요.”

“…….”

호로록.

정수호는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셔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다운을 향해 다가와 무심한 손길로 툭,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운전이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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