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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342)화 (342/393)

<던전리셋 342화>

[짜잔! 나는 임시 도우미를 맡게 된 경력직 토끼라고 함! 내가 던전 게임이 뭔지 설명해 줄게요!]

전직 도우미인 토끼가 능숙하게 사회를 맡았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해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그리고……!]

“웃기지 마!”

[왜 말 끊…….]

“뭐? 갑자기 게임을 하라고? 장난해?”

하지만 생존자들이 그 말을 순순히 따를 리 없었다.

갑자기 이런 이상한 곳으로 납치당해 온 것도 황당한데, 무슨 게임을 하란 말인가?

반발심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더러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우라고?”

“우리가 왜?”

“그딴 거 모르겠고! 당장 우리를 집에 보내 달라고!”

생존자들의 반응에 토끼가 투덜거렸다.

[이분들 봐라? 옆에 있는 거대한 용한테는 차마 무서워서 못 따지겠고, 나는 만만하니까 이렇게 이 악물고 으르렁대는 거죠?]

생존자들은 격이 아득히 높은 에르테아에게는 감히 따지지 못했다.

[물론 님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에요. 그런데 어쩌겠음? 어차피 님들에겐 거부권이 없어요. 어디 집에 가고 싶으면 한번 가 보시던가요? 나가는 문은 이쪽임.]

토끼가 지구와 연결된 시공 게이트를 가리키며 이죽거리자, 생존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가라면 못 갈 줄 알아?”

허락도 떨어졌겠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성큼성큼!

“이런 무서운 세계에 더는 있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오류!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던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

“뭐, 뭐야? 왜 안 들어가져!?”

생존자들은 몹시 당황했다.

안 보이는 벽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지구와 연결된 게이트가 자신들의 진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뭐야! 대체 왜 안 들어가지는 건데!?”

몇 번을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우리라고 뭐 님들이 이뻐서 데리고 있겠다는 줄 아심?]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의 뒤에서 토끼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게이트는 ‘일방통행’이라고요.]

“……!”

[애초부터 님들은 세계수가 성장하기 위한 양분으로 끌려온 거니까요. 나무가 거름을 다시 뱉어 내는 거 봤음?]

토끼의 발언에 생존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님들은 일종의 제물 같은 거임. 지금 님들 수준으로는 저 게이트 절대 통과 못 해요.]

“그, 그럴 리 없어!”

토끼의 말을 믿지 못한 이들이 다시 게이트에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류!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던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그들은 절망했다.

뻔히 게이트 너머로 자신들이 왔던 도시의 풍경이 보이는데도, 도저히 그 너머로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토끼에겐 무척 익숙한 일이었다.

미래에서도 던전 게임의 참가자들이 던전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정다운이 이따금씩 게이트 스킬로 참가자들을 이동시켜 준 적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던전 안에서만 가능했었던 것이다.

[흠. 에르테아 님. 이제야 좀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들을 분위기가 된 것 같은데요?]

토끼가 에르테아를 흘낏 쳐다보자, 에르테아는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 용서부터 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제 잘못이에요.”

[에이, 왜 에르테아 님 잘못임? 나쁜 건 다 종말의 서 탓으로 돌립시다.]

[그게 왜 내 탓…….ㅇ_ㅇ]

토끼의 손에서 종말의 서가 뭐라 꿍얼거렸지만, 관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종말의 서가 세계수를 노리지만 않았어도 일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에르테아는 그야말로 나라 잃은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생존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 주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러분들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하나뿐입니다. 던전 게임을 통해 업적을 쌓아 강해지는 것.”

“……왜 강해져야 합니까?”

누군가 용기 내어 물었다.

“그건 세계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인정이요? 그게 무슨…….”

토끼가 툭 튀어나오며 대신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요! 세계수 입장에서 지금 님들의 격은 나무 자랄 때 필요한 거름 수준이라는 거임. 즉, 똥이죠!]

“…….”

더럽지만 명쾌한 예시였다.

[그러니까 님들은 이제부터 열심히 레벨 업을 해서 스스로가 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해요. 그래야 세계수도 ‘아하? 내가 오해했구나? 얘네는 똥이 아니니까 돌려보내자.’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거 아님?]

“…….”

더럽지만 정확한 설명.

토끼는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에게 현재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1) 세계수는 새로운 자원이 필요해 이들을 끌고 왔다.

2) 그런데 막상 끌고 왔더니, 자원의 격이 너무 낮아 좀 더 숙성시켜서 먹기로 했다.

3) 그것은 마치 더 맛좋은 밥을 먹기 위해 씨를 뿌리고 농사짓는 행위였다.

4) 그런데 그 씨앗이 세계수가 먹기에 부담스러워질 정도로 성장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세계수는 님들을 ‘한 그루의 나무’로 인정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추방시킬 거예요. 여긴 자기 화분이니까요. 이해됐음?]

에르테아가 토끼의 말에 긍정하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강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격을 증명하는 순간, 여러분 앞에 ‘출구’가 나타날 거예요.”

[크흐흐. 결국 네놈들이 하는 일도 나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크하하!ㅇ_ㅇ] 

종말의 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누가 시작하건 아무래도 좋았다.

던전 게임이 시작되면, 이곳에서 발생되는 모든 죽음들은 차곡차곡 종말의 서에 기록되어 그에게 힘을 줄 것이었다.

부활을 위한 힘을!

“저기요. 말씀은 잘 알아들었는데요. 그럼 혹시…….”

누군가 다시 용기 내어 에르테아에게 질문을 했다.

그가 머리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설마 저렇게까지 강해져야 하나요?”

“…….”

그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 위를 향했다.

꾸어엉!

그곳엔 거대한 은빛 물고기들을 타고 날아다니는 정다운이 있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

쿠르릉! 콰르릉!

그는 한창 던전 게임을 위한 스테이지를 꾸미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손짓만으로 산과 골짜기를 만들어 내면서.

너무 위험한 장소는 경사를 주고, 그 옆에 평탄한 길을 만들어 ‘단계별’로 던전이 이어지게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해 버린 그의 모습에 생존자들은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에르테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렇게까지는 굳이……. 저분은 오류, 아니 규격 외의 존재니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격이 아니라 규격 외.

에르테아는 정다운을 그렇게 표현했다.

세계수에게 인정받으라고 했지, 세계수가 벌벌 떨 정도로 강해질 필요까지는 없었다.

마침 그들의 시선을 느낀 정다운이 아래로 내려왔다.

“이야기들 끝났어?” 

[네. 어느 정도는요. 님은요?]

“나도 거의 다 됐어. 그보다 에르테아. 생명의 사도들이 하룬의 유적지 표면에 그림자 결계 새기는 건 어떻게 됐어?”

“네, 아저씨. 지금 막 다 됐다고 귓말을 받았어요.”

에르테아가 대답했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바뀔지 모르니,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다 해 놔야 했다.

처음에 정다운을 과거로 오게 했던 하룬의 유적지에 그림자 결계를 새겨 넣는 일은 생명의 사도들이 맡았다.

실제로 그림자 결계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조각만 하는 거라서 그들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정다운의 미래와 과거가 크게 뒤틀리지 않게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된 셈이었다.

그걸 위해서 마녀들을 섬기던 리치 바하무트도 계속 마녀의 집에 남겨 두었다.

계속 그곳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정다운을 만나 토끼의 말을 전해 주어야 하니까.

정다운이 에르테아를 쳐다봤다.

“그런데…… 진짜 괜찮겠어?”

“네. 전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나중에 아저씨가 부활시켜 주면 되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에르테아는 어딘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전 죽을 겁니다. 이들을 대신해서 세계수의 양분이 되어 주어야, 세계수가 한동안 잠잠해질 테니까요.”

“…….”

세계수가 만들어 낸 시공의 틈은 앞으로도 계속 열려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서 앞으로도 매일매일 지구에서 사람들이 잡혀 올 터였다.

하지만 에르테아가 그들을 대신해 세계수의 양분이 되어 준다면, 세계수는 시공의 틈을 계속 열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물론 세계수 입장에서는 생명의 용과 같은 격 높은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에르테아 본인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다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세계수 입장에서는 소화도 제대로 안 될 에르테아를 울며 겨자 먹기로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마침 알파의 계산이 끝났다.

<현재 에르테아 님의 격과 남은 생명 에너지라면, 세계수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시공의 틈을 열게 될 것 같습니다.>

마침 그 주기는 던전 게임에 새로운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주기와 같았다.

공교로운 일이었다.

종말의 서가 비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결국 이런 것이다. 네놈들이 아무리 애를 써 봐야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역사의 흐름은 원래대로 흘러갈 것이다!ㅇ_ㅇ]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ㅇ_ㅇ]

종말의 서가 하는 말에 에르테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   *

며칠이 흘렀다.

생존자들은 졸지에 던전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스테이지-1부터 차근차근 돌파해 나가며 업적을 쌓았다.

물론 그 과정은 무척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미래가 너무 막연하다는 현실이 그들을 괴롭혔다.

“후우,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진짜 우리 집에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집에 갈 수 있는 거지?”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

하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에르테아는 말했다.

“시공 게이트 너머를 살펴보니, 여러분들의 세계와 이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달라요. 대충 몇 십 배 정도?”

알파도 계산기를 두드려 주었다.

<어느 정도 오차는 있겠지만, 아마 이곳에서의 한 달은 지구에서 하루 정도일 겁니다. 던전에서 2년이 흘러도, 지구에선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일단 믿어 보는 수밖에.”

적어도 1, 2년 안에만 돌아가면 가족들이 평생 자신들을 걱정하며 살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안 믿으면 또 어쩔 건데?”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참가자들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 죽음의 산맥을 쳐다봤다.

그 꼭대기에 있는 생명의 신전에서 오늘 자신들을 위해 죽을 예정인 생명의 용 에르테아를 생각하며.

그리고 ‘일단은’ 같은 인간인 정다운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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