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40)화 (340/393)

<던전리셋 340화>

“헉!? 여긴 대체……!”

“뭐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한 각양각색의 사람들.

영문도 모른 채 세계수들에게 잡혀 온 지구인들은 자신들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지독한 악몽을. 

“이, 이건 분명 꿈일 거야!”

쿠르릉! 쩌적! 쩍!

정신을 차려 보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지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지옥 한가운데 자신들이 서 있었다.

반드시 꿈이어야만 했다.

크르렁! 캬오!

곧이어 지옥을 거닐던 위험한 괴물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꺄악! 사람 살려!”

“으아악!”

세계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안 돼! 저들을 구해야 돼!”

인간들을 안타깝게 여긴 에르테아는 점점 몸집이 거대해지며 황금빛 날개를 펼쳤다.

<에르테아 님!? 힘을 아끼셔야 합니다!>

“이건 전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내가 오늘 죽더라도 저들을 구해 내겠어!” 

번쩍!

알파의 만류에도 에르테아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무리였다.

지구와 연결된 게이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시공 좌표를 공유합니다.]

[던전에 게이트를 엽니다.] 

[던전에 게이트를 엽니다.] 

[던전에 게이트를…….]

세계수들은 서로 시공 좌표를 공유하고, 각자의 화분에 새로운 게이트를 뚫었다.

그리고 화분에 물을 주듯이 자신들의 던전에 지구의 인간들을 계속 불러들였다.

던전 곳곳을 오가며 혼자 동분서주하는 에르테아를 보며 알파가 다른 생명의 사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생명의 사도들이여! 에르테아 님의 첫 번째 사도 알파가 명령한다! 에르테아 님을 따라 인간들을 구하라!>

“명을 받듭니다!”

신전에 있던 생명의 사도들이 한목소리로 합창하며 부름에 응답했다.

“에르테아를 위하여!”

파앗!

“이는 위대한 성전이니!”

번쩍!

“괴물들에게서 인간들을 구하라!”

생명의 사도들이 뿔뿔이 흩어져 위기에 처한 인간들을 구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쪽의 숫자는 적었고, 던전 게이트들은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결국 에르테아와 사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수들이 불러들인 지구의 인간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죽는 순간, 외부에서 유입된 생명 에너지가 이 세계에 녹아들었다.

세계수들은 환호했다.

[새로운 자원이 세계수에 유입됩니다!]

[세계수가 성장을 재개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수들은 큰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경고! 새로운 자원의 격이 너무 낮습니다!]

[경고! 새로운 자원의 질이 세계수의 성장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한때 스테이지-1을 관리했던 토끼는 세계수들이 느끼는 실망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엇. 비료가 마음에 안 드나 본데요? 하긴, 평화에 찌든 약해 빠진 인간들이 다 그렇죠 뭐.]

세계수들은 고민에 빠졌다.

평화로운 문명 아래 살아온 지구의 인간들은 아직 새싹조차 돋아나지 않은 씨앗과 같았다.

곧바로 잡아먹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세계수들은 가까스로 찾아낸 자원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소모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새로운 자원의 격을 높일 방법을 탐색합니다!]

[탐색 중…….]

“꺄악! 오지 마!”

키야악!

때마침 괴물에게 쫓기던 한 여자가 다리가 풀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당황한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공교로운 일이 일어났다.

푹! 

우산의 뾰족한 끝이 사납게 달려들던 괴물의 아가리에 깊게 쑤셔 박혔다.

크르륵…….

괴물은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눈이 뒤집혔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가운데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어?”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번쩍!

[탐색 완료!]

본디 한 그루의 나무였던 세계수들은 결국 격이 낮은 씨앗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농사법’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 땅에 새겨진 종말의 기록의 일부를 발견했습니다!]

[초월 – 업적을 달성해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한계 초월!

이것은 바로 종말의 서가 바분 황제의 탐욕을 부추기기 위해 내려 주었던 성장의 가호.

이 가호 덕분에 바분 황제는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듭하고 시련을 이겨 낼 때마다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이뤄 낸 뛰어난 업적들을 발판 삼아 그는 한 계단, 한 계단씩 격을 성장시켰다.

그 초월의 기록을 세계수들이 흉내 내어 던전에 적용시켰다.

번쩍!

우산으로 괴물을 찔러 죽인 여자의 전신이 빛에 휩싸였다.

[최초 업적 달성!]

“최초의 찌르기!”

운도 실력!

당신의 눈먼 공격이 괴물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던전이 그대의 무운을 빕니다!

- 보상 : <제국창술> 스킬

“최초 업적 달성? 이, 이건 뭔…….”

여자는 자신의 우산 위로 일렁이는 푸른 오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움직임이 변했다.

“하앗!”

크륵!?

우산을 창처럼 휘두르며 다른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가 우연히 이뤄 낸 작은 업적을 발판으로 새로운 힘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세계수들은 기뻐 환호했다.

[자원의 격이 소폭 성장했습니다!]

[새로운 자원이 잠재력을 일깨웠습니다!]

그리고…….

번쩍!

[최초 업적 달성!]

[최초 업적 달성!]

[최초 업적 달성!]

그것을 시작으로 던전 곳곳에서 최초 업적을 달성해 스킬을 얻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토끼가 감탄사를 터뜨리며 정다운에게 소리쳤다.

[와, 대박! 님, 저거 보셨음? 여기 완전 노다지예요! 숨만 쉬어도 다 최초 업적임!]

던전이 막 만들어진 시점이라, 여기선 뭘 해도 다 최초였다.

[그러니까 님도 뭔가 해 보셈! 지금이라면 님 같은 몸치도 전투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요!]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야잇, 인간아! 이 판국에 또 땅만 파고 있냐!]

에르테아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정다운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땅을 손으로 잡아 뜯고 있었다.

“흙 뭉치기!”

슈와아악!

지진에 의해 흔들리던 거대한 땅덩어리가 그의 손에 붙잡혀 뜯겨 올라왔다.

[뭐하는 건데요!]

“감자 캔다!”

[무슨 감자, 으익? 님 설마 지금 세계수를……?]

토끼가 뜨악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쳐다봤다.

정다운은 몹시 의욕적인 표정으로 거침없이 양손을 휘둘러 눈에 띄는 모든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이제 누가 범인인지도 알았으니까, 세계수 뿌리고 뭐고 다 뽑아 버리면 되지!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슈왁! 슈와악!

[이 미친 양반아! 그게 말이 되는…… 와, 말이 되네?]

토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다운의 손길이 닿는 모든 땅이…… 지형이 제멋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쿠릉! 쿠르릉!

이제는 굳이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질 필요도 없었다.

정다운은 지진에 의해 요동치는 땅 위를 천천히 거닐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손길을 따라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들쭉날쭉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쥐자, ‘콰드득!’ 하고 그 땅덩어리가 통째로 허공에서 쥐어뜯기며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쿠르릉! 쿠르릉!

그 경악스런 광경에 토끼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와우, 상급 흙 뭉치기 성능 보소?]

토끼의 손에 들린 종말의 서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맙소사. 인간 따위가 어찌 저런 힘을…….ㅇ_ㅇ]

인재(人災).

천재지변이 일어난 땅 위에 바야흐로 인재지변(人災地變)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찾았다, 요놈.”

온 땅을 헤집어 놓은 정다운이 마침내 그 아래 숨어 있던 세계수의 뿌리를 발견하고 눈을 번뜩였다.

일단 찾기만 하면 이다음은 오히려 쉬웠다.

그가 기록을 읽어 내렸다.

“최초 업적. 세계수를 베다.”

[최초 업적 달성!]

“세계수를 베다!”

혼자의 힘으로 세계수를 벌목했습니다!

당신의 소름끼치는 업적에 던전이 벌벌 떱니다.

- 보상 : 세계수의 가호

그가 달성했던 업적이 흘러나오자 땅 속에 숨어 있던 세계수가 투명한 뿌리를 ‘벌벌 떨었다’.

‘어쩐지 이 업적만 유독 소름 끼쳐 한다 했다. 어디 너희들이 만든 룰에 따라 된통 당해 봐라.’

씨익 웃는 정다운의 손에는 어느샌가 벌목용 도끼가 하나 들려 있었다.

세계수. 벌목용 도끼.

그리고 혼자.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보상. 세계수의 가호.”

그 순간 기록이 완성되었다.

파아앗!

정다운의 도끼가 스스로 투명한 오러를 피워 내며 존재감을 점점 확장시켰다.

[히야! 이건 또 봐도 멋있네요!]

<맙소사. 저건 설마!?ㅇ_ㅇ>

종말의 서는 불현듯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생명의 용과 전투 중에 갑자기 허리가 동강 났던 세계수!

그 더럽게 운이 없었던 그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 눈치채고 만 것이다.

번쩍!

어느덧 정다운의 손에는 투명한 오러로 이루어진 터무니없이 거대한 도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오로지 세계수만 벨 수 있는 이 도끼에게 그는 ‘창세의 도끼’라 이름 붙였다.

“일단 한 그루.”

번쩍!

그는 망설임 없이 세계수의 뿌리에 창세의 도끼를 내려찍었다.

콰앙-!

단 한 번의 도끼질.

그거면 충분했다.

그가 세계수를 베었다.

세계수가 비명을 질렀다.

[경고! 세계수가 파괴됩니다!]

파창창!

일대의 땅을 움켜쥐고 있던 투명한 뿌리들이 일제히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분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화분이 파괴됩니다!]

뚝.

세계수의 비명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녀의 집을 던전으로 만들었던 세계수가 정다운의 도끼질 한 번에 죽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엄청난 지진이 시작되었다.

쩌저저적!

콰르릉!

온 땅이 갈라지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람! 세계수가 잡고 있던 땅이 무너지고 있어요!]

토끼가 기겁하며 하늘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종말의 서가 그를 비웃었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 세계수들은 필요악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종말을 막아 내고 있던 세계수를 베어 버렸으니, 이 땅은 이제 끝이다!ㅇㅍㅇ>

[님! 지금 생각은 하고 움직이는 거 맞음!?]

“당연하지. 나 몰라?”

갈래갈래 찢겨지는 땅 위에서도 정다운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 있는 표정으로 바닥에 두 손을 짚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스킬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히익! 저건 또 뭐하는 짓거리래!?]

토끼의 비명에 정다운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흙이 갈라지면 다시 뭉치면 그만이지!” 

세계수가 죽었다고?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이곳에 내가 있는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 뭉치기-!”

흙을 뭉친다면 지구조차 뭉치리라!

땅이 무너지더라도 그조차 뭉칠 수만 있다면……!

‘내 승리다!’

슈와악! 슈우욱!

쿠콰콰! 콰콰콰콰!!

정다운의 두 손이 산산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땅을 마구 쥐어뜯었다!

그 흙으로 파인 곳을 메꾸고!

다시 이어 붙였다!

아니. 

뭉쳤다!

세계수의 뿌리보다도 더욱 단단하게!

흙 뭉치기 (상급 1레벨) 

- 흙을 빨리 잘 뭉칠 수 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크고 단단하게 뭉쳐진다.

“나무뿌리도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할 리 없잖아!”

세계수를 잃고 파괴되어 가던 화분이 빠른 속도로 원래 모습을 찾아갔다.

[<흙 뭉치기> 스킬이 상급 2레벨로 발전했습니다.]

[<흙 뭉치기> 스킬이 상급 3레벨로 발전했습니다.]

“흙 뭉치기!”

쿠쿵!

지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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