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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322)화 (322/393)

<던전리셋 322화>

*   *   *

‘리턴’이란 무엇인가.

원래 이 옵션은 자벨린(Javelin) 같은 투척용 창이나 화살들을 다시 회수해서 재활용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이 옵션이 은근히 편리한 구석이 있는 게, 설령 그 아이템들을 적에게 일시적으로 빼앗기더라도 문제없이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의 소유주가 바뀌기까지는 일정 시간 이상 아이템을 들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바로 리턴되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 보니, 전투하는 중에는 즉각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점.

리턴 레벨이 높아질수록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겠지만, 그래 봤자 비효율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럴 바엔 조금 천천히 회수하더라도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다른 옵션을 강화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정다운은 바로 이 리턴 옵션을 골렘의 핵처럼 잃어버리면 아까운 아이템들 여기저기에 붙여 놓았다.

구두쇠 알파조차 처음에는 정다운의 이 취미에 대해 뭐라 잔소리하지 않았다.

어지간히 큰 물건이 아니라면 고작 1레벨 리턴 옵션에 들어가는 생명 에너지는 눈곱만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잘한 소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과소비가 되는 법.

알파도 나중엔 결국 후회했다.

정다운이 이렇게까지 많은 망령석들에 리턴 옵션을 걸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파앗! 파앗! 파앗! 파아앗!

파아아아앗!

[와, 저게 다 몇 개임?]

은신처 곳곳에서 수많은 별빛들이 반짝거린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주변에 같이 떠오르던 다른 부유섬들은 멀쩡히 잘 올라가고 있는데, 딱 그곳에 심어 놓은 망령석들만 모조리 정다운의 품으로 회수되기 시작했다.

“와, 많기도 하다.”

[이러니까 맨날 알파 님이 님한테 잔소리하는 거잖아요!]

주섬주섬!

리턴되는 망령석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주워 담기 시작하는 정다운과 토끼였다.

[앗? 그러고 보니까 알파 님은 지금 어디서 뭐함? 왜 이렇게 조용함?]

“몰라.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 세계에서는 알파가 말을 못하더라.”

[이래저래 불편한 세계네요. 아무튼 빨리 담으셈!] 

이 아까운 생명 에너지들을 하나라도 흘렸다간 나중에 알파의 잔소리가 얼마나 길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리고 그 시각.

“헉!?”

멀쩡히 잘 올라가고 있던 은신처가 갑자기 크게 출렁거리자, 바분 황제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지금까지 전혀 체감할 수 없었던 묵직한 중력의 무게가 그의 몸을 짓누른 것이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 없던 무소불위의 황제가 애절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불렀다.

“자, 잠깐! 이, 이러지 마라. 우리 대화를 하자! 대화를!”

“크, 크르렁…….”

그를 태우고 있던 범독수리 그리피오스도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협상을 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슈우우…….

망령석이 회수될수록 하늘 끝까지 영원히 올라갈 것 같던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점점 느려져 간다.

“자, 잠깐!”

“크르럭!?”

슈우우…….

그렇게 느려지고 또 느려지다가…….

“그, 그리핀이여! 여기서 나가자! 미로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일직선으로 길을 뚫어라!”

“크르렁! 캬오!”

[오, 망령석들 리턴 완료.]

두쿵! 

“……!”

결국 정점에서 멈추고 말았다.

스으읍…….

그 순간 바분 황제와 그리피오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이 되어,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범독수리가 지난 일들을 회고했다.

그리고.

3초. 

2초. 

1초.

추락.

쿠오오오오-!!

“으으으아아아아악!”

“크르러라락……!”

은신처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운석처럼.

그 안에서 바분 황제와 그리피오스가 붕 떠올라 못생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천장에 철푸덕 들러붙었다.

그리고.

끝.

쿠와아아아아앙……!

미리 파 둔 호수처럼 크고 넓은 구덩이 정중앙에 세모난 운석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흡사 핵폭발이라도 터진 것 같은 먼지구름이 솟구쳤다.

쿠와아아아!

그리고 그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조각조각 떠올라 있던 부유섬들을 뒤덮었다.

그 위에서 활활 불타고 있던 하룬의 숲을.

세계수 옆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숲의 종족들과 메모리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쿨럭쿨럭!”

“흙먼지에 불이 전부 꺼져 가고 있어! 크흡!” 

“맙소사! 정다운 아저씨는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

[응. 그건 절대 아닐 듯. 분명 뽀록임. 다들 입이나 닫아요. 먼지 들어감.]

다들 경악하는 분위기에서 토끼가 바로 초를 쳤다.

어느 때라도 모든 관심은 자신에게 집중되어야 했다.

[자! 이걸 보시라! 난 지금 인형이라 먼지 들어갈 입이 없지! 음하하!]

“…….”

아무도 토끼에겐 관심 없었다.

당연했다.

슈우와아악!

문어 열차를 탄 정다운이 앞으로 손을 뻗자, 그를 덮치는 모든 흙먼지들이 기적처럼 좌우로 쫙 갈라지고 그를 비껴 가고 있었으니까.

바로 중급 흙 뭉치기 스킬의 효과!

아무리 토끼가 방해해도 현재 이곳의 주인공은 바로 정다운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내 목적은 바분만 죽이는 거라고. 이미 메모리한테도 허락받았다니까? 친아빠지만 쓰레기니까 제발 죽여 달라던데?”

[흥. 진실을 왜곡하시네! 실제로는…… 훨씬 심한 욕 했잖아요.]

“응. 사춘기는 너무 무섭더라…….”

[…….]

태연히 수다를 떠는 둘의 모습에 솔리아는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지, 진짜 이렇게 바분 황제가 죽었다고? 그 바분 황제가?]

“아니, 아직 안 죽었나 본데? 아직 업적이 안 떴거든. 레벨 업도 없고.”

[뭐!?] 

“하지만 이럴 땐 또 방법이 있지. 다시 돌아가자.”

드르르륵!

정다운은 문어 열차의 방향을 다시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아직 자욱한 먼지조차 가라앉지 않은 하늘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러자…….

쿠르릉!

퀘르쿠스가 그의 뒤를 따라와 은신처가 추락한 곳, 바분의 무덤 위를 밟았다.

쿠웅-!

확인 사살 완료.

쿠르릉!

바분의 무덤 위에 한 그루의 나무, 아니 거대한 나무 거인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자 곧이어 정다운에게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흙 뭉치기> 스킬이 중급…….]

[<흙 뭉치기> 스킬이 중급…….]

[<정화> 스킬이 상급…….]

[<정화> 스킬이 상급…….]

[<그림자 비술> 스킬이…….]

[<그림자 비술> 스킬이…….]

[<나무 베기> 스킬이…….]

[<전망대> 스킬이…….]

……

수많은 레벨 업 소식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을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정다운의 발밑에서 그의 그림자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

[앗! 뭐임!]

당황하는 정다운과 토끼.

그 순간 정다운의 그림자가 온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파아아앗!

그 순간 그림자 세계의 온 땅과 하늘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던 세계수도. 

그 옆에 모여 있던 숲의 종족들도.

그 안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메모리도.

번쩍!

거대한 그늘에 감싸였다.

그리고 정다운에게 놀라운 소식이 도착했다.

[최초 업적 달성!]

“그림자 비술의 완성!”

그림자 비술을 연구한 이들조차 미처 이루지 못했던 그림자 비술의 원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

우뚝.

“……뭐?”

뒤에 이어진 최초 업적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정다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현듯 그의 머릿속으로 오래전 바하무트와 그림자 비술에 대해 나눴던 대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분명…… 알파가 먼저 그림자 비술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생각해 보니, 마녀들이 연구하던 금단의 마법 중에는 그림자에 관련된 비술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어떤 비술이었는데?”

대답은 바하무트에게서 나왔다.

[그림자에 ‘기억’을 심어 실체화를 시키는 비술이었나이다.]

“기억이라……. 그래서 그림자 고양이들이 계속 우리 기억 속에서 환상들을 끄집어냈구나.”

[원래 마녀님의 연구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나이다.]

“원래는 뭐였는데?”

[과거의 중요한 기억이나 행복했던 추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해 주는 용도였나이다.]

“오, 의외로 처음엔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연구였네.”

‘좋은 마음? 겨우 그런 수준이 아니었어.’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어쩐지 가끔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과거의 중요한 기억.

행복했던 추억.

그것들을 되새기는 금단의 마법, 그림자 비술.

안타깝게 모든 것을 잃고 땅속에 숨어 살던 마녀가 너무 외로워서 추억팔이를 위해 완성시킨 비술.

지금까지는 딱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

‘고작 그런 사소한 용도의 마법이 어째서 ‘금단의 마법’이라 불렸던 걸까?’

정다운은 그게 늘 궁금했다.

그림자 하인들? 물론 그 녀석들은 무척 유용하고 신기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모르는 정다운의 입장에선 참가자들의 모든 스킬들과 마법들이 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실 신기하기로는 바하무트가 제일 신기했다.

라이프 베슬만 무사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 리치라니! 

이 얼마나 신기한가!

하지만 리치를 만들어 낸 마법조차도 그냥 ‘흑마법’이었을 뿐, 그조차도 ‘금단’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태어날 때부터 마법에 특화된 마녀들은……. 

아니, 숲의 종족들은 그 그림자 비술을 금단의 비술이라 불렀을까? 왜 연구했을까?

추억팔이? 고작 그런 용도의 마법을 대체 왜?

‘설마설마했는데…….’

정다운은 이 그림자 세계로 들어오게 해 준 최초 업적의 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최초 업적 달성!]

“그림자의 추억을 되새기다!”

그림자 비술의 원래 목적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던전이 감탄합니다.

- 보상 : 바분 황제의 악몽

그림자 비술은 분명 ‘바분 황제의 악몽’을 되새겨 주었다.

억울하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비난받던 성녀의 악몽도 아니고.

친아버지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불쌍한 소녀 메모리의 악몽도 아니고.

성지 하룬이 불타고 세계수까지 빼앗길 위기였던 숲의 종족들의 악몽도 아닌…….

바로 바분의 악몽.

그리고 그 악몽을 되새기는 것이 그림자 비술의 원래 목적이라고.

정다운은 결국 깨닫고 말았다.

‘소중한 추억을 되새긴다고? 헛소리! 애초에 메모리에게 그런 추억이 있긴 해? 지금까지 본 것만 해도 메모리에겐 괴로운 기억들만 가득했는데!’

그런 괴로운 기억들을 나중에 곱씹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뻔하지 않은가!

‘그때 이랬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렇게 했으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그때 그러지만 않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왜 그땐 바보처럼 그 생각을 못 했던 거지?’

그 억울하고 괴로웠던 기억들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되는 그 근본적인 목적.

지나간 과거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시간, 그 장소에 또다시 자신을 대입시켜 그때의 기억을 수도 없이 곱씹게 되는 원천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최초 업적 달성!]

“그림자 비술의 완성!”

그림자 비술을 연구한 이들조차 미처 이루지 못했던 그림자 비술의 원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림자의 기록이 <종말의 서>가 일으킨 오류를 일부 수정합니다.

“……바로 이거였구나, 메모리. 네가 원했던 게.”

정다운에게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마녀는. 성녀는. 황녀는.

종말을 맞이한 세계에 홀로 살아남았던 그 가엾은 아이는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어떻게든 바뀌기를.

- 보상 : 당신의 모든 업적들이 <창세의 서>에…… #$&@……%…….

보상을 말하던 문자들이 제멋대로 어그러지고 배열되며, 내용이 바뀌었다.

- 보상 : 당신의 모든 업적들이 <생명의 서>와 <종말의 서>에 태초부터 영원까지 영구히 기록됩니다!

파아앗!

한 줄기 빛이 그림자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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