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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314)화 (314/393)

<던전리셋 314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성기사들은 제각각 다른 동작과 판단으로 그림자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는 수많은 패턴과 경우의 수가 존재했다.

놀랍게도 정다운은 지금 그 모든 변수들을 눈으로 일일이 좇으며 대응하고 있었다.

물론 눈 이상의 감각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개미 더듬이!’

쭈뼛 쭈뼛!

바로 전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해 주는 개미 더듬이 스킬이 정다운의 반응 속도를 인간 이상으로 빠릿빠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실수도 많았다.

중간중간 그림자 하인들이 펑펑 터져 나가는 모습들이 바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점점 요령이 붙었다.

그림자 하인들이 기억하는 손동작들이 점점 누적될수록 점점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상대가 어떤 대단한 갑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 갑옷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음새가 필요했다.

그리고 정다운은 그 작은 빈틈 사이로 돌뱀의 독니를 찔러 넣고 있었다.

그 작업은 굳이 정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갑옷 속에 집어넣고 밖에서 마구 문질러! 신발 안에도 넣고!”

먀오옹!

“으악! 몸이! 몸이 굳는다!”

“저주가 틀림없다!”

원래 미용실만 다녀와도 옷 속에 들어간 머리카락들에 의해 피부가 따끔거리지 않던가.

워낙 성기사들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일단 독니가 옷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안쪽에서 저절로 찔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그림자 함정에 휘둘리던 성기사들은 점차 이성을 찾아갔다.

이 모든 게 저주라면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태양신이시여! 우리에게 내린 불길한 저주를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번쩍!

“정화!”

화아악!

성기사들이 눈부신 빛에 휩싸이며 석화의 저주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정다운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저거 정화잖아?”

[저주를 이겨 내는 능력이야말로 성기사들의 기본적인 소양이니까. 이제 돌뱀의 독니는 무용지물이 되었어. 하지만…… 덕분에 시간은 충분히 벌었구나.]

“응. 충분하지. 드디어 우리 느림보 대장님이 도착하셨거든.”

씨익 웃는 정다운.

쿠르릉!

때마침 성기사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본 그들의 두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으아악!”

“세계수가 어느새!”

퀘르쿠스의 거대한 발이 온 시야를 가득 채우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천재지변.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광경.

한낱 인간이 감히 항거할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숲의 분노가 그들을.

“바, 밟힌……!”

쿠와아앙-!

짓밟았다.

“……!”

성기사들의 비명 소리는 엄청난 발자국 소리와 흙먼지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세상에…….”

정다운의 뒤에서 메모리와 숲의 종족들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천벌이었다.

그동안 숲의 종족들을 끊임없이 박해했던 황제의 성기사들에게…….

직접 죽음을 선고한 존재가 다름 아닌 숲의 수호신이라니…….

“이럴 수가.”

경이로웠다.

[미친……. 저걸 진짜 해냈다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솔리아의 진심 어린 감탄사에 정다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거렸다.

“훗. 별말씀을. 사실 운이 좋았어. 최대한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게 관건이었지. 만약 처음부터 뿔뿔이 흩어져서 왔다면 엄청 골치 아팠을 거야.”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진짜 위험한 존재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자, 이제 바분만 잡으면 되지?”

예전에 한 번 죽여 봤다 해서 무시하면 안 됐다.

이곳에 존재하는 바분 황제는 정다운이 아는 도우미 바분과는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정복 황제이며, 가장 위대하고 위험한 철혈의 군주였다.

그리고 지금 그 위대한 인간의 왕이 이곳에 막 당도하고 말았다.

“누가 감히…….”

터벅.

“내 허락도 없이 나의 기사들을 죽였는가.”

흠칫.

바분 황제의 모습을 확인한 정다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저 사람이 바분이라고?”

[맞아. 저자가 바분 황제야.]

더없이 호화로운 황금 갑옷을 입은 ‘노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깡마른 체구.

검버섯이 핀 피부.

백발이 성성한 초라한 노인이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채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 비루한 몸은 입고 있는 황금 갑옷의 무게조차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다.

정다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바분 맞아? 그냥 동네 할아버지 아니고?”

[……그 대단하던 황제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지.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 바분 황제는…….]

솔리아는 여전히 긴장한 목소리였다.

바분 황제는 숲을 오래 걸어서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퀘르쿠스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일이군. 문헌에는 세계수가 이동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있는 인공위성 전망대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네가 나에게 설명해 주겠나?”

“……!”

‘헉!’

그 순간 정다운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지금 미니맵을 확대해서 바분 황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니맵 안에서 바분 황제가 정확히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바분 황제가 나른한 어조로 재차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인가? 내 말이 어려웠다면 다시 묻지. 자네가 혹시 내 기사들을 저렇게 만든 자인가?”

“……!”

오싹!

그 순간 정다운은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흡사 CCTV 모니터 안에서 귀신이라도 기어 나온 기분이었다.

황금 갑옷에 숨은 초라한 노인의 메마른 눈빛이 미니맵 너머에서 정다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 내리고 있었다.

[도, 도망……! 도망쳐!]

덥석!

“꺄악!?”

솔리아가 가까스로 소리를 지르자, 그 순간 바로 정다운이 메모리를 어깨에 들쳐 메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푸드 트럭도 버려둔 채.

그 위에 타고 있던 숲의 종족들 또한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향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사전에 정해 둔 대로였다.

‘은신처로! 숨어야 해!’

그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정다운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까마득한 ‘격의 차이’를 느낀 것은.

‘마주치면 무조건 죽는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격의 차이!

던전의 도우미들만 봐도 막연한 두려움에 떨던 참가자들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쳐다본 순간에 이미 목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솔리아! 미니맵까지 뚫어 볼 수 있다는 건 미리 좀 말해 주라고!”

[나도 몰랐어! 전망대라는 스킬을 쓰는 사람 자체가 네가 처음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바분 황제는 위험하니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했잖아!]

“젠장, 그러네!”

정다운은 일단 자신의 위치가 들킬까 봐 미니맵부터 없애 버렸다.

그런데 미니맵이 꺼지기 직전에 바분 황제가 성기사들이 퀘르쿠스에게 밟혀 죽은 곳을 향해 한 손을 뻗고 있었다.

황제가 명령했다.

“일어나라, 나의 기사들아. 나는 아직 너희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기이한 울림을 타고 땅속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들썩!

드드드……!

땅속에서 황금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앞에서 바분 황제가 바싹 메마른 손가락으로 정다운이 도망친 방향을 가리켰다.

“잡아 와라. 나의 영생을 방해하려는 불온한 무리가 있다.”

“충!”

성기사들의 살벌한 함성 소리에 정다운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봤다.

“뭐야? 왜 저 성기사들이 다시무덤에서 기어 나오고 그래? 무슨 언데드도 아니고!”

[……언데드가 맞아. 바분 황제가 세계를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성기사들 덕분이거든.]

“뭐? 진짜 언데드라고? 무슨 언데드가 정화 스킬을 써?”

솔리아의 말에 정다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저 성기사들은 분명 조금 전까지도 석화의 저주를 정화했었다.

그런데 그 정체가 언데드라니?

언제나 언데드라는 존재는 정화에 쥐약 아니던가.

솔리아는 참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바분 황제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사령술’에 손댄 인간이야.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신을 섬기는 성기사들을 ‘리치’로 만들어 전쟁의 도구로 삼은 일이지.]

“리치? 설마 바하무트 같은 언데드 말하는 거야?”

[응. 그런데 조금 달라. 일반적인 리치는 영혼을 따로 보관해서 불사의 몸을 얻지만, 저 성기사들은 이미 영혼을 신에게 바친 자들이거든. 그래서 바분 황제는 그들의 영혼을 아예 저 황금 갑옷 안에 가둬 버렸어.]

“갑옷 안에?”

[응. 저 황금 갑옷들은 신의 가호가 서려 있는 거룩한 성물. 그 가호에 감싸여 있는 성기사들의 영혼은 결코 악에 물들지 않아. 비록 언데드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결론이 뭐야? 나 지금 도망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거든? 요점만 말해 줄래?”

[…….]

티끌만큼도 마법에 재능이 없는 이에겐 조금 어려운 말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저 성기사들은 언데드로서의 약점이 없다는 말이야. 정화에도 무적이고, 신의 가호까지 사용할 수 있으니까.]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이제 와서 해 주는 이유는 뭔데? 나 여기서 죽으라고?”

[그건 오해야. 사실은…… 처음부터 너에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어. 애초에 저 성기사들은…….]

“……?”

솔리아의 말에 고개를 돌린 정다운의 눈이 또 한 차례 휘둥그레 커졌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다시 살아난 성기사들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입으로는 분명 바분 황제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퀘르쿠스를 향해 일제히 덤벼들고 있었던 것이다.

횃불을 들고.

“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세계수를 불태워라!”

화르륵!

앞다투어 퀘르쿠스에게 불을 붙이기 시작하는 성기사들.

그 행동은 분명…… 바분 황제가 명령한 일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바분 황제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세계수를 찾는 것.

숲에 불을 붙이며 돌아다니던 행동은 어디까지나 숲의 종족들을 협박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 모든 목적은 세계수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세계수라 생각하고 있는 퀘르쿠스에 저렇게 불을 붙이는 행위는 확실히 바분 황제의 목적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행위였다.

“이, 이놈들 무슨 짓이냐! 감히 세계수에 불을 붙이다니!”

그 증거로 그들의 돌발 행동에 바분 황제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당장 멈춰라! 나의 기사들이여!”

“세계수를…… 불태……!”

“당장 멈추란 말이다!”

“제국의 평화를 위…….”

바분 황제의 서슬 퍼런 호통에 성기사들이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퀘르쿠스에 불을 붙이려 노력했다.

쿠르릉!

새빨간 불길이 퀘르쿠스의 거대한 몸을 휘감아 올랐다.

뜻밖의 상황에 정다운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봤다.

“저 사람들 설마……?”

[말했잖아. 성기사들의 영혼의 주인은 처음부터 신이었다고. 인간의 황제 따위가 아니라.]

정다운은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부터 성기사들은 바분 황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그건 곧 지옥일 테니까.

황제가 영원히 산다면 그가 만든 인세지옥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였으니까.

미니맵을 열어 확대해 보니, 두꺼운 황금 갑옷 사이로 드러난 성기사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고결한 자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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