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313화>
“뭐야, 저거?”
정다운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자신은 그저 ‘호수만큼’ 거대한 구덩이를 판 뒤에 그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숨을 만한 ‘피라미드’를 지었을 뿐이었다.
사실 그로서는 별수 없는 선택이었다.
애초에 그림자 하인들은 정다운이 한 번이라도 만들어 본 건축물만 똑같이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정다운이 그동안 만든 건축물 중에는 은신처로 쓰기에 딱 적당한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하늘 신전!
마침 하늘 신전은 속이 텅 빈 역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그걸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서 만들면, 바로 저렇게 피라미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 고양이들을 가둬 기르고 있던 텅 빈 공간에 숲의 종족들을 숨어 살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은신처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 들어가고 나면 피라미드 위를 흙으로 싹 덮어서 평지처럼 위장하려 했지.’
그림벨들이라면 능히 소지품을 열어서 흙을 덮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밖에서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영구적인 은신처가 될 테니까. 바로 마녀의 집처럼.’
그렇다.
직접 땅굴을 파내려 가거나,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진입할 수 없는 완벽한 은신처.
그게 바로 정다운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계획대로 은신처를 완성해 놓고 멀리서 보니, 공교롭게도 저 은신처의 외형이 바분 황제의 무덤과 너무 일치하는 게 아닌가.
피라미드의 외벽을 꾸미고 있던 벽화와 조각상들만 없을 뿐, 기본 구조가 너무 똑같았다.
너무 공교로워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러면 마치 내가 바분 황제의 무덤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잖아? 솔리아, 나 혹시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니지?”
[…….]
“야, 뭐라도 좀 말해 봐. 나 지금 좀 무서워지려 한다고.”
정다운의 물음에도 솔리아는 평소처럼 적절한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당연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이럴 수는 없는데…….]
현재 솔리아가 받은 충격은 정다운보다 훨씬 심했으니까.
“여신님? 거기 있는 거 맞지? 빨리 우연이라고 좀 말해 줄래?”
[다, 당연히 우연이겠지. 이 그림자 세계는 그저…… 과거의 기억을 실체화했을 뿐인…….]
흠칫.
애써 입을 열던 솔리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성기사들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솔리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준비해! 성기사들이 벌써……!]
“나도 알아!”
정다운도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숲 곳곳에 설치해 둔 전망대를 통해 주변 상황들이 미니맵에 생중계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니맵 확대!”
미니맵을 확대했더니 성기사들의 결연한 표정들 하나하나가 생생히 보일 정도였다.
“메모리! 정원사들 전부 푸드 트럭에 태우고 빨리 은신처로 피신해!”
“아뇨! 우리도 도울 거예요!”
그의 말에 메모리를 비롯한 숲의 종족들이 호기롭게 외쳤다.
“맞습니다! 이 전투는 우리 숲의 종족들을 위한 전쟁입니다!”
“정다운 님 혼자 희생하실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의 결연한 표정에 정다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무슨 소리야? 내가 왜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나도 같이 도망칠 건데?”
“……네?”
한창 숙연하고 전우애가 피어나는 분위기를 와장창 깨트리는 정다운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푸드 트럭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퀘르쿠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다들 충분히 애써 준 덕분에 우리 대장님이 저만큼이나 화가 나셨잖아. 그럼 지금부터 잘 부탁합니다! 퀘르쿠스 대장님!”
쿠르릉!
척, 하고 경례까지 붙이며 인사하는 정다운.
그를 밟아 죽이기 위해 거대한 나무 거인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 우람한 모습을 멀리서 본 성기사들은 더욱 호기롭게 함성을 질렀다.
“세계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화르륵!
사방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그들이 소환한 불귀신들은 숲에 불을 지를 때도 불을 끌 때도 유용한 괴물이었다.
“휘유. 살벌하네. 그럼 시작해 볼까?”
정다운은 푸드 트럭 위에서 미니맵으로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함정 발동.”
딱!
그 순간.
갸웃?
갸웃? 갸웃?
갸웃? 갸웃? 갸웃? 갸웃? 갸웃?
“……어?”
성기사들을 둘러싼 수많은 던전 콩들이 일제히 그들을 쳐다봤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기분을 느낀 성기사들.
본래 하룬은 위험한 동물들이나 괴물들이 없는 아주 평화로운 숲이었다.
숲의 종족들이 성지로 삼았을 정도니까 말 다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어서 와. 던전은 처음이지?”
정다운은 환하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아 주었다.
“난 더럽게 지겹거든. 공격 개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던전 콩들이 속사포처럼 콩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두다다다다다……!
“뭐야 이건!?”
“피, 피해라!”
“방패로 막아!”
성기사들은 아연실색하며 갑자기 사방에서 뿌려지는 대포알들에 맞섰다.
그리고 금세 깨달았다.
던전 콩들의 공격력이 자신들의 갑옷과 방패의 방어력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그냥 무시하고 돌진하라!”
“숲이 우리에게 분노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태양신의 가호를 입었다! 겁먹거나 물러서지 마라! 숲의 분노 따위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한다!”
퍼버버벅!
그들은 사방에서 뿌려지는 던전 콩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으며 계속 진군했다.
솔리아가 소리쳤다.
[이, 이런 공격으로는 어림없어! 저들은 황제의 기사라고. 보다 강한 공격을 하지 않으면……!]
“걱정 마. 처음부터 던전 콩은 그냥 정신만 사납게 하는 용도거든. 자! 우린 유턴하자!”
정다운은 푸드 트럭으로 사용하던 코끼리 골렘의 방향을 돌려서 퀘르쿠스의 이동 경로를 틀었다.
그러자.
쿠르릉!
“으헉!?”
“다, 당장 자리를 피해라! 세계수가 우리를 밟으려 한다!”
쿠르릉!
정다운을 향해 움직이던 퀘르쿠스의 이동 경로에 놓이게 된 성기사들은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대피했다.
“그러면 우리도 움직이면 되지-.”
푸드 트럭이 또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또.
쿠르릉!
“세계수가 우릴 자꾸 따라온다!”
“설마 세계수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것인가!”
“황제 폐하께 보고를 드려라! 숲이 진노했다고! 우리가 세계수를 노려서 자연의 분노를 샀다고!”
물론 오해였다.
정작 숲의 분노를 산 건 그들이 아니라 정다운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다운은 성기사들이 육안으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퀘르쿠스의 방향을 원격 조종해서, 성기사들이 퀘르쿠스에게 밟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 계획엔 문제가 하나 있었다.
퀘르쿠스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솔리아가 다급히 조언했다.
[일반인이면 모를까, 태양신의 가호를 받고 오러까지 쓸 수 있는 성기사들이 순순히 퀘르쿠스에게 밟혀 죽진 않을 거야. 어떻게든 그들의 발을 묶어야 해.]
“그거야 이미 준비가 끝났지. 그림자 비술!”
미야앙!
어느덧 정다운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있었다.
바로 성기사들의 발아래까지.
그리고 그 밑에서 수많은 그림자 하인들의 손이 솟구쳐 올라와 성기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헉! 누, 누가 발을 걸었……!”
때로는 직접 붙잡기도 하고.
“헉! 조심해라! 이곳에 함정이 있, 헉!”
양쪽에서 서로 노끈을 팽팽히 잡아당기기도 하고.
휘청!
쿠당탕탕!
솔리아의 말 그대로 그림자 하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기사들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으악!”
쿠당탕탕!
던전 콩들로 인해 정신 사나운 틈을 뚫고, 퀘르쿠스를 피해 도망치던 성기사들이 여기저기에서 꼴사납게 넘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저 전신갑옷 입어 봐서 잘 아는데,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그렇지? 토끼…….”
정다운은 평소처럼 낄낄대며 옆을 돌아보다가 멈칫했다.
언제나 함께하던 토끼는…… 그의 곁에 없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니?’
아련히 하늘을 바라보며 귓말을 보내 보는 정다운.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 그림자 세계에선 바깥 세계와 귓말조차 연결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온 뒤부터는 그 잔소리꾼 알파조차 말이 없었다.
“여긴 대체 뭐하는 동네야?”
투덜대는 정다운.
한편 바닥에 넘어진 성기사들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아, 악마?”
발밑에서 수많은 그림자 손들이 자신들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마, 맙소사! 악마다!”
먀옹?
“세상에! 악마라니……!”
갸웃?
“큰일 났다! 악마의 손이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니야앙?
“절대 끌려 들어가면 안 된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라!”
애오옹!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악마라고 욕을 먹게 된 그림자 하인들에겐 조금 억울한 일이었다.
성기사들은 그림자 하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그 발버둥에 살짝이라도 스친 그림자 하인들이 풍선처럼 팡팡 터져 나갔다.
그러면 미니맵으로 지켜보고 있던 정다운이 그 즉시 그림자 하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솔리아가 소리쳤다.
[이건 눈속임에 불과해! 저들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잠깐 놀랐을 뿐, 금방 그림자 하인들이 아무런 피해를 못 준다는 걸 눈치채고 말 거야! 다른 수단을 생각해야……!]
“왜 피해를 못 준다고 생각해?”
[뭐?]
“그림벨, 흙 뭉치기.”
미야옹!
그림자 하인들 속에 섞여 있던 그림벨들은 직접적으로 성기사들을 상대하지 않고 있었다.
푸욱!
“헉! 땅이!?”
대신 땅을 팠다.
성기사들이 서있는 발밑의 땅을.
“으아악! 지옥으로 끌려 들어간다!”
“사, 살려 줘! 악마에게 끌려간다!”
성기사들은 진심으로 악마가 자신들을 끌어당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흡사 늪에 빠진 것처럼.
개미지옥에 잡혀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성기사들은 점점 땅 밑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려 봐도.
오러를 사용해서 뛰어오르려 해도.
“으아아악! 누가 좀 끌어올려 줘……!”
일단 도움닫기를 할 발밑의 땅이 자꾸만 사라져 가니까 중심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음, 역시 그림벨들 숫자가 너무 적단 말이야. 방울이 더 있으면 좋으련만.”
그림자 속에서 이 구멍 저 구멍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고 다니는 그림벨들을 보며 정다운이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솔리아는 지금 이렇게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다.
[저, 저게 뭐야? 황제의 성기사들이 고작 이 정도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솔리아는 성기사들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다 해도 오러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으악! 다리가 안 움직여!”
“나는 허리 아래가 안 움직여!”
[어?]
성기사들의 비명에 솔리아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림자 하인들은 단순히 그들을 잡아당기기만 한 게 아니었다.
틈틈이 작고 뾰족한 것으로 성기사들의 발목이나 갑옷의 작은 틈새를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돌뱀의 독니였어!]
“맞아.”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정다운은 지금 엄청 바쁘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춤을 추듯이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자신이 마치 그림자 하인이 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성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 틈새를 상상하며 독니를 찌르고 있었다.
[……미친.]
솔리아는 진심으로 경악하고 말았다.
지금 정다운이 무슨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은 것이다.
그는 지금 실시간으로 그림자 하인들에게 다양한 움직임을 가르치고 있었다.
확대한 미니맵으로 녀석들의 상황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너 진짜 인간이야?]
솔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많은 소환수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컨트롤하는 게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그런 일은 마법사라도 힘들단 말이야. 성기사들의 불귀신들조차 지금 자율 행동에 맡기는…….]
“으아아! 덕분에 엄청 눈 돌아갈 것 같지만! 효과는 죽이지?”
[…….]
수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