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312)화 (312/393)

<던전리셋 312화>

*   *   *

하룬.

숲의 종족들의 성지이자, 세계수가 자라는 전설의 숲.

“불태워라!”

화르륵!

“마녀들을 말살하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그곳에 불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성기사들의 만행에 점점 뜨거운 열기를 더해가는 숲속에서.

“원하시는 야채와 토핑을 말씀해 주시면 담아 드릴게요!”

정다운의 푸드 트럭이 오픈했다.

부오오!

코끼리 골렘이 울부짖었다.

정다운이 소지품에 있던 핵으로 새롭게 다시 만든 코끼리 2호기.

그 옆구리에는 창문이 크게 뚫려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곱게 채 썬 샌드위치 재료들이 예쁘고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기다리는 동안 그 싱그러움을 눈으로도 맛볼 수 있게 밖에서도 잘 보이는 인테리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 푸드 트럭의 마스코트이자, 예쁘고 상냥한 알바생 메모리 양이 화사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빵 먼저 고르시고, 야채와 토핑 말씀해 주시면 담아 드릴게요.”

“네, 황녀님. 저는 빵은 호밀빵에 야채는 오이는 빼 주시고요. 양상추는 많이……. 그리고 불귀신의 우유도 한 잔 주세요.”

“네, 주문 받았습니다. 그럼 소스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토마토소스? 아니면 달달한……. 어머?”

쿠르릉!

“벌써 여기까지 쫓아왔네?”

갑자기 땅이 흔들리자 메모리 알바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숲의 수호신 퀘르쿠스는 처음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대해져서 푸드 트럭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무척 무겁고 느렸지만, 덩치가 커진 탓에 한 걸음만 걸어도 푸드 트럭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도 메모리 알바생은 당황하지 않고 박수를 쳐서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기다려 주신 분들께 안내 말씀 전달드려요-! 사정상 여기까지만 주문을 받고, 다음 정거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헉! 저희 계속 기다렸는데!”

“황녀님, 저희까지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푸드 트럭 근처에서 나무를 베며 주문 순서를 기다리던 숲의 종족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들을 향해 메모리 알바생이 처연하게 눈꼬리를 내리며 두 손을 맞대고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그렇다고 샌드위치 때문에 다 같이 밟혀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손님, 소스는 고르셨어요?”

메모리는 이미 숙련된 프로 알바생이었다.

주문을 받으면서도 손으로는 능숙한 솜씨로 빵을 반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채 썬 야채들과 토핑을 듬뿍 담아냈다.

“오, 많이 늘었네?”

그 모습에 푸드 트럭의 젊은 사장님 정다운이 기특하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열심히 해야죠. 다들 애써 주시는데,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밝은 미소로 화답하는 메모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숲의 종족도 마법사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갇혀 자란 탓에 도끼질조차 할 수 없는 저질 체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이것뿐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예요?”

메모리가 정다운의 손에 들린 항아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메모리에게 알려주고 일을 전부 떠넘긴 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소스를 개발해 왔지!”

짠! 하고 자랑스럽게 앞으로 내미는 항아리.

“새로운 소스요?”

메모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며 코를 킁킁댔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색깔만 보면 별로 맛이 기대가 안 되는데요. 이거 맛은 어떤데요?”

“알바생이여, 의심하지 말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맛일 테니까!”

“……?”

일개 알바생이 사장님의 생각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랴!

정다운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숲의 종족들은 정말 최고야!’

[……정원사들을 그런 식으로 쓰다니, 너는 정말 이상해.]

정다운의 행동을 지켜본 솔리아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정원사.

정다운을 돕겠다며 따라와 지금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는 숲의 종족들은 모두 특별한 재능을 개화한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이름은 바로 정원사.

그리고 정원사들이 가진 능력은 말 그대로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그들은 발밑에서 자라나는 꽃과 풀의 종류를 의도대로 선택할 수 있는 ‘발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추가로 마력까지 사용해서 자라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고속 성장’시키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해서 메마른 땅에서도 풍성한 숲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원사들이었다.

하지만 ‘고속 성장’이라도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식물을 너무 무리하게 성장시켰다간 땅속에 있는 양분을 다 빨아들여 땅이 메말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정다운에겐 정화된 뼛가루와 쥐똥 비료가 있었다!

양분이 가득한!

그래서 정다운은 그 두 가지 비료를 골고루 섞어 땅에 뿌리고 그 위에 정원사들을 서게 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주문했다.

“겨자.”

“네? 머스타드(Mustard)를 자라게 하라고요? 그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닐 텐데요?”

“겨자.”

“네…….”

초월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서로가 사용하는 용어가 헷갈릴 일은 없었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었지만 정원사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발밑에서 겨자 나무를 무럭무럭 자라나게 했다.

그가 사용한 비료와 고속 성장 능력이 합쳐지자, 자라는 속도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채집한 겨자를 말리고 가루로 빻고, 물에 개어 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다운의 최종 목표는 바로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허니 머스터드’ 소스.

재료는 간단했다.

마요네즈, 머스터드, 꿀, 사이다.

이게 끝이었다.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적 있는 레시피였다.

“이제 마요네즈만 있으면 되겠네.”

마요네즈에 들어가는 재료는 더욱 간단했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 식용유, 식초.

그리고 달걀노른자!

정다운이 정원사들에게 또 주문했다.

“그럼 이제 후추도 만들어 주세요.”

“네…….”

[아주 뽕을 뽑을 생각이구나, 너.]

솔리아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여신이 그런 말투 써도 돼?”

[이 표현 외엔 적절한 말이 생각 안 나서 그런다…….]

말 그대로였다.

정다운은 그동안 부족했던 식재료들을 정원사들에게서 제대로 뽕을 뽑고 있었다.

“저기, 정다운 님. 저희 잠시만 쉬면 안 될까요? 더 이상 고속 성장을 시킬 마력이 부족해서…….”

“아, 그래요? 그럼 쉬면서 나무 좀 베고 계세요. 자, 다음 분! 마력 남는 정원사들 도끼질 힘들면 이쪽으로 오세요!”

“…….”

[…….]

정말로.

제대로 뽕을 뽑고 있었다.

마력이 부족하면 힘을 쓰고.

힘이 빠지면 마력을 쓰고.

그렇게 정원사들을 뺑뺑이 돌리는 푸드 트럭 정다운 대표였다.

“그럼 이제 달걀만 있으면 끝인데 말이지.”

[구할 수 없을 거야.]

“왜 못 구해?”

[이 세상은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으니까.]

솔리아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이 땅에선 더 이상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어. 그 시작은 하늘을 나는 새부터였지.]

“아하.”

그 말을 듣자 정다운도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언젠가 마녀의 일기장에 나타난 ‘슬러그’에 대한 구절.

<계란>

계란이라는 건 무슨 맛일까?

맛이 전혀 상상이 안 가.

꼭 한번 먹어 보고 싶다.

언젠가 이 땅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면…….

슬러그에서 아무 맛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마녀가 단 한 번도 계란을 먹어 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가 바로 새들이 더 이상 알을 낳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별수 없지. 그러면 일단 식감이라도 비슷하게, 달걀 대신 슬러그를 쓰지 뭐.”

정다운은 소지품에 정화시켜서 보관해 둔 슬러그의 투명한 점액질을 꺼냈다.

그리고 모든 재료를 정성껏 섞어서 허니 머스터드소스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   *   *

“그게 바로 이 소스란 말이지.”

“우와! 이거 샐러드에 뿌려 먹으니까 엄청 맛있는데요? 색이 노래서 별 기대도 안 했는데!”

“훗. 내가 뭐랬어?”

메모리는 노란 허니 머스터드소스를 뿌린 야채 샐러드를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옳다.

“아저씨! 이것도 메뉴에 넣어요!”

“어허? 아저씨가 아니라 사장님이라 불러야지. 넌 알바생이고, 난 사장이야.”

“네, 사장님!”

눈을 반짝이며 의견을 제시하는 예쁘고 바람직한 알바생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정다운 사장님.

그가 기특함을 담아 알바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메뉴를 소스 뿌린 샐러드에 송송 떨어뜨렸다.

그건 바로 작게 조각낸 치킨 조각들!

메모리는 숲의 종족이 아니라서 고기도 먹을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역시 케이준 치킨 샐러드지!”

“……!”

아니, 이럴 수가? 

푸드 트럭에 메뉴가 자꾸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맛은……!

[지금 뭐하는 거야! 황제와 싸운다며! 하룬을 지킨다며! 이러는 중에도 우리는 점점 포위당하고 있다고!]

보다 못한 솔리아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보자보자 하니까 정다운이 초심을 잊고 숲의 종족들에게 줄 도시락만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다운이 갑자기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슬슬 때가 됐으니까.”

[뭐?]

정다운은 퀘르쿠스를 돌아봤다.

쿠르릉!

그동안 나무를 열심히 벤 결과물이 바로 저것이었다.

그 크기는 숲의 초입을 헤매고 있던 바분 황제와 성기사들의 눈에도 들어올 정도로 터무니없이 커져 있었다.

그들이 눈을 빛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찾았다! 세계수다!”

“세계수를 발견했습니다, 황제 폐하!”

“크하하! 그렇구나! 결국 찾았어! 전설은 사실이었다! 크하하하!”

바분 황제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 거인을 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탐욕에 가득 찬 눈빛으로 숲에 흩어진 성기사들을 전부 불러들였다.

“여봐라! 세계수를 찾았으니, 더 이상 숲의 종족들 따위 찾아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모두 모여라! 다 같이 세계수로 향하겠노라!”

“충!”

성기사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일사불란하게 바분 황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면서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런데 세계수가 원래 저렇게 움직이는 나무였나 봐?”

“그러게. 어쩐지 저렇게 돌아다니는 놈이니까 그동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지.”

“그러게 말이야. 세계수에 발이 달렸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응? 그런데 저건 뭐지?”

“뭔데?”

성기사들의 눈에 문득 저 멀리 하늘 위에 네모난 흙덩이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정다운이 푸드 트럭으로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설치해 놓은 인공위성 전망대.

그리고 그걸 통해 그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확대해서 지켜보고 있던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온다. 슬슬 준비하자. 함정 설치.”

[함정을 설치합니다.]

[함정을 설치합니다.]

[함정을 설치합니다.]

…….

바분 황제와 성기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그들이 다가오고 있는 이곳.

퀘르쿠스가 서 있는 숲은 세계수와 정확히 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을.

정다운은 진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숲의 종족들에게 말했다.

“모두 은신처로 돌아가서 숨으세요!”

“은신처라면…… 저 무덤 같은 것 말입니까?”

숲의 종족들이 지금까지 땅만 파고 있던 그림벨들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정다운은 멀리서 성기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그 아래 은신처를 만들게 시켰다.

그리고 그 은신처는……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사각뿔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응?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림벨들이 만들어 놓은 은신처의 모습에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흠칫, 깨닫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림벨들의 손에서 탄생한 은신처의 모습이, 바로 세이렌의 호수 밑에 잠겨 있던 바분 황제의 무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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