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311화>
* * *
숲의 종족들은 어린 시절 누구나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
‘숲을 화나게 하면 퀘르쿠스가 나타나서 이놈- 하고 혼내 준다?’
‘후에엥! 퀘르쿠스 무쩌워! 말 잘 들을게요!’
그것은 숲의 수호신 퀘르쿠스에 대한 전설.
그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재울 때나 혼내 줄 때 말해 주는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들을 올바른 숲의 종족으로 키우기 위한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이유 없이 숲을 훼손시켰다간 숲의 수호신이 나타나 우리를 저주하실 거야. 그러니까 무분별한 벌목은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네에!’
사실 평생을 숲에서만 살아온 숲의 종족들은 빼어난 목수이자, 뛰어난 나무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목재는 필수였으니까.
게다가 고기를 먹지 못하는 숲의 종족들에게 숲은 거대한 식량창고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그들의 벌목 활동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숭고한 행위였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를 한 그루 베고 나면, 반드시 그 자리에 한참 머물러서 새로운 싹을 틔우고 돌아가곤 했다.
풀이나 꽃이 아니라, 나무 묘목이 자라날 때까지.
그것은 숲의 종족이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어릴 때부터 고민 없이 받아들인 당연한 상식이었다.
‘숲을 파괴하면 퀘르쿠스가 나타나. 그리고 우리를 평생 쫓아다닐 거야. 밤이나 낮이나.’
그렇다.
그것이 바로 상식이었다.
그리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저 사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눈앞에서 그 금기를 가차 없이 깨트리려 하는 저 미친 인간의 행동을.
“나무 베기! 나무 베기!”
쾅! 쾅쾅! 쩌적!
우지끈!
정다운의 도끼질은 시원시원했다.
그야말로 원샷 원킬!
세계수를 벤 후로 무려 8레벨까지 레벨이 수직상승한 나무 베기 스킬은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상큼하게 나무를 베어 넘겼다.
쿠웅!
또 하나의 나무가 넘어갔다.
“말도 안 돼…….”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 세 그루를 베었어.”
“인간들 중에 저렇게 출중한 나무꾼이 있었다니!”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경악할 만한 일은 또 있었다.
고작 세 그루.
겨우 그만큼을 베었을 뿐인데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들었던 ‘퀘르쿠스’가 깨어나 버린 것이다.
“헉! 저, 저기 봐!”
숲의 종족들은 경악성을 터뜨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드득!
놀랍게도 그곳에 자라던 나무 세 그루가 뿌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얽히며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정다운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다운에겐 평소에 나타나던 크기에 비하면 한참 작은 어린이 퀘르쿠스였지만, 그조차도 숲의 종족들에겐 충분히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맙소사! 숲이 분노했어!”
“설마 진짜 퀘르쿠스가 나타날 줄이야!”
“저, 저게 말이 돼? 저 사람, 겨우 세 그루밖에 안 베었는데도 저주를 받았다고!”
“대체 얼마나 숲이랑 안 친한 거야!”
그들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정다운은 이 정도 일은 익숙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역시 나타날 줄 알았다니까?”
[…….]
으스대는 정다운의 말에도 솔리아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루갈이 말하길, 숲의 수호신 퀘르쿠스는 던전과 상관없는 규격 외의 존재라 했지.”
그 말은 즉, 던전이 아닌 이 그림자 세계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숲을 너무 많이 훼손시킨 정다운은 이미 한참 전에 숲에게 단단히 찍힌 숲의 파괴자였다.
그래서 그가 어디서든 나무만 베면, 거대한 나무 거인 퀘르쿠스가 나타나 그를 밟아 죽일 때까지 평생토록 따라다니는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그에겐 ‘던전 리셋’이 있었다.
퀘르쿠스는 나무를 벤 만큼 크기가 커지는 존재였기에, 정다운이 벤 나무들의 숫자가 다시 제로가 되는 순간 퀘르쿠스도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가 다시 숲을 훼손시킬 때를 기다리며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다운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린이 퀘르쿠스를 보며 기특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겨우 세 그루짜리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엄청 귀여운 놈이 태어났네? 야, 이쪽이야! 그렇게 걸음이 느려서 나를 밟겠어?”
우드득! 우드득!
[……하지만 나무를 베면 벨수록 점점 커지겠지. 그러면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엄청 위협적일 거야.]
한참을 침묵하던 솔리아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숲의 수호신을 불러내서 황제와 대신 싸우게 하겠다니. 퀘르쿠스는 대화가 통하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대화가 왜 필요해? 그냥 나 따라오는 길에 황제든 성기사들이든 살포시 밟아 주면 될 텐데.”
[…….]
퀘르쿠스는 무조건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정다운은 자리 선점만 잘하고 기다리면 퀘르쿠스가 알아서 황제의 무리들을 퇴치해 줄 거라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이 계획엔 다른 좋은 점도 있지. 여러분?”
정다운은 숲의 종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중에 숲이 불타서 숨 쉬기가 힘들어지면 바로 퀘르쿠스 위로 기어 올라가세요.”
“……아!”
그 말에 숲의 종족들은 깜짝 놀라며 안색이 밝아졌다.
“그, 그렇군요!”
애초에 바분 황제의 성기사들이 숲을 불태우려는 이유.
그것은 바로 숲의 종족들이 숨을 쉬지 못하게 해서 토끼몰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퀘르쿠스는 수많은 나무들이 합쳐진 존재였기에 그 자체가 걸어 다니는 숲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숲이 다 불타 사라지더라도 퀘르쿠스만 있으면 숲의 종족들이 얼마든지 숨을 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세상에! 아저씨는 천재예요!”
“훗. 내가 쫌 그런 편이지.”
메모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정다운은 팔짱을 끼고 한껏 거들먹거렸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퀘르쿠스를 피해 도망쳤다.
그러면서 도끼를 들고 있는 숲의 종족들을 향해 외쳤다.
“자, 계획은 이제 다들 알겠죠? 그럼 벌목 시작하세요! 이 녀석은 내가 계속 유인하고 있을 테니까!”
“넵!”
“알겠습니다! 정다운 님!”
[……통성명은 또 언제 한 거야, 너희들.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솔리아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사태가 돌아가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터졌다.
우드득?
숲의 종족들이 본격적으로 흩어져서 나무를 베기 시작하자, 정다운을 쫓던 퀘르쿠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그들을 향해 방향을 튼 것이다.
“어?”
“헉!? 퀘르쿠스가 이쪽으로 온다!”
“도, 도망쳐!”
돌발 사태였다!
퀘르쿠스가 다가오자 기겁하며 뿔뿔이 흩어지는 숲의 종족들.
아무래도 그들이 훼손한 나무까지 카운트가 되는지, 퀘르쿠스는 처음에 비해 덩치가 좀 더 커져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퀘르쿠스는 숲을 수호하는 존재라고! 바로 앞에서 숲이 훼손되고 있는데 정다운 너 한 명만 쫓을 리가 없지!]
“응, 문제없어. 금방 다시 돌아올 거야.”
반면 정다운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이 베면 되거든.”
정다운은 숲의 종족들의 은신처를 만들고 있던 그림자 하인들을 전부 불러들였다.
“그림벨 3마리는 계속 땅을 파서 은신처 만들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도끼 들어.”
먀아옹.
그는 그림벨들은 다시 돌려보내고 14마리의 그림자 목수들을 사방으로 흩어 보냈다.
“벌목 시작!”
먀아앙!
……쿠쾅쾅쾅쾅!
그의 명령에 그림자 목수들이 엄청난 기세로 우다다다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스킬을 못 써도, 자세는 정다운의 도끼질하는 자세와 똑같았다.
도끼도 벌목 옵션이 붙어 있어서 속도는 이미 정상인 범주를 넘어섰다.
쿠르릉?
그러자 퀘르쿠스의 덩치가 순식간에 두 배가 되더니 다시 정다운을 향해 몸을 돌렸다.
“휴우.”
이내 도주를 멈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숲의 종족들.
마침 그들의 숫자가 그림자 하인들과 비슷했다.
그 모습을 본 정다운에게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그가 씨익 웃으며 숲의 종족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 시합할까요? 누가 더 많이 베나?”
“네? 시, 시합이요?”
“네. 경쟁심이 좀 생겨야 서로서로 빨리 벨 테니까요. 바분이 오기 전에 퀘르쿠스를 얼른 키워야 해요.”
이미 그림자 목수들까지 합세한 이상 더 이상 숲의 종족들이 퀘르쿠스에게 쫓길 걱정은 없었다.
그림자 하인들이 모두 정다운의 스킬이었기에, 녀석들이 베는 나무들은 전부 정다운 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숲의 종족들이 나무를 베는 것은 고스란히 퀘르쿠스의 크기를 키우는 데 합산되었다.
숲의 훼손되는 만큼 퀘르쿠스는 주변의 나무를 흡수해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었으니까.
정다운은 눈을 반짝이며 방향을 잡았다.
퀘르쿠스를 최대한 세계수에서 멀리 떨어뜨릴 요량이었다.
“아, 그리고 기왕이면 빨리 베는 게 좋겠죠? 다들 이거 한 장씩 찢으세요.”
“……!”
“이, 이건 설마?”
숲의 종족들은 정다운이 건네는 종이 뭉치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바로 복제 마법 주문서였다.
바로 힘의 룬(복제)와 속도의 룬(복제).
“맙소사. 마법 주문서다!”
“이건 우리 마법사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인데, 어떻게!?”
본래 마법 주문서는 마법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숲의 종족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였기에, 사실상 마법 주문서는 익숙한 물건이었다.
다만, 아무렇게나 찍어 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아!”
“이, 이게 다 마법 주문서라고!?”
정다운의 복제 주문서는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정다운이 아차, 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아, 맞다. 마법사들이면 주문서 이미 좀 있겠네요?”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성기사들에게 쫓기며 싸우다가 전부 사용했거든요.”
“새로 주문서를 제작하려면 틀어박혀서 한참을 고생해야…….”
“아하. 핸드메이드가 다 그렇죠 뭐.”
사실 핸드 메이드가 다 그렇듯이, 마법 주문서는 만들 때마다 룬 문자에 한 땀 한 땀 마력을 깃들게 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을 요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정다운은 판화 방식으로 쭉쭉 찍어 냈다.
마력은 구름을 녹여서 잉크로 썼고.
그래서 격이 낮아진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런데 그 단점이 마법사인 숲의 종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꼬르륵.
“어? 이거 찢었더니 왜 갑자기 배가 고프죠?”
주문서를 찢는 순간 몸에 가득한 마력이 사용되는 대신 배고픔이 찾아오자, 숲의 종족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쓰면 원래 배고파요. 일단 나무들 베고 계시면 먹을 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요. 고기 못 먹는 댔죠? 그럼 평소에 뭘 먹고 살아요?”
정다운의 물음에 메모리가 대답했다.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 먹거나 과일을 먹어요. 그리고 고기는 못 먹지만, 동물의 젖이나 새의 알 같은 건 먹을 수 있고요.”
“오, 우유나 계란은 된다고? 그건 또 몰랐네. 그런데 풀만 먹어서는 포만감이 별로 안 찰 텐데. 어, 잠깐만? 풀이라고?”
그 순간 정다운의 눈이 숲의 종족들의 발밑으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쭉쭉 자라나고 있는 가지각색의 풀과 꽃들.
종류가 참 다양했다.
정다운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그림자 하인을 한 마리 불러냈다.
“오, 이거라면 어쩌면 가능하겠는데? 야, 잠깐 와 봐.”
“먀옹?”
“응. 너.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풀 좀 뜯어 와. 이렇게.”
“냐앙?”
주섬주섬…….
정다운은 그림자 하인 하나를 불러내서 숲의 종족들을 따라 네발로 기어 다니며 그들이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뜯는 시범을 몸소 보여 줬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메모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저씨 갑자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뒤에 퀘르쿠스가…….”
“와! 이거 제법? 종류가 진짜 다양하잖아? 이거라면 가능하겠어!”
“엄마얏! 깜짝이야!”
갑자기 감탄사를 터뜨리며 벌떡 일어나는 정다운의 손에는 각양각색의 싱싱한 야채들이 한 움큼 잡혀 있었다.
“어디 보자. 다크모들한테서 얻은 빵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소지품을 열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욕심 많은 다크모들이 스테이지-1에서 신입 참가자들의 품을 뒤져서 따로 모아 둔 자잘한 식료품들.
그걸 다시 정다운이 뺏어 와 나중에 조금씩 아껴 먹으려고 모아 둔 곰보빵, 식빵, 기타 등등의 베이커리 빵들.
그걸 전부 꺼낸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메모리를 돌아봤다.
“너 샌드위치 먹어 본 적 있어?”
“……그게 뭔데요?”
“있어. 현대인들이 바쁠 때 먹는 거. 누가 옛날 사람 아니랄까봐 촌스럽기는.”
울컥?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한마디에 괜히 울컥한 메모리였다.
정다운이 그림자 하인에게 명령했다.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다양하게 풀 뜯어 와.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골라먹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