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301화>
* * *
한편 세이렌의 호수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아아-!”
“아히호!”
세이렌들은 물에 빠진 참가자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끝도 없이 식량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데, 굳이 인간을 사냥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아!”
첨벙첨벙!
기분이 좋아진 세이렌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싸우고 있던 참가자들을 향해 물장구를 쳤다.
그러자 그 물장구를 중심으로 동그란 파문이 일더니, 참가자들의 몸 주변으로 동그란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헉!”
“이, 이건 뭐야?”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처음엔 거품 수준이던 공기 방울들이 점점 모여들더니, 하나로 합쳐져 커다란 공기 방울이 되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
졸지에 공기 방울에 둘러싸이게 된 참가자들.
“어? 이, 이거 왜 내려가?”
“잠수…… 한다!”
쑤우욱!
참가자들을 둘러싼 공기 방울들이 호수 밑바닥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이게 바로 ‘세이렌의 인정’이라는 것을.
“아! 원래 이런 식으로 유적지로 내려가는 거였나?”
“세이렌의 인정이라는 게 바로 이거였구나!”
보통 세이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선 그들을 힘으로 굴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굴복이 아니라 순종이라고 봐야 했다.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괴물이든 정령이든, 배가 부르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였으니까.
“아아아!”
“아우우!”
배부른 세이렌들은 눈에 보이는 참가자들을 일일이 공기 방울에 감싸서 유적지로 내려보내 주기 시작했다.
“우리도 갑시다!”
“어서 호수로 들어가자고!”
호수 밖에 있던 참가자들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둘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정다운 씨! 우리들도 얼른 내려가시죠! 괜히 저 세이렌들이 변덕이라도 부리기 전에요.”
정다운은 헬스맨들이 부르는 말에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네, 먼저 가세요. 저는 이것만 마저 주고 따라갈게요. 저기 아직 못 얻어먹은 녀석들이 있어서요.”
“아아!”
“아아아-!”
기부천사 정다운의 말에 세이렌들은 크게 감동했다.
소외된 세이렌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겨 주는 저리 아름다운 마음씨라니!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흉흉한 던전에서 보기 드문 청년 아닌가!
이 아름다운 미담에 던전조차 감동하고 말았다.
[최초 업적 달성!]
“물의 정령의 가호!”
무려 100마리가 넘는 물의 정령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업적에 던전이 훈훈한 박수를 보냅니다.
- 보상 :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번쩍!
“어?”
갑자기 빛에 휘감긴 정다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업적 보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와, 대박! 물의 정령의 가호?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는데?”
[히익? 이게 뭐야! 정령의 가호를 밥으로 사 버렸다고!?]
토끼는 경악했다.
세상 호구처럼 가진 식량을 펑펑 뿌려 대며 헛된 사치를 일삼더니, 결국엔 그 사치가 투자가 되어 버렸다.
남들은 세이렌과 일일이 맞서 싸워 가며 간신히 인정을 받아 내고 있는데, 이쪽은 회식 한번 거하게 쏴서 한 방에 인망을 얻어 버린 꼴이었다.
[그런데 혹시 물고기처럼 아가미라도 생기는 거 아님?]
“헉? 설마!”
토끼의 말에 정다운이 깜짝 놀라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가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깜짝 놀랐네. 졸지에 인어왕자 되는 줄 알고.”
[히히. 아님 말고요.]
그런데 아가미는 안 생겼어도 인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사람이 물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물에 빠지면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속에서 숨 쉬는 것만 해결된다면?
물에 빠지는 게 뭐가 무서울까?
알파도 기쁜 마음으로 정다운을 축하해 주었다.
<정다운 님은 이제 세이렌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할 필요 없이 자유로이 호수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려가셔서 유적지를 공략하시지요.>
그러다 제단이 보이면 겸사겸사 훔쳐 오라는 말까진 굳이 할 필요 없으리라.
다만 이쯤에서 정다운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나 수영 못 하는데 어쩌지?”
[앗?]
<……?>
정다운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백하는 말에 토끼와 알파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 보니 이 인간, 엄청난 몸치였다.
제국창술을 배울 때만 해도 팔다리, 허리가 다 따로 놀아서 엄청 애먹지 않았던가.
“하하. 하다 보면 늘겠지, 뭐!”
[…….]
호언장담하는 정다운을 보며 토끼는 어째 큰 기대가 되지 않았다.
* * *
풍덩!
솔리아가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정다운이 막 최초 업적을 달성하고, 호수를 향해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막아야 돼!]
정원사인 그녀는 그의 몸을 휘감는 빛을 보자마자 그 정체를 눈치챘다.
‘말도 안 돼! 물의 정령의 가호라니!’
사실 가호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가끔씩 물의 정령들과 친한 정령사들에게 내려지는 축복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하필이면 지금 같은 상황에 저런 걸 정다운이 받아 버리면 문제가 복잡해졌다.
‘내 예상보다 공략 속도가 너무 빨라! 그렇게 되면 또 정다운이 세계수를 노리고 떠나 버릴 거야!’
애초에 솔리아가 정다운을 이곳으로 보냈던 이유는 그의 발을 최대한 오랫동안 묶어 두기 위해서였다.
흙을 주로 사용하는 그에게 불과 물을 상대하는 일은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런데 틀렸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끄응,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주길 원했는데 이게 뭐야!’
실제로 하룬의 특수한 환경은 공략이 어렵다기보단 공략을 오래 걸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았다.
다가가면 폭발하는 화염충들은 최대한 신중히 상대해야 했고.
불귀신들은 마주치면 무조건 피해 다녀야 했고.
정신 공격에 능하고 물속에서 싸워야 하는 세이렌들은 또 말할 것도 없었다.
근접해서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고, 원거리에서 싸웠다간 세이렌들이 물속으로 숨어 버리고.
게다가 간신히 세이렌의 인정을 받고 공기 방울을 받게 되었어도,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산소 부족!
‘공기 방울 안에 담긴 산소는 한계가 있으니까!’
참가자들은 유적지 안에 들어가서 탐험을 하다가도 주기적으로 산소가 부족해졌다.
그러면 별수 없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 공기 방울에 공기를 새롭게 충전하고 내려가야 했다.
말만 들어도 이 얼마나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란 말인가?
하지만 정다운은 이 모든 것들을 다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급기야 이제는 ‘물의 정령의 가호’까지 등장하자 솔리아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뭐라도 해야 했다.
부어엉!
‘어떻게든 방해를 해야 돼! 이대로라면 세계수가 또 위험해져!’
다행히도 이 호수는 물의 ‘정령’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솔리아는 정령들이 많은 곳에서는 힘이 강해진다.
[동화!]
촤아악!
그 순간 호수 깊은 곳까지 입수한 하얀 올빼미가 맑고 투명한 호수의 물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촤아악!
갑자기 수면 위로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쑤욱 솟구쳐 올라오자, 참가자들은 깜짝 놀랐다.
“뭐야, 저건!?”
“거인 세이렌이 나타났다!”
“설마 저놈이 최종 보스인가!”
호수 안에서 갑자기 몸을 일으킨 거대한 세이렌.
물로 이루어진 맑고 투명한 아름다운 여인이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인간형으로 변한 솔리아.
세계수의 안에서는 새하얀 몸이었고, 구름 속에서는 구름 흙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현신시켰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은 호수의 물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구축한 것이었다.
촤아악! 촤악!
[아직 부족해! 더! 더!]
솔리아는 계속 호수의 물을 끌어와서 자신의 몸집을 부풀렸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정다운 저 인간을 막기 위해서는 더 커져야 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솔리아는 일생일대의 결투를 목전에 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당황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자신을 공격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찾는 최종 보스는 여전히 이 호수 아래에 있어.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볼일들 봐. 나는 너희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
솔리아의 엄포에 참가자들은 그제야 눈치챘다.
갑자기 나타난 저 위압감 넘치는 물의 거인이 처음부터 ‘단 한 명’만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헬스맨들이 경악하며 정다운에게 소리쳤다.
“맙소사! 정다운 씨를 노리고 있어!”
“정다운 씨! 위험합니다!”
“도망치세요!”
그들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도우미처럼 보이는 저 대단한 존재가 직접 나서서 단 한 명의 참가자에게 적대심을 드러내는 경우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다운 저분은 대체……!”
이쯤 되니까 이런 규격 외의 상황을 만들어 낸 정다운이라는 사람에게 경이로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정다운, 너는 여기 계속 남아 줘야겠어!]
“어? 나? 내가 뭘 했다고?”
솔리아의 돌발 행동에 정다운은 정다운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저분 갑자기 왜 저럼?]
“내 말이! 언제는 하룬에 불 꺼지기 전까지 던전 공략해야 된다면서?”
[그러게요. 최대한 빨리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방해를 한데요?]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마침 정다운은 막 호수 안으로 발을 들인 참이었다.
하지만 진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갑자기 솔리아가 자신을 잡기 위해 거대한 손을 뻗고 있었다.
[크르렁! 피해라! 저 손에 잡혔다간 끝장이다! 지금 저분에게 잡혔다간 네 잘난 흙 뭉치기나 골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그때 루갈이 다급한 모습으로 다가와 정다운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솔리아를 올려다보며 간곡히 부르짖었다.
[솔리아 님! 멈춰 주십시오! 도우미가 던전 공략에 개입하는 건 규칙 위반이란 말입니다!]
[루갈, 나를 방해하지 마! 그리고 괜찮아. 어차피 나는 다른 참가자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거니까. 내가 원하는 건 정다운 한 명 뿐이야.]
[크르렁! 절대 안 됩니다! 그러다 하룬의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란 말입니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해! 이제부터는 정다운이 없어도 충분히 다른 이들이 하룬을 공략할 수 있을 거야!]
솔리아와 루갈의 팽팽한 대치 상황에, 그 사이에 낀 정다운만 뻘쭘해졌다.
“어, 흠흠. 저기요?”
뻘쭘하게 손을 흔들어 봤자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토끼가 훈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휴우. 내가 저 마음 잘 알지. 괜히 오류종자 하나 때문에 도우미들끼리 서로 힘들게 사네요.]
한 도우미는 자신의 던전을 빨리 공략해야 되는 입장이고.
다른 도우미는 던전이 빨리 공략되면 자신의 관할로 오류종자가 또 넘어올까 봐 노심초사였다.
“응, 그럼 수고들 하고. 나는 이만…….”
꼬로록.
[안 돼! 넌 이제 아무 데도 못 가!]
옆에서 눈치를 보던 정다운이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가자, 솔리아가 깜짝 놀라며 손으로 파도를 일으켰다.
푸화악!
말이 파도지, 사실상 해일에 가까운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오, 정말 숨 쉴 수 있는데!?”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으면 해일도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