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86)화 (286/393)

<던전리셋 286화>

정다운을 태운 문어 열차는 참가자들을 찾아서 세계수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진로를 방해하는 괴물도 없고, 별다른 지형지물조차 없으니 거침없이 달리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너무 아무것도 없다 보니 달리는 길이 너무 심심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정다운은 철도의 방향을 일부러 틀어 보기도 하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만들어서 여러 가지 패턴으로 문어 열차를 운전해 봤다.

그러다 운전 실력이 부쩍 늘어 버렸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토끼였다.

[히야! 님, 지금 너무 좋았음! 공중곡예 한 번만 더 해 주셈!]

“한 번 더?”

[한 번 더!]

“원한다면 소리 질러! 에오!”

[에오-!]

“아, 안 돼. 우웁.”

“우우웁…….”

비행에 익숙한 토끼와는 다르게 두 발 달린 인간들의 속사정은 좋지 않았다.

지서연과 도민준은 나란히 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꾸만 헛구역질을 했다.

반면에 정다운은 멀쩡했다.

자고로 차멀미라는 건 직접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었다.

“어? 한 명 찾았다!”

[아싸뵹!]

마침내 참가자 한명을 찾아냈다.

현재 문어 열차의 행선지는 루갈과 도민준이 나눠서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루갈이 살아 있는 참가자들의 냄새를 맡는다면, 도민준은 죽어서 약초(?)로 변한 이들의 방향을 알아내서 정다운에게 알려 주는 식이었다.

이번에 찾아낸 사람은 지서연처럼 정령들에게 죽은 시체였다.

[앗, 꽃향기가 나는 시체임! 아직 되살아나기 전인가 봐요!]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까 일단 실어 두자. 거미줄로 묶어 두면 안 떨어지겠지?”

정다운은 문어 열차 뒤에 광산 수레를 하나 더 연결시켜 화물칸을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시체를 단단히 고정시켜 놓고 다시 열차를 출발시켰다.

“좋았어! 다시 출발!”

“우웁.”

“우우욱.”

시간이 갈수록 화물칸에 들어가는 시체가 하나둘 늘어났다.

그러는 중에 드디어 살아 있는 참가자들도 발견하기 시작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어? 호열 형님?”

[오? 근육쟁이 노총각이 아직도 살아 있었음? 명도 질기시네!]

“크아아! 너 죽고 나 살자! 어?”

마침 정령들의 아가리를 힘으로 찢어 버리는 중이던 구호열은 저 멀리 하늘에서 날아오는 은하철도 99, 아니 문어철도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열차 안에는 한 손으로는 부유석을 설치하면서, 다른 한 손을 신나게 흔들고 있는 반가운 얼굴이 타고 있었다.

“형님!”

“저, 정다운?”

맙소사! 신기루도 헛것도 아니었다!

“다운아-! 으허헝! 이제야 살았다!”

울먹거리며 정다운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구호열은 온 몸이 만신창이였다.

상처 같은 건 재생하면 그만이었지만, 그의 옷과 갑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격을 당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구호열이라도 홀로 싸우는 일은 역시 버거운 법이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타앗!

[앗! 지옥에서 돌아온 서연 아씨 출동인가요!]

차멀미로 고통받던 지서연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턱대고 문어 열차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움직임이 전보다 훨씬 가볍고 날랬다.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어? 내 몸이 왜 이렇게 가볍지?’

루갈이 심드렁하게 설명했다.

[크릉. 숲의 종족들은 보통 인간보다 몸무게가 절반이지. 따라서 민첩성이 대폭 올라간다.]

‘……!’

착!

얼떨결에 허공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며 깃털처럼 착지한 지서연!

그 모습에 정다운과 토끼가 잽싸게 종이에 ‘10점’을 써서 들어 보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다이어트 효과 보소!]

“역시 고기를 포기하니까 저렇게도 되는구나!”

“뿌우웃!”

몸무게가 절반이 되면서 몸놀림이 빨라졌지만, 그만큼 전보다 공격에 무게가 덜 실리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지서연의 주 무기는 무게보단 빠름의 미학을 가진 ‘창’이었다.

“하앗!”

지서연은 날랜 몸놀림으로 구호열을 공격하는 정령들을 향해 제국창술을 펼쳤다.

그러자 후욱, 하고 창끝에서 향긋한 벚꽃 향기가 살랑거리며 노총각 구호열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헉? 며칠 안 본 사이에 서연 씨가 훨씬 아름다워지셨어……!’

슈슉! 촤아악!

리듬체조를 추듯이 우아하고 경쾌한 템포로 정령들 사이를 종횡무진 하는 지서연!

세상에나! 전투하는 모습이 저리 아름다운 사람이 또 있을까?

‘아아아, 멋있다! 아름답다!’

구호열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서 알록달록한 꽃들까지 돋아나자, 그 모습은 마치 순정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

“우웨에엑.”

“…….”

순정만화 여주인공이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네발로 엎드려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차멀미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저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해 주려 하다니!

저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분이라 그런지 구토에서조차 꽃향기가 나지 않은가!

“지서연 씨-!”

격한 감동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 구호열.

그런데 그의 앞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려 왔다.

꽃향기를 흩날리며.

“저도 돕겠습니다!”

“저도!”

“……!”

어느 샌가 화물칸에 타고 있던 시체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숲의 종족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몸놀림이 가벼우며 우아하고 경쾌했다.

그리고.

“우웨에엑!”

우아하게 나란히 엎드려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물론 꽃향기가 났다.

절대…… 더러운 광경이 아니었다.

“흠. 내가 너무 심했나?”

[그런 듯요.]

앞으로는 공중곡예를 조금 줄여야겠다며 반성하는 정다운이었다.

그래도 다들 고생해 준 덕분에(?) 운전 실력은 상당히 늘었다.

덕분에 직진과 회전 등 패턴 몇 개를 만들어서 그림벨에게 운전을 대신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 상태였다.

어쨌든 모두의 도움으로 구호열을 죽이려 했던 정령들은 금방 정리되었다.

정다운은 사람들이 늘어나자 화물칸 뒤에 광산 수레를 더 추가해서 승객석을 만들어 주었다.

“자, 다시 출발!”

움찔.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모든 이들이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견은 없었다.

드르르르르……!

“……!”

그들을 모두 태우고 또다시 기세 좋게 하늘을 내달리는 문어 열차!

승객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표정을 지은 채 빨리 다음 참가자들을 찾아내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하는 순간 모든 울분과 스트레스를 정령들에게 폭발시켰다.

“죽어!”

“키야악!?”

“어딜 도망가, 이것들아! 우웨웩.”

영문도 모르고 화풀이 대상이 된 정령들.

그리고 승객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날수록 정령들을 상대하는 것도 점점 수월해져 갔다.

그렇게 정다운은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전부 찾아낼 수 있었다.

류승우만 제외하고.

그리고 정리하자면, 용의 사도들 중에서 숲의 종족이 된 사람은 지서연과 윤진수 단둘이었다.

윤진수가 숲의 종족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은 바로 또래 친구인 오동민이었다.

“진수야아! 앞으로 너 고기도 못 먹고 너 어떻게 하냐아! 으허헝! 고기를 못 먹게 되다니-!”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는 오동민을 보며 윤진수가 허탈하게 대꾸했다.

“동민이 형, 걱정해 주는 건 참 고마운데, 괴물 씹어 먹으면서 말해 봤자 별로 공감이 안 가는데…….”

우걱우걱!

와드득, 까드득!

오동민은 분노에 차서 정령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건…… 진수 너의 복수다! 송곳니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 줄게!”

“뭐, 고맙긴 한데……. 그래도 송곳니는 안 먹는구나. 다 먹는 줄 알았네.”

“응. 전에 목에 걸려서 한참 고생했거든.”

“그래도 시도는 했었구나…….”

풀 뜯는 숲의 종족과 괴물을 씹어 먹는 ‘인간’ 사이에 참된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   *   *

[와, 저게 말이 돼?]

솔리아는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정원사’의 권능.

낙원의 주인이자 정원사 솔리아는 세계수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어디에서든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능력 덕분에 그녀는 정다운이 만들어 준 거대한 침대에 누워서 정다운이 세계수 곳곳을 누비며 참가자들을 차곡차곡 모아 가는 과정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네. 아무리 루갈의 도움이 있었더라도 사막보다 길 찾기 어려운 세계수 안을 저렇게 종횡무진 하다니.]

혀를 내두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솔리아.

스테이지-6을 관리하는 도우미로 지내 오면서 여러 ‘특별한 참가자들’을 봐 왔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이 하얀 세상은 탁 트인 시야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세계수의 뿌리만큼이나 복잡하고 구불구불했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말 사막을 횡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길을 찾게 되더라도, 인간인 이상 체력의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체력이나 속도를 올려 주는 스킬이 있는 참가자들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낙원을 공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여기서 ‘탈것’을 만들어 내다니.]

세상 어느 참가자가 광산에서나 쓰는 조악한 수레와 철도들을 모아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낼까?

그리고 저렇게 세계수 안을 제 앞마당처럼 횡단할 수 있을까?

[원래 이러라고 있는 곳이 아닌데…….]

헛웃음을 터뜨리는 솔리아의 얼굴에는 어쩐지 기특해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종말의 용에게 포섭된 도우미들과는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어쩌면 이것도 세계수의 뜻일까? 아니면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낸 기적?]

워낙 오랜 세월을 세계수에 깃들어 있다 보니 혼잣말만 늘었다.

마치 자신의 혼잣말을 세계수든 누구든 들어 줄 것 같아서 생겨난 버릇이었다.

[하지만 정석적으로 공략하는 인간들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솔리아는 정다운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특별한 참가자들’을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바로 휴이 번스타인과 류승우.

마녀의 꿈을 꾸었던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   *   *

콰득!

류승우가 드디어 마지막 정령의 목숨을 끊어 내는 데 성공했다.

“후우…….”

털썩.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는 완벽한 녹초가 되어 그 자리에서 대자로 뻗어 버렸다.

‘와, 진짜 하나도 힘이 없다.’

너무 허탈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게 게임이라면 정말 완벽한 밸런스 아닌가.

정령들은 마치 류승우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의 몸에는 지금 단 한줌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어.’

류승우는 쓰러진 채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파직!

그의 손에 머물러 있던 정전기 수준의 미약한 뇌전이 잠깐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때였다.

파아앗!

‘응?’

쓰러진 그를 중심으로 넓게 흩뿌려져 있던 정령들의 사체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은.

파앗! 파아앗!

정령들이 다시 마법진에서 나타났던 때처럼 형형색색의 빛의 구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구슬들이 류승우의 앞에 하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류승우는 힘이 빠져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그 빛을 움켜쥐었다.

*   *   *

류승우를 보며 솔리아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곳에서 누가 죽고 누가 되살아나든, 이곳은 자격을 지닌 자를 가려내는 곳이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솔리아는 문득 정다운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