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82)화 (282/393)

<던전리셋 282화>

*   *   *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꿈을 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혼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가축과 식물을 기르며 사는 한가로운 귀농 라이프.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까지 옆에 함께 있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정다운은 그 꿈을 다 이루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새하얀 땅과 그 위에 손수 지은 ‘축구장처럼’ 큰 집.

그리고 그 앞에는 ‘놀이공원만큼’ 드넓은 앞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가축과 식물’까지 길렀다.

다만, 식물이야 그렇다 치고.

그 가축이라는 것들이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정령들이라는 게 조금 문제였지만, 정다운은 넓은 아량으로 녀석들을 받아들였다.

“가축은 역시 야생적이어야 제맛이지. 반려동물처럼 손 달라면 손 주면 재미없잖아?”

크르륵! 캬오오!

“응. 나도 사랑한다, 애들아. 망령석 먹을 정령 손?”

끼룩?

솔리아가 꺼낸 정령들은 사납고 거칠었지만, 정다운을 딱히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아이들은 이미 자신을 소환한 인간들을 죽이고 자유를 얻었어. 증오의 대상이 사라졌으니 굳이 널 공격할 이유가 없어. 심기를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크으, 역시 가축으로 딱이네! 그 정도면 소나 말이나 마찬가지잖아?”

솔리아의 설명에 정다운은 쾌재를 불렀다.

그 말에 솔리아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을 감히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정령은 자유로운 존재야.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고!]

“그런 식이 어떤 식인데? 그런 말은 오히려 소나 말한테 실례 아냐? 너는 소나 말이 부끄러워?”

[어? 아, 아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럼 소랑 말한테 사과해.”

[사, 사과를? 지금?]

정다운의 말에 제대로 반박도 못 하고 당황하는 솔리아였다.

정다운은 뻔뻔했다.

“응. 지금 여기서.”

[소와 말아…… 미, 미안해.]

3미터의 거인이 우물쭈물 사과를 하더니 부끄러운 표정으로 소파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처럼 얼굴에 홍조가 생기지는 않았다.

솔리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눈동자까지도 하얀색인 조각상 같은 미녀였다.

어떻게 보면 마치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연필 스케치 같은 존재였다.

부끄러워하는 것도 잠시, 정령들을 대표해서 솔리아가 다시 정다운을 꾸짖었다.

[아무튼! 정령들을 감히 소유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정령들은 어차피 세계수 안에서만 실체화가 되니까!]

“오케이. 그럼 이 안에서만 키우면 된다는 거잖아?”

애초에 정다운은 정령들을 이용해서 어떤 구체적인 이득을 취할 마음도 없었다.

그냥 앞마당에 가축이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만족했다.

“목장이라면 역시 넓을수록 좋겠지?”

처처처처척!

[이쯤 되면 방목 아니야?]

지켜보던 솔리아가 어처구니없어했다.

놀이공원처럼 드넓은 마당 위에 또다시 엄청나게 큰 정령 목장이 탄생했다.

그래 봐야 물론 흙벽으로 울타리를 두르는 게 전부였지만, 그 넓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령들은 딱히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날개가 달린 정령 놈들이 문제였는데, 정다운은 그 녀석들을 위한 거대한 새장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진짜 쇠창살로 만든 건 아니고, 부유석을 쇠창살처럼 촘촘히 쌓아 올렸다.

창살의 틈을 녀석들의 덩치보다 약간 좁게 만들었더니, 시야는 탁 트이면서 밖으로 나가기엔 어려웠다.

그래 봐야 정령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수고 나올 수 있었다.

콰르르!

“아, 진짜! 그만 좀 부수라고!”

끼룩?

사실 인간의 영혼을 먹는다는 저 불타는 익룡이 제일 골칫덩이였다.

녀석은 결국 부유석 속에 망령석이 들어 있다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틈만 나면 계속 부유석 옆에 꼬옥 붙어 앉아서 부유석의 표면을 반복해서 핥았다.

“야, 핥지 마라?”

할짝 할짝.

정다운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녀석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애초에 말을 들을 놈이 아니었다.

“핥지 말라고 했다?”

할짝 할짝.

녀석은 결국 못 참고 입을 아앙 벌려 부유석을 통째로 씹어 버렸다.

와그작!

“야!”

“끼루룹?”

손톱만 한 망령석을 먹기 위해, 입 한가득 흙을 머금게 된 익룡의 눈이 순간적으로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바로 뱉지는 않고 입을 우물거려 망령석만 얼른 녹여 먹고는 주변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슬그머니 도망갔다.

그리고.

꿰엑! 꿰엑!

구석에서 토악질을 하는 익룡의 뒷모습을 보며 정다운이 혀를 찼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진짜 미련한 녀석이라니까. 쟤는 왜 자꾸 흙을 먹어?”

그래도 한 번 저러면 한동안은 잠잠했다.

토악질을 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아가니까 제 발로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가는 건 좋았다.

결국 애꿎게 훼손된 울타리만 불쌍할 뿐이었다.

이쯤 되니 정다운은 목장을 따로 관리할 인재가 필요해졌다.

흙을 잘 뭉칠 수 있으면서도, 부유석만 만들어 놓으면 소지품에서 재깍재깍 꺼낼 수 있는 인재.

“그림벨 1호기 나와.”

“먀옹?”

“널 앞으로 목장 관리인으로 임명한다. 앞으로는 네가 책임지고 보수해.”

“먀앙.”

그나마 다행인 일은 모두와 떨어진 하얀 세상에서도 그림자 하인들만큼은 여전히 정다운과 함께였다.

이게 다 그림자 비술이 온전한 스킬로 변한 덕분이었다.

그림자 하인들은 어디에 있더라도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그의 그림자 안에서 소환되었다.

그렇게 정다운이 세계수 안으로 들어온 지 이틀쯤 지났을 때.

“휴, 이제야 내 드림 하우스가 완벽해졌구나.”

그는 비로소 완성된 자신의 집의 정경을 멀리서 구경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솔리아에게 맞는 소파와 침구들을 만들어 주다 보니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긴 했지만, 아무튼 완벽했다.

……라는 생각은 잠깐이었다.

“아니, 잠깐. 솔리아?”

[왜?]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꺾어 솔리아를 올려 보며 물었다.

“어쩐지 너 처음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이야”

[아니. 기분 탓이 아니야. 세계수 안으로 들어오는 정령들이 많아질수록 내 몸도 같이 커지거든. 오늘 갑자기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아.]

“너 성장기였냐……!”

정다운은 크게 당황했다.

이럴 수가! 계산이 틀렸다!

솔리아의 키는 어느덧 4미터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소파도 침대도, 전부 다시 만들어야 했다!

“아니지?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커진다는 말이잖아? 어디까지 커지는 거야?”

[나도 몰라. 참가자들이 정령들을 죽이면 다시 줄어들기도 해.]

“…….”

[이래서 내가 딱딱한 바닥이 편하다고 말했잖아.]

거대해진 솔리아가 쪼그려(?) 앉아 미안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정다운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좌식으로 하지 뭐. 소파 대신 방석으로 하고. 침대는 매트리스만 크게 만들어 줄게. 아, 그리고 그렇게 커진 김에 부탁 하나만 하자.”

[……?]

갑자기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정다운의 눈이 초롱초롱해지자 의아해하는 솔리아였다.

정다운은 씨익 웃으며 소지품을 열었다.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었어.”

와르르.

그의 앞에 무간도 광산에서 잔뜩 챙겨 둔 철근들이 쌓여 갔다.

아니, 철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 철근들은 광산 철도를 이루는 부속품일 뿐.

정다운은 2줄의 철근 사이에 걸쳐 있던 침목까지 꺼낸 것이다.

[이건 광산에서나 쓰는 철도잖아? 이걸로 뭐 하게?]

솔리아가 무간도의 광산 철도를 알아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공중 계단! 공중 계단!”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다운이 부유석으로 길게 이어진 오르막길을 만들고 있었다.

오르막길은 다시 내리막길이 되고, 그 길을 따라서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그러다 옆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기도 하고 또 오르막길에 내리막길…….

[앞마당에 뭘 만드는 거야?]

“롤러 코스터.”

[그게 뭔데?]

“있어. 좋은 거.”

정다운은 해맑게 웃으며 부유석을 계속 길게 깔아 나갔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서는 그림벨이 부유석 위에 철도를 까면서 졸졸 따라다녔다.

문제는 둥글게 한 바퀴 도는 길이었다.

철도는 부유석이 아니라서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가뜩이나 무거운 철도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 방법이 없었다.

잠시 고민한 정다운은 개미의 침을 이용해 철도의 양옆에 다른 철근을 이어 붙여서 ㅁ자 구조로 부유석을 한 바퀴 둘렀다.

그러자 고정 성공!

“오케이! 롤러코스터 완성!”

그렇게 소박한(?) 구조의 롤러코스터 레일이 완성되었다.

순서는 대충 이러했다.

일직선으로 달리는 평탄한 길 -> 오르막길 -> 내리막길 -> 한 바퀴 위아래로 돌고 -> 평지에서 반원을 그리다가 -> 또 오르막길 – 내리막길 -> 또 한 바퀴 돌고 -> 다시 평지에서 이동하다가 -> 처음으로 이어짐

정다운은 완성된 ‘공중 철도’ 앞에서 몸서리 칠 정도로 설레어했다.

“와, 이게 진짜 된다면 정말 대박이겠는데.”

[그래서 이게 뭐냐니까?]

솔리아는 정다운이 영혼의 힘(망령석)을 이용하는 모습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롤러 코스터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정다운도 기대심 가득한 표정으로 솔리아를 쳐다봤다.

“이게 뭔지 보여 줄게. 그런데 그러려면 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내 도움?]

정다운은 철도 위에 광산 수레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그림벨을 다소곳이 앉게 한 후, 거미줄로 둘둘 감아 안전벨트를 채웠다.

얼추 준비가 다 되자 솔리아에게 말했다.

“자, 이거 손으로 밀어. 최대한 세게.”

[이걸 밀라고? 왜?]

“먀옹?”

솔리아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광산 수레에 탄 그림벨도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한번 밀어 봐.”

[……?]

정다운의 재촉에 솔리아는 시키는 대로 광산 수레를 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거대한 손에 잡힌 광산 수레는 마치 장난감 자동차처럼 귀여웠다.

정다운이 옆에서 신호했다.

“옳지. 잘한다. 조심조심 수레가 철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방향 잘 잡고……. 밀어!”

[으이차!]

드르르르륵!

정다운의 신호에 맞춰 솔리아의 손에서 광산 수레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너무 힘이 세서 철도 밖으로 호쾌하게 튕겨 나갔다.

“니야옹!?”

쿠당탕!

처참하게 바닥을 뒹구는 광산 수레 안에서 그림벨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으아, 아깝다! 자, 다시 해 보자!”

정다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광산 수레가 고장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롤러 코스터 아래를 전부 구름 흙을 깔아 푹신하게 만든 뒤 솔리아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지금 너무 좋았어. 이번엔 지금보다 좀만 살살 밀어 보자.”

[……?]

여전히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순순히 도와주는 솔리아.

그 후로도 실패가 계속되었다.

[어이차!]

드르르륵! 쿠당탕!

“미야악!?”

퍼펑!

“다시! 좀만 더 살살!”

[으라챠!]

드르르르르르륵! 티용!

“니야……!”

애꿎은 그림벨만 자꾸 펑펑 터져 나갔다.

나중엔 정다운도 미안해져서, 그림자 하인들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광산 수레에 태웠다.

그런데 너무 똑같이 생겨서 순서가 헷갈리는 게 문제.

고민 끝에 정다운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고양이가 타는 걸로 하자.”

“냐앙?”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였다.

녀석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시켜 봤자, 전부 같은 것만 내니까 계속 비겼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그런 무수한 희생과 시도 끝에 정다운은, 아니, 솔리아는 결국 해내고 말았다.

[에잇!]

드르르르르르르……!

거침없이 롤러코스터 레일을 따라 굴러가는 광산 수레!

완벽해진 솔리아의 힘 조절이 광산 수레를 모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한 바퀴 돌아가는 길까지도 완벽하게 따라가는 데 성공했다!

“우와아! 됐다! 이제 나도 탈 수 있겠어!”

[우와아! 해냈다!]

환호하는 정다운과 함께 솔리아도 덩달아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머리 위에서 토끼도 비명을 질렀다.

[와, 이 인간 봐라? 한동안 안 보이더니 여기서 또 뭘 만들고 있는 거임!]

“오, 어서 와! 너도 타 볼래?”

[앗?]

오랜만에 나타난 토끼였지만, 정신 차려 보니 토끼는 어느새 광산 수레에 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인자하게 웃으며 토끼에게 헬멧을 씌워 주는 정다운.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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