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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73)화 (273/393)

<던전리셋 273화>

“뇌전!”

콰르릉! 콰쾅!

류승우는 홀로 대모험을 하고 있었다.

푸른 섬광이 터지고, 그의 움직임에 뇌전으로 된 잔상이 남을 정도로 화려하고 놀라운 전투였다.

“뿌우!”

수많은 괴물 문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축구공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놈들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서 류승우는 애를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무장을 한 문어 전사들뿐이었다.

그다음엔 거대한 대왕문어였다.

그런데 마법 주문서를 사용한 ‘마법 문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난이도가 대폭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시점을 말하자면 ‘영역 제한’이 일어나고 나서부터 놈들의 숫자가 본격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지능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마법 문어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놈들은 자신들의 서로 다른 마법들을 전략적이고 전술적으로 응용하며 덤벼들었다.

마법 병단.

놈들은 그야말로 군대였고, 그 안에 서열까지 존재할 정도였다.

명령을 내리는 상관과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부하들의 팀워크는 정말 놀라웠다.

놈들은 숫자가 아무리 많아져도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류승우를 압박했다.

좁은 틈으로도 숨을 수 있는 물렁한 몸은 매복에도 유리했다.

하지만 진짜 류승우가 애를 먹기 시작한 순간은 바로 그의 앞에 주문서 2장을 찢은 문어들이 나타났을 때부터였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2룬 문어’.

“뿌우!”

화르륵! 스팟!

“맙소사…….”

류승우는 당황했다.

몸에 불이 붙은 채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마법 문어가 나타난 것이다.

한 몸에 화염의 룬과 속도의 룬을 동시에 새긴 것 같았다.

심지어 얼마 후엔 힘의 룬과 속도의 룬을 동시에 새긴 문어도 나타났다.

“뿌우!”

콰쾅! 쾅!

류승우는 ‘문어는 다리가 8개’라는 뻔한 상식이 이렇게까지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8개의 다리가 제각각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데다가 날카로운 무기까지 잔뜩 들고 있으니, 한 대라도 맞았다간 뼈가 부러질 기세였다.

‘이럴 거라 미리 상상하긴 했지만,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버거운데?’

류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나마 똑같은 룬을 동시에 중첩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힘의 룬 2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면, 그건 진짜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2룬 문어’들을 직접 상대하던 중에, 엄청나게 억울하고 짜증 나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건…… 너무 치사하잖아!”

그는 분노하고 말았다.

사용하면 체력의 33퍼센트를 앗아 가는 마법 주문서는 동시에 3장을 쓰게 되면 체력이 1퍼센트밖에 남지 않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 계산대로라면 분명 2룬 문어들은 처음부터 체력이 66퍼센트가 떨어진 채로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직접 싸워 보니…….

문어들은 체력을 뺏기지 않았다.

“이건 사기야! 왜 문어들은 주문서를 사용해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 거냐고!”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놈들이 주문서를 한 장만 사용했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2장이나 사용했더니 그 차이를 바로 눈치챈 것이다.

그가 단톡방을 통해 이 사실을 모두에게 공유하자, 얼마 후 알파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한 일입니다. 참가자들은 마력이 없으니 체력을 빼앗기는 겁니다. 하지만 던전의 괴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몸 안에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

애초에 마법 주문서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마력을 지닌 ‘마법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때문에 ‘마력’만 있다면 주문서를 몇 장이라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예부터, 마력이 없는 하찮은 존재들이 마법을 쓰기 위해선 산 제물을 대가로 바쳐야 했습니다. 마법 주문서를 찢는 행위는 바로 산 제물을 죽이는 의식을 따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진짜 산 제물의 역할을 종이 한 장으로 대체하기엔 안에 담긴 생명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종이를 찢는 순간 주문 시전자의 생명 에너지가 대신 빨려 나간다는 원리였다.

류승우는 분노했다.

“그 말은 앞으로 3룬, 4룬 문어도 점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잖아? 무슨 RPG게임도 아니고, 왜 점점 레벨이 올라가는 거냐고!”

물론 이유야 뻔했다.

<낙원의 영역이 제한되면서 넓게 퍼져 있던 문어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우, 차라리 여기가 진짜 컴퓨터 게임이었다면 편했을 텐데. 다치면 체력을 올려 주는 물약이라도 마시면 됐을 테니까.”

류승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쓸어냈다.

말해 뭐 하랴.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다치면 당연히 상처가 붓고.

곪아서 진물이 터지며.

심한 경우 고열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꼴로 괴물들과 싸우면 전투력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그 당연한 사실은 류승우라도 예외가 없었다.

그 또한 맞으면 아프고, 칼에 베이면 피가 나는 인간이었으니까.

아무리 강해도 던전에선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끄응. 나는 어찌어찌 버티겠지만……. 이거 진짜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이 와중에도 동료들을 걱정하는 류승우였다.

더 나아가서는 무간도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았던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후우, 이쯤에서 좀 쉴까.”

류승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땅굴 구석을 찾아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다운이 무간도에서 몇 그릇 챙겨 준 ‘족발 세트’를 주섬주섬 꺼내 먹기 시작했다.

“이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마법 주문서가 없을 땐 이걸로 버틸 수 있으니…….”

정다운의 족발 세트를 같이 먹으면 무려 근력 15퍼센트와 민첩성 15퍼센트를 올려 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 효과가 마법 주문서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지속 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음식들이 다 소화가 되기 전까지, 약 3시간 정도는 효과가 꾸준히 유지됐으니까.

심지어 마법 주문서와 동시에 사용도 가능했으니, 지금 낙원 곳곳에는 정다운에게 족발을 포장받은 참가자들이 그 특혜를 누리고 있을 터였다.

“후우, 다 먹었으니 다시 움직여 볼까…….”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괜히 이 구석진 곳에서 포위당하기라도 했다간 진짜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고생이 진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   *

정다운도 고생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자아, 구름 잉크를 골고루 바른 목판 위에 종이를 살포시 올립니다-.”

심호흡 한 번에.

숨을 흡, 멈추고.

핸드폰 액정 필름을 붙이듯이 신중하게.

착!

“후우, 오케이. 이제 종이를 흔들리지 않게 잘 고정시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다운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자, 그리고 대망의! 종이 위를 부드러운 천으로 살살 골고루 문질러 줍니다!”

살살 살살.

문질문질! 문질문질……!

혼자 말하고 혼자 일하는 정다운.

그 손길이 갓난아기를 어루만지듯이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그림자 하인들이 이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한 번만 제대로 성공하면 앞으로 대신 일해 줄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종이를 살살 떼어 내기만 하면? 짠!”

스을쩍!

정다운이 두 손으로 당당하게 복제 주문서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 구름 잉크로 깔끔하게 찍혀 나온 룬 문자가 보랏빛으로 예쁘게 반들거렸다.

바야흐로 복제 마법 주문서 첫 번째 에디션이 찍혀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야! 봤어? 완전 똑같네! 그치? 토끼야, 봤냐! 아…….”

시무룩.

평소대로 토끼에게 자랑을 하려던 정다운은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토끼는 이제 곁에 없었다.

‘그곳은…… 편안하니?’

아련.

[아놔! 자꾸 아련한 귓말 보내지 말라고요! 누가 보면 나 죽은 줄 알겠네! 가뜩이나 심심해 죽겠는데! 난 여기서 바하무트랑 그림자 고양이나 길들이고 있다고요! 낚시도 아니고 이게 뭐야!]

토끼가 버럭 하며 귓말을 보내왔다.

갑자기 따발따발 시끄러워졌다.

[그나저나 잘됐어요? 어떻게 됨?]

“흠흠. 일단 여기까지는?”

헛기침을 하며 정다운이 다른 이들을 돌아보자, 토끼만큼의 화끈한 리액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놀라는 표정들이 보였다.

“오, 정말 감쪽같군요. 한 폭의 판화 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거 진짜 되긴 하는 겁니까요?”

휴이는 신중했고, 오창석은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루갈과 알파는 달랐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수준을 넘어서서 종이 위에 새겨진 분명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크릉. 이럴 수가……. 진짜 마법 주문서처럼 종이에서 마력이 느껴지는군.]

<놀랍군요. 구름이 머금고 있던 마력이 제대로 스며들었습니다. 이런 원시적인 방식의 연금술을 보게 될 줄이야.>

“원시적이라니 너무하네. 어차피 연금술이라는 것도 마법 재료들을 곱게 빻거나 섞고 끓이고 하는 거라며?”

<물론 그렇습니다만. 연금술에는 언제나 마력의 흐름을 인도하는 술식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이건…….>

“복사본이라 상관없지.”

<…….>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는 정다운.

알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마법이 고도의 발전을 이루기 전, 아주 오랜 옛날에 살았던 원시인들이라면 분명 이런 느낌으로 연금술을 연구했을 터였다.

굳이 명명하자면, 이건 이른바 ‘고대의 연금술’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게다가 이 복제본에 찍혀 있는 구름 잉크에는 원본보다 더 많은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연보라색이었던 구름의 색깔이 진한 보라색이 되었을 정도로 농도가 아주 진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진짜 마법이 실현될지는 직접 찢어 보기 전까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들으셨죠?”

움찔?

오창석은 정다운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쳐다보자 몸을 흠칫 떨었다.

“헛! 이, 이게 왜 내 손에!?”

정신차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손에 복제 주문서가 들려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앞에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다운이 있었다.

“촌장님, 괜찮아요. 다 잘될 거니까 걱정 말고 찢으세요. 족발이라도 드실래요?”

“아, 아뇨. 괜찮습니…….”

“아뇨. 그래도 배부를 때까지 몇 입이라도 더 드시고 누워서 푹 쉬세요. 주문서의 효과를 보려면 상태창 수치를 전부 100퍼센트로 맞추고 싶으니까요.”

“……예. 먹겠습니다.”

사양은 사양이었다.

정다운의 말을 거역하기엔 그동안 얻어먹은 밥이 너무 많았다.

이래서 남한테 함부로 밥 얻어먹지 말라고 하나 보다.

이건 마치…… 밥상머리에서 할머니가 먹으라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결국 어떻게든 꾸역꾸역 족발을 입에 처넣고, 강제적으로 누워서 쉬어서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그럼 찢겠습니다.”

찌직……!

오창석 촌장은 눈물을 머금고 복제 주문서를 찢었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특히 루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번쩍!

“……!”

그가 눈을 부릅떴다.

복제 주문서가 반으로 찢겨지는 순간 룬 문자가 환하게 빛을 뿜어낸 것이다.

진짜 주문서처럼!

그리고 그 보랏빛 문자가 오창석 촌장의 손을 타고 빠르게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등을 타고, 팔등을 지나 어깨까지!

파아앗!

마법 문신(Magic Tattoo)이 새겨졌다!

모든 룬 문자들이 오창석의 몸에 무사히 안착되었을 때, 그의 몸에서 마법의 불길이 타올랐다.

화르륵!

“오오오! 진짜 발동할 줄이야!”

“……!”

“오, 대박! 성공이다!”

[크르릉! 성공이라니!]

<진짜 성공할 줄이야!>

모두가 뛸 듯이 놀랐다.

어째 원본 주문서에 비하면 화력이 조금 시무룩 약해진 느낌이었지만, 발동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때 갑자기 정다운의 앞으로 반가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번쩍!

<최초 업적 달성!>

“마법 주문서 복사!”

마법이 새겨진 룬 주문서를 무단 복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영악하고 비열한 행동에 던전이 치를 떱니다!

복제 주문서의 격이 대폭 낮아지면서, 효과가 절반만 적용됩니다.

- 보상 : 복제 주문서 발동 시 체력 대신 포만감이 떨어집니다.

“대박! 진짜 대박이다!”

업적을 확인한 순간 정다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던전이 치를 떨든 말든, 마지막 줄이 확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정화’ 스킬은 외부 요인에 의해 체력이 떨어지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하지만 포만감이라면 어떨까?

“토끼야! 봤어? 아.”

또 시무룩.

‘그곳은…… 편안하니?’

[야잇! 아까부터 진짜! 나 안 죽었다고요!]

아련한 정다운의 귓말에 또 버럭 하는 토끼였다.

“상태창!”

오창석이 재빨리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이름 : 오창석

체력 : 100/100 (%)

포만감 : 50/100 (%)

꼬르륵!

기다렸다는 듯이 뱃속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

“오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다운 씨! 체력이 아니라 포만감이 50퍼센트 떨어졌습니다!”

“아싸, 진짜였네! 그럼 나도 해 봐야지!”

이 기세를 놓칠 수 없었다!

깜짝 놀란 오창석의 말에 정다운이 부랴부랴 목판 위에서 두 번째 복제 주문서를 더 찍어 냈다.

그리고 호쾌하게 찢었다!

쫘아악!

번쩍!

그 순간 룬 문자가 빛을 발했고. 

꼬르륵-!

호쾌한 고동 소리가 뱃속에서 울려 퍼지며 그의 온 몸이 화르륵 불타기 시작했다.

“됐어!”

그 순간 정다운의 미소가 진해졌다.

이 복제 주문서를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주문서를 찍어 낼 종이는 많았다.

아주 많다 못해 코도 풀고, 화장실 휴지로 쓰고 버릴 정도로 넘쳐흐르는 게 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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