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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63)화 (263/393)

<던전리셋 263화>

“크헉! 마녀!”

휴이 번스타인이 잠에서 깨어난 건 그쯤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닦을 새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부터 경계했다.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늑대 같은 눈빛!

그런데 그 눈빛이 1초도 안 되서 파르르 떨렸다.

“우와아아!”

“……?”

‘내가 잠이 덜 깼나?’

그는 마른세수를 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요! 일어나셨음?]

때마침 지나가던 토끼가 그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휴이는 당황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 이게 무슨……?”

[무슨 난장판이냐고요? 지금 족발이랑 비빔 막국수라는 걸 만들겠데요.]

“그게…… 뭡니까?”

독일인에겐 조금 생소한 메뉴였다.

그런데 재료만큼은 몹시 눈에 익었다.

정다운이 소지품에서 꺼낸 것은 바로 밀가루 반죽 같은 하얀색 덩어리였으니까.

“잘됐다. 저번에 칼국수 만들고 슬러그 반죽이 많이 남았었는데. 이번에 다 써버려야지.”

‘슬러그?’

‘슬러그라고?’

정다운이 중얼거리는 말에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슬러그라니?

분명 잘못 들었을 것이다.

에이, 그럴 리가.

슬러그라면 부유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끈적끈적한 검푸른 빛 점액질 위에 포도알처럼 물렁거리는 녹색의 핵이 박혀 있는 괴물이었다.

한 놈만 있으면 비교적 상대하기 쉽지만, 주로 여럿이 뭉쳐 있는 군집체로 돌아다녀서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저것을 보아라.

끈적!

정다운의 손에 들린 건 그냥 찰지고 하얀 반죽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슬러그에 정화 스킬을 걸면, 달걀처럼 투명한 점액질에 노란 핵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슬러그에서 핵을 제거한 뒤 곱게 간 쌀가루를 섞고, 반죽을 두 손으로 쭈욱 잡아당기고 접고를 여러 번 반복하면?

탕 탕! 쫘아악!

“헉! 면이다!”

“정말로 면을 만들고 계셔!”

예외 없이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는 참가자들과 도플갱어들이었다.

그래, 족발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돼지를 그냥 삶고 튀겼을 뿐이니까.

양념과 조미료도 자연 그대로의 날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면 음식은 수준이 달랐다.

여긴 던전이었니까!

‘말도 안 돼! 던전에서 진짜 면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그랬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탕 탕! 쫘악!

“하!”

탕 탕! 쫘악!

“냐앙!”

장관이었다.

정다운 총 쉐프가 힘찬 기합과 함께 능숙한 솜씨로 슬러그 반죽을 쭉쭉 늘리고 털면, 그 옆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던 그림자 보조 요리사들도 똑같이 그 동작을 따라했다.

서로 한 몸인 것처럼 박자가 딱딱 맞았다.

요리가 아니라 난타를 보는 듯한 흥겨움에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발로 박자를 맞추는 사람도 있었다.

“하!”

“냐앙!”

탕 탕! 쫘악!

탕 탕! 쫘악!

“위 윌 위 윌 락…….”

깜짝?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는 사이 슬러그 반죽이 칼국수 때보다도 훨씬 가느다란 두께의 소면으로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와, 실력이 저번보다 더 늘었네. 면발 두께 얇은 거 봐라.]

지켜보는 토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력이 일취월장 하는 속도가 미쳐 있었다.

저게 반죽이 아니라 전투였다면, 던전에 첫발을 들인 초보자가 며칠 만에 류승우가 되었을 속도였다.

“좋아! 이 페이스로 계속 진행하도록!”

“먀옹!”

정다운 총 쉐프의 지시에 보조 요리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정다운은 따로 옆으로 나와서 막국수 양념을 한 바가지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으니 양도 대량이었다.

재료도 많이 필요했다.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통깨.

“다 있지!”

정다운은 가지고 있던 야채들도 골고루 채 썰어서 다 털어 넣고 양념을 힘차게 섞었다.

그리고 양념을 차갑게 하기 위해 바하무트를 불렀다.

“바하무트! 잠깐만 나와 봐!”

철커덕!

파아앗!

[주인님 부르셨나이까.]

정중히 인사하며 나타난 눈사람 바하무트의 모습에 사람들이 또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일일이 놀라기엔 많이 늦었다.

정다운이 바하무트에게 성큼 성큼 다가가며 무언가를 꺼냈다.

“잠깐만 실례 좀 하자.”

[주, 주인님? 무슨? 우워억!?]

콸콸콸!

[……!]

콸콸콸콸!

소지품에 가득 챙겨뒀던 멸치 육수가 바하무트의 하얀 눈 위로 가차 없이 뿌려졌다.

정다운은 그 육수에 젖은 눈 한 주걱을 푸욱 떠서 빨간 양념 위에 소복하게 얹었다.

“좋았어! 완벽해!”

[……주인님이 행복하시다면 됐나이다.]

흡족하게 웃는 정다운의 뒤로 바하무트가 홀쭉해진 몸을 흐느적거리며 털푸덕 쓰러졌다.

*   *   *

요리에 자신 있는 가정주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때? 대충 만든 건데도 엄청 맛있지?’

지금 정다운의 심정이 딱 그러했다.

자신은 딱 한 번만 시범을 보여줬을 뿐인데, 그걸 보조 요리사들이 고스란히 따라 해서 완벽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족발을 삶고 튀기고.

소면을 삶고 찬물에 헹구고.

모든 게 자동화!

그리고 정다운은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총 쉐프로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완벽한 황금비율의 양념으로 진정한 ‘맛’을 연성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자, 정다운이 사람들 앞에 요리를 나눠주며 당당하게 선포했다.

“외뿔 멧돼지 족발 튀김과 비빔막국수 세트입니다!”

……!

[짜잔!]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서 생색만 냉큼 채가는 토끼였다.

모자는 또 언제 바꿨는지 검은 중절모 대신 하얀 요리사 모자가 쓰여 있었다.

정다운이 커다란 족발 다리를 건배하듯 손에 들고 힘차게 외쳤다.

“자, 하나씩 들고 뜯읍시다! 입이 작으신 분들은 알아서 썰어 드시고!”

[목마르면 사이다도 있으니까 같이 드셈!]

자꾸 끼어들며 생색내는 토끼였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컵에 사이다를 따라 주었다.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눈을 꿈뻑거렸다.

입에선 한참 전부터 침이 고여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선뜻 요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만지면 이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봐.

하지만 용의 사도들은 역시 달랐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식신 오동민이 누구보다도 먼저 족발을 들고 호쾌하게 입으로 뜯었다.

그 순간.

쪼올깃!

“……!”

오동민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 한 번 씹었다.

쪼오오오올깃!

‘맙소사!’

이 식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외뿔 멧돼지의 껍데기가 이렇게나 야들야들했던가!?

일반 돼지에 비해 엄청나게 큰 외뿔 멧돼지는 껍데기도 2배 이상 두꺼웠다.

그런데 그 두꺼운 콜라겐 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와 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렸다!

아이스크림처럼!

‘말도 안 돼! 씹을 수가 없어!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니까!’

지금까지 줄곧 괴물을 산채로 씹어 먹으며 싸워오던 식신 오동민은 지난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족발의 달콤함과 짭짤한 맛에 침샘이 폭주하고 있었다.

‘역시 정다운 형이야! 전혀 변하지 않았어!’

괜히 울컥하고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스테이지-1에서 정다운과 헤어진 뒤로 홀로 이 거친 던전을 헤쳐 나온 지난 몇 개월은 어린 오동민에게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괴물의 피를 빨고 생살을 씹으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세월이 족발과 함께 사르르 입안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자신은 많이도 변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정다운은 그때 그대로였다.

“어, 어디! 비빔국수도……!”

오동민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정신도 없이 허겁지겁 비빔막국수를 한 젓가락 푸욱 떠 올렸다.

그리고 후르릅!

“……!?”

아니, 이것도?

후루룩! 짭짭!

후루룩! 꿀꺽 꿀꺽!

계속! 계속 들어간다!

매콤상큼한 소스와 쫄깃한 면발!

그 사이에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들이!

쉴 새 없이 오동민의 입 안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맛있어! 핵존맛이에요! 형!”

최고의 칭찬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격한 감동은 다른 참가자들에게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미친! 진짜 맛있어!”

“던전에서 이런 요리를 먹게 될 줄이야!”

“역시 정다운이다!”

류승우도, 휴이 번스타인도!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정다운의 이름 석 자를 연호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이들은 이 맛을 경험하지 못하는 도플갱어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초 업적 달성!]

“던전의 요리사!”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로 완벽한 조합의 요리를 구현해 냈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요리에 던전이 군침을 삼킵니다.

- 보상 1 : 족발에 풍미가 더해집니다. (맛 +10%, 근력 +10%)

- 보상 2 : 비빔막국수에 풍미가 더해집니다. (맛 +10%, 민첩성 +10%)

- 보상 3 : 세트 메뉴를 같이 먹을 시 풍미가 더해집니다. (근력+5%, 민첩성 +5%)

최초 업적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보상이 평소와는 달리 세 개나 됐다.

“뭐? 힘이 세지고 민첩해진다고?”

업적 보상을 보며 정다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이런 음식은 없었다.

음식의 풍미가 더해진다 해도,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더위 내성이나 추위 내성 같은 부가 효과일 뿐이었다.

심연의 미역국 같은 경우도 혈액 재생력이나 해독 효과였다.

그런데 이번엔 근력과 민첩성이었다.

어쩐 일로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효과가 붙은 것이다.

“혹시 세트 메뉴를 만들어서 그런가?”

원래 음식마다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실로 완벽한 조합’들이 있는 법이다.

업적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보상의 효과를 가장 먼저 느낀 건 족발 세트를 먹고 있던 참가자들이었다.

“뭐지? 몸에서 갑자기 힘이 넘치는 기분이야!”

“젓가락질도 빨라졌어!”

그것은 절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세트 메뉴 효과로 젓가락질의 속도가 정확히 15퍼센트나 빨라져 있었다.

족발을 물어뜯는 힘도 15퍼센트나 강하게 물어뜯을 수 있었다.

“우와, 이 정도면 앞으로 매일 매일 족발만 먹어야겠는데?”

[으익? 맛있긴 한데 안 질리겠음?]

“안 질려!”

정다운은 자신 있었다.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먹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흙 뭉치기보단 쉬울 것이다.

정다운은 이참에 그림자 하인들을 시켜서 족발 세트를 더 많이 만들어 소지품에 보관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바하무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주인님은 알면 알수록 역시 놀라운 분이시구나. 이런 연금술은 마녀들만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는 오래 전 마녀들의 수발을 들며 지켜봤던 수많은 마법의 묘약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묘약들도 이처럼 힘이나 속도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각성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마녀들은 죽었으나, 그 힘은 이 땅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말인가.]

바하무트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반쪽이 된 몸뚱이를 다시 복구하고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무간도에서 까마득히 아래로 떨어진 곳.

온 사방이 새까만 안개로 가득 찬 심연의 바다.

그 바다 속에는 크고 흉악한 심연어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일까?

자신은 그저 언제나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먹이를 냉큼 받아먹었을 뿐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뱃속이 울룩불룩……?

그때였다.

푸확!

“……!”

“크아악!”

갑자기 심연어의 등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사람의 손이 쑥 튀어 나왔다.

처음에는 팔 하나.

그 다음엔 또 다른 팔.

심연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 위에서 두 팔로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간신히 밖으로 빠져 나온 백발의 남자는 극도로 분노해 있었다.

“크아악! 종말의 용! 이놈이 감히 내 몸을 빼앗으려 들어!?”

파지직!

그의 눈에서 붉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꾸루룩…….

그러자 그를 삼키고 있던 심연어가 눈을 까뒤집고 천천히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생선 굽는 냄새가 풍겨졌다.

캬악?

그 냄새에 주변에 떠돌던 다른 심연어들이 동족의 죽음을 감지하고 입맛을 다시며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캬악!

캬아악!

거대한 심연어들 수십 마리가 탐욕스럽게 아가리를 벌리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도플갱어의 왕이 분노를 토했다.

“어딜 감히!”

콰르릉!

그의 전신에서 붉은 뇌전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죽은 심연어의 체력을 갈취해서 얻은 힘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의 뇌전이 주변에 가득 찬 심연의 안개에 닿자마자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녹아버렸다.

‘심연의 바다? 이런 제기랄!’

도플갱어의 왕은 자신이 떨어진 곳이 어딘지를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도 더욱 까마득한 밑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그가 독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웃기지 마! 내가 죽을 것 같으냐!”

캬아악!

그는 눈앞에서 입을 벌리고 덤벼드는 심연어의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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