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57)화 (257/393)

<던전리셋 257화>

광산이 들썩일 정도로 큰 폭발음이 들렸다.

“이, 이러다 무간도가 무너지는 거 아냐?”

구호열이 달리면서 겁먹은 얼굴로 천장을 두리번거렸다.

부유섬은 이래서 늘 불안하다.

하늘에 떠 있는 섬이라는 게 절대 현실적이지는 않으니까.

갑자기 이 모든 비현실적인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자신들은 이대로 뚝 추락할 것이었다.

어둠 속을 달리며 류승우의 눈빛이 깊어졌다.

“빨리 가죠. 늦기 전에.”

지금도 이미 많이 늦은 기분이었지만, 더 늦기 전에.

*   *   *

쿠콰콰쾅!

[크아아악……!]

무간도의 밑바닥에 푸른 하늘이 뻥 뚫렸다.

그 밑으로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종말의 용.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렸다.

[날개! 날개만 있었어도……!]

실로 원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용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억울한 이유는 이 사태를 일으킨 정다운이 하는 짓거리 때문이었다.

“공중 계단!”

처척!

정다운은 혼자만 치사하게 부유석 위에 앉아 있었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종말의 용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 올렸다.

파지직!

허우적거리던 손끝에서 한 가닥의 붉은 뇌전이 위로 뻗어 올라갔다.

이것이야말로 최후의 구명줄!

[크하아압!]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다.

그의 머리 위로 같이 추락 중이던 철근 하나.

조금 아까 정다운이 그를 방해하기 위해 꺼냈던 철근 끝에 뇌전이 휘감겼다.

파지직!

순식간에 전자석으로 변하는 철근!

[잡았다!]

그가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휘청!

그 반동으로 철근의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며 갈고리처럼 무간도의 외벽에 푹! 꽂혔다.

이제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크아아앗!]

파직! 파지직!

그 순간 맥없이 추락하던 그의 몸이 극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미줄에 붙은 스파이더맨처럼!

아니, 자석에 빨려 들어가는 쇠붙이처럼!

전자석이 된 철근을 향해 그의 몸이 위로 튕겨 올라갔다!

[크하압!]

콰쾅!

그는 사력을 다해 구멍 끝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저, 저게 말이 돼?”

정다운은 부유석 위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쳐다봤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이쯤 되면 종말의 용이 아니라 생존의 용 아님?]

위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구경하던 토끼도 황당해서 입이 쩍 벌어졌다.

[크아아아!]

콰직 콰직 쾅 쾅!

가까스로 구멍 끝에 매달린 종말의 용이 벽에 팔과 다리를 박아 넣으며 미친 기세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과연 류승우의 육체는 몰상식할 정도로 뛰어났다.

단순히 근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저 육체는 ‘불굴의 투지’ 스킬도 이어받았다.

그건 어떤 치명적인 위기에서도 그가 어떻게든 살아남았기에 생겨난 스킬이었다.

[히이익? 올라온다! 올라온다고요! 막으셈!]

“하고 있어!”

토끼의 호들갑을 들으며 정다운은 소지품을 활짝 개방했다.

그리고 그 안에 가득한 흙벽돌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쿠콰콰콰!

아이러니하게도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역류하고 있던 종말의 똥이, 아니, 종말의 용이 다시 아래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

[크아아악!]

이번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종말의 용은 엄청난 토사물에 떠밀려 추락하고 말았다.

굉장히 원통한 얼굴로.

[비일어먹으을……!]

처절한 그의 비명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그리고 결국엔 종말의 서와 그를 이어 주던 보랏빛 선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끝난 건가?”

넋을 잃은 정다운의 목소리에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번쩍!

[업적 달성!]

“던전 공략 성공!”

등천로의 마지막 던전 ‘무간도’를 공략했습니다!

당신들의 업적에 던전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 보상 1 : 생존자 전체 회복

- 보상 2 : ‘낙원’으로의 초대장

 

[최초 업적 달성!]

“종말의 용의 우울!”

부활을 꿈꾸던 종말의 용의 계획이 좌절되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당신의 업적에 던전이 더없이 큰 환호를 보냅니다!

- 보상 : 종말의 서 1페이지

“와! 던전 깼다!”

업적 메시지가 도착하자마자 정다운이 두 팔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다.

토끼도 위에서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며 쪼르르 날아왔다.

[이야아! 님 혼자 짱 드셈! 설마 님 혼자서 종말의 용을 잡을 줄이야!]

“그래! 지금 봤냐!? 내가 해냈다고! 승우 형 없이도 내가 잡았다고! 음하하하! 이게 바로 나다!”

어찌나 기분 좋은지, 부유석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빙글빙글 춤을 추는 정다운과 토끼.

이어서 더 반가운 소식들이 또 들려왔다.

바로 레벨 업!

[<전망대>스킬이 3레벨로 발전했습니다.]

- 건축 시간 4배 단축

- 지도를 확대할 수 있다.

 

[<그림자 비술> 스킬이 3레벨로 발전했습니다.]

- 그림자 하인 (7/15)

“레벨업도 했다!”

[이야아!]

좋은 일이 겹경사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음?”

[엇.]

둘의 표정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굉장히 찝찝하고 이상한 기분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정다운이 당황하며 물었다.

“뭐, 뭐지? 왜 평소와 똑같아? 레벨 업을 왜 해?”

[그, 그러게요? 종말의 용까지 죽였으면 던전도 다 끝나는 거 아님?]

정다운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업적 메시지를 확인했다.

첫 번째 업적이야 당연히 최종 보스인 도플갱어의 왕을 쓰러뜨렸으니까 도착한 메시지일 것이다.

생존자 전체 회복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두 번째 보상이 ‘낙원으로의 초대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정다운은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낙원이면 좋은 말이니까, 당연히 이제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는 뜻……이겠지?”

[그, 글쎄요? 왠지 낙원이라는 던전으로 초대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 그래요?]

토끼도 이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보니 괜히 미심쩍은 기분만 들었다.

게다가 두 번째로 도착한 최초 업적 보상은 훨씬 더 수상했다.

내용은 무려 종말의 용이 부활하려는 것을 저지했다고 축하해 주는데, 그 보상의 내용이 하필이면…….

“종말의 서 1페이지? 이건 또 뭐야?”

대놓고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 정다운이었다.

“왜 하필 불길하게 1페이지야? 1도 있으면 왠지 2도 있고, 3도 있을 것 같잖아?”

[소름. 게다가 종말의 서 엄청 두꺼웠죠?]

그 두께면 총 몇 페이지나 나올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쳤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 ‘1페이지’라는 이름의 보상은 그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설마?”

정다운은 뒤늦게 아까 흙으로 뭉쳐서 멀리 던져 놓은 종말의 서가 떠올랐다.

이름이 ‘1페이지’라는 거 보니까 이미 그 책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올라가 보자!”

그들은 부리나케 위로 올라갔다.

[종말의 서라면 제가 창고에 들여놓았나이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언제나 묵묵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바하무트였다.

그가 뒤늦게 열린 마법 창고의 문을 통해 종말의 서가 담긴 흙뭉치를 들고 들어와 있었다.

던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휴이는 창고 안으로 못 들어오고 문 밖에서 쿨쿨 잠들어 있었다.

“다시 꺼내 보자!”

정다운은 흙뭉치를 파헤치며 그 안에서 종말의 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놀라운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락!

종말의 서가 제멋대로 펄럭이며 책장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감히 나의 부활을 방해해!?]

“어?”

[히익!]

경악스럽게도 이 목소리는 바로 종말의 용이었다!

정다운은 깜짝 놀라 종말의 서를 멱살 잡듯이 두 손으로 콱 붙잡고 물었다.

“너 죽은 거 아니었어!?”

[맞아요! 분명 업적도 떴다고요!]

그 말에 종말의 서가 격하게 책장을 파들파들 떨었다.

[나를 모욕하지 마라! 용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다만 잠들 뿐!]

“그럼 자든가, 인마!”

[나는 잠이 없다!]

“뭐라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말을 잃은 정다운에게 알파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말했잖습니까. 이 종말의 서가 종말의 용의 본체일 거라고.>

“……!”

이어지는 알파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종말의 사도는 종말의 용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아까의 그 치열한 추격전도 애초에 꼭두각시가 자신의 본체를 수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금 전 그 꼭두각시가 추락하면서 거리가 멀어지자, 둘을 이어 주던 힘의 연결도 끊기고 말았다.

그 순간 종말의 용의 정신은 자연스럽게 본체인 종말의 서에 남겨졌다는 것이었다.

[잘도 알고 있군.]

알파의 설명에 종말의 용이 거만하게 이죽거렸다.

[그럼 처음부터 그 개싸움 하지 말고 이 책을 불태워 버렸으면 됐겠네요?]

황당해하는 토끼의 말에 알파와 종말의 용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종말의 힘이 담긴 책을 불태운다고? 차라리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럼 찢는 것도 안 돼?”

[찢지 마!]

문득 정다운이 책장 하나를 찢으려 하자 종말의 용이 발작하듯이 화를 냈다.

[어차피 찢어도 다시 회복되지만! 네놈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 숨도 쉬지 마라!]

정다운을 어찌나 싫어하는지 그가 입만 열어도 아주 치를 떠는 종말의 용이었다.

“나 조금 상처받았어.”

정다운은 시무룩하게 찢으려던 책장을 앞으로 계속 넘겼다.

아무튼 지금 궁금한 건 보상이었다.

“흠, 1페이지를 볼까?”

처음에 봤던 대로 종말의 서의 안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 상태였다.

그런데 그 중간에 딱 한 페이지만 달라져 있었다.

마치 예전부터 쓰여 있었던 것처럼, 잉크가 바랜 세월감이 느껴지는 낙서가 그 위에 떠올라 있었다.

“1페이지라서 첫 페이지인 줄 알았는데, 중간에 있는 한 장이었네.”

정다운은 그 낙서를 읽어 보려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전혀 읽을 수가 없는데? 초월언어는 어떤 글씨든 다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알파가 대답했다.

<그건 정다운 님이 이 글귀를 적은 존재보다 격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글귀에서 특별한 권능이 느껴집니다. 한번 만져 보시지요.>

“만지라고? 그러다 뭔 일 나는 것 아냐?”

<보상으로 나온 것이니 그 권능이 정다운 님을 해칠 리 없습니다.>

알파의 말에 정다운은 찜찜한 표정으로 페이지의 낙서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그 순간 낙서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아앗!

“……!”

[종말의 서의 권능이 스킬을 강제로 진화시킵니다.]

[<흙 뭉치기>스킬이 메인 스킬로 진화합니다.]

[<흙 뭉치기>스킬이 중급 1레벨로 발전했습니다.]

“어!?”

연달아 나타난 메시지에 정다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흙 뭉치기 스킬이 메인 스킬이 됐는데?”

[말도 안 돼! 메인 스킬이 두 개인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다고요!]

토끼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딴 낙서가 뭐라고 이런 일이 생김!?]

“우와, 이거 대체 누가 쓴 낙서길래 스킬까지 진화시켜?”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종말의 서니까 종말의 용이 쓰지 않았겠습니까?>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알파의 말에 종말의 용이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크하하! 종말의 서를 내가 썼다고?]

<아닙니까?>

알파의 반문에도 종말의 용의 웃음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이 종말의 서가 백지인 것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그것은 여기에 쓰여 있던 내용들이 전부 세상 밖으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종말의 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용이 드러난 종말의 서 한 귀퉁이에 작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진 그건 용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종말의 용이 자신들을 비웃은 이유.

[그리고 나 또한 이 책의 일부일 뿐이지.]

“……!”

*   *   *

니야앙.

[주인님?]

세르파는 숯을 굽다가 갑자기 손을 멈춘 메모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안색이 굳은 메모리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없었다.

두껍고 단단한 천장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한참을 아무 말이 없던 메모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 일어나 다락방으로 돌아갔다.

오랫동안 자신을 가두고 있던, 아니, 보호하고 있던 마녀의 탑으로.

그리고 그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책장으로 다가가 책 한 권을 꺼냈다.

두꺼운 마법서.

메모리는 그 책을 품 안에 소중히 껴안고, 태어날 때부터 매일같이 해 오던 축복의 기도문을 외웠다.

“부디 우리를 보호하소서. 설령 깊은 절망과 어둠이 우리에게 닥쳐올지라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