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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52)화 (252/393)

<던전리셋 252화>

정말 최악이었다.

도플갱어의 왕이 태어나고 거울 왕궁이 무너져 내린 순간, 무간도에 있던 모든 메이플들이 왕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총공세의 시작이었다.

[왕의 탄생에 메이플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입니다.]

[총공세가 시작됩니다.]

“제정신이야!? 축제라면서 왜 애꿎은 우리를 공격하냐고! 그냥 얌전히 생일 케이크나 먹고 폭죽이나 터뜨릴 것이지!”

“그러니까요. 사실은 왕궁이 무너져서 화난 거 아닐까요?”

“애초에 우리가 무너뜨린 것도 아니잖아!”

구호열과 윤진수는 밤새 메이플들과 싸우느라 진짜 죽을 맛이었다.

“호열 아저씨, 나 너무 힘들어요…….”

“조금만 버텨! 다운이가 메이플 수명이 하루랬잖아! 하루만 버티면…… 젠장! 하루가 왜 이렇게 기냐고!”

힘들어하는 윤진수를 다독이던 구호열이 오히려 못 참고 폭발했다.

총공세는 지금까지의 공세와는 차원이 달랐다.

왕이 태어난 이상, 메이플들에겐 이제 알을 낳아야 하는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상황.

마치 수능 끝난 고3들의 광란의 파티처럼, 목숨을 불사하는 괴물들이 벌이는 광란의 축제는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로 무섭고 끔찍했다.

키히잇! 키힛!

촤아악!

“크아악!”

구호열이 발악하듯이 몸을 휘돌며 메이플들을 후려쳤다.

그래 봐야 끝도 없었다.

한 놈을 죽이면 다섯 놈이 덤벼 왔다.

다섯 놈을 죽이면 수십 마리의 메이플이 죽자고 달려들었다.

범위 공격에 특화된 뇌전이 너무도 그리운 순간이었다.

“승우는 아직 안 깨어났어!?”

“네! 아무리 깨워도 정신을 못 차려요!”

윤진수가 바람의 장막으로 힘겹게 여전히 기절한 뒤로 못 깨어나고 있는 류승우를 지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도플갱어의 왕과 격돌하기 한참 전부터 류승우의 체력과 정신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무간도에 온 이후로 그는 밤낮으로 동료들을 지키느라 알게 모르게 무리를 계속 해 왔다.

다시 말하지만, 다수의 메이플을 상대로 그의 뇌전만큼 잘 먹히는 전체 공격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태로 도플갱어의 왕과 싸우기까지 했으니……!’

누구보다 가장 옆에서 류승우의 분전을 지켜봤던 구호열은 안쓰러움에 이를 악 물었다.

역시 옛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

강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 뻔한 말이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운 말인지 류승우를 보면서 매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복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복이 찾아온다, 라는 옛말이 더 무서웠다.

다만, 류승우의 경우엔 그 복이 ‘일복’일 것이다.

그는 몸 사리는 게 뭔지도 모르는 일 중독자였다.

류승우는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매번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 내고 결국엔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랬더니…… 이 빌어먹을 던전이 류승우의 한계가 궁금해졌던 걸까.

계속 그의 앞엔 그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난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면 그 모습은 절대 멋진 게 아니었다.

그건 말 그대로 고난이었고 고생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포기하는 게 훨씬 행복했을 거라 생각이 들 정도로.

류승우는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게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실제로 내일이 없는 도플갱어들도 제 목숨은 아끼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승우의 도플갱어가 도플갱어의 왕이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와직!

구호열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메이플을 손으로 사정없이 잡아 찢었다.

어차피 재생 스킬이 있는 자신이 이런 곳에서 죽을 리는 없다.

문제는 윤진수였다.

“호열 아저씨……! 나 진짜 한계예요. 어떻게 좀 해 봐요……!”

윤진수가 반쯤 풀린 눈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저러다 조만간 류승우처럼 졸도할 것 같았다.

‘으, 어떡하지? 어딘가 숨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구호열은 다급히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메이플의 채찍질이 안 닿는 곳으로 어떻게든 숨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그나마 왕궁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플갱어의 왕이 다 무너뜨리고 가 버려서는, 젠장!”

구호열은 결국 이를 악물고 류승우와 윤진수를 동시에 옆구리에 끼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머리 쓰는 건 내 역할이 아니야! 일단 튀고 보자!”

“으…….”

때마침 윤진수에게도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그의 고개가 푹 꺾인 순간, 주변에 나부끼던 바람의 장막이 뚝 그쳤다.

그러자 지금까지보다 2배로 많은 괴물들이 한꺼번에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에라이!”

콰앙!

그 순간 그가 바닥을 박차며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공격들을 자신의 등으로 전부 막아 내며.

“키히이!”

촤악! 쫘악!

“안 아파! 이까짓 채찍질 따위! 하나도 안 아프다! 이 멍청이들아!”

사실 진짜 아팠다.

재생 스킬이 있다고 고통까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동료들이 맞는 것보단 자신이 맞는 게 나으리라.

그게 탱커인 자신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는 좀비처럼 절규하며 사력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끄아아아! 다운아! 보고 싶다, 젠장!”

유일한 희망은 이곳으로 오고 있을 정다운을 찾아가는 것뿐!

그런데 하늘을 가득 메운 하루살이 놈들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자신은 심지어 용의 사도도 아니라서 귓말조차 불가능했다!

그래서 달려야 했다.

정다운이든 뭐든 뭐라도 나올 때까지!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대답이 들려왔다.

“엎드려요!”

“……!”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납작 엎드렸다.

그 순간.

“제국창술, 일섬!”

쿠와우웅!

“우워억!?”

구호열의 머리 위로 엄청난 빛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를 쫓아오던 메이플로 꽉 찬 하늘에 큰 구멍이 뻥 뚫렸다.

“우와…….”

뒤를 돌아본 구호열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이번엔 그의 눈이 쩍 벌어졌다.

아아, 그의 앞에 여신이 서 있었다.

창을 높이 치켜든 전장의 여신.

피에 찌들어 나부끼는 검은 머릿결.

당당히 적들을 바라보는 영롱한 눈망울.

메이플의 채찍에 찢겨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속살, 이 아니라 극도로 단련된 초콜릿 복근.

쭉쭉빵빵한 몸매, 처럼 보이지만 완벽하게 단련된 찰진 근육이 전직 트레이너의 눈에 쏙 들어와 박혔다.

“방금 정다운이라고 외치신 분 맞으시죠? 저는 그의 사도 지서연이라고 합니다!”

여신이, 아니, 지서연이 창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괴물들을 물리치며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 순간 훅, 하고 그녀의 피비린내 가득한 체향이 구호열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때까지도 구호열은 바짝 굳은 표정으로 얼음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동민이라고 하…….”

옆에서 누가 또 인사를 해 오고 있었지만, 귀가 멍멍하니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괴물들이 그의 몸을 채찍질하고 있었으나,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땐…… 에라, 모르겠다.

구호열이 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동료들도 다 내팽개친 채.

그리고, 덥석!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변하는 여신의 눈망울……이 지금 이 순간도 주변 괴물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잡아 본 여자 손은 굳은살로 가득했다.

정말이지 멋진 여자 아닌가!

*   *   *

[서연 아씨가 구호열 님이랑 무사히 합류했대요.]

“나도 봤어. 단톡방.”

[그리고 고백받았대요.]

“……나도 봤어.”

정다운과 토끼는 나란히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썸부터 타기로 했다는데요?]

“나도 봤다니까…….”

[허허.]

“껄껄.”

그저 웃음만 나왔다.

썸이라는 건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손은 잡아도 되나?

뽀뽀는?

[그런데 이 남자가 손을 안 놔준대요. 전투 중에도.]

“손에 환장했나?” 

[손 변태인 듯요. 그런데 벌써 깍지도 꼈대요.]

“그건 너무 야하잖아! 썸이라며!”

괜히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정다운이었다.

“에잇! 나도 낄 수 있다 뭐, 손깍지!”

합!

자신의 손을 맞잡으며 부처님처럼 합장하는 정다운 스님.

그리고 교회 목사님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깍지를 끼고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돌 깨기!”

콰아앙!

돌바닥이 사정없이 갈라졌다.

지금 그들은 유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거울 왕궁이 아니라 전혀 다른 유적지였다.

“왕성은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유적지다. 제단은 거기가 아니라 이곳 지하에 숨겨져 있지.”

그들을 이곳까지 안내한 도플갱어의 왕은 조금 지쳐 보였다.

도플갱어의 왕에겐 본신의 힘 외에도 특별한 권능이 있었다.

그는 무간도에 존재하는 모든 도플갱어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명령을 직접 부하들을 만나지 않아도 내릴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사실 생각해 보라.

고작 하루 사는 목숨들끼리 어느 세월에 서로 찾아다니면서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수행하겠는가.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귓말’이었다.

도플갱어의 왕은 다른 도플갱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정다운처럼.

물론 그 또한 공짜가 아니었다.

귓말을 주고받을수록 도플갱어들의 수명이 깎였기에 아무 때나 수다 떨 수는 없는 능력이었다.

그것이 그가 피곤해 보이는 이유였다.

“정다운 네가 핸드폰으로 내 부하들의 수명을 늘려 준 덕분에 귓말들을 아낌없이 보내오고 있다. 유적지를 벌써 찾았다 해도, 혹시 모른다며 다른 곳도 찾아보겠다는군.”

그동안 정다운이 도플갱어들에게 핸드폰을 나눠 준 덕을 이제야 보고 있었다.

유적지를 찾으라 했더니 최종 유적지만 쏙 빼놓고 찾아다녔던 도플갱어들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곳들 중에 제단이 있는 유적지가 버젓이 존재했을 줄이야.

귓말로 도플갱어들이 보내오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선별한 도플갱어의 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이 확실하다. 제단을 보관하는 지성소는 특별하게 생겼으니 다른 곳과 구별되지.”

지성소(Most holy place).

무간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유적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물론 폐허였지만, 그 잔해들에 남겨진 경건함과 숭고함이 다른 유적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예술적이었다.

던전에서 예술적이라는 말은 곧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곳은 거울 왕궁보다도 훨씬 삼엄한 결계로 지켜진다. 아마 그동안 참가자들 중에는 여기가 최종 유적지일 거라 생각하고 들어가서 허탕 친 적이 많을 것이다.”

“그렇구만?”

그래 봐야 정다운은 어차피 거울 왕궁에 가 본 적도 없어서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의 삼엄한 결계와 함정들을 일일이 공략할 마음 또한 없었다.

“지성소가 돌로 만들어져 있어서 다행이야. 돌 깨기! 돌 깨기!”

쾅쾅! 쩍쩍 쩌저적!

주먹으로 때리면 아프니까 곡괭이를 들었다.

“……이건 좀 사기 아닌가? 뭐가 이래?”

정다운을 쳐다보는 도플갱어의 왕은 내내 불편한 표정이었다.

분노의 돌깨기가 단단한 유적지 옆을 수직으로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결계든 뭐든 간에 그 옆을 뚫고 있어서 마주칠 일도 없었다.

“당연히 제단은 가장 아래층에 있겠지? ……어? 너무 깊게 팠나?”

분노의 돌 깨기가 유적지의 가장 아래층보다 더 깊게 뚫고 내려온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무간도가 뚫릴 수도 있습니다.>

알파의 경고에 도플갱어의 왕이 옆에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시 올라가지 뭐! 돌 깨기!”

정다운은 스트레스가 다 풀린 얼굴로 명랑하게 다시 위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어느덧 벽 건너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같은…….

알파가 다급히 경고를 해 왔다.

<메이플들이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유적지가 가까이 있습니다!>

“이 지하에 메이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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