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49)화 (249/393)

<던전리셋 249화>

거울 궁전은 몹시 혼란스러운 공간이었다.

신기하게도 이곳에 있는 거울들은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고 스킬로도 파괴되지 않았다.

사람이 걸어 지나가면 장막처럼 몸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다 무시하고 거울을 뚫고 지나가면 될 것을,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천변만화(千變萬化).

두 개의 거울이 서로 마주 보면 그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의 길이 생겨난다.

마주 보는 거울이 더 많아지면 공간의 왜곡과 반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 데다 미궁의 거울들은 제각각 변덕을 부리기도 했다.

어떤 거울은 동료들을 제외한 자신의 모습만 반사시키는 거울이었고.

또 어떤 거울은 반대로 자신만 쏙 빼고 동료들의 모습만 선별적으로 반사시키는 거울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고 감각이 교란되어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 여기까지가 바로 또 길을 잃고 동료들과 헤어지게 된 류승우의 변명이었다.

“나중에 또 잔소리 듣겠네.”

류승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윤진수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귀가 따가웠다.

이 미궁은 최악이었다.

함정들을 돌파하며 열심히 걷다 보니,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미아가 되어 있었다.

길 찾기도 어려운데 아무리 동료들의 이름을 크게 외쳐 봐도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어째선지 귓말조차 먹통이고.”

이것도 다 거울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류승우였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신기한 것도 있었다.

무수한 거울들 중에는 거울이 아니라 CCTV 모니터 같은 기능을 하는 거울들도 있었다.

그 거울들은 무간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동영상처럼 틀어 주고 있었다.

그 안에서 류승우가 정다운의 모습을 발견한 건 실로 우연이었다.

정다운이 어떤 도플갱어와 싸우는 광경이었는데, 그 광경이 너무 리얼해서 바로 옆에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녀석, 많이 늘었네.”

류승우는 흐뭇하게 웃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지만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심지어 저 외국인 도플갱어는 자신도 상대해 본 자였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다른 도플갱어들과 달리 그는 어딘가 망가져 있었다.

그는 생명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였다.

숱한 죽음을 봐 왔고, 그 생명들을 무참히 짓밟고 살아남았기에,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 녀석을 거뜬히 상대하는 정다운의 전투력에 류승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문득 옆을 돌아보니 그곳엔 또 류승우 본인의 모습도 보였다.

‘이건…… 내 도플갱어인가?’

백발의 류승우.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다른 도플갱어가 백발의 여인들과 함께 무간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긴 여인들의 표정은 핑크빛의 아롱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 녀석만…….”

괜히 욱하는 류승우였다.

류승우는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한 미남이었다.

각 잡힌 어깨와 넓은 등.

진한 눈썹에 깊은 눈빛까지.

아이돌처럼 예쁘장하진 않아도, 대체적으로 선이 굵은 미남이라 길 가다 한 번쯤 여자들의 시선을 받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직업이 태권도 사범이라는 게 문제였다.

매일 땀내 나는 태권도장에 갇혀서 도복 입은 꼬맹이들과 뒹굴다 보니 여복이 늘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도플갱어는 달랐다.

위기에 빠진 여인들을 구해 주고 보호하며 한 명 한 명 골고루 점점 자신의 하렘 왕국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물론 남자 도플갱어들도 구해 줬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자 도플갱어들로 가득한 핑크빛 천국이 저 너머에 존재했다.

“그래, 너라도 행복하다면 됐다…….”

류승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도플갱어를 조용히 응원했다.

그런데 죽었다.

“어? 죽어!?”

류승우는 당황했다.

자신의 도플갱어가 갑자기 아까 정다운에게 패배한 외국인 도플갱어와 싸우다가 죽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그 외국인은 돌이 된 채로 정다운에게 잡혀 있는데도 말이다.

“아, 이거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아니었구나. 녹화 영상이었네.”

류승우는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죽었다니 안됐지만, 죽기 전까진 행복했을 테니…….

“꼬시다.”

류승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쿨하게 그 옆을 지나쳤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하얗게 불태운 그의 도플갱어는 먼지처럼 사라져 갔다.

“아, 그렇군. 이 거울들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거울들을 바라보며 류승우는 비로소 깨달았다.

“설마 무간도의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건가?”

놀랍게도 그의 혼잣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니, 감시가 아니라 기록이다.]

류승우는 깜짝 놀라며 뒤로 돌았다.

“누구냐!”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면 거울뿐.

그 거울은 주변에서 류승우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유일한 거울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류승우의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설마 말한 게 너냐?”

파칙!

류승우의 전신에서 푸른 뇌전이 휘몰아쳤다.

콰득!

그 엄청난 힘의 격류에 그가 서있던 대리석 바닥이 거미줄처럼 산산조각 갈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거울 속 류승우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자신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의 입매가 점점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답까지 했다.

[맞다. 나다.]

류승우는 놀라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누구냐, 너.”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최종 유적지에서 이런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정체는 하나뿐이었다.

최종 보스.

[내가 누구냐고?]

거울 속의 ‘그’는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펼쳤다.

그의 목소리가 여러 거울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면 모르겠나?]

[나는 바로 너다.]

[동시에 너희 모두지.]

‘무슨 헛소리지?’

횡설수설에 가까운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류승우는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저놈이 진짜 최종 보스라면 무턱대고 덤비는 건 위험했다.

저렇게 지성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경우엔 그 얘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야 공략의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뚝.

장황하게 말하던 ‘그’가 갑자기 정색하며 엄숙히 선포했다.

[나는 도플갱어의 왕.]

[이 궁전에서 모든 도플갱어의 정보를 기록하고 선별하는 자.]

“기록하고 선별한다?”

[그렇다. 선별. 도플갱어의 왕은 태어날 육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

파아앗!

그 순간 류승우의 앞에 펼쳐진 거울들이 저마다 다른 도플갱어들의 기록들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눈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던 도플갱어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며.

칼에 찔리고.

수명이 다해서.

수없이 많은 하루살이들이 목숨을 잃고 먼지로 화하고 있었다.

[이 무수히 많은 희생 끝에 찾아낸 단 하나의 조합.]

도플갱어들이 순차적으로 죽어 가자 거울들도 하나씩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이 많은 기록들 중에서 나는 마침내 최고의 조합을 발견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은 거울은 단 두 개.

류승우와 휴이 번스타인.

둘의 도플갱어가 거울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 휴이의 도플갱어가 몸을 한차례 떨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어어? 이 사람 왜 이래?’

거울 너머에서 정다운과 토끼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팔과 다리만 돌이 된 휴이의 도플갱어가 갑자기 하얀 재로 변하더니 죽어 버린 것이다.

정확히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의 자아는 이곳으로 넘어와 있었다.

바로 류승우의 눈앞에.

사라락.

그 순간 ‘그’의 검은 머리가 서서히 하얗게 변하며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광전사처럼.

[네놈의 강대한 힘과.]

[광전사의 증폭과 흡혈.]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거울 속에서 류승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기록을 합친다면.]

[나는 비로소 ‘격’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파창창!

“큭……!”

갑자기 거울들이 산산조각 나며 그 안에서 빛이 터져 나오자 류승우는 방패로 전신을 방어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전신에 뇌전을 휘감고 앞으로 용맹하게 돌격했다.

콰르릉!

*   *   *

[크륵. 최고의 도플갱어들의 기록을 선별해 자신의 힘으로 취하는 자. 그게 바로 도플갱어의 왕에게 주어진 권능이다.]

하늘에서 루갈이 내려와 정다운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가 죽어 버린 휴이의 도플갱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자가 선별되었나 보군. 처음부터 왠지 그럴 거라 예상했거늘.]

[앗, 그럼 벌써 최종 보스전이 시작됐나 보네요?]

“아, 우리 지각했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태평스런 정다운과 토끼의 반응에 루갈은 휴이의 도플갱어를 가리키며 엄중히 경고했다.

[아까 전에 이 도플갱어는 나를 똑똑히 쳐다봤다. 토끼, 너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 말에 토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잉? 던전의 괴물 따위가 도우미를 인식했다고요? 격을 넘어섰나?]

[크륵. 그런 거다. 처음엔 류승우를 죽이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명의 사도 중 다른 이를 죽인 것 같다.]

“다른 사도라면?”

정다운은 퍼뜩 깨달았다.

최근에 죽은 사람이라면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석정호.

[화염충 꼰대를 죽인 범인이 바로 요놈이었나 보네요.]

토끼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민준의 말로는 석정호가 죽기 전에 성격이 많이 더러워졌다고 했었다.

이제 보니 메이플의 알이 머리에 붙어서 그 영향이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루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를 악물자 그 안에서 흉악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지금 중요한 건 도플갱어의 왕이 스스로의 격을 뛰어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건 규격 외의 일이다.]

정해진 틀을 깨고 나오려 하는 최종 보스.

그게 균형 잡힌 던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   *   *

콰르릉!

[이미 가능성은 확인했다!]

도플갱어의 왕의 목소리가 궁전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는 거울 궁전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도플갱어들이 겪어 온 치열하고 처절한 하루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똑똑히 확인했다.

휴이의 도플갱어가 흡혈을 통해 스스로의 수명을 충전하는 모습을.

하지만 그조차도 한계가 있었다.

힘은 더욱 강한 힘에 굴복당할 뿐.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로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별했다.

그가 지켜본 기록 중 가장 강력한 힘.

도플갱어의 비루한 그릇으로는 감히 제대로 재현하기조차 힘들었던 류승우의 힘!

그 힘을 광전사의 능력으로 증폭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해치지 못하리라!

그리고 더 나아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 빌어먹을 ‘하루’라는 카운트다운을!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제한된 수명의 저주를 끊어 버릴 수 있으리라!

[나는 스스로 존재하리라!]

콰르릉!

거울궁전은 초토화되었다.

모든 거울이 사라지고 한 치의 어둠도 허용되지 않은 하얀 공간만이 그곳에 존재했다.

그 한가운데 두 사내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한 명은 류승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후우우.”

백발 적안.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류승우와 완벽하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어딘가 공허한 눈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더니 손가락을 퉁겼다.

파칙!

류승우, 아니, 도플갱어의 왕의 손에서 작은 스파크가 넘실거렸다.

놀랍게도 그 빛은 류승우처럼 푸른색이 아니라 광전사를 닮은 피처럼 붉은 기운이었다.

“좋구나. 좋은 힘이다.”

자신의 힘을 가늠한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허한 눈빛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 오창석 촌장이 쓰러져 있었다.

도살자의 칼에 찔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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