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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46)화 (246/393)

<던전리셋 246화>

구우웅!

류승우 일행이 유적지에 발을 들인 순간 바닥에 있던 기관 장치들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아무래도 이번엔 진짜인가 본데요?”

“그러게. 진수야, 함정 탐색해.”

“네.”

나이는 어리지만 팀에서 한 사람 몫 이상을 제대로 수행하는 서포터가 바로 윤진수였다.

그의 바람 스킬은 은밀히 숨겨진 함정을 미리 건드려서 위험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유용했다.

그리고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오창석 촌장의 눈치 스킬 또한 위험을 감지하는 데는 즉효였다.

“크흐흠. 좀 꺼림칙한데. 들어가면 왠지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툭.

불안한 표정으로 걸음을 주춤거리던 오창석은 마침 뒤에서 걸어오던 구호열의 단단한 몸과 부딪혔다.

구호열이 말했다.

“정 그렇게 무서우시면 촌장님은 밖에 남으시든가요.”

“그건 그것대로 무서우니 따라 가겠네…….”

오창석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간도에 온 뒤로 온 사방이 죽음의 위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의 눈치 스킬은 고장 난 알람시계처럼 쉴 새 없이 경고음을 울려 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유적지는 그중에서도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곳이 최종 유적지일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별수 없지. 어차피 이 녀석들과 떨어져 있는 것도 자살 행위니까 최대한 몸 사리며 따라가자.’

이럴 때마다 틈새 마을의 촌장이었을 때가 몹시 그리워졌다.

그땐 참 좋았는데…….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오창석은 우울한 표정으로 류승우의 뒤를 바짝 쫓아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진정한 ‘죽음’을.

“반갑군. 또 하나의 나여.”

“아니, 너는!?”

그는 경악했다.

가장 어려운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가?

씨익.

“네가 나라면, 반드시 이곳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

잔혹한 미소를 짓는 오창석의 도플갱어.

그 손에는 도살자의 칼이 붉은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   *   *

[엉망진창이군.]

루갈은 하늘 위에서 무간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관심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그는 벌써 며칠째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싶어도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 무간도가 이렇게 변해 버리다니…….]

루갈은 난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게 있어 이 무간도라는 던전은 벌레 냄새로 가득한 섬일 뿐이었지만, 참가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무간도는 ‘살인’을 연습하는 수련장과 같았다.

본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마음속에 동족 살해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던전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들도 대부분 실수나 정당방위를 제외하고는 ‘소수의 살인자들’에 의해서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무간도에서는 예외 없이 참가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살인의 기회가 찾아온다.

메이플의 알이 인간의 투쟁심을 자극해 살인에 대한 리미트를 해제시키기도 하고.

그런 찰나에 마침 눈앞에 딱 적당한 연습 상대까지 보내 준다.

바로 도플갱어들.

인간과 똑같지만 인간은 아닌 자들.

어차피 다음 날이면 죽을 목숨이라서 하루 먼저 죽여도 양심의 가책이 덜 느껴지는 ‘죽여도 되는’ 존재들 말이다.

도플갱어는 참가자들이 살인에 익숙해지기 위한 맞춤형 교보재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비슷한 수준의 스킬까지 쓸 수 있어서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난이도 조절까지 되어 있는.

참가자들은 그들을 죽임으로써 점점 살인에 익숙해져 가고, 점점 영혼이 피에 물들어 간다.

종말의 용이 기뻐할 만한 제물로서 숙성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루갈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이번엔 대체 뭐가 문제일까.

무간도가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키히잇!”

참가자들은 요즘 이상한 일을 겪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메이플들과 싸우고 있다 보면 은근슬쩍 그 사이에 끼어드는 하얀 머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도플갱어들.

원래라면 자신들을 죽이려고 덤벼들어야 하는 끔찍한 괴물들이었을 텐데, 이제는 아니었다.

뭐랄까, 지금의 그들은 그냥…… 핸드폰 중독자였다.

“저쪽에 많다!”

우르르!

“이쪽도 있다!”

우르르!

손바닥만 한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고 돌아다니면서 허공에 대고 열심히 스킬을 써재끼는 도플갱어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도플갱어들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예전처럼 참가자들을 공격할 생각도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딱히 메이플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끔씩 참가자들이 위기에 처하면 구해 주기까지 했다.

“괜찮아요? 거 조심 좀 합시다. 죽을 뻔했잖아요.”

“헉. 가, 감사합니…….”

“어이쿠, 이런? 머리에 먼지가 좀 묻으셨네?”

툭툭.

“……?”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가끔씩 다정한 척 시크하게 참가자들의 머리를 털어 주고 지나갔다.

기분 탓인지 은근슬쩍 스킬을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참……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묘했다.

‘우리한테 뭘 원하는 거지?’

‘스킨십?’

‘머리는 왜 쓰다듬지?’

‘날 좋아하나?’

참가자들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도플갱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며 돌아다니느라 바빠서 도저히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론 모든 도플갱어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핸드폰이 없는 도플갱어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참가자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났기에, 도플갱어라면 하나씩 들고 다니는 핸드폰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러다 결국 체면 불구하고 지나가는 선배 도플갱어들에게 용기를 내 물어봤다.

“그걸로 뭐 하세요?”

*   *   *

“저, 실례합니다.”

“소문 듣고 찾아 왔는데요.”

“여기 오면 핸드폰을 나눠 준다던데, 맞나요?”

[핸드폰 맡겨 놨냐, 이것들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도플갱어들의 모습에 토끼가 짜증을 터뜨렸다.

정다운의 모자이크 하우스는 어느덧 핸드폰 대리점이 되어 있었다.

[수명도 하루밖에 안 되면서 대체 어디서 자꾸 소문을 듣고 오는 거임!?]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겠지 뭐. 지금 밖에 돌아다니는 영업 사원들만 20명이 넘는데 이 정도면 약과지.”

일종의 피라미드 회사였다.

정다운은 모든 손님들에게 핸드폰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그 도플갱어들이 지금 이 순간도 밖에서 다른 녀석들을 영업해 오고 있었다.

[님은 아깝지도 않음? 아무리 핸드폰이 많아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막 길에 뿌리면 어떡해요?]

“뭐 어때? 어차피 전부 잠금이 걸려 있는 기종이라 달리 쓸데도 없다고.”

어차피 공짜로 얻은 것들이라 아낄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는 졸부 정다운 선생이었다.

나눠 주는 핸드폰들은 전부 잠금 화면에서 카메라 어플만 사용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남겨 둬 봤자 평소에 냄비 받침으로나 사용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몇 명이 좀 뜸한데? 무슨 일 있나?”

[죽었나 보죠. 어차피 하루살이들인데 죽을 수도 있지.]

요즘 20명이 넘는 도플갱어들이 하루에 한 번씩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해 그를 찾아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무간도 곳곳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전해 듣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던 여성 2인조가 어제부터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정다운은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야. 쉽게 죽을 사람들은 아니었어. 메인 스킬이 빨리 도망치는 쪽이었다고.”

[그럼 더 빠른 놈한테 잡혀 죽었나 보죠. 아니면 배터리가 나갔어도 아직 누적된 수명이 좀 남았다든가요.]

“흐음.”

토끼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가 더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날수록 그를 찾아오는 도플갱어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아, 진짜 뭐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거 아냐?”

[흐음, 그러게요?]

이쯤 되니 토끼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여자 도플갱어 한명이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그들에게로 돌아왔다.

[히익? 뭐야? 꼴이 왜 이럼?]

“살려…….”

그녀는 대답도 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졸도해 버리고 말았다.

토끼가 타이밍 좋게 옆으로 싹 피하자, 엉겁결에 그 뒤에 있던 휴이가 그녀를 품으로 안아 들었다.

그런데 휴이의 눈빛이 변했다.

온몸이 엉망으로 난도질되어 있는 상처들이 묘하게 눈에 익숙했던 것이다.

“이건……. 도살자의 칼에 당한 상처입니다.”

“도살자의 칼이라고요?”

그 말에 정다운도 그녀의 상처를 다시 봤다.

피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대부분의 피는 옷에 묻어 있는 흔적에 불과했다.

정작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휴이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이건 전부 흡혈에 당한 상처입니다.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든 놈은…… 어쩌면 제 도플갱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일어났다.

‘광폭’을 쓸 수 있고 도살자의 칼까지 들고 있는 도플갱어.

그 존재가 얼마나 골치 아픈 상대인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궁금하니까 깨우죠. 그만 자고 쫌 일어나 봐요!]

첨벙!

토끼는 기절한 여자의 얼굴에 가차 없이 물을 부었다.

그래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하자 볼도 꼬집고 뺨도 때렸다.

“어풉, 쿨럭 쿨럭……!”

[옳지. 깼네. 누구한테 맞고 왔는지 말하고 주무셈.]

“쿨럭….”

간신히 눈을 뜬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토끼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꺄악! 류승우 님!”

[으잉?]

“응? 갑자기?”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류승우 님이 위험해요! 그분을…… 구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졸도해 버렸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다운과 토끼는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지금 이 사람이 류승우라고 말한 거지?”

[네, 저도 들었음. 류승우 님 요즘 어디서 뭐 하나 했더니 여자 꼬시고 다니나 본데요?]

그들의 머릿속에 잠시 백발의 미녀들 사이에 둘러싸여 하렘을 이룬 류승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 여자는 지금 분명 그가 위험하다며 구해 달라고 말했다.

“알파.”

<류승우 님이 있는 방향은 이쪽입니다.>

파아앗!

그의 앞에 화살표가 떠올랐다.

재빨리 그 방향을 따라가 본 휴이가 여자 도플갱어가 걸어온 발자국을 찾아냈다.

“이 여자가 온 방향과 일치합니다. 이 몸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도 여기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류승우가 있을 겁니다.”

휴이도 알고 있을 정도로 무간도에서 류승우는 유명한 존재였다.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그의 뇌격은 메이플들이 아무리 많아도 녹여 버렸으니까.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다. 승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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