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44화>
잠시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문제를 풀어 보자.
알 하나를 터뜨렸더니, 근처에 있던 5명의 도플갱어가 수명을 1분씩 나눠 가졌다고 한다.
그 수명을 한 명에게 몰아준다고 할 때, 알 하나에 들어 있는 수명의 총량을 구하시오.(10점)
풀이)
메이플의 알 = 1개
도플갱어의 숫자 = 5명
1×5=5
“정답. 5분!”
정다운은 명석한 두뇌로 계산을 완료했다.
“그리고 하루는 1440분이니까, 알 288개쯤을 혼자 깨뜨리면 하루를 더 살게 된다는 결론이지.”
[넉넉잡고 대충 300개쯤 노가다하면 되겠네요.]
이번처럼 여러 명이서 수명을 나눠 갖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서로 다른 알을 깨면 다시 나눠 갖는 수명은 결국 똑같다는 말이다.
계산식은 이렇다.
5×5÷5=5
요컨대, 솔플을 하든 팀플을 하든 각자 알 300개씩만 처리하면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 계산법에 도플갱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럴 수가…….”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 봤을까?
핸드폰 카메라로 메이플의 알을 직접 공격할 수 있을 줄이야!
그들은 희망찬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이 넓은 섬에서 인간들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하겠어!”
핸드폰으로 본 세상에는 메이플의 알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다.
저 하나하나가 전부 자신들의 수명이라 생각하자 가슴이 복받쳐 왔다.
정다운은 도플갱어들의 석화를 전부 풀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핸드폰 들고 다니며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메이플의 알을 신나게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우르르!
“저기 또 있다!”
우르르!
그 모습이 마치 공원을 돌아다니는 포X몬 트레이너들처럼 열정적이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생긴 건 멀쩡한 사람들이 허공에 삽질을 한다며 혀를 쯧쯧 차고 지나가겠지만,
“앗! 전방에 메이플들이 날아온다! 세 명이 막고, 한 명만 알을 잡아! 나는 폰을 지키겠다!”
“오케이!”
우르르!
참으로 전략적인 포X몬 트레이너, 아니, 에그 헌터들의 활약상이 눈부셨다.
그 앞을 매번 막아서는 로켓단, 아니, 메이플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굳이 일일이 맞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시선을 분산시킨 후, 채찍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놈들 중에 섞여 있는 암컷 메이플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 코너에 몰리면 그때만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메이플들을 공격했다.
섣부른 공격은 놈들을 더 자극할 뿐이었으니까.
[얄궂은 일이네요. 쟤네는 지가 낳은 자식들도 몰라보네요. 역시 곤충이라서 머리가 나쁜 듯?]
그 꼴을 보며 혀를 가볍게 차는 토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이플들은 자신들이 낳은 도플갱어들을 인간을 닮았다는 이유로 전혀 알아 보지 못했다.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저럴 바엔 차라리 도플갱어들 머리에 직접 알을 키우라고 하면 어떰?]
“그건 안 되는 것 같은데?”
정다운도 내심 그걸 기대하고 지켜봤으나, 요행은 없었다.
메이플의 알은 도플갱어의 머리에 닿으면 사라져 버렸다.
진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 *
“헉헉.”
“하얗게 불태웠다…….”
잠시 후, 도플갱어들이 숨을 헉헉대며 정다운의 앞에 우르르 돌아왔다.
한바탕 신나게 폰 게임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보람 있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게임이 세월을 낭비한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하면 할수록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게임을 하고 왔으니 얼마나 보람찬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실례지만, 이 핸드폰을 저희에게 양도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도플갱어들은 정다운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의 효과를 충분히 체감했으니 이 구원줄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선 핸드폰을 들고 냅다 튀고 싶었으나, 그의 곁에 서 있는 그림자 궁수들 때문에라도 불가능했다.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순간 석화 화살이 날아와 모든 걸 돌로 만들 것이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물건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맞는 말이었다.
이 핸드폰만 있으면 앞으로는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아니, 죽이면 오히려 손해였다.
계속 살려 둔 채 그들 머리 위에 알이 꾸준히 안착하게 놔둬야 하는 게 더 이득이니까.
평소엔 각자 5분씩 연명하며 살다가, 가끔씩 마주치는 참가자들에게서 알을 터뜨리면 단번에 하루치의 수명이 보너스 점수처럼 들어오는 것이다.
이 계산이라면 앞으로 자신들은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의 간곡한 눈빛에 던전의 폰팔이 정다운은 쿨하게 대답했다.
“갖고 싶으면 가져.”
“오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뛸 듯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도플갱어들.
하지만 정다운의 한마디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충전은 어떻게 하게?”
우뚝.
“……아?”
도플갱어들의 얼굴이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핸드폰을 너무 오랜만에 만져 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 그렇구나…….”
“핸드폰을 충전해야 하는구나…….”
“던전에서 배터리 충전을 어떻게 하지?”
[낄낄. 바보들이 따로 없네요.]
아까부터 계속 일희일비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에 토끼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배터리를 아껴 쓴다 해도 카메라를 계속 틀고 있으면 하루를 못 갈 텐데…….”
“후우, 그럼 또 결국 시한부인 거잖아.”
“좋다 말았네.”
“그래도 하루 이틀은 더 살 수 있게 된 게 어디야…….”
시무룩한 얼굴로 궁상을 떠는 그들에게 던전의 부르주아 정다운이 자비로운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 모든 손가락에는 천박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금반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핸드폰 잠깐 줘 봐.”
“……?”
그가 핸드폰을 도로 가져오며 말했다.
“알파, 충전해.”
<네. 배터리가 절반쯤 남았으니 작은 반지를 소모하겠습니다.>
번쩍!
새끼손가락에 있던 금반지가 사라지며 핸드폰에 황금빛이 휘감겼다.
배터리 완충!
“헉.”
“핸드폰을 충전하는 스킬이라니!”
“이 무슨……!”
이 무슨 쓸데없는 스킬이 다 있냐는 말은 차마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쓸데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스킬이었다!
물론 진짜 스킬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의 손에서 배터리가 완충된 핸드폰을 다시 돌려받은 순간, 도플갱어들은 불현듯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고 말았다.
‘아, 이런.’
그들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씨이익.
앞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정다운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걸어 다니는 충전기가 된 정다운.
앞으로 자신들의 목숨은 전적으로 저 남자의 손에 달려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다섯 명의 도플갱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추,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어르신!”
“부디 앞으로도 충전을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오냐.”
그 앞에서 정다운 어르신은 흡족한 얼굴로 거드름을 피웠다.
도서관에서든 던전에서든 언제나 충전기를 가진 자가 갑 아니겠는가.
이제 갑과 을이 정해졌으니, 이제 남은 건 을끼리의 서열 싸움이었다.
“그럼 이걸 우리 중에 누가 갖고 있어야 되지?”
“아무래도 내가 이동 속도가 빠르니까 대표로…….”
“무슨 소리야! 그러다 네가 죽기라도 해서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차라리 내가 방어력이 높으니까 안전하게……!”
“그냥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핸드폰 하나를 두고 서로 옥신각신하는 그들에게 또 한 번 정다운 어르신의 자비가 내려졌다.
“많으니까 싸우지 말거라. 1인 1폰이다.”
“헉!?”
그가 핸드폰 몇 개를 더 꺼내 주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어르신! 핸드폰이 왜 이렇게 많으십니까?”
“설마 전직이 핸드폰 대리점 직원이셨습니까?”
“…….”
전직이야 아무렴 어떤가.
모두가 해피엔딩이었다.
물론 정다운에게도 말이다.
씨익.
던전의 대포폰업자 정다운이 방긋 웃으며 도플갱어들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기꺼이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 * *
[짠! 우리가 왔다!]
“아아, 돌아오셨구나!”
정다운과 토끼가 모자이크 하우스로 당당히 귀환하자, 그 안에서 계속 팔다리가 굳어 누워 있던 참가자들이 그를 반겼다.
“제가 너무 기다리게 했죠? 정화!”
파아앗!
정다운은 돌아오자마자 그들의 석화를 전부 정화시켜 주었고, 참가자들은 그제야 기지개를 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밖에서 무슨 일 생기셨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요즘 들어 감사 인사를 자주 받는 기분이었다.
[석화를 건 사람도 님인데, 감사 인사는 계속 받아먹는 거 봐.]
그의 뻔뻔함에 치를 떠는 토끼였다.
하지만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먼저 소란을 피우다가 석화에 당한 거라서 먼저 풀어 달라고 요구하기가 애매한 입장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고 가지 않고 이렇게 순순히 풀어 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휴이 번스타인이 들고 있는 도살자의 칼이 탐나긴 했다.
하지만 정다운이 그들의 머리에 있던 메이플의 알을 녹여 버린 순간에 허탈감과 함께 모든 욕망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마음이 계속 조바심이 나고 도살자의 칼을 어떻게 해서든 빼앗고 싶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질투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게 메이플의 알이 주는 효과였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같이 나간 도플갱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팔과 어깨를 스트레칭하던 휴이 번스타인이 정다운에게 물었다.
“설마…… 다 죽이셨습니까?”
나갈 땐 여럿이었는데 돌아올 땐 혼자라니.
물어보나 마나인 질문이었지만, 돌아온 정다운의 대답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 유적지 찾으러 보냈어요.”
“……도플갱어들한테요?”
자기 살기도 바쁜 놈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그걸 순순히 한답니까?”
“해야죠. 살고 싶으면.”
“……?”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여러 일이 터지는 바람에 경황이 없었지만, 이 와중에도 정다운은 초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무간도를 공략하기 위해선 어딘가에 있을 유적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득실거리는 메이플 떼를 뚫고 밖을 무작정 헤매고 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번거로운 일은 도플갱어들에게 전부 떠넘기고 온 것이었다.
“앞으로는 각자 흩어져서 알 깨고 돌아다니다가 유적지를 발견하면 나한테 돌아와서 알려 주기로 했어요.”
“……도플갱어들이요?”
“그렇게까지 친절하다고요?”
내막을 자세하게 모르는 참가자들 입장에선 알쏭달쏭할 뿐이었다.
어차피 도플갱어들은 핸드폰 충전을 위해서라도 하루에 한 번 꼴로 무조건 정다운에게 돌아와야 하는 처지였다.
올 때마다 유적지가 없는 지역들만 알려 주고 가도 앞으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휴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정다운 씨는 앞으로도 계속 이 집에 머무르실 생각입니까?”
“음, 아뇨? 저 요즘 동료들 찾아가는 길이라서요. 슬슬 떠나야죠.”
이미 이삿짐은 아까 다 쌌다.
그는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네? 그럼 도플갱어들은 어떻게 정다운 씨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옵니까?”
휴이의 말에 정다운은 씨익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멀리서도 잘 보일 거니까.”
“……?”
그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들은 모자이크 하우스에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모자이크 하우스.
그가 어디로 이동하든 그곳엔 항상 그 괴상망측한 집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부턴 그 집 지붕에 높은 굴뚝이 추가될 예정이었다.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아주 높은.
정다운은 부유석으로 거대한 화살표를 만들어 자신이 머무르는 위치를 매번 표시해 두었다.
그 덕분에 포X몬 트레이너, 아니, 에그 헌터가 된 도플갱어들은 마음 놓고 무간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도플갱어는 메이플들처럼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알만 사냥해도 수명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잠을 자거나 힘들면 쉬긴 해야겠지만, 식사를 안 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무간도를 돌아다니는 일이 일반 참가자들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정다운을 찾아와 하루 일과를 보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벌써?”
[와, 효과가 직빵이네요.]
그런데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그 뒤로도 계속 다른 도플갱어들이 차례대로 돌아와서 말했다.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뭐? 유적지가 또 있다고?”
“저도 발견했는데…….”
“또?”
[유적지가 풍년이네요.]
정다운은 이불 속에 누워 귤이나 까먹다가 유적지 세 곳을 찾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