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42화>
똑똑.
야심한 저녁, 모자이크 하우스의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이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참가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여, 열어 주면 안 됩니다!”
정다운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애초에 잠겨 있지도 않는데…….”
자기들도 아까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서 왜 잠겨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차피 잠잘 때 외에는 모자이크 하우스의 문은 항상 오픈되어 있었다.
이곳에 사는 괴물들은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기도 했고, 그런 괴물들을 피해서 참가자들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잠금 장치를 일부러 안 해 둔 것이다.
그런데 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으며 노크까지 할 수 있다는 건, 저 너머의 존재가 다른 괴물들과 달리 지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었다.
똑똑.
똑똑.
노크 소리가 계속되자, 토끼가 못 참고 냉큼 대답을 해 버렸다.
[네에-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풉.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정다운은 실소를 터뜨렸다.
말도 하고 위트도 있다.
문 너머의 존재는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현대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
“괴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괴물이 맞습니다!”
옆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치는 참가자 한 명이 있었다.
그 순간 정다운은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일까. 문 너머에서 대답한 목소리와 방금 그의 목소리가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마치……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다시 그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끼이익-.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아, 안 돼…….”
느긋한 걸음 소리가 복도를 따라 들려올수록 참가자들은 식겁한 표정으로 바닥에 붙어 있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복도는 짧았다.
참가자들이 몸을 제대로 일으키기도 전에 ‘그들’은 마침내 코너를 돌아 거실에 모여 있던 그들과 조우했다.
“여기들 모여 있었군?”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잔혹한 미소였다.
“젠장! 역시 저놈들이었어!”
간신히 접착제를 떼어 내고 일어난 참가자들은 이를 악물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
정다운은 눈을 의심했다.
안으로 들어온 ‘그들’의 얼굴이 곁에 있던 참가자들의 얼굴과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옷차림이나 들고 있는 무기까지.
그들의 머리 색깔이 하얀색인 것만 빼고는 모든 게 똑같았다.
[님들 쌍둥이임?]
“도플갱어다.”
어리둥절해하는 토끼의 말에 대답한 건 휴이였다.
그 또한 어느새 굳은 표정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정다운이 되물었다.
“도플갱어라고요?”
“그래, 무간도를 돌다보면 가끔씩 저 불길한 얼굴들을 마주치게 되지.”
도플갱어(Doppelgänger)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으로,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나게 되는 심령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들은 결코 유령 같은 허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카메라 어플을 통하지 않고도 뻔히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현재 가장 위기에 빠진 사람은 전신 깁스에 갇혀 낑낑대고 있는 참가자였다.
‘이, 이대로면 죽는다!’
“돌 깨기.”
쩌적!
“아!?”
정다운이 두꺼운 석고 깁스를 깔끔하게 조각내 주고, 그 안에 얇게 굳어 있는 거미풀은 힘으로 찢어 버렸다.
덕분에 밖으로 빠져나온 참가자가 후다닥 일어나 정다운에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애초에 자기가 묶어 놓은 거면서도 절대 감사를 마다하지 않는 정다운이었다.
그 뻔뻔함에 토끼가 치를 떨었지만 일일이 태클을 걸기에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공격이라도 할 것 같았던 도플갱어들은 의외로 얌전해, 대치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나만 묻지.”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자, 다른 도플갱어들도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알의 기척이 사라진 거지?”
“네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분명 여기서 느껴졌는데, 왜 지금은 없지?”
“알의 기척?”
정다운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플의 알 말이다. 네놈들의 머리에 붙어 있던.”
“아! 메이플의 알?”
그 순간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아까 나누었던 대화에 답이 있었다.
토끼가 빠르게 속닥거렸다.
[아무래도 얘네들이 노리는 게 그 하얀 알이었나 본데요?]
“그러게.”
“……!”
그들의 대화에 도플갱어들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 커졌다.
“하얗다고!?”
“어떻게 너희가 알의 색깔을 알고 있는 거지?”
[으잉? 어떻게라니? 봤으니까 알죠.]
“알을 봤다고!?”
“그곳에서 태어난 우리조차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경악했다.
메이플의 알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심지어 그 안에서 태어난 도플갱어의 눈으로도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알에서 흘러나오는 특수한 페로몬을 통해 알의 존재를 인식하고 추적해 왔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해 보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공기 중에 옅게 흩뿌려진 페로몬의 잔향뿐.
알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서 목표물을 놓친 것이다.
“알을 어디에 숨긴 거냐!”
그들의 분노에 집 안의 공기가 살얼음판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없는 건 없는 거다.
정다운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솔직하게 고백했다.
“미안. 그거 내가 정화시켜 없애 버렸는데.”
“……이런 미친!”
화르륵!
그들의 손에서 일제히 스킬들이 발동되었다.
뜨거운 불의 화살.
칼날에 맺힌 하얀 검기.
휘몰아치는 녹색 운무.
그들의 분노가 스킬이 되어 날아오자 정다운은 깜짝 놀랐다.
“스킬도 쓸 줄 아네?”
“스킬뿐만 아니라 기억까지, 모든 게 우리와 판박이지.”
이미 옆에선 휴이가 그들의 공격을 피해 내며 반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는 재빨리 그들을 훑어 자신의 도플갱어를 찾고 있었다.
‘휴, 내 도플갱어는 없구나. 천만다행이군.’
자신의 광폭을 쓸 수 있는 도플갱어까지 나타났다면 정말 골치 아플 뻔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른 어조로 정다운에게 설명했다.
“저놈들이 우리와 다른 건 하나뿐이다.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살인에 전혀 주저함이 없다.”
사이코패스는 바로 저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일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저들은 진짜로 사람이 아니었다.
저들의 진정한 정체는 메이플의 알에서 태어난 메이플의 새끼였던 것이다.
“그동안 내내 꺼림칙했는데, 잘됐군.”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지만,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광폭.”
화르륵!
휴이의 전신에 붉은 기운이 맺히며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다른 참가자들도 저마다 스킬을 펼치며 도플갱어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정다운도 그림자 하인들을 불러냈다.
“팔다리를 집중적으로 맞춰. 하얀 머리가 나쁜 놈들이야.”
“먀옹.”
고양이는 색맹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림자 고양이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명령에 따라 그림자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촉의 방향을 도플갱어들에게로 조준했다.
그러다 멈칫.
“먀옹?”
“왜? 아하?”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다운은 바로 알아봤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느라 한데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활을 쐈다간 적이건 아군이건 다 화살에 맞을 게 분명했다.
물론.
정다운에겐 상관없었다.
“에라, 그냥 아무나 다 쏴 버려.”
“먀옹!”
슈슈슉!
그러자 그림자 화살들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날아가 맞추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으악!”
“헉! 어째서 우리까지!?”
참가자들은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눈먼 화살에 맞고 쓰러지며 배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정다운은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누가 맞던 뭔 상관이야?”
[소, 소름. 진짜 사이코패스가 여기 있었어…….]
옆에서는 토끼가 치를 떨었지만, 정다운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지금 날리는 화살들은 돌뱀의 독니로 만든 특별 제작품이었다.
석화의 독이 발라져 있어서 맞는 순간 그 부위가 돌로 변해 버리는 끔찍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석화 따위는 나중에 정화로 해독해 주면 그만이었다.
물론 상처야 좀 나겠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팔다리를 맞추라고 한 것 아니겠는가.
* * *
상황 종료.
“휴, 다 잡았다. 역시 한꺼번에 뭉쳐 있으니까 금방이네.”
“…….”
“…….”
한 것도 없으면서 손을 탁탁 터는 정다운 앞에는 어느새 도플갱어들과 참가자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 있었다.
팔다리가 돌이 되어 버려 옴짝달싹 못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는 엉덩이만 붙어 있던 참가자들 입장에선 자세만 바뀐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도플갱어들의 얼굴에는 수치심이 가득했다.
“크윽! 우리를 어쩌려는 거냐!”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이만 풀어 줘라!”
“……응? 풀어 달라고?”
[으잉?]
뜻밖의 말에 정다운과 토끼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지 않나?”
[그러게요?]
그 말에 도플갱어들은 바닥에 누운 채로 앞다투어 소리쳤다.
“우리는 죽기 싫다!”
“죽이지 마라!”
“살려 줘!”
“……거참, 솔직한 녀석들일세.”
[뻔뻔하네요.]
조금 전만 해도 사람을 죽이러 온 놈들이 정작 자기 목숨은 엄청 아까워하고 있었다.
정다운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들 앞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죽이는 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그 전에 뭐 하나만 물어보자.”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다 대답해 주겠다!”
“열 개라도 대답해 주겠다!”
“…….”
즉각적인 대답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아무튼 분위기가 물이 올랐으니 정다운은 허심탄회하게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에 대해 알고 싶어. 대체 너희 뭐 하는 놈들이야?”
“살려 준다고 약속해라!”
“대답 안 하면 지금 죽인다?”
“그럼 대답하겠다!”
“…….”
역시 이놈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처음엔 무게 잡고 나타나더니 죽음 앞에선 소신도, 줏대도 없었다.
죽기 싫어서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하루살이들의 후예다웠다.
그 덕분에 정다운은 그들의 습성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내용을 빈 마법서에 간단히 요약해 적어 놓았다.
[도플갱어]
1) 메이플이 사람들의 머리에 몰래 알을 낳는다.
2) 알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알아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알이 자라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빠르면 일주일, 느리면 몇 달.)
3) 알이 부화할 때가 되면, 스스로 머리에서 똑 떨어져 나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을 찾아 굴러간다.
4)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알이 부화하고 도플갱어가 태어난다.
5) 도플갱어의 수명은 하루다.
“……뭐? 수명이 하루라고?”
노트를 정리하던 정다운의 손이 마지막 부분에서 멈칫했다.
그에 도플갱어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생긴 건 이래도 우리의 본질은 결국 메이플의 새끼다.”
“그래서 수명도 하루다.”
“아하…….”
정다운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사람처럼 생겼어도, 결국 이들은 하루살이의 알에서 태어난 하루살이라는 말이었다.
기억이나 스킬 등 모든 외형적인 조건은 키워 준 부모인 인간을 닮았으나, 수명만큼은 낳아 준 부모인 메이플을 닮아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진 도플갱어의 말은 놀라웠다.
“그래서…… 우리는 수명을 늘리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
“사람을?”
[호오? 사람을 죽이면 수명이 늘어남?]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이플의 알이 기생하고 있는 사람을 죽여야 수명이 늘어난다.”
‘그랬구나!’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참가자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제야 비로소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이 도플갱어들에게 쫓겨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어쩐지 그동안 도플갱어들은 굳이 얼굴이 똑같은 사람만 죽이려고 고집하지 않았다.
아무나 다 죽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들의 머리에 기생하고 있던 메이플의 알이었다.
누굴 죽여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수명만 늘릴 수 있다면!
[이제 보니 흡혈귀 같은 놈들이었네요. 그래서 한 사람당 수명이 얼마나 늘어나는데요?]
토끼가 호기심에 가득 차 묻는 말에 도플갱어들은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