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41)화 (241/393)

<던전리셋 241화>

전투는 치열했다.

다수를 상대로도 광전사 휴이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콰쾅! 쾅!

간발의 차이로 스킬을 피해 내고.

등 뒤에 있던 벽이 폭발해도.

그는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와 그들의 몸에 도살자의 칼을 콱 박아 넣었다.

“끄아악!”

그에 맞서 싸우는 참가자들의 표정도 악바리처럼 지독했다.

“물러서지 마! 어차피 숫자는 우리가 유리하다!”

“저놈을 죽여야 우리가 살아!”

상대가 먼저 죽어야만 끝나는 혈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엉망진창이 되어 갔다.

쿠콰쾅!

붉은 피가 사방에 뿌려지고 벽이 무너졌으며.

“키히잇!”

그 구멍을 통해 메이플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집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촤아악!

“키힛!”

더 이상 모자이크 하우스는 안전한 쉼터가 아니었다.

괴물들이 전투 중인 그들을 한꺼번에 덮쳤고, 그들은 결국 서로를 신경 쓰며 동시에 괴물 떼까지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거, 귀찮게들 하네.”

치덕 치덕.

‘……?’

등 뒤가 조용해지자 그들의 시선이 문득 뒤를 돌아보고 일제히 눈을 휘둥그레 커졌다.

치덕 치덕.

정다운이 그림자 하인들과 함께 시멘트를 발라 구멍 난 벽을 보수하고 있었다.

‘시멘트!?’

토끼는 별거 아니라는 듯 핫바를 먹으며 그들을 채근했다.

[아,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마저 싸우시면 됨.]

“……?”

[아, 어서요. 딱 재미있는 순간에 흐름 끊겼잖아요. 싸우는 사람들 어디 갔나?]

“…….”

흐름은 이미 끊겨 버렸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참가자들.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을 흘리며 오연히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휴이 번스타인.

광폭 스킬은 무적이지만 전투 내내 피가 끓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전투는 그렇게 종결되었다.

이제 언제나 그렇듯이 패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   *   *

호로록.

“…….”

“…….”

모자이크 하우스 거실 한가운데 둥글게 모여 앉아 비명초의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정들 했어요?”

“…….”

정다운의 말에도 참가자들과 휴이 번스타인의 표정은 좌불안석이었다.

[거봐. 안 싸우니까 조용하고 얼마나 보기 좋아요?]

“…….”

분명 좋은 말인데, 그 말이 하필 토끼의 입에서 나오니까 너무 뻔뻔했다.

호로록.

참가자들은 왜 자신들이 싸우다 말고 여기 앉아 차를 마셔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3초. 당장 일어나자마자 이들의 목을 전부 벨 수 있는 공격 거리.’

휴이는 이미 머릿속으로 자신의 전투 동선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려 보고 있었다.

‘몸을 돌리며 왼쪽과 오른쪽을 한꺼번에 베어 낸다. 그리고 바로 몸을 굴려서…….’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기회다. 바로 일어나서 동시에 덮치면 돼.’

그들의 머릿속에선 이미 휴이가 목이 잘린 채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뭐 하나?

현실은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정다운이 무서워서?

아니었다.

그들의 엉덩이와 바닥이 거미풀로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미풀 진짜 잘 드는 것 같아.”

정다운은 흡족했다.

거미풀 덕분에 지금은 강제로 담소 시간이 되어 있었다.

호로록.

“그래서 왜들 싸운 거라고요?”

“그게…….”

정다운의 물음에 휴이를 추격해 온 참가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알을 굴렸다.

물어볼 것도 없이 이유야 당연히 도살자의 칼이 탐나서였다.

“무간도에서는 체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 절실합니다.”

“이쪽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살기 위해선 뭔들 못 할까.

무간도에서는 숨 쉬는 모든 순간에 전투가 벌어져서 실시간으로 체력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우연한 기회에 휴이의 흡혈 무기를 보게 된 순간 눈이 뒤집혔다.

전투 중에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무기라니!

대체 어디서 저런 귀한 보물을 얻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휴이를 공격했고.

그러다 동료를 잃었고.

동료의 복수를 하겠다며 쫓아왔고…….

“나에겐 너무 익숙한 패턴일 뿐이다.”

호로록.

휴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였다.

비명초의 차가 그들의 들끓던 마음을 강제로 진정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데.

……투둑!

갑자기 옆에서 바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죽어라, 광폭의 전사!”

“……!”

휴이의 앞에 있던 참가자 하나가 헐크처럼 발작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깟 접착제 따위!”

찌지직!

그는 하의 실종 차림으로 호기롭게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으으읍! 읍읍!”

이번엔 몸 전체가 거미풀에 동동 감긴 채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오, 이러면 깁스로도 쓸 수 있겠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정다운은 깁스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팔이나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역시 깁스가 최고 아니겠는가.

치덕 치덕.

그는 정갈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큰 그릇에 석고가루와 물을 우아한 손길로 반죽했다.

그리고 주걱으로 푸욱 퍼서 단단하게 굳은 거미풀 위에 치덕치덕 두껍게 발랐다.

전신 깁스.

발작했던 참가자의 몸이 얼굴만 빼놓고 점점 피라미드에 갇힌 미라 꼴이 되어 갔다.

이렇게 되면 힘을 올려 주는 스킬이 없는 이상 절대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토끼가 낄낄대며 그 위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바보 멍청이 메롱

- 귀여운 토끼가

낙서 완료.

하는 김에 눈 주위에도 팬더곰처럼 검은 반점을 색칠해 주었다.

그사이 정다운은 그의 입을 벌리고 비명초의 차를 강제로 들이부었다.

“어풉! 어푸푸!”

“어허, 뱉지 말고 다 마셔요. 몸에도 좋고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으뜨뜨!”

“아, 너무 뜨거웠나? 미안해요.”

“……!”

악질적인 물고문이었다.

차를 호호 불어 가며 다시 천천히 고문(?)하는 정다운의 친절한 배려에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튼 이제 가장 살기등등하던 참가자까지 진정되었다.

[음? 그런데 이 사람은 뭔가 느낌이 다른데요?]

그를 보며 토끼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느낌?”

[비명초의 차를 마셨는데도 분노 조절이 안 되잖아요. 살짝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저주라도 걸린 거 아님?]

“저주? 저주라면 내가 정화라도 걸어 볼…….”

우뚝.

스킬을 쓰려던 정다운은 무슨 생각인지 그 전에 먼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 어플을 켰다.

야수의 숲을 돌아다니던 습관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그의 촉은 정확했다.

“우왁! 뭐야, 이거!”

정다운은 심령사진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토끼도 마찬가지였다.

[히익? 이거 뭐야, 무서워!]

놀랍게도 그 참가자의 정수리에 배구공만 한 새하얀 혹이 크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맨눈으로 보면 안 보이는데 카메라 어플로 봐야만 보이는 혹이라니!

“설마 유령!?”

[저주인 듯!]

“……뭔데 저러지?”

치사하게 자기들끼리만 핸드폰을 보며 수군거리는 모습에 휴이를 포함한 다른 참가자들은 옴짝달싹도 못 하고 귀만 쫑긋거려야 했다.

알파가 말했다.

<미약하게 메이플의 마력 패턴이 느껴집니다.>

“메이플의?”

<그렇습니다. 이 한 사람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여기 모두에게서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

정다운이 서둘러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들을 확인해 봤다.

알파의 말은 정확했다.

“진짜네?”

이제 보니 머리에 모두 찐빵 같은 새하얀 혹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는데 배구공처럼 엄청나게 큰 혹은 전신 깁스에 갇혀 있는 참가자 한 명뿐이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메이플의 알이 아닐까 합니다.>

“이게 하루살이의 알이라고?”

[으익? 벌레의 알이라고요!?]

정다운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부랴부랴 마녀의 일기장을 꺼내 들고 하얀 혹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정답이 딱 나왔다.

[하루살이-2]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

관찰해 보니까 하루살이는 입이 없더라고.

어쩐지 하루밖에 못 살더라니! 

굶어 죽는 거였어!

너무 불쌍하지 않아?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하루 종일 알만 낳다가 굶어 죽어야 한다니!

게다가 알에서 태어나도 어차피 부모님처럼 똑같이 살 거 아냐?

그런데 얘네 알은 어디에 낳지?

아무리 찾아봐도 통 보이지 않네.

[야잇! 하루살이 같은 거 관찰하지 말라고!]

“……누가 제발 얘보고 일기 좀 그만 쓰고 나가 놀라고 좀 말해 주라.”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 정다운과 토끼였다.

이건 역시 하루살이의 알이 맞았다.

애초에 하루살이들, 아니, 메이플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단 하나였던 것이다.

바로 알을 낳기 위해서.

그것도 하필이면 참가자들의 머리 위에 말이다.

육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만져지지 않는 유령 같은 상태로 알을 낳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토끼가 무릎을 탁 쳤다.

[아하, 알았다! 혹시 메이플의 알이 사람의 심성을 살살 건드리는 게 아닐까요?]

“응?”

토끼는 아까 잠깐 말했던 마녀의 응원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알이 붙으면 하루살이의 영향을 받아서 심성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게 틀림없음!]

“그러네. 아까보단 훨씬 그럴싸한 논리야.”

정다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유령 같은 상태라면 정화 스킬이 먹힌다는 사실이었다.

“정화.”

파아앗!

정다운의 정화구체가 메이플의 알을 살살 녹여 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지를 찢어가며 발작하던 참가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그렇게 모두의 혹을 다 녹여 버리자, 그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해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잠시 뭐에 홀렸었나 봅니다. 무기를 뺏을 게 아니라 차라리 동료가 되자고 권유했어야 했는데…….”

“…….”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선뜻 자신에게 사과를 해 오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휴이는 당황했다.

‘설마 진심인가?’

그들의 말과 표정에서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이제 보니 메이플은 단순히 채찍을 휘두르는 괴물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머리에 알을 낳아 심성을 극단적으로 변하게 하는 놈들이었다.

[아무래도 알의 크기가 커질수록 심성도 더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성격이 더 많이 변한다는 말이네.”

‘이건 진짜…… 좋지 않은데?’

진심으로 류승우가 걱정되는 정다운이었다.

그의 성격이 과격하게 변하기라도 하면 정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 머리 위에는 안 달려 있었지?”

[우린 매일 목욕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벌레들이 원래 더러운 곳에 알을 낳는 거 아님? 어휴, 더러워. 좀 씻고들 다니지.]

움찔.

토끼의 맹비난에 참가자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꾀죄죄한 자신들에 비해 정다운의 피부는 너무 탱탱하고 맑고 투명해서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토끼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게다가 방금 못 보셨음?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휴이 님도 머리에 알이 없었잖아요. 아까 우리랑 같이 목욕해서 그런 거 아니겠음?]

“아, 그러네? 그럼 혹시 정화 스킬이 아니라도 물에 녹아 없어지기도 하나? 거미줄처럼?”

[그럴지도 모르죠.] 

“확인해 볼 걸 그랬네.”

“저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때 문득 석고 깁스 안에서 갇혀 바닥에 누워 있던 참가자가 고개를 살짝 들더니 그들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저희가 무간도에 도착한 건 제법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동안 ‘알’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혹시 그동안 알이 부화한 적이 있지 않을까요?”

그는 어딘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정다운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친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알들이 부화했다면 그놈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그래 봐야 하루살이잖아요. 하루 만에 죽었겠죠 뭐.]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토끼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 공통적으로 ‘어떤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마녀는 말했다.

게다가 알에서 태어나도 어차피 부모님처럼 똑같이 살 거 아냐?

‘알’에서 태어난 이들이 부모님처럼 똑같이 살게 된다면.

과연 그들은 지금 어느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살고 있을까.

낳아 준 부모?

키워 준 부모?

*   *   *

터벅.

그 시각, 모자이크 하우스 주위로 모여드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제각각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순백의 머리카락.

그리고 공허한 눈빛.

“……찾았다.”

씨익 입꼬리를 말아 웃는 그들의 시선은 모두 모자이크 하우스를 향하고 있었다.

[히익? 온 사방에서 피 냄새가 느껴져요!]

토끼의 말에 정다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참가자들의 입에서 동시에 꺼질 듯한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역시 이거였나.

무간도에서 참가자들이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끔씩 마주치는…….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괴물들이 가장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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