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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37)화 (237/393)

<던전리셋 237화>

*   *   *

[2차 공세가 시작됩니다.]

메이플들이 다시 나타났다.

“키히잇!”

휘리릭! 촤악!

“키히요!”

달각달각!

정다운과 토끼는 나란히 서서 허탈한 표정으로 미쳐 날뛰는 메이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살이가 진짜 힘내고 있네요…….]

“그러게.”

[열심히들 사네요.]

“그러게.”

[징그럽게 대단한 애들이네요.]

“그러게…….”

어린애의 말 한 마디가 가지는 힘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하루살이가 실제론 이삼 일도 산다던데. 마녀가 그것까진 몰랐나 보네…….”

그나마 마녀의 상식이 얕아서 다행이었다.

알았다면 공세가 지금처럼 하루 만에 끝나지 않고 3일씩이나 이어졌을 것이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녀의 ‘언령’은 정말 놀랍습니다.>

알파는 매번 마녀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듯이, 좋은 말을 하면 행복해지고 나쁜 말을 많이 하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막대한 부를 가진 자나 권력자가 하는 말은 그 즉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에 변화를 준다.

그렇듯 특별한 존재들이 하는 말에는 더 강력한 힘과 위엄이 담기게 된다.

일반인들도 그런데 하물며 마법사라면 어떻겠는가?

‘언령(言靈)’

추상적이고 모호한 생각과 욕망들을 ‘말’이라는 뚜렷한 형태로 묶어 세상에 구현시키는 권능.

마녀는 그 엄청난 권능을 이미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녀의 응원을 받은 하루살이들은 정말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투혼을 불태우는 모습은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정다운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호로록.

“토끼야, 윷놀이할 줄 알아?”

[그게 뭐임?]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놀아 보기로 했다.

토끼는 솔깃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장작 하나를 꺼내 윷가락을 깎기 시작했다.

“어차피 밖에 나가려면 이번 공세가 끝날 때까진 넋 놓고 기다려야 되잖아? 나무 베기!”

사각 사각. 서걱 서걱.

막상 해 보니 윷가락을 깎는 건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했다.

한쪽은 평평한데, 반대쪽은 한 치의 치우쳐짐도 없는 완벽한 곡면을 이루어야 공평한 게임이 가능했다.

같이 웃고 즐기기 위해 윷놀이를 하다가 대판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도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일도 허다했으니, 윷가락을 다듬는 그의 손길은 더없이 신중했다.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윷가락 4개가 완성되었다.

“좋아. 완벽해!”

[그냥 막대기 아님? 어떻게 하는 건데요?]

“쉬워. 던지기만 하면 돼.”

정다운은 토끼에게 윷놀이를 가르쳐 가며 본격적으로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토끼가 대충 익숙해진 듯 보이자 그의 입가에 은밀하고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쉽지? 내기 할까? 지면 딱밤 한 대.”

[호오?]

토끼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겁나 맞았다.

[……으아악! 나 안 해!]

정다운은 윷놀이의 귀재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항상 아슬아슬하게 역전승을 했다.

“한판 더?”

[더, 덤벼랏! 이 악마!]

악마의 사악한 도발에 토끼는 핏발이 선 눈으로 결국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딱밤이 리셋되었다.

[으아악! 나 진짜 안 해!]

쪼그려 앉아 불이 난 이마를 감싸 쥐고 몸부림치는 토끼를 향해 악마왕 정다운이 다시 유혹을 해 왔다.

“그럼 다른 게임 해 볼래?”

[……호오?]

다시 솔깃하는 토끼.

나무 베기 스킬이 대충 익숙해지자 그는 이번엔 고도로 정밀한 나무 조각에 도전했다.

“나무 베기!”

서걱 서걱! 사각 사각!

[뭐, 뭐지? 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집중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보네…….]

토끼조차 당황할 정도로 그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나무를 깎았다.

가로 세로 높이의 완벽한 비율의 직육면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규격.

그게 무려 수십 개나 필요했다.

[이게 뭐임?]

“젠가.”

그는 그 나무 블록들을 전망대 쌓듯 차곡차곡 높이 쌓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 블록을 돌아가며 하나씩 빼는 거야. 무너지면 딱밤 한 대.”

원래 이러라고 있는 나무 베기 스킬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효과가 있긴 했다.

[<나무 베기> 스킬이 2레벨로 발전했습니다.]

“오, 레벨 업이다!”

기뻐하는 정다운의 모습에 토끼는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무릎을 탁 쳤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숲의 나무를 직접 벴다간 퀘르쿠스가 또 나타날까 봐, 나무 조각을 해도 레벨 업이 되나 확인해 보고 싶으셨던 거임?]

“……롸?”

[…….]

토끼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한발 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다운이었다.

“그, 그렇지. 역시 내 계획대로군.”

[때려쳐.]

“그런데 이 공세가 몇 번까지 있는 거지? 끝이 있긴 있나?”

[갑자기 그게 궁금하다고요?]

정다운은 말을 돌렸다.

“누군가 물어볼 사람이 필요하겠어.”

가장 먼저 무간도에 도착한 류승우도 아직 끝을 보지 못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목에 차고 있는 늑대인간의 수호부를 입에 대고 헛기침을 했다.

“흠흠, 여보세요? 루갈?”

여보세요르르-

루가르랄라랄라-

번쩍!

[크르렁! 부르지 좀 말란 말이다!]

잠시 후 수호부에서 빛이 터지며 루갈이 씩씩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킁킁댔다.

[크륵? 여긴 무간도인가?]

[우와, 냄새로 그걸 안다고!?]

토끼가 놀라워하자 루갈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렇게 벌레 냄새로 지독한 곳은 무간도밖에 없지. 그보다 왜 불렀지?]

“여길 아니까 다행이네. 그럼 아는 대로 설명 좀?”

[크릉. 뻔뻔한 놈! 나는 네 개인 도우미가 아니란 말이다!]

살랑 살랑!

루갈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의 풍성한 꼬리는 제멋대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요즘 계속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만 하면 밥을 얻어먹었더니, 반사적으로 꼬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본능을 이기지 못했다.

[……무간도의 공세는 섬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다리를 건너 다른 섬으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 또 1차 공세가 시작된다.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다.]

“그럼 다른 섬으로 넘어가 봤자 의미 없는 거 아냐? 다리는 왜 있지?”

[의미야 있겠죠. 처음 도착한 섬에 쉴 곳이나 먹을 게 없다면 다른 섬으로 넘어가야 할 듯.]

[그 말도 맞다.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토끼의 말에 루갈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충했다.

[무간도의 많은 섬들 중에서 유적지가 있는 섬을 찾아내야 여길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투쟁은 기본이고, 그 안에서 최종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건 어느 던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혹시 유적지 있는 섬이 어딘지 알아?”

[내가 알게 뭐냐. 여기가 내 관할도 아닌데.]

단호히 선을 긋는 루갈이었다.

자기 일도 바빠 죽겠는데 직접 돌아다니며 알아봐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결국 정다운은 이사를 결심했다.

“그럼 우리도 어디로든 움직여야 한다는 거네. 딱 봐도 이 섬엔 유적지가 없으니까.”

[그래요. 3차 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얼른 짐을 꾸려서 떠나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바깥에 메이플들이 득실대서 무리였다.

하늘 신전을 타고 간다 해도 메이플들이 날아다니는 놈들이라 정신없긴 마찬가지였다.

“별수 없이 내일 아침까진 기다려야겠네?”

[크륵?]

갑자기 정다운이 씨익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자 루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생각인지 토끼도 갑자기 실실거리며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손에 앙증맞은 나무 조각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 요망한 나무 조각은 뭐지?]

[온 김에 같이합시당. 지면 딱밤 한 대 콜?]

[크릉.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딱밤으로 네 머리통을 폭발시킬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그만두죠.]

루갈의 거대한 손가락을 본 토끼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뒷걸음질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   *   *

다음 날은 메이플들의 동향을 관찰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찍 일어났다.

그러기 위해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초저녁부터 일찍 잠들었더니, 정다운과 토끼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역시 그렇구나.”

퉁다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메이플이 죽기 시작했어. 매일 같은 시간에 공세가 시작되고, 같은 시간에 끝나는 거야.”

퉁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 간단한 시간표를 다른 참가자들 입장에선 모를 수밖에 없겠어요. 살기 위해 발악하다 보니 공세가 끝나기 전에 항상 메이플들을 다 죽였을 테니까요.]

메이플은 방어력이 약해서 광범위 스킬만 있다면 반나절 정도면 어떻게든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땐 이미 날이 저문다.

결국 하루 종일 혹사당한 참가자들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안전한 곳을 찾아서 부랴부랴 잠부터 청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또다시 공세가 시작된다.

그런 매일매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곳이 바로 이곳, 무간도였다.

[그야말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이 따로 없네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사장을 잡고 퇴사하는 게 답일 듯.]

오랜 도우미 경력으로 인해 토끼는 주워들은 말도 참 많았다.

정다운은 굳이 모자이크 하우스를 철거하지 않고 다리를 그냥 건너기로 했다.

[안 아까워요?]

“귀찮아. 다시 지으면 되지 뭐.”

[하긴 그러네요.]

재료야 넘쳐 났고, 집을 다시 조각내서 철거하는 일이 더 번거로웠다.

그들은 결국 집 안에 있는 가구들만 챙기고 텅 빈 집을 남겨 두고 떠났다.

그렇게 며칠 뒤, 정처 없이 메이플들에게 쫓기던 소수의 참가자들이 정다운이 있던 섬으로 피난을 왔다.

“이, 이럴 수가! 집이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다운 모자이크 하우스]

그들은 섬 한가운데 떡하니 지어진 집을 발견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영민하게 돌아가는 지식인 한 명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모두 멈춰! 이 집은 함정일 거야! 들어가는 순간 우리 전부 죽는다!”

“하, 함정? 이 집이 함정이라고요?”

“당연하지! 던전 하루 이틀 돌아다녀? 모르겠어?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뒤죽박죽 누더기 같은 게 딱 봐도 수상하게 생겼잖아?”

“그렇긴 한데…….”

그는 동료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모름지기 이런 건 목소리 큰 사람의 말에 따라가는 법.

결국 그들은 모자이크 하우스 바로 앞에서 메이플들과 싸우고, 밤이 되자 부랑자들처럼 문 앞에 기대어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던전이 리셋됩니다.]

다음 날이 되자 섬이 새로운 손님들을 환영하며 그 전에 남아 있던 잔재들을 전부 없애 버렸다.

모자이크 하우스까지도.

“헉, 집이 사라졌어?”

“설마 함정이 아니었나?”

그들은 충격을 받고 어제 들어가길 반대했던 사람을 쳐다봤다.

“왜, 왜 날 봐?”

“…….”

“딱 봐도 수상했잖아! 집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고! 들어갔으면 분명 우리도 같이 사라졌을 걸!?”

“…….”

비겁한 변명이었다.

그는 결국 단 하루라도 안전하게 쉴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놓쳐 버린 동료들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다른 섬에서도 계속 반복되었다.

[정다운 모자이크 하우스 2]

“맙소사! 집이다!”

[정다운 모자이크 하우스 3]

“집이다!”

다른 섬에도.

또 다른 섬에도.

정다운이 남기고 지나간 흔적들이 리셋되기 전에 딱 하루씩은 남아 있었다.

무간도는 새 손님들이 섬에 들어오면 1차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전에 남아 있는 잔재들을 싹 청소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섬에 도착하는 타이밍에 따라 그들이 모자이크 하우스를 발견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어서 들어갑시다! 저 안에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메이플들을 피할 수 있겠어요!”

“아니야! 모두 멈추세요! 이건 함정이 분명합……!”

“시끄러! 그럼 넌 밖에서 자든가!”

“어, 어? 기다려……! 나만 두고 가지 마!”

뒤죽박죽 만들어진 모자이크 집에 들어가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모자이크 하우스를 찾기 위해 다른 섬으로 서둘러 건너가는 무리들도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모자이크 하우스에 대한 전설(?)이 참가자들 사이에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하룻밤의 소중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정다운 모자이크 하우스 11

“……간판이 어째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지 않아?”

누군가 소문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갑자기 간판이 예뻐지고 고상해진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다운이 누구지?”

“그냥 브랜드 이름 아냐?”

“사람 이름인 것 같은데. 유명한 건축가인가?”

점점 참가자들 사이에서 정다운의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하자, 그 소식은 결국 누군가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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