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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36)화 (236/393)

<던전리셋 236화>

자기 인생이 바쁘고 정신없다 보면 단톡방은 항상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용의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던전에서 단순히 수다를 위해서 그들이 귓말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단톡방이 시끄러워졌다.

그 시작은 토끼였다.

<토끼 : 자, 오랜만에 다들 생존 신고해 봅시당! 죽은 사람 손 드셈! 아얏. 왜 때려요?>

죽은 사람이 손을 어떻게 드냐며, 토끼의 뒤통수를 가차 없이 후려치는 정다운이었다.

<정다운 : 알파가 그러는데 용의 사도 한 명이 사라졌다는데? 다들 괜찮은 거야?>

<토끼 : 그럼 산 사람만 푸쳐 핸접! 아얏. 왜 자꾸 때리냐고요!>

<오동민 : 누가 죽었어요? 아, 저는 여기서 서연 이모 만났어요. 되게 싸움 잘하는 이모예요!>

<지서연 : …….>

용의 사도들 중 유일하게 귓말로 수다 떠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다면 바로 오동민이었다.

귓말 한 번에 들어가는 생명 에너지쯤은 뱃속에 얼마든지 저장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다들 현실이 바쁘다 보니 답장이 도착하는 속도는 제각각이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도민준의 귓말이 도착했다.

<도민준 : 석정호 씨가 죽었습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토끼 : 히익? 죽은 사람이 그 양반이었음? 대박.>

<지서연 : 네? 석정호가 죽었다고요? 그게 정말인가요?>

<오동민 : 그분이 누구신데요?>

“석정호 씨가 죽었다고?”

정다운은 깜짝 놀랐다.

석정호의 화염충은 상당히 좋은 스킬이었다.

원거리와 근거리 상관없이 공격할 수도 있으며, 괴물을 유인하거나 어둠 속을 정찰하는 데도 유용했다.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토끼도 그러했다.

[진짜 의외네요. 같은 일행인 도민준 아재도 살아 있는데, 불나방 아재만 죽었다니……. 혹시 도민준 아재가 야밤에 팀킬한 건 아니겠죠? 독을 탔다던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민준은 그 당시의 상황을 그들에게 전부 알려 주었다.

<도민준 : ……머리색이 새하얀 남자였습니다.>

그에 정다운과 토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얀 머리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였다고?”

[그런데 딱 석정호 아재만 죽이고 떠났다고요? 그것도 신기하네. 뭐 하는 양반이지?]

토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난 그 양반 언젠가 죽을 줄 알았어요. 꼭 그렇게 성질 더러운 사람이 원한을 많이 사서 일찍 죽는 법이라고요.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봐요?]

정다운의 시선이 토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아는 거 뭐 없어?”

[나도 몰라요. 아무리 나라도 지난 참가자들의 머리색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진 않다고요.]

“그래도 하얀색으로 탈색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 아냐? 기억나는 사람 없어?”

[흐음, 그렇긴 한데. 백발의 젊은 남자라…….]

토끼는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류승우 : 머리가 하얀 사람이라면,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승우 형이 안다고?”

[나도 모르는 걸?]

류승우의 귓말에 그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류승우 : 도민준 씨라고 하셨죠? 아직 만나 본 적 없는 분들이지만, 일단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윤진수 :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분위기가 어두워서 여태껏 조용히 눈치만 보다 얼른 한마디 남기고 사라지는 윤진수였다.

<도민준 : 아닙니다……. 석정호 씨의 죽음 이후로 팀의 전투력은 약해졌지만, 오히려 편해진 부분도 많습니다.>

<류승우 : 여러 사정들이 있으셨나 보군요. 아무튼 그 백발의 남자를 만나셨다면 여러분도 이미 저희가 있는 ‘무간도’에 도착하신 것 같습니다.>

“무간도?”

[이 섬의 이름인가 본데요?]

류승우의 말에 정다운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앞서 출발한 류승우와 후발 주자인 도민준의 일행이 같은 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마찬가지로 자신까지 이 섬에 도착했다니, 절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우연이 아닙니다.>

“알파?”

순간 정다운의 손에서 황금빛 화살표가 깜빡거렸다.

<그동안 제가 미니 제단의 위치를 화살표로 알려 주었듯이, 마찬가지로 용의 사도들에게도 미니 제단의 위치를 꾸준히 알려 주었습니다.>

“아, 진짜?”

<그렇습니다. ‘류승우’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모두가 이동 중이었으니 점점 동선이 겹치게 된 겁니다.>

[소오름! 역시 알파 님이시다!]

토끼는 알파 비서의 유능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게다가 뒤에서 그런 일을 하고도 지금까지 생색을 한 번 안 냈다는 점이 더 소름이었다.

프로 생색러 토끼였다면 하루만 지나도 입이 근질거렸겠지만 알파는 쿨했다.

<저는 그저 본분을 다할 뿐입니다.>

[히익?]

애초에 용의 사도들은 생명의 용 에르테아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것은 알파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류승우 : 아무튼! 다운아, 너도 무간도에 들어온 거라면 이제부턴 진짜 조심해야 된다!>

류승우가 갑자기 다급하게 말을 끝맺었다.

이미 사방에 괴물들이 몰려온 상황이라 대화를 길게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중요한 당부만 남기고 사라졌다.

<류승우 : 다운아, 그 백발의 남자는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살인마야. 만나게 되면 절대 상대하지 말고 도망쳐.>

그 말에 정다운과 토끼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 커졌다.

“말도 안 돼. 천하의 승우 형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그럼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으잉? 그 정도로 강하다면 내가 기억 못 할 리 없는데요? 아, 진짜 누구지?]

한동안 토끼는 지난 기억을 더듬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   *   *

석정호를 잃고 나서 도민준 일행은 최대한 빨리 그 일대를 벗어났다.

백발의 남자가 또 나타날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곧바로 ‘2차 공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2차 공세가 시작됩니다.]

“2차?”

“대체 이런 거 몇 차까지 있는 거지?”

“무간도라더니…….”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무간도는 섬마다 개별적으로 ‘괴물 군단’의 공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인 섬 위에서 놈들을 피해 아무리 도망쳐 봐야 그곳이 그곳일 뿐이었다.

얼마 안 가 그들은 수많은 괴물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위이잉-

길고 날씬한 3쌍의 다리.

삼각형에 가까운 2쌍의 날개.

2개의 긴 꼬리.

크기는 사람보다 더 큰 곤충형 괴물들이 온 사방에서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었다.

그 숫자는 감히 ‘군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만 좀 쳐 오라고! 이 지긋지긋한 놈들아!”

그들은 악에 바쳐 검을 휘둘렀다.

언뜻 보면 잠자리와 비슷했지만 잠자리는 절대 아니었다.

잠자리였다면 저 두 가닥의 긴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무기를 막아 내지 못했을 테니까.

*   *   *

상황은 정다운 쪽도 마찬가지였다.

[1차 공세가 시작됩니다.]

위이잉-!

[메이플이에요. 숲에서 가끔 본 적 있죠?]

“응,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보는 건 처음이지만.”

토끼의 말에 정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숲을 돌다 보면 별별 괴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사실 그중에서 메이플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괴물의 일종이었다.

기본적으로 곤충형 괴물들은 방어력이 약하기도 했다.

차라리 피를 빨아 먹는 괴물 각다귀가 더 무섭지, 메이플은 채찍 같은 꼬리만 조심하면 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채찍의 숫자가 이렇게까지 많아진다면 문제는 달라졌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채찍에 검과 방패를 빼앗기고 사지가 꽁꽁 묶이면 게임 오버였다.

게다가 채찍 끝은 가시처럼 날카롭기도 해서, 각다귀처럼 피는 빨지 못해도 그 자체가 흉기였다.

결국 이놈들은 한 마리당 2개의 창, 혹은 2개의 채찍을 휘두르는 병사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병사들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흉흉한 분위기 한가운데서 정다운은 토끼와 마주 앉아…….

호로록.

“후우, 향이 좋군.”

[호록, 앗뜨!]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모자이크 하우스 안에서.

“키히이!”

달각달각!

창 밖에서는 수많은 메이플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쇠꼬챙이를 격자 형태로 엇갈려 붙인 쇠창살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쇠창살 +1]

- 내구력 : 99/100(%)

- 옵션 : 단단함 (1레벨)

호로록.

“공세가 언제 끝날까?”

[끝나긴 할까요? 숫자가 점점 늘고 있는데요?]

“흠, 의외로 골렘들이 메이플은 잘 못 잡는단 말이지.”

이미 모자이크 하우스 밖에는 골렘들이 돌아다니며 메이플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플은 방어력이 약한 대신 너무 몸이 가벼운 게 문제였다.

골렘들이 우악스럽게 팔을 휘두르면, 그 바람에 휘말려 메이플들은 팔랑거리며 뒤로 날아가 버려서 잡기가 힘들었다.

“거미줄로 그물이라도 만들어 볼까?”

그는 마법 창고 안에 너덜너덜 붙어 있는 거미줄을 몇 장 뜯어 와 그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림자 하인들 편에 보내서 골렘들의 손에 들려 주었다.

하지만 각다귀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키히이!”

촤악!

메이플들이 긴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거미줄을 다 찢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고작 몇 마리만이 거미줄에 붙잡혔다.

“흠, 이것도 실패네. 호로록.”

[그러게요. 호로록.]

그윽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고민에 빠진 정다운과 토끼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류승우에게 듣기로, 무간도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괴물들의 총공세를 버티며 생존해야 하는 무한의 감옥이었다.

그나마 튼튼한 벽돌집을 만들어 놔서 다행이었지, 한 발자국이라도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진정한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함.]

토끼는 아예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서 얼굴만 빼 놓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럴수록 더욱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다 결국 정다운이 중요한 결심을 하며 찻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이래선 안 돼.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 버리겠어. 흙 뭉치기!”

[음?]

콰직!

그는 다짜고짜 일어나 모자이크 하우스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흙 뭉치기! 흙 뭉치기!”

구불구불 땅굴을 파고 내려가 넓은 지하실을 만들고 한가운데 큰 웅덩이를 팠다.

“반신욕이라도 하면서 고민해 보자고.”

[흐음, 그러죠.]

그들은 웅덩이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고 뜨끈한 물에 몸을 데우며 골똘히 고민했다.

“……일단 졸리니까 한숨 자고 생각할까?”

[흐음, 그럴까요?]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하루가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개운하게 잠에서 깨고 일어나자,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으잉? 얘네 누가 다 죽였음?]

창밖을 보니 놀랍게도 메이플들이 전부 죽어 있었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간밤에 무슨 일 있었던 거지?”

정다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집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워낙 가벼운 메이플들의 시체가 허무할 정도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놈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너네가 다 죽였냐?”

“크워?”

정다운이 묻는 말에 골렘들은 멍청한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설마 스스로 죽었을 리도 없고…….”

그는 마녀의 일기장을 꺼내 들고 바람에 나부끼는 메이플 한 마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하루살이]

하루살이는 징그럽긴 해도 정말 대단한 애들이야.

하루를 살아도 어떻게 저리 열심히 살까?

힘내, 얘들아!

 

[야잇! 그런 거 응원하지 말라고!]

“이거였냐…….”

정다운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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