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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232)화 (232/393)

<던전리셋 232화>

“우와, 저게 그 퀘르쿠스인가?”

다른 던전을 공략하고 잠시 쉬기 위해 틈새 지역으로 돌아온 오동민은 멀리 보이는 나무 거인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대박. 저렇게 큰 괴물은 또 처음 보네. 무슨 아파트도 아니고…….”

원래대로라면 던전의 내부는 뿌연 안개에 가려서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퀘르쿠스는 너무 크고 높아서, 그 안개를 뚫고 삐죽 솟아올라 있었기에 멀리서도 잘 보였다.

“설마 야수의 숲은 이제부터 저놈까지 잡아야 공략되는 건 아니겠지?”

“뭐? 저런 놈을 어떻게 잡으라고? 너무 커서 불을 붙여도 안 탈 것 같은데.”

“휴, 미리 공략해 놔서 천만다행이네. 제1 던전의 난이도가 까마득히 올라갔구나.”

이미 야수의 숲을 공략한 참가자들은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던전이 리셋됩니다.]

“뭐? 벌써 공략했다고?”

야수의 숲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공략되었고, 그곳에서 살아 나온 참가자들이 틈새 지역으로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쿠구구……!

늘 그렇듯 지진이 일어나며, 야수의 숲이 원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파괴된 유적지가 복구되고 죽은 괴물들이 다시 살아났다.

벌거숭이가 되어 버린 숲에서는 다시 풀과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여태까지 미동도 없었던 퀘르쿠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쿠르릉!

“뽀뀨릇!?”

그 위에서 고롱고롱 낮잠을 자던 뽀뀨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놀랍게도 숲이 복구될수록 퀘르쿠스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뽀뀨 뽀뀨!”

우도도돗!

이때다 싶어서 뽀뀨는 눈을 번뜩이며 퀘르쿠스의 꼭대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를 기회였다.

멀리서 그 모습을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던 루갈이 중얼거렸다.

[크륵? 이건 생각도 못 한 일이군. 숲의 분노가 스스로 물러나는 건가?]

던전 리셋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느낌이었다.

나무를 다시 새롭게 심는 게 아니라, 무참히 썰리고 뿌리까지 뽑혔던 나무들이 정확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퀘르쿠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퀘르쿠스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명분을 잃어 잠시 물러날 뿐.

언제고 다시 정다운이 숲을 훼손시키는 순간 숲의 분노가 다시 그의 앞에 재림하리라.

쿠르릉!

마지막 용트림을 끝으로 퀘르쿠스가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한 루갈이 혀를 찼다.

[크륵, 운도 좋은 놈이군. 아니지, 이게 정말 운만으로 해결될 일인가?]

혼자 중얼거리던 루갈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이번에 세르파의 일도 목격했듯이 운도 계속되면 실력 아닌가.

[……설마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예상하고 나무를 베었던 건 아니겠지?]

늘 뺀질뺀질 무사태평한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자 루갈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   *   *

“뭐? 퀘르쿠스가 없어졌다고?”

[오, 개꿀!]

[……역시 그럴 리 없지.]

소식을 듣자 뛸 듯이 좋아하는 정다운과 토끼를 보며 루갈은 김샌 표정이 되었다.

정다운은 뒤늦게 턱을 쓸어내리며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후후, 내 이럴 줄 알았지. 모든 건 계획대로다.”

[……!]

루갈이 눈을 부릅떴다.

[크륵!? 설마설마했는데 역시 그랬던가!]

[뻥치고 있네. 님이 퍽이나 계획했겠다.]

[……크릉.]

정다운은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아무튼 이제부턴 걱정 없이 나무 벨 수 있겠네!”

[언제는 걱정이나 했음? 이번에 쟁여 둔 목재나 다 쓰고 말해요, 이 나무 학살자야.]

이미 야수의 숲의 절반이 정다운의 소지품 안에 쌓여 있었다.

덕분에 요즘 그는 나무 과소비가 늘었다.

“어떡하지? 나무가 써도 써도 안 줄어!”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나무는 참으로 유용한 재료였다.

불 태워서 땔감으로도 쓰고.

깎아서 나무젓가락도 만들고.

더 깎아서 이쑤시개도 만들고.

“좋았어. 이번 기회에 참숯을 한번 만들어 볼까? 이번에 참나무를 많이 발견했거든.”

숯은 최고의 땔감이다.

목재를 태워 만든 탄소 덩어리라서 ‘목탄’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냥 나무를 태우는 것보다 숯을 사용하면 연비도 올라가고 열도 더 뜨거워진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는 건 단단한 참나무로 만든 참숯.

목질이 연한 나무를 태웠다간 다 타 버려서 숯보단 재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숯이 갑자기 왜 필요해요? 어차피 태양석 쓰면 화력이 올라가는 거 아님?]

토끼가 고개를 갸웃하자 정다운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숯불갈비를 먹기 위해서지.”

[……!]

숯불의 향은 최고의 조미료로서 던전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다.

자고로 숯불에 구운 고기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   *   *

제대로 된 참숯을 만들기 위해 그는 가마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열기가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지.”

치덕치덕.

그는 그림자 하인들과 함께 거대한 흙무덤을 만들었다.

[다 좋은데, 왜 하필 여기서 만드냐는 말이다.]

먀오옹.

등 뒤에서 세르파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숯가마는 하필이면 아라크네의 다락방 안에 지어지고 있었다.

정다운은 뻔뻔했다.

“메모리 심심할까 봐 그렇지. 그리고 기왕이면 실내에 만드는 게 열 손실이 없다고.”

처음엔 그도 하늘 신전에 지으려 했으나, 거긴 이미 대장간이 있어서 화로를 하나 더 늘렸다간 그만큼 더워질 수 있었다.

게다가 틈새 신전의 지하는 연기가 잘 안 빠져나갈 테고, 틈새 신전은 다른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대신전은 더 난잡해지는 것을 알파가 극렬히 반대했다.

[그렇다고 사람 사는 방에 화로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세르파, 난 괜찮아. 나도 이런 거 구경하는 거 재밌거든.”

먀오옹.

세르파를 다독거리는 메모리는 오히려 자신도 껴서 같이 만들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표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는 건 정다운뿐만 아니라 마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바로 세르파 때문이었다.

그 후로 녀석은 완전히 메모리의 껌딱지가 되어 있었다.

메모리의 무릎 위나 품속에 쏙 안긴 채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메모리는 꼼짝도 못하고 녀석을 안고 머리를 반강제로 쓰다듬어 줘야만 했다.

그 손길에 세르파는 기분 좋게 그르렁대면서도, 동시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다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경고한다. 주인님의 방에 먼지 한 톨이라도 날리면 아무리 너라도 가만 안 둘 것이다.]

[되게 까탈스럽네요. 어차피 병사들 올라오면 다리로 대피할 거면서.]

심드렁하게 정다운의 편을 들어 주는 토끼였다.

최근에 이 던전은 새로 리셋을 했다.

때문에 아직 병사들이 메모리를 죽이기 위해 탑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실은 이미 올라오려고 시도는 했었다.

다만 그 전에 세르파가 먼저 아래로 내려가서 병사들을 모조리 학살했을 뿐이다.

정다운이 그의 조각상을 탑의 가장 꼭대기에 시멘트로 붙여 버린 덕분이었다.

그것도 그냥 붙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함정 설치’ 스킬까지 사용해서 파손이 되어도 리셋이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굳이 탑 꼭대기에 올라갈 사람도 없기에 어지간하면 파손될 일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르파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라크네의 탑과 하나가 되었다.

수호신, 토템, 지박령.

뭐라 불러도 상관없었다.

그는 탑의 그림자가 닿는 영역 안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메모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주인님은 내가 지킨다. 어느 누구도 내 허락 없이는 탑을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먀오옹.

메모리의 품에서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창밖을 감시하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에 루갈은 실소를 흘렸다.

[크르륵, 어쩌다 보니 던전의 방어가 완벽해졌군.]

이로써 메모리는 보다 완벽하게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평소에는 거미여왕 아라크네가 탑을 지키고.

환상 마법이 펼쳐진 뒤에는 아라크네 대신 세르파가 메모리를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는 참가자들 입장에선 의외로 난이도가 비슷했다.

세르파가 나타난 대신 마을 사람들의 환상을 세르파가 대신 죽여 없애 버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르파는 던전 도우미의 경험이 있기에 적당한 수준에서 참가자들을 괴롭힌 뒤에 던전을 공략하게 만들 능력이 있었다.

[……설마 이것도 또 우연인가?]

루갈이 다시 복잡한 눈빛으로 정다운을 쳐다보자, 그가 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후후, 그럴 리가. 모든 건 다 내 계획대로지.”

[…….]

루갈도 이젠 뭐가 허세고 뭐가 진짜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피식.

루갈은 정다운의 저 웃기지도 않은 허세가 결코 밉게 보이지 않았다.

이건 절대로 숯불갈비 때문이 아니었다.

[크악! 덥다, 더워! 네놈들의 가마 때문에 주인님의 다락방이 더워졌다! 어쩔 거냐!]

아까부터 성질머리 고약한 세르파가 계속 신경질을 부렸지만, 저 정도야 아무렴 어떤가?

“더우면 다리로 넘어가라니까?”

“앗, 아니에요! 나 계속 구경할래요. 숯 만드는 거 재밌어요.”

이미 메모리는 얼굴에 검댕이를 잔뜩 묻힌 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흐뭇해서 루갈은 자신의 스테이지로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탑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것도 절대로…… 숯불갈비 때문은 아니었다.

진짜로.

*   *   *

[꺼억.]

후회 없는 기다림이었다.

단연컨대, 숯불갈비는 미친 음식이었다.

먹어 본 사람만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내리는 그 야들야들함이 혀에 닿는 순간 루갈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눈앞의 접시들이 다 텅 비어 있었다.

접시까지 씹어 먹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크르륵. 이 세상 음식이 아니었다.]

“후아아, 진짜 맛있었어요. 행복이 바로 이런 거구나.”

메모리도 통통해진 자신의 배를 만지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정다운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환상이 음식도 먹지? 메모리도 도우미들과 비슷한 존재라고 봐야 하나?’

역시 마법이라는 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메모리가 정다운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오빠, 동료 분들을 만나러 가셔야 한다면서요? 저 때문에 여기 너무 오래 머무르시는 거 아닌가요?”

“아니, 너 때문이 아니라 숯 때문이었는데?”

진심이었다.

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메모리는 그에게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빠는 진짜 배려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니, 진짜 진심이었다.

오히려 메모리가 손이 야무져서 옆에서 거들어 준 덕분에 더 빨리 숯가마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메모리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맡았다.

“목재를 좀 두고 가시면 앞으로는 제가 여기서 숯을 만들고 있을 게요. 필요하실 때 언제든 숯 받으러 오세요.”

“어? 진짜 그래 줄 수 있어?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네, 지금 우리는 10살짜리 꼬맹이에게 일을 시키는 악독한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토끼가 악마를 비난했다.

“어? 아니에요. 이번에 해 보니까 숯 만드는 거 너무 재밌어요. 평소에 할 일도 없는데요 뭐. 다락방에서 혼자 뭐 하고 놀겠어요? 숯이라도 태워야지.”

안개섬에 숯 만드는 마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숯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었다.

항시 둥둥 떠다니는 안개섬 위에는 고정 좌표가 없어서 게이트를 설치해 둘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는 제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먀오옹.

[그건 문제없다. 내 조각상에 고정 좌표를 새겨 주겠다. 그럼 워프 게이트를 열 수 있을 거다.]

“어? 그게 돼?”

[벌써 잊었나? 스테이지-4 전체에 자동화 시스템을 만든 것이 바로 나다. 내가 이곳에서 섬의 좌표를 계속 고정시키고 있으면 된다.]

번쩍!

세르파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탑 꼭대기에 설치된 자신의 조각상에 고정 좌표를 새겨 넣었다.

제단처럼 워프 게이트를 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자, 이제 됐나?]

실로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 버린 세르파의 표정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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