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28화>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야수의 숲 곳곳에 황금빛 구멍이 뚫렸다.
알파는 다급히 외쳤다.
<이렇게 게이트를 남용하게 되면 생명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을 겁니다! 적어도 골렘들은 마법 창고를 경유하게 하십시오!>
게이트는 통과할 때마다 통행료가 들어간다.
정다운 한 명이라면 상관없지만 골렘들까지 같이 들락날락하는 것은 큰 손실로 이어졌다.
철커덕!
“너네는 이쪽 문으로 들어가!”
크워어!
우르르!
반면에 바분의 마법 창고는 자물쇠를 열 때만 에너지가 잠깐 들어갈 뿐 이후로는 입장료가 공짜였다.
알파의 조언대로 정다운은 골렘들을 마법 창고로 들여보내고 자기 혼자만 게이트를 이용했다.
비행기 탈 때 짐을 가방에 넣고 타듯이, 골렘들을 마법 창고 안에 넣고 다른 곳에서 다시 꺼내주면 게이트 통행료를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 하인들은 기본적으로 그림자일 뿐이라서 통행료가 거의 뽀뀨 수준에 불과했다.
“뽀뀨?”
뽀뀨는 영문도 모른 채 정다운의 뒤를 덩달아 뽈뽈거리며 쫓아다니고 있었다.
주인님이 왜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냥 신나 보였다.
오랜만에 숲에 왔더니 기분이 좋았고, 뒤에서 쿠릉쿠릉 따라오는 엄청 큰 나무도 신기했다.
“뀨우?”
뽀뀨의 까만 콩알 같은 두 눈동자가 퀘르쿠스를 멀뚱히 올려다봤다.
쿠릉! 쿠르릉!
“뀨잇!”
뽀뀨가 뒤로 발라당 넘어지며 뀨뀨 웃었다.
신기했다. 참신했다.
주먹만 한 뽀뀨 입장에선 퀘르쿠스는 마치 태산이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던 땅다람쥐의 가슴 속에 일생일대의 큰 도전 정신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뽀뀻!”
그렇게 시작된 뽀뀨의 대모험!
도도도돗!
뽀뀨의 짧은 네 개의 발바닥이 용맹하게 퀘르쿠스 몸 위를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도도돗!
“뀨우우!”
숲의 수호신 퀘르쿠스는 실로 거대했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정복욕이 샘솟는 목표였다.
“뽀뀨우!”
두도도도도!
뽀뀨는 달리고 또 달렸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뛰어넘고 나뭇잎을 밟고 점프하고, 온갖 위기와 역경을 뛰어 넘어 이 세상 끝까지라도 달릴 기세였다.
[호오, 언제 저렇게 격이 올랐지?]
뽀뀨의 모습을 본 토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오류종자에게 길들여졌을 뿐인 하찮은 미물이 티끌 같은 성장을 이룬 것이다.
토끼는 그 사실을 정다운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대로 일러바쳤다.
[푸히히, 뽀뀨가 참가자였으면 이미 업적이라도 달성했을 거임. 숲의 수호신 퀘르쿠스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땅다람쥐는 아마 쟤가 최초일걸요?]
“으하하.”
정다운도 뽀뀨가 하찮고 기특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키우던 꼬맹이가 유치원에서 삐뚤빼뚤 아빠 얼굴이라고 그려서 가져온 기분이 이런 걸까?
“그래서 결국 올라갔어?”
[아뇨? 택도 없죠. 10분의 1쯤 올라가다가 힘들었는지 나뭇가지 위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어요.]
“큭큭.”
퀘르쿠스의 분노는 어디까지나 정다운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조그만 생물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퀘르쿠스와의 술래잡기, 아니, 벌목 작업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퀘르쿠스는 절대 멈추지 않고 정다운을 따라다녔다.
루갈이 근엄한 표정으로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크르륵! 이제 어쩔 테냐. 숲의 분노는 네가 잠들 틈도 주지 않고 시시각각 너를 추적할 것이다.]
겨우 경보 수준에 불과한 속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한결같은 속도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마치 좀비 같았다.
사람들이 느려 터진 좀비들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은 점점 지쳐 가지만 좀비들은 한결같은 페이스로 꾸역꾸역 다가오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퀘르쿠스는 그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였다.
차라리 좀비가 상대라면 구석에 숨기라도 할 텐데, 저 나무거인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 모든 걸 짓밟고 파괴하며 일직선으로 따라왔다.
[크르렁! 숲의 분노가 너희를 파괴하리라!]
……는 개뿔.
“드르렁.”
[…….]
정다운은 잘만 잤다.
폭신폭신한 공주님 침대가 딸린 문어 골렘 위에서.
운전은 당연히 밤잠이 없는 리치 바하무트가 맡았다.
문어 골렘은 아기 요람처럼 정다운을 동실동실 태우고 야수의 숲 위를 천천히 맴돌며 퀘르쿠스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그 밑에선 여전히 벌목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림벨이 소지품을 열 수 있으니 골렘들과 그림자 하인들을 데리고 다니며 나무를 계속 수거해 나갔다.
어차피 이쪽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은 정다운 딱 한 명뿐.
나머지는 전부 퀘르쿠스와 평생 술래잡기를 하는 게 가능한 멤버들이었던 것이다.
[……크륵.]
루갈은 머쓱한 표정으로 조용히 자신의 스테이지로 돌아갔다.
정다운은 다시 수호부를 들었다.
“루갈 또 어디 갔어? 여보세요?”
세요르르르-!
[아쫌! 크르렁! 용건 없이 부르지 말란 말이다!]
“푸하하.”
그냥 불러봤다.
* * *
퀘르쿠스와의 술래잡기, 아니, 벌목 작업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사이에 사고도 몇 번 터졌다.
퀘르쿠스에게 밟혀 죽은 골렘만 벌써 3기였고, 그림자 목수도 7번이나 터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나무를 캐다 보니 그만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당한 것이다.
물론 골렘은 곧바로 핵만 리턴시켜서 회수하면 그만이었고, 그림자 고양이는 불사신이니만큼 다시 하인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골렘의 숫자가 줄어들면 나무를 베는 속도가 느려지는 건 큰 손해였다.
속도가 안 나오면 벌목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도망만 다녀야 하게 되는 것이다.
정다운은 문어 골렘 위에서 파괴당한 골렘들을 다시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림벨! 시합하자!”
“먀옹?”
그림벨도 흙 뭉치기 스킬을 쓸 수 있으니 골렘을 만들 수 있었다.
정다운은 그림벨과 나란히 서서 골렘 만들기 시합을 벌였다.
심판은 토끼였다.
[그럼 시작! 뿅!]
결과는 그림벨의 승리였다.
정다운은 충격을 먹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당연히 동점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림벨의 속도가 1.1배쯤 빨랐다.
토끼 심판이 짧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후후, 그림벨은 입 아프게 스킬명을 말하지 않아도 스킬을 쓸 수 있죠. 그 약간의 차이가 결정적이었음.]
“이건 인정할 수 없어! 나를 똑같이 따라 할 거면 솔직히 입도 똑같이 벙긋거려야 되는 거 아니냐? 다시 해, 그림벨!”
“먀옹?”
[후후, 구질구질하게 패배를 인정 못하시는군?]
“원래 삼세판이었거든?”
정다운은 구차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다음 판을 결국 승리로 이끌었다.
“크으! 봤냐? 봤지? 나는 결국 내 자신을 뛰어넘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멋진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토끼가 피식 비웃었다.
뽀뀨나 이 인간이나 하찮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시든가요. 자, 막판 고고?]
1승 1패의 상황.
마지막 승리는 당연히.
“으아아! 흙 뭉치기! 흙 뭉치기!”
그림벨의 승리였다.
“젠장!”
“먀오옹?”
그림벨은 두 번째 판에서 정다운이 보여 준 엄청난 속도를 그대로 복사해 버렸다.
그가 아무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도, 그림벨은 묵묵히 그 한계를 똑같이 따라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이 경쟁을 하다 보니 파괴당한 골렘들이 순식간에 보충되었다.
바로 벌목 작업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루갈은.
[…….]
할 말 잃은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야수의 숲이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
그 풍성했던 숲이 벌거숭이 허허벌판이 되어 가는 모습에 루갈은 기분이 이상했다.
‘어차피 리셋될 땅이라 하나 마음이 편치는 않구나…….’
어차피 이 난장판도 결국엔 리셋될 것이었다.
정다운이 제물로 팔아(?) 버린 일족의 보물도.
황무지가 된 자신의 고향도.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이 처참하게 개간되어 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차라리 이 모습을 눈으로 안 보면 마음이 편했을 터인데…….’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곳을 방문하게 되는 걸까.
그때 정다운이 그를 불렀다.
“자,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다들 새참 먹고 합시다! 루갈? 안 바쁘면 너도 먹고 가!”
솔깃?
살랑살랑!
정다운의 목소리에 그의 풍성한 꼬리가 안테나처럼 파르륵 떨렸다.
[크릉, 크흐흠! 바쁘긴 한데 정 그렇게 부탁한다면 같이 먹어 주겠다. 크르릅!]
루갈은 못 이기는 척, 하지만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그의 앞으로 날아갔다.
자주 들를 수밖에 없었다.
정다운의 식사 시간은 순전히 자기 마음이라서 자주 와 봐야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손이 컸다.
그는 특별히 루갈의 밥그릇을 라운드 실드로 거대한 대접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산처럼 수북하게, 아니, 거의 퀘르쿠스처럼 쌓아 주었다.
[일주일째 야수의 숲을 뒤집어 엎었더니 고기가 아주 풍년이네요.]
어딜 봐도 고기, 또 고기. 계속 고기였다.
자이언트 베어의 곰고기.
붉은 황소의 소고기.
갓 도축한 싱싱한 고깃덩이들을 챡챡 썰어서 육수와 함께 펄펄 우려내고, 기름에 지글지글 익혀 스테이크를 만들고.
여길 봐도 고기, 저길 봐도 고기!
야수의 숲에 광란의 파티가 열렸다!
아찔한 냄새와 김이 모락모락한 고기고기 대잔치가 매 끼니마다 퍼레이드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크롸랍! 콰웁! 캬웁!]
[거참.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숨은 쉬면서 드셈.]
대접에 코를 처박고 고기 한상차림을 그대로 흡입하는 루갈을 토끼가 천박하다며 흉봤다.
꼬리를 저렇게 쉴 새 없이 팔랑거리면서 먹는 건 토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식사 매너였다.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떤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예쁜 황금 접시에 올린 당근을 썰고 있었다.
황금 포크로 우아하게 한쪽 끝을 고정하고, 황금 나이프로 또 우아하게 5밀리미터 두께로 얇게 썰었다.
그리고 고상한 귀족 아낙네처럼 우아하게 눈을 내리깔고 당근을 쏘옥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오독오독.
[오호호, 당근이 싱싱하구나.]
곱상한 부채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귀부인처럼 웃는 토끼였다.
바분의 창고에 있는 보물들은 대부분이 쓸모없었지만 분위기를 내기엔 아주 적격이었다.
물론 밥 먹는 중에도 벌목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업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번쩍!
[최초 업적 달성!]
“근면 성실한 나무꾼!”
혼자의 힘으로 10,000그루의 나무를 벌목했습니다!
당신의 엄청난 끈기와 노력에 던전이 박수를 보냅니다.
- 보상 : <나무 베기> 스킬
“어? 업적이라고?”
[헐, 말도 안 돼.]
어떤 심리학자가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한 적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었다.
정다운은 1만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가 지금까지 던전에서 베어 낸 나무가 1만 그루가 넘어간 순간이었다.
토끼가 대놓고 정다운을 비판했다.
[와, 이건 좀 아니다! 이거 전부 골렘들이랑 그림자 하인들 시켜서 한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나무꾼들도 다 도끼로 나무 베잖아. 나는 도끼 대신 골렘들로 벌목한 한 거라고.”
[크윽, 그래도 나는 인정 못 함! 듣고 있냐! 던전아! 너 지금 속고 있다고, 이 자식아!]
토끼는 던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스킬>
나무 베기 (1레벨)
- 벌목 속도가 빨라진다.
- 나무를 베면 체력이 조금씩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