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리셋 (222)화 (222/393)

<던전리셋 222화>

개미 더듬이 (8레벨)

- 개미처럼 감각이 예민해진다.

- 지속 시간 1분, 재사용 시간 30초

개미 더듬이 스킬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평소에 별로 쓸 일이 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쓸 때마다 매번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그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왜앵-!

‘다 보인다, 보여.’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 속에서 정다운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각다귀들의 섬세한 날갯짓과 움직이는 이동 경로를 모두 포착할 수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3D 도면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아마 류승우 님이 전투할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할 거임. 전투에서 ‘본다’는 감각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토끼의 말에 정다운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가끔 보면 승우 형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는 것 같더라. 이런 스킬도 없을 텐데 어떻게 보는 거지?”

[류승우 님의 주변엔 늘 미세한 자기장이 흘러요. 그 자기장에 닿는 모든 움직임들이 감각 범위 안에 들어오는 거임.]

“오, 역시 번개맨. 정전기로 더듬이를 대신하는 거구나.”

알면 알수록 류승우의 전투 능력은 놀라웠다.

역시 토끼가 지금까지 봐 온 참가자들 중에서도 단연 탑클래스로 뽑을 만한 인물이었다.

“잘됐어. 이번 기회에 개미 더듬이를 최대한 레벨 업해 놓자.”

그는 결심했다.

어차피 스킬만 켜 놓고 거미줄에 걸린 놈들을 잡는 방식이라 누워서 떡 먹기였다.

레벨이 오를수록 머릿속의 입체 도면은 더욱 섬세해지고 영역도 점점 넓어질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레벨이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승우 형처럼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풉. 꿈도 야무지시네.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음?]

“시끄러, 인마.”

[끄악?]

자신을 대놓고 비웃는 토끼의 머리통에 꽁 하고 꿀밤을 먹이는 정다운이었다.

“말처럼 쉬우면 꿈을 왜 꿔? 그냥 하면 되는데. 원래 꿈은 야무져야 제맛이라고.”

[씨잉, 그렇다고 꿀밤까지 야무질 필요는 없잖아요.]

입이 댓 발 나온 토끼를 뒤로 하고 그는 계속 각다귀들을 잡으며 숲을 돌아다녔다.

투구의 앞가리개를 썼다 벗었다 하며 카메라 어플로 주위를 탐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실례합니다!”

“어? 누가 이쪽으로 뛰어오는데?”

[참가자들이네요.]

멀리서 5명의 참가자들이 거미줄 텐트를 발견하고 헐레벌떡 이쪽으로 달려왔다.

“실례합니다!”

“저희도 좀 들어가도 될까요?”

[이미 들어오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지?]

그들은 정다운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미 텐트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살았다! 이제 좀 살겠네.”

“감사합니다!”

“…….”

정다운은 그들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마냥 불쌍할 뿐이었다.

‘거지들인가?’

그들의 꼴은 엉망이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듯한 꼬락서니를 보니, 그동안 얼마나 숲의 괴물들에게서 시달렸는지 알 것 같았다.

반면에 정다운은 비까번쩍한 황금갑옷과 뽀얗고 탱탱한 피부가 아주 물 찬 제비 같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들은 다짜고짜 정다운을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행여나 자신들을 쫓아낼까 봐 아부를 떠는 것이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세상에! 거미줄로 천막을 쳐서 모기를 막으시다니! 천재신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니까요. 저희는 진짜 생각도 못 한 방법이에요.”

“이 거미줄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평범한 거미줄은 아닌 것 같은데.”

넉살도 좋은 인간들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쉴 새 없이 떠드는 참가자들에게선 묘한 전우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들 중 아무도 각다귀들을 효율적으로 잡을 스킬이 없었기에 그동안 겪은 고생이 말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들은 아장아장 걸어가는 난쟁이 골렘들을 뒤늦게 발견하고 또 한 번 경악했다.

“헉! 이 텐트, 발이 달려 있는데? 저거 봐! 움직이고 있어!”

“대박! 진짜다. 설마 이거 스킬인가요? 텐트 스킬 같은 건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수다에 결국 토끼가 못 참고 버럭 성질을 냈다.

[아, 시끄러! 입 좀 제발 다물어요. 따발 따발 말 겁나 많네! 이 구역 떠벌이는 나라고요!]

그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

“헉! 토끼가 말을 해!?”

[……!]

토끼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바분이 관리하던 스테이지-1에서 게임을 시작한 참가자들이라 토끼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급격히 서운함을 느끼는 토끼를 보며 정다운은 이쯤에서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아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잠깐 쉬었다 가세요. 텐트를 좀 더 넓혀 줄 테니까.”

“헉?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다운은 난쟁이 골렘들의 간격을 넓히고 거미줄을 더 꺼내 텐트를 2배로 확장시켜 주었다.

그림자 하인들과 함께하자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작업이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그림자 하인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이런 건 처음 봐.”

“대박이다. 그림자를 부리는 스킬이라니. 엄청 편리하겠는데.”

“저 토끼도 그렇고, 소환 스킬을 주로 사용하시는 분이신가 봐요.”

“저 말하는 토끼는 정령 같은 건가요?”

솔깃?

‘정령’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거린 토끼가 늠름한 포즈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후후, 제법 보는 눈들이 있군요? 내가 바로 정령임. 격조 높은 초월 토끼지.]

그때였다.

왜앵-!

텐트를 확장하는 틈에 각다귀들이 이때다 싶어서 기어코 텐트 안으로 날아들었다.

놈들이 노리는 건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쏙 들어오는 존재.

바로 번쩍거리는 황금갑옷을 입은 정다운의 뒤통수였다.

하지만 정다운은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거미줄을 설치하던 황금 깃대를 그대로 한 바퀴 돌렸다.

휘오오!

우왱!?

거미줄이 공중에서 펄럭이며 날아오는 각다귀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휘감았다.

잠자리채로 곤충 채집을 하듯이.

뜰채로 물고기를 잡듯이.

응원단장이 학교 깃발로 응원을 하듯이.

그 모습에 참가자들은 동시에 움찔했다.

‘뭐야, 지금 설마 보지도 않고 잡은 거야?’

‘엄청난 전투 센스다. 이런 실력자는 처음 봤어.’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거야? 나는 보면서 하라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저렇게 간결한 동작만으로 등 뒤에서 덤벼 오는 적들을 해치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런 엄청난 활약을 하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쿨하게 거미줄을 설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이게 바로 강자의 여유인가?’

‘역시 이런 숲을 혼자 돌아다닐만하구나.’

반면에 정다운은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됐어, 자연스러웠어. 승우 형처럼 멋있었어.’

[…….]

혼자 우쭐해하고 있는 정다운을 토끼가 뒤에서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다운은 속도 모르고 자신을 우러러보는 참가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유적지 못 봤어요? 큰 호수 근처에 있다던데요.”

“호수요? 저희가 마침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오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   *   *

얼마 후, 정다운은 참가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호숫가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꺼려졌으나 텐트 안에 숨어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거라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숲에 이런 고인물이 있으니까 각다귀들이 많이 살지.]

토끼가 혀를 찼다.

호수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그 위를 괴물 각다귀들이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호수가 바로 놈들의 서식지였던 것이다.

“저곳입니다.”

참가자들의 손가락이 호수의 정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정다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보물 상자네요?”

호수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떠 있었고, 폐허가 된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커다란 보물 상자 하나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희도 저 보물 상자가 탐나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봤는데, 도저히 호수를 헤엄쳐 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보물 상자를 보며 참가자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저렇게 도달하기 힘든 장소에 있는 보물 상자일수록 귀중한 보물이 들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만용을 부리기엔 호수의 수심이 너무 깊었다.

게다가 헤엄치는 중에 각다귀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너무 위험했다.

“흠, 동민이는 여길 어떻게 공략했을까?”

정다운은 대놓고 커닝을 하기로 했다.

오동민에게 귓말을 날리자 잠시 후 답장이 돌아왔다.

<오동민 : 아, 호수에 있던 보물 상자요? 형도 결국 발견하셨구나. 실은 저희도 헤엄칠 엄두가 안 나서 그냥 포기했어요. 어차피 유적지는 호숫가 옆에 있거든요.>

[아하. 보물 상자가 있는 곳이 유적지가 아니었네요. 저건 그럼 함정일 수도 있겠음. 우리도 그냥 지나가죠?]

토끼가 힐끔 정다운의 눈치를 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너 혼자 한번 날아서 확인해 보고 오면 어때?”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이 나쁜 자식아! 나 혼자 공중에서 피 빨려 죽으라고요? 그럴 거면 차라리 부유석으로 다리를 만드셈.]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뭔가 좀 꺼림칙해. 호수 안에서 갑자기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단 말이지.”

그냥 감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다운은 개미 더듬이의 감각으로 고요한 호수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물 때문에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숨어 있는 건 확실해.”

[그걸 아는 인간이 나를 혼자 보내려고 했다고? 와, 진짜 악질이시네.]

“그거야 당연히 농담이었지. 흠, 어떡할까? 일단 한번 넘어가 봐?”

정다운은 잠시 고민했다.

호수를 넘어갈 방법이야 사실 너무 많았다.

하지만 방심은 언제나 금물이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게 확실했다.

“어디 미끼라도 던져 볼까?”

그는 소지품에서 큼지막한 외뿔멧돼지의 고기를 꺼내 호수 안에 퐁당 던져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호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급격한 변화가 느껴졌다.

꿀꺽.

“……!”

개미 더듬이의 감각으로 그 변화를 고스란히 느낀 정다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먹었다! 지금 분명 누가 고기를 먹었어!”

[호오, 진짜 뭐가 있기는 한가 보네요? 이제 어쩌실?]

“일단…… 계속 던져 볼까?”

그는 재사용 시간 30초를 기다린 후에 개미 더듬이를 다시 발동시켰다.

그리고 퐁당 퐁당 고기를 계속 던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참가자들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 저 아까운 음식을……!”

“아이고, 저, 저…….”

“차라리 우리를 주지.”

“던전에서 식량 귀한 줄 모르시네.”

[응, 이 사람 진짜 그런 거 모름.]

던전의 부르주아가 낚싯줄도 안 달고 아까운 떡밥만 호수에 뿌려대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서 토끼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이미 신이 나 버린 정다운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식량 자기가 버리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꿀꺽 꿀꺽.

“오, 계속 먹는데? 고기가 중간에서 사라지는 게 느껴져.”

어떻게 생긴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미끼를 잘도 받아먹자 정다운은 점점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어 주면 자꾸 먹여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옳지. 잘 먹네. 더 먹어라, 더 먹어. 어디까지 먹나 보자고.”

그는 신이 나서 계속 고기를 던져 주었다.

스킬 사용 시간에 맞춰 1분간 고기를 뿌리고, 30초 쉬고 또 뿌리기를 계속 반복했는데 쉬는 시간 동안은 미묘하게 호수의 수면이 일렁거렸다.

“보채지 마, 인마.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정다운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고기를 던져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그의 손이 멈췄다.

“……더 안 먹는데? 배부른가?”

끝도 없이 뿌려 댄 떡밥에 결국 대어가 걸리고 말았다.

촤아악!

“음?”

[앗!]

갑자기 호수 안에서 물기둥이 높게 솟구쳤다.

그리고 물기둥이 꾸물꾸물 일렁이며 허공에서 굴곡진 실루엣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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