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15화>
“야! 그걸 먹으면 어떡해? 빨리 뱉어!”
니야옹! 캬하악!
정다운이 입을 강제로 벌리려 쫓아오자 그림자 고양이가 질색을 하며 뒤로 도망가 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하지만 둘 다 의미 없는 실랑이였다.
어차피 실체가 없는 그림자 고양이의 몸을 만질 방법은 없었다.
“안 되겠다. 그림자 비술!”
딸랑!
슈우욱!
입을 딱 다물고 도망가려던 그림자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 풍선처럼 부풀었다.
“므아앙?”
그림자 하인의 입이 강제로 벌려졌다.
그 안을 샅샅이 훑어봤으나 그림자라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토끼도 다가왔다.
[먹었대요? 안 보여요?]
“응, 안 보여. 손이라도 넣어서 찾아볼까?”
“므햐아.”
잘못을 저지른 고양이에게 인권은 없었다.
펑!
괜히 무리하게 손을 집어넣었더니 얻은 것도 없이 녀석은 결국 터져 버렸다.
“진짜 먹어 버렸나 본데? 그거 뭐였지?”
[저도 봤는데, 분명 마녀의 방울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정다운은 손목에 차고 있는 그림자 팔찌를 쳐다봤다.
딸랑.
“분명 이거랑 똑같은 방울이었는데. 혹시 마녀한테 받은 건가? 언제? 토끼, 너 계속 안겨 있었으면서 뭐 본 거 없어?”
[아까 중간에 조금 만지작거리긴 했어요. 역시 마녀라서 그런가, 본인도 실체가 없어서 그런가, 그림자 고양이를 손으로 만질 수 있더라고요.]
마녀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건 세르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의 다리 위를 건너는 동안 마녀는 내내 눈을 감고 떨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그림자 고양이들이 다가와서 몸을 부비적거리자 그때부터는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다.
[혹시 그때가 아닐까요? 선물로 받은 건지, 아니면 이 녀석이 몰래 훔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아깝다. 뭔가 대단해 보였는데.”
[그러게요. 특수 옵션이 물음표로 되어 있던 아이템이라니.]
그런 물건을 꿀꺽 삼켜 버린 그림자 고양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얄밉게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알파가 말했다.
<이 고양이, 다른 그림자 고양이들과 기질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정다운의 표정이 변했다.
“기질이? 어떻게 달라졌는데?”
<심연의 마법은 제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자랑임? 그 말은 나도 하겠네.]
혀를 차는 토끼의 뒤에 있던 눈사람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인의 생각엔, 아무래도 마녀님의 방울이 그림자 비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하무트는 생각했다.
마녀는 결국 미로의 중앙탑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했다.
따라서 마녀에게 얻은 방울도 마녀가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져야 옳았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는데도 방울이 계속 남아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림자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비슷한 존재였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그림자 비술은 그 실체가 없는 존재들을 다루는 금단의 비술이라 할 수 있었다.
“제대로 확인해 보자고. 그림자 비술!”
슈우욱!
바하무트의 조언에 정다운은 다시 녀석을 일으켜 세우고 몸을 샅샅이 훑어봤다.
“흠, 겉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좀 더 세졌나?”
[어디 한번 움직여 봅시다. 뭐라도 시켜 보셈.]
“오케이.”
정다운은 녀석에게 쇠꼬챙이 하나를 들려 주고 제국창술을 시켜 봤다.
휙휙!
하지만 전에 비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찌르는 힘도.
돌리는 속도도.
전부 자신이 가르쳐 준 그대로의 동작이었다.
심지어 돌리기는 정다운 본인보다도 느렸다.
당연했다.
정다운에겐 돌리기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 고양이들은 스킬을 쓰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긴 했다.
그림자 하인들은 사람이 아니라서 손이 엇갈리거나 미끄러지는 실수를 절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드러났다.
“어?”
[어?]
잠시 아무것도 시키지 않자, 평소 하던 대로 그림자 하인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흙을 뭉치기 시작했다.
네모난 모양으로.
“어어!?”
그들은 눈을 의심했다.
[무, 뭉치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음? 모양도 그렇고?]
“그, 그러게? 어디 한번……. 흙 뭉치기!”
“먀오옹.”
쭈와악!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녀석이 두 손으로 바닥을 움푹 뜯어냈다.
네모난 모양으로 큼직하게.
무려 가로, 세로가 세 뼘씩 8레벨 수준의 흙벽돌이었다.
이 크기는 사실상 외뿔 멧돼지의 기운 마스터인 정다운이 최대로 들 수 있는 무게의 최대치였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맙소사.”
[이, 이건 진짜다…….]
“진짜 스킬을 쓸 수 있다고?”
정다운의 입꼬리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 터져 버린 것 같았다.
그동안 그림자 하인들이 스킬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자 팔찌에 붙어 있는 그림자 비술이 겨우 1레벨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라!
심연의 바다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림자 고양이들이 어땠는가!
빛을 삼키고 배출한 악몽이 지서연과 같은 참가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 놈들은 진짜 참가자라도 된 듯이 아무렇지 않게 스킬을 쓰고 무기를 들고 공격해오지 않았던가!
스킬도 쓰고 무기도 들고.
그게 바로 그림자 비술의 진면목이었다.
정다운은 녀석에게 본격적으로 다른 스킬들도 시켜봤다.
“흙 뭉치기! 돌 깨기! 전망대 설치! 정화!”
푹팍 푹팍!
그의 주문에 그림자 하인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파내듯 땅을 거침없이 뜯어내 네모나게 뭉쳤고.
쩌적! 콰쾅!
단 한 방에 돌을 반듯하게 조각냈다.
그러나 나머지 스킬들은 사용하지 못했다.
모든 스킬을 다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았어. 마스터한 스킬만 쓸 수 있는 거야.”
[그러게요.]
마스터한 스킬은 총 3개.
흙 뭉치기, 돌 깨기, 외뿔 멧돼지의 기운이었다.
그 말은 앞으로 다른 스킬들도 마스터하면 이 하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이구! 예쁜 내 새끼!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누!”
덥석!
“므야악!?”
정다운은 크게 감격해 녀석을 끌어안았다.
거의 부자상봉,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것 같았다.
퍼엉!
아버지의 과격한 포옹에 자식 놈이 결국 터져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다운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토끼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팔다리를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 와……! 이거 진짜 대박 났어요. 맙소사, 스킬까지 쓸 수 있는 분신체라니! 그럼 얘네들 전부 돼지 기운 받아서 4배로 강해진 거잖아요!]
“그래, 맞아! 이젠 혼자서 외롭게 땅 파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 와중에 땅이 문제임? 제국창술이나 다시 시범 보여 주자고요. 그 넘쳐 나는 힘으로 아까 너무 느렸다고요!]
창술에 그깟 연속 동작이 안 되면 어떤가!
그만큼 더 빨리 움직이면 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전에 정화가 아니라 돌리기 스킬을 올려서 마스터 찍을 걸 그랬네요! 그러면 그 스킬도 쓸 수 있었을 텐데!]
“아냐. 이게 맞아. 돌리기 같은 건 작정하고 앉아서 계속 돌리고 있으면 언젠가 오를 거야. 정화할 걸 찾아다니는 게 더 귀찮지.”
정다운과 토끼는 신이 나서 끝도 없이 수다에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이 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던전 리셋.
“좋았어. 리셋하면 바로 마녀 다시 찾아가서 방울을 얻어와야겠다. 한 번 준 걸 두 번은 안 주겠어?”
[그러게요. 그걸로 다른 애들한테도 계속 계속 먹이자고요. 세상에 맙소사! 이러다 우리 일인군단이 되는 거 아님?]
믿을 만한 동료 하나 구하기 힘든 세상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냥꾼들도 언제 뒤치기를 당할지 몰라서 장비를 평소에 전부 꽁꽁 숨기고 다니지 않았던가.
자신을 죽여 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말이다.
그게 말이 쉽지, 언제 괴물들이 덮칠지도 모르는 곳에서 장비를 필요할 때만 딱딱 꺼내 쓴다는 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엄청 얌체 같은 짓이었다.
전투를 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니까.
결국 그 모든 게 다 믿을 만한 동료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보라! 정다운은 이제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동료가 생겼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은 스킬을 쓰는 동료가!
심지어 명령에 무조건 절대복종하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는 놈들이었다!
[몸빵이 한 대 맞으면 훅 가는 것 빼곤 정말 완벽함! 그것도 어차피 다시 소환하면 되는 거니까 문제없지요!]
“이거 진짜…… 엄청난데?”
[지금 님 잔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임.]
“맞아.”
그는 지금 이 녀석을 어떻게 써먹어야 잘 써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였다.
얼굴도 빨개지고 귀까지 빨개지고 실제로 열이 나고 있었다.
“일단 이름부터 지어 주자. 다른 고양이들이랑 구분해야 하니까.”
고민할 것 없이 방울을 삼킨 그림자 하인이니까 ‘그림벨’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금방 동생을 만들어 주겠다며 다짐하며 뒤에 1호를 붙여 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벨 1호를 따뜻한 눈길로, 아니, 잔머리가 돌아가는 냉철한 이성으로 살펴보던 그가 뭔가를 발견했다.
“잠깐. 그림벨 1호야?”
“먀옹?”
“너 내가 처음에 준 쇠꼬챙이 어디 놔뒀어?”
그림벨은 흙을 뭉치느라 빈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묻는 말에, 그 순간 놀랍게도 녀석의 손에서 쇠꼬챙이의 그림자가 쑤욱 튀어나와 손에 잡혔다.
“헉.”
[와우……. 몸 안에 넣어 뒀나 봐요. 앞으로는 귀찮게 무기를 일일이 들려 주지 않아도 되겠음.]
토끼도 감탄했다.
하지만 정다운이 느끼는 감동은 그보다 훨씬 컸다.
그림벨의 또 다른 능력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림벨은 쇠꼬챙이를 꺼내면서 동시에 이때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던 커다란 흙벽돌을 자신의 몸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마치 ‘소지품’ 능력처럼!
“설마…… 진짜로? 당근 혹시 있으면 꺼내 볼래?”
“먀옹?”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벨은 자신의 몸에서 당근의 그림자를 쑤욱 꺼내 들어 정다운에게 건네 줬다.
그러자 그림자는 사라지고 흙이 묻어 있는 주황색의 당근 하나가 정다운의 손에 들려졌다.
[대박.]
“…….”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 이건 진짜 대박이었다.
정다운의 소지품이 그림자 하인에게도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애초에 그림자 하인은 정다운의 손목에 차고 있는 그림자 팔찌의 힘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다운의 손목에 달려 있는 아이템과 같은 존재였다.
“소지품이 공유되다니. 이러면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겠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손까지 떨려 왔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충격적인 대박 행진에 심장이 미친 듯이 나대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그림벨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심호흡을 했다.
“그, 그림벨? 요, 요즘 내가 흙을 너무 많이 썼어……. 알지?”
“먀옹?”
어찌나 설레는지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려 왔다.
그는 마치 첫사랑에 들뜬 소년처럼 자신의 분신에게 고백했다.
“땅 좀 대신 파 줄래?”
그날부터 그림벨은 그를 대신해서 땅을 파 그의 소지품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그것은 지극한 희생정신.
아가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