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리셋 208화>
안개섬의 미로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미로는 한쪽 벽에 계속 손을 대고 걷다 보면 출구가 나오게 되어 있지.”
“그보단 내 스킬로 시야를 확보하는 게 낫지 않겠어?”
참가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탐색 스킬들을 사용해 길을 찾아 나갔다.
하지만 미로 안을 직접 걸으며 길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그들을 위협하는 함정들과 괴물들 때문에 더욱 애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미로 안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벽 위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저 벽 위를 걸으면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어려운 미로라도 위에서 한눈에 보면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에서 그런 요행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높이 올라가는 순간 하늘의 제왕인 범독수리들이 그들을 공격할 게 뻔했으니까.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벽 위에는 바로 살벌하게 생긴 괴물 거미들이 벽과 벽 사이에 거미줄을 짓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키이이!
“으아악!”
괴물 거미들은 힘도 민첩성도 무시무시한 수준의 괴물이었다.
특히나 놈들이 쏘는 거미줄은 상대하기가 퍽 난감했다.
칼로 잘라 내려 해도 칼날에 엉겨 붙지 않나, 막아 내려 해도 방패에 들러붙어 오히려 장비를 빼앗기는 일도 허다했다.
그리고 거미는 천부적인 사냥꾼이었다.
미리 사냥감들의 이동 경로에 덫을 놓아, 정신을 차려 보면 그들은 이미 끈적한 거미줄에 칭칭 감겨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으븝! 아브바밥!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거미들에게 물려 어딘가로 이동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공포에 질려 악다구니를 썼다.
그나마 입을 틀어막은 거미줄이 그들의 숨구멍까지 막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무슨 거미줄이 이렇게 질겨!?’
흡사 거미줄에 사로잡힌 나방처럼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던 그들은 결국 제풀에 지쳐 버렸다.
스킬을 사용해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스킬명을 입 밖으로 뱉어야 사용되는 스킬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타입이 아니더라도 어설프게 반항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웠다.
‘잘못해서 이 높이에서 추락했다간 그대로 즉사일 거야.’
‘괜히 반항했다가 거미가 물기라도 하면…….’
키이잇!
‘벌레 싫어…….’
바로 눈앞에서 보는 거미의 이빨은 너무나 끔찍하고 흉측해서, 희망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나방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거미들은 그렇게 잡은 사냥감들을 자신의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어? 어디로 가는 거지?’
‘설마?’
‘이럴 수가! 이 방향은 중앙탑이 있는 방향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괴물들에게 잡힘으로써 미로를 돌파할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내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잡힐 걸 그랬구나!’
거미들의 목적지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탈출할 의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게 실수였다.
푹.
어느 순간 그들의 몸에 날카로운 침이 흘러들어 왔다.
* * *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네. 세뇌당했나 본데요?]
토끼는 혀를 찼다.
그들 앞에는 미라처럼 온몸에 하얀 거미줄을 덕지덕지 묻히고 서 있는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중앙탑을 지키기 위한 거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괴물 거미한테 세뇌 능력이 있나 본데요? 직접 안 싸워 봐서 전혀 몰랐네.]
“그러게. 눈빛들이 뭔 마약이라도 한 것 같네.”
그동안 계속 멀리서 화살만 날렸더니 거미들에게 이런 특성이 있는 지 처음 알게 된 정다운이었다.
사실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겠는가.
평생 몰라도 됐을 일이었는데, 굳이 이런 방식으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어어…….”
[으잉? 갑자기 좀비 흉내?]
“미라인지 좀비인지 하나만 하지.”
그어어어!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참가자들을 보며 정다운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좀비면 그냥 싸우겠는데,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느낌이지?”
[네. 아무래도 저런 상태로 죽으면 좀비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구해 줘야 하나…….”
[뭘 구해 줘요? 그냥 죽이고 지나가죠. 아, 맞다. 죽이긴 왜 죽여요? 목숨은 소중한 거임. 우린 생명의 용을 섬기는 고상한 관리자들이니까요.]
“너 무슨 사춘기야? 하나만 하라고.”
아직도 정체성 확립을 제대로 못 한 토끼였다.
그런데 마침 정다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는 4명의 사냥꾼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음?”
날카롭게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을 보자 정다운은 문득 깨달았다.
잠시 깜빡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첫인상도 지금과 같았다.
서슴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자의 눈빛.
“어쨌든 여길 통과해야 중앙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화살을 다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저희에게 잘 맞겠습니다.”
[네, 그래요. 님들 선에서 처리하셈. 괜히 우리 손까지 더럽히고 싶지 않네요.]
“…….”
이 와중에 세상 뻔뻔한 토끼였다.
이미 가내 수공업으로 실컷 부려먹 었으면서도 이번엔 뻔뻔하게 청부 살인까지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정다운이 뭔가 더 말을 하려는 사이에 사냥꾼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채챙!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십의 참가자들 사이로 뛰어든 4명의 사냥꾼들은 가진 바 모든 스킬들을 펼쳐 냈다.
보통은 몸을 사리면서 싸워야 했으나, 그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모든 힘을 발휘했다.
따로 믿는 바가 있었던 것.
‘어차피 위험하면 코끼리 골렘을 타고 도망가면 그만이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다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한 일이었던가.
정다운이 등 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뒷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 끝나리라 예상했던 전투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거미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엄청 빠르고 강력했던 것이다.
“그어어!”
콰앙! 쾅!
[히익? 왜 저렇게 빠르지? 벽을 밟고 날아다니네요?]
“와, 좀비가 스파이더맨이었나?”
정다운도 깜짝 놀랐다.
적들이 세뇌를 당해 좀비처럼 굼뜰 거라 예상한 건 큰 착각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무슨 할리우드 액션처럼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벽을 밟고 휙휙 날아다녔다.
애초에 좀비들은 근육과 살이 썩어서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지만, 저들은 여전히 싱싱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도 저희가 유리합니다! 이놈들은 스킬을 쓸 수 없으니까요!”
“덤벼라! 다 죽여 버리겠다!”
사냥꾼들이 호기롭게 외치는 말에 그 순간 그들과 싸우고 있던 거미인간들의 눈매가 살짝 꿈틀거렸다.
‘이 자식들이 진짜! 우리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구나!’
‘같은 참가자들끼리 너무하잖아!’
의외로 거미인간들의 정신은 멀쩡했다.
식물인간이라도 된 듯 몸이 제어가 안 될 뿐, 사고와 판단은 멀쩡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짜 미치겠네!’
‘이러다 죽으면 개죽음 아닌가!’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몸 때문에 답답하고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게다가 속도만 빠를 뿐 움직임 자체는 너무 단순해서 이대로라면 진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속마음을 눈치챈 걸까?
“흠.”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는 정다운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유일하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그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다.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다운에게 부르짖었다.
‘이봐! 제발 눈치채 줘!’
‘우리도 싸우고 싶지 않다고!’
‘우린 적이 아니라고!’
“흐음…….”
‘제발!’
이윽고 심각한 표정이던 정다운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토끼를 돌아봤다.
“야. 조금 배고프지 않아?”
[그러게요. 사실 밥때가 좀 지나긴 했죠.]
‘야, 이 자식들아!’
‘이 판국에 갑자기 밥을 왜 찾냐고!’
참가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전혀 짐작도 못하는 정다운은 나름 진지한 고민을 이어 가고 있었다.
“흠. 그런데 타이밍이 애매하네. 목적지에 코앞이니까 그냥 보물이 뭔지까지는 확인하고 밥 먹을까?”
[흠. 그것도 좋죠.]
‘자꾸 흠흠거리지 말라고! 이것들아!’
‘우리를! 좀! 보라고!’
콰쾅! 쾅! 퍽! 퍼버벅!
눈앞의 격렬한 전투와는 전혀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정다운과 토끼였다.
“날씨가 선선하네…….”
‘아니, 날씨가 중요하냐고!’
여유롭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다운이 느긋하게 토끼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옛 성현이 이런 말을 했지. 세상이 비록 우리를 기만할지라도,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더욱 하늘을 보고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음? 저건 뭐지?”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문득 이상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실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이상한 궤적들이 미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을 굵기의 실이 하늘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야, 저거 뭔지 좀 보고 와 봐.”
[네? 뭘요?]
그는 토끼를 올려 보내 반짝이는 실의 정체를 확인했다.
[히익? 이거 끈적거려요! 거미줄임!]
“어? 그럼 설마?”
그 말에 정다운의 시선이 그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 밑엔 신출귀몰하게 움직이고 있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이거 설마 세뇌가 아니라 실로 조종하는 건가?”
‘바로 그거야! 그거라고!’
사냥꾼들과 격렬히 싸우는 육체와는 별개로 정다운에게 집중하고 있던 참가자들이 쾌재를 불렀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정다운은 거미줄을 따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처음 발견하는 게 어렵지, 한번 발견하고 나서부턴 계속 볼 수 있었다.
[탑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지금 보고 있어.”
[어쩌실?]
“일단 잘라 보자고.”
정다운은 그림자 하인들에게 프로펠러를 들려 주고 거미줄 청소를 시켰다.
“이렇게 머리 위로 돌리면서 돌아다니고 와.”
“니야앙.”
비우우웅!
그림자 하인들의 손에서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허공에 나풀거리던 거미줄들이 일제히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에 맞혀 참가자들의 움직임도 같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4개의 프로펠러들이 잔디를 깎듯이 거미줄들을 휘감아 끊어 버렸다.
“어?”
말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하는 적들의 모습에 사냥꾼들은 당황하며 뒤로 빠졌다.
“무슨 일이지?”
그들이 영문을 몰라 정다운을 돌아보려는 찰나였다.
쭈뼛!
갑자기 주변 공기가 달라지며 그들의 몸에 있던 털이 다 서버렸다.
‘살기!?’
정다운도 그 분위기를 느끼고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누구인가. 내 인형들을 망가뜨린 자가.]
탑의 꼭대기 끝에서부터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의 모습은 상반신뿐이었다.
그 아래는 거대한 거미였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헐. 진짜 스파이더맨이다!”
[어우, 야해. 옷 좀 입지…….]
토끼는 부끄럽다며 눈을 꼬옥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