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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92)화 (192/393)

<던전리셋 192화>

*   *   *

루갈은 말했다.

[종말이 리셋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말은 곧 종말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뜻이지.]

종말의 가속화.

처음 틈새 지역은 비석에서 해골 병사들만 듬성듬성 올라오던 땅에 불과했다.

그러던 곳이 놈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나더니 요새까지 만들고, 급기야 그 안에서 기사까지 튀어나오는 곳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기사가 이젠 타고 있던 군마를 버리고 드래곤 위에 올라탔다.

<조심하십시오! 놈에게서 종말의 용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알파의 경고에 정다운은 긴장한 표정으로 놈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날개.

길고 육중한 꼬리와 날선 뿔.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밤하늘의 별빛을 가리고 그들 앞에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설마 진짜 종말의 용은 아니겠지?”

<종말의 용은 겨우 이 정도의 존재감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작해야 종말의 용을 흉내 낸 반쪽짜리 ‘본 드래곤’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본 드래곤(Bone Dragon)은 진짜 용의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를 부르는 말이다.

반면에 놈은 용의 뼈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의 뼈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우산을 쓰고 틈새 신전의 성벽에 올라와 있던 바하무트는 경악하고 말았다.

[세상에! 드래곤 나이트라니!]

자신이 최악의 언데드 마법사 ‘리치’라면, 최강의 언데드 기사는 ‘다크 나이트’, 최고의 언데드 소환수는 ‘본 드래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본 드래곤을 타고 있는 다크 나이트가 나타나 버린 것이다!

바하무트는 다급히 정다운에게 소리쳤다.

[주인님! 승산이 없나이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헹, 너무 쫄지 마셈! 덩치만 커졌지 방어력은 그대로일 거임!]

그어어어!

[엄마야!?]

콰르릉, 쾅!

토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 드래곤의 꼬리가 ‘휘몰아치며’ 근처에 있던 참가자들을 해골 병사들과 함께 한꺼번에 쓸어 버렸다.

그 여파는 그야말로 천재지변급!

[히이익!]

너무 쫄아서 후다닥 멀리 도망쳐 버리는 토끼.

그를 시작으로, 본 드래곤은 닥치는 대로 파괴를 일삼기 시작했다.

“정화, 정화, 정화, 정화!”

파아앗!

정다운은 타조를 타고 돌아다니며 양손에서 정화구체를 계속 띄워 올렸다.

상대가 언데드라면 역시 정화 스킬만 한 게 없지 않은가!

숫자가 많은 해골 병사들 상대로는 스킬 한두 방이 큰 의미가 없었지만, 차라리 이렇게 거대한 적 하나와 싸우는 거라면 속 편하게 스킬을 갈겨 댈 수 있었다.

“정화!”

퍼버벙!

수없이 많은 정화구체들이 본 드래곤의 몸에 직격했다.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후드득 뼈 부스러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용없습니다!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놈은 여전히 단일 개체가 아닙니다!>

본 드래곤은 무수히 많은 해골 병사들의 집합체.

아무리 공격해도 금방 다른 해골 병사들을 끌어모아 재생을 반복했다.

“정화! 정화!”

파아아앗!

정다운은 필사적으로 정화 스킬을 퍼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이겨…….”

배짱 좋던 오동민조차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도 그는 고작 15살 소년에 불과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공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왔다.

“젠장…….”

“이렇게 죽는다고?”

“시발! 나는 죽기 싫다고……!”

본 드래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참가자들의 눈에서 어느샌가 절망으로 범벅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본 드래곤은 압도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온갖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버텨 내고 여기까지 왔건만, 더욱 큰 절망이 그들 앞에 나타나고 만 것이다.

던전을 떠도는 이들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가 죽고, 방금 전까지 대화하던 일행의 목이 뜯겨 나가는 곳이 던전이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자신들의 차례가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본의가 아니었다.

억울했다. 왜 이렇게 자신들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하는가!

애초에 던전에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살고 싶었다. 정말로 살고 싶었다!

“꺄아악!”

콰직!

“……!”

결국 절망 어린 비명과 함께 한 참가자가 본 드래곤의 발에 짓밟혔다.

참가자들은 애써 눈을 돌렸다.

도와줄 엄두도 못 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는 것뿐.

그때였다.

“공중계단!”

부우아악!

“……!?”

갑자기 본 드래곤의 발밑에서 엄청난 양의 흙벽돌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 바람에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본 드래곤!

부유석들은 놈의 몸을 지나쳐 그길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꼬꼬오!

“어서 내 손 잡아요!”

“……!”

타조 골렘을 탄 정다운이 빠르게 달려와 밟혀 죽을 뻔한 참가자의 손을 낚아챘다.

타앗!

도와주고 보니 여자였는데 피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얼떨떨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

“고, 고맙…….”

이가 딱딱거리고 입이 떨려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정다운은 그 사람을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 준 후에 이를 악물고 본 드래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모두 막아!”

본 드래곤은 가까이 모여든 골렘들에게 둘러싸였다.

하지만 애초에 크기 차이가 심하다 보니 마치 애와 어른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날개까지 펼치면 최소 서너 배 이상의 크기 차이였다.

“알파, 아무래도 저 해골 기사가 약점인 것 같지? 골렘의 핵처럼?”

정다운이 보고 있는 건 처음부터 본 드래곤의 정수리에 박혀 있던 해골 기사의 머리통이었다.

<그렇습니다. 해골 기사에게 생명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핵인지 아닌지는, 일단 저 놈 얼굴에 한 방 먹여 주고 나면 확실해지겠지.”

[어떻게 하게요? 해골 기사가 너무 높이 있어요. 그 말은 결국 용의 목을 베어 내겠다는 말이라고요.]

토끼가 쪼르르 달려와 걱정부터 했다.

저렇게 높이 있는 괴물의 목을 잘라 낸다니 어불성설이었다.

[그건 류승우 님이라도 힘든 일이라고요! 설마 문어 골렘 타고 태평하게 어슬렁어슬렁 날아갈 생각은 아니죠?]

“모두가 도와주면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은데?”

[모두?]

정다운은 겁에 질려 있는 참가자들을 향해 박수를 짝짝 치며 소리쳤다.

“자, 키 큰 친구랑 싸우려면 우리도 책상이라도 밟고 올라가야겠죠?”

“……?”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일까?

어리둥절하며 그를 쳐다보는 참가자들.

쿠웅-!

쿵 쿵!

“……!”

그런 그들 앞에 거대한 흙벽돌들을 꺼내기 시작하는 정다운이었다.

“쟤 못 나는 거 알죠? 올라가서 싸우자고요.”

지켜본 바로는 본 드래곤에게 날개는 장식일 뿐 비행 능력은 없었다.

무게 때문인지 뼈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 거대한 날개 뼈를 꼬리와 마찬가지로 공격 수단으로만 썼다.

정다운은 마치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라도 태워 줄 기세로 부유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유석은 참 만들기 쉬워서 좋다.

흙벽돌에 자그마한 망령석만 쑤셔 넣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공중계단!”

파아앗!

점점 들썩거리며 하늘로 풍선처럼 천천히 떠오르는 부유석들을 보며 참가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여기 올라가면 됩니까?”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다.

온 사방이 해골 병사들로 막혀 있었고, 그들의 눈에는 이미 그놈들이 모두 본 드래곤으로 보였다.

언제 또 서로 뭉쳐지며 용으로 변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끝장을 보고 싶었다.

용맹하게 부유석 위로 올라서는 참가자들. 

정다운도 따라 올라갔다.

높이는 녀석이 날개를 활짝 펼쳐도 닿지 않을 한참 높은 곳!

“공중계단! 공중계단!”

파아앗!

무수히 많은 부유석들이 애드벌룬처럼 사람들을 태우고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이어 그 위에서 온갖 원거리 스킬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슈우웅! 콰쾅!

피유우웅! 퍼펑!

“불꽃놀이 축제 같네.”

정다운은 그 모습을 멀뚱히 구경하며 코를 쓱 훔쳤다.

불화살에 바람의 창, 빛으로 된 도끼, 무한 부메랑…….

참 다양한 원거리 스킬이 펼쳐지는 걸 보니까 괜히 시무룩했다.

“나만 없네, 공격 스킬……. 아니지! 나도 있구나? 정화! 정화!”

불꽃 축제에 빛의 구체도 추가되었다.

목표는 하나!

해골 기사였다!

“그어어어어!”

문제는 놈의 목뼈가 엄청 유연하다는 것이었다.

[잘도 피하네요. 웨이브 봐.]

“헤드뱅잉 잘하네…….”

골렘들과 맞서 싸우면서도 놈은 쉴 새 없이 목을 움직였다.

유도 기능이 있는 원거리 스킬도 있었는데 그 정도는 어림도 없었다.

고작 스킬 한두 방으로 이길 수 있었다면 아까 군마를 타고 있었을 때 금방 잡았을 터였다.

[큰일 났어요! 저놈이 한발 한발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요!]

누가 도우미 출신 아니랄까 봐 일일이 상황을 중계하며 발을 동동거리는 토끼.

본 드래곤을 막아선 골렘들은 끊임없이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핵까지 파괴될 것 같으면, 얼른 리턴해서 핵을 회수하다 보니 골렘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다운은 여유만만이었다.

“좋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돼!”

[왜 자꾸 오라고 함!? 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부유석만 만드는 거임?]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을 태우지 않은 부유석을 계속해서 증식시키고 있었다.

이러다 하늘에 지붕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참가자들이 지붕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스킬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붕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었고, 점점 시야가 차단되면서 공격이 어려워졌다.

[대체 뭐 하시는 거임?]

“도착했다.”

[넹?]

정다운은 미니맵으로 본 드래곤이 바로 지붕 밑까지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씨익 웃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공지했다.

“자, 각자 반짝이는 돌 위에 가서 서세요. 얼른!”

“……?”

그들은 그제야 곳곳에 부유석들 사이사이에 태양석으로 빛나는 돌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왜 그곳에 서라는 걸까?

“이유라도 좀 알고…….”

“빨리!”

화들짝!

그의 재촉에 뭔가 물어보려던 사람의 입이 쑥 들어갔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빛나는 바닥 위로 재빨리 달려갔다.

저쪽이 해골 병사들을 부리는 해골 기사라면, 이쪽엔 참가자들을 부려 먹는 정다운 사령관이 있었다.

모두가 군말 없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정다운의 미소가 짙어졌다.

애초에 골렘들의 역할은 부유석을 모으기 위한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의 공격도 놈을 이곳으로 천천히 유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한 순간.

그가 말했다.

“리턴.”

부유석을 지탱하고 있던 망령석을 전부 ‘리턴’했다.

파아앗!

[망령석 +1]

- 내구력 : 100/100(%)

- 옵션 : 리턴 (1레벨)

그리고…….

하늘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본 드래곤의 머리 위로!

쿠르릉!

“그어억……!”

콰르르릉!!

“그……!”

콰쾅!

“맙소…….”

참가자들은 망령석이 남아 있는 부유석 위에서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재지변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틈새 지역 전역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본 드래곤은 하늘에서 쏟아 내린 산사태에 그야말로 압살당하고 말았다.

몸의 재생?

핵?

그딴 게 뭐가 중요할까.

무덤에서 기어 나온 뼈들이 도로 거대한 무덤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머리만 빼고.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키 큰 놈과 싸우기 위해 책상 위로 올라간 친구의 목적이 사실은 교실의 천장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니…….

“내가 말했지? 이게 다 투자라고.”

<…….>

정다운은 눈앞에 수북하게 쌓인 망령석들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알파에게 생색내고 있었다.

이건 사실 범독수리들한테 쓰려고 준비해 둔 비장의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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