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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리셋 (181)화 (181/393)

<던전리셋 181화>

슈각!

하늘엔 범독수리, 땅에는 슬러그가 있다면, 숲속엔 만티스가 있다.

낫 같은 앞발로 사람의 몸을 썰어 버리는 거대 사마귀 괴물들과 한창 전투 중이던 류승우가 갑자기 굳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뭐지?”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하늘을 쳐다봤다.

밤이 되어 고요해진 등천로의 하늘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윤진수가 오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람이 심상치 않아요. 범독수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 시간에?”

“또!?”

윤진수의 한마디에 만티스를 잡고 있던 참가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의심하기에는, 이 바람술사 꼬맹이의 감각은 범독수리의 날갯짓을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윤진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어, 어쩌죠? 숫자가 너무 많아요.”

“얼마나?”

“적어도…… 20마리, 아니, 30마리 이상이요.”

“뭐!?”

류승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검은 하늘을 쳐다봤다.

그동안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범독수리들은 결코 무리 지어 다니는 놈들이 아니었다.

많아 봐야 한 번에 5마리 정도가 나타나는 게 최대였고, 숫자가 누적되더라도 10마리 이상 나타났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 무리가 아닌 것 같아요! 온 사방에서 날갯짓이 느껴져요!”

“범독수리가 한꺼번에 30마리라고? 아이고, 오늘밤이 진짜 우리 제삿날이겠구나.”

구호열은 식겁한 표정으로 류승우를 쳐다봤다.

“내가 3마리까지는 한 번에 싸워 볼게. 그 이상은 나라도 위험해. 승우 너는 어때?”

“저는…… 5마리가 최대일 것 같아요.”

“그래 봐야 8마리네. 그럼 나도 5마리까지 어떻게든 비벼 볼게. 몸을 실시간으로 재생시키면서 죽자 살자 덤비면 되겠지.”

둘이서 범독수리 10마리를 상대하겠다는 말에 다른 참가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하지만 좋아하기엔 일렀다.

그들을 제외한 참가자들은 이제 10명 남짓.

겨우 이 인원들로 나머지 20마리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한 사람당 2마리씩이라는 계산인데, 말이 쉽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놈들이 한 마리씩 줄지어서 오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사방에서 덤벼들면 정말 견적이 안 나왔다.

그런데 그때, 눈치 마스터 오창석 촌장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왠지 놈들이 노리는 목표가 우리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요?”

“아무래도 철새처럼 어딘가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하늘 멀리서 들려오는 범독수리의 우는 소리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상태였다.

그 말에 윤진수도 바람의 흐름을 깨닫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저거 아닐까요?”

오창석 촌장의 손가락이 멀리 떨어진 작은 부유섬을 가리켰다.

“저 섬, 어제까지만 해도 저러지 않았거든요.”

그곳엔 독특하게도 섬의 아래쪽이 아니라 위가 빛나는 부유섬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항아리처럼 동그란 산이 예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누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 이런 말하긴 좀 그런데…… 저거 좀 할로윈 호박 닮지 않았어요?”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말 안 했으면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지나갈 뻔했다.

새까만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동그란 항아리.

그 안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예쁜 황금빛.

“뜬금 운치 있네요…….”

그 말에 류승우와 구호열, 윤진수가 퍼뜩 놀라며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저거 설마……?”

던전에서 운치라니?

정말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딱 한 명뿐이었다.

*   *   *

호박 나이트가 개장했다.

“토끼야, 손님 받아라!”

[님 왜 이렇게 업되셨음?]

정다운은 진짜 신나 보였다.

얼굴엔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는 범독수리 모피코트를 주렁주렁 걸치고 있었다.

음악만 안 틀었을 뿐, 겉보기엔 클럽의 황태자가 따로 없었다.

루갈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옷은 또 뭐지? 안 덥나?]

“어허, 이게 다 기능성이라고. 동족인척 묻어 가면 저 놈들이 나한테 주목하지 않을 것 아냐.”

[그렇다 해도, 털옷을 입기 위해서 굳이 화염 내성 옵션까지 강화할 필요까지 있었나…….]

<그러게 말입니다.>

모처럼 알파와 루갈이 죽이 맞았다.

하지만 정다운은 뻔뻔했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안전이 최고라고. 아! 드디어 시작인가!?”

크르릉!

마침 호박 나이트에 손님들이 대거 입장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무리였던 터라, 입구에서부터 어색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크륵!”

“크르렁!”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범독수리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그 안에 펼쳐진 광경에 놈들의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세상에! 이게 바로 천국일까!?

온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사로운 조명들!

웃풍 하나 없는 포근하고 대궐처럼 드넓은 둥지!

그리고 그 아래 득실득실 쌓여 있는 ‘통통’한 생선들까지!

물 반, 고기 반? 아니다. 이건 그냥 고기고기였다!

어찌나 양이 많은지 딱히 어장 관리할 것도 없이, 그냥 풍덩 뛰어 들어 마음껏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길 수 있었다.

“크르렁!”

범독수리들은 앞다투어 생선들의 바다에 뛰어들어 통통한 생선들을 한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캬오오!”

“크라락!”

이렇게 훌륭한 낙원이 또 있을까!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이 둥지를 혼자 독점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범독수리 손님들은 그 뒤로도 계속 유입되었다.

소문 듣고 찾아오고, 친구 따라 강남 오고. 점점 이 드넓은 공간이 좁아졌다.

[장사 잘되네요. 이렇게 퍼 주고도 남는 게 있겠음?]

“당연하지. 세상이 원래 들어올 땐 마음대로라도, 나갈 땐…… 장기까지 다 털리는 거야. 탈탈.”

[히익?]

정다운은 어둠의 흑막 같은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씨익 웃었다.

“이제 슬슬 손님들 다 들어온 것 같은데, 슬슬 시작해 볼까? 바하무트, 호객 행위 그만 끝내.”

[알겠나이다.]

바하무트가 밖으로 유출되는 생선 비린내를 차단하자, 손님들도 뚝 끊겼다.

그렇게 모여든 놈들의 숫자는 대략 40마리쯤.

최근에 이 일대가 어두워지면서 숫자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였다.

하지만 공간은 아직 넉넉했다.

우걱우걱!

와작와작!

“크르륵!”

놈들은 극도로 날이 서 있었다.

생선은 맛있는데, 옆에 붙어 있는 모르는 놈들이 자신의 생선을 훔쳐 갈까 봐 털을 쭈뼛거리며 끊임없이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여기 쌓인 식량들이 너무 많고, 이 공간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나른했다.

[이렇게 일부러 범독수리들을 유인하는 참가자는 처음 보는군.]

놈들이 뿜어내는 기세를 느끼고 루갈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토끼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휘유, 이놈들 전부하고 직접 싸웠다가는 류승우 님이라도 힘들 거예요.]

“왜 무섭게 직접 싸워? 자, 그럼 본격적으로 불금을 즐겨 보실까?”

정다운은 선글라스를 다시 추켜 쓰고 따사롭게 빛나고 있는 조명을 올려다 봤다.

나이트는 역시 어두워야 제맛 아니겠는가.

“리턴.”

팍!

불이 꺼졌다.

갑자기.

벽에 붙어 있던 태양석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크륵!?”

갑작스런 암전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범독수리들!

[맙소사! 이건 무슨!?]

루갈은 경악하고 말았다.

“크르렁!?”

“크르락!!”

차단기라도 내려간 듯 온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차자, 놈들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허우적거리며 일제히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다 옆에 있던 놈들과 몸이 부딪혔다.

퍽!

“캬악!?”

“크햐악!”

엄청난 짜증과 공포, 소름, 당황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밝았던 곳이 갑자기 어두워지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범독수리들은 워낙 눈이 좋은 놈들이라서 그 후유증이 더 컸다.

놈들은 극도로 흥분해서 옆에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이곳에서 나가려고 날갯짓을 퍼덕거렸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아귀다툼을 들으며 루갈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미친.]

[휴, 이제 아셨구나. 미쳐도 단단히 돌아 버린 종자임.]

“고맙다. 칭찬이지?”

현직 도우미와 전직 도우미들의 칭찬(?)에 정다운은 씨익 웃어 주곤 뒤를 쳐다봤다.

<태양석 +1>

- 내구력 : 100/100(%)

- 옵션 : 리턴 (1레벨)

사라진 태양석들은 어느 샌가 정다운이 서 있던 뒷문 밖에 우르르 쌓여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강화 아이템이었다.

알파가 조용히 투덜댔다.

<이렇게 많은 돌멩이에 생명 에너지를 낭비하시다니…….>

“대신 효과는 죽이잖아.”

정다운은 재빨리 태양석들을 소지품 안으로 수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항아리 밖으로 도망치려 하는 놈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바하무트를 불렀다.

“바하무트, 밟아.”

[명을 받들 겠나이다!]

바하무트는 곧바로 전망대 곳곳에 미리 대기시켜 둔 미니 바하무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호우!]

[호우!]

미니 바하무트들이 폴짝 뛰어 미리 준비해 둔 비명초를 콱콱 밟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두워진 호박 나이트에 소름 끼치는 호루라기 소리들이 경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키햐악!?”

역시 나이트는 어둡고 시끄러운 음악이 있어야 제맛 아닌가.

듣기만 해도 공포스런 비명초의 울부짖음이 가뜩이나 겁먹은 범독수리들에게 더욱 공포를 조장했다.

두 번째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크르렁!”

“캬오!”

콰득! 콰직!

범독수리들은 이성을 잃고 어둠 속에서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으니, 온 사방이 공포의 대상이었고 자신을 공격하는 맹수들이었다.

토끼가 쌍수를 흔들며 응원했다.

[오호! 잘 싸운다! 이기는 편 우리 편! 계획 성공임!]

“아직 아냐. 미니맵!”

펄럭.

정다운은 위험하니까 아예 밖으로 나가서 미니맵을 펼쳤다.

벽이 전부 전망대로 되어 있어서 미니맵으로 안쪽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빨간 점들이 우왕좌왕하며 서로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중에는 하나둘 깜빡거리다가 점이 사라지기도 했다.

죽은 것이다.

제일 큰 걱정은 사실 놈들이 몸통 박치기로 벽을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엄청 튼튼하게 쌓긴 했지만, 역시 안전이 제일이었다.

미니맵을 보면서 빨간 점들이 벽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면, 그 벽 속에 배치된 미니 바하무트가 얼른 비명초를 밟았다.

삐익, 삑빽!

크르렁! 캬오오!

혼란, 또 혼란!

범독수리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과 공포 속에서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잔혹한 설계자 정다운의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알파! 단 한 마리도 절대 밖으로 못 빠져나가게 해!”

<화살 발사대 함정을 발동합니다.>

마비독이 발라져 있는 화살 발사대 함정은 너무 커서 일일이 방향을 틀기 힘들었다.

그래서 딱 한 방향만 공격할 수 있게 벽 속에 잘 배치해 두었다.

바로 유일한 탈출구인 천장 말이다.

파바바박!

“크르락!?”

간신히 하늘로 날아오르던 놈의 날개에 화살이 박히자, 마비독이 피잉 돌며 날개가 둔해졌다.

겨우 한두 방으로 죽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치사하게 혼자만 내빼려고 한 배신자의 말로는 다른 미친놈들이 대신 마무리해 줄 것이다.

결국 화살에 맞은 놈은 공중에서 휘청거리다, 옆에서 날아오던 다른 범독수리와 부딪혀 같이 추락했다.

쿠웅-!

“좋았어!”

모든 게 계획대로 되자, 정다운은 신이 나서 말했다.

“사실 이 호박 나이트에는 유일한 단점이 있어.”

[뭔데요?]

“여긴 사실 콜라텍이야.”

쭈웁.

그는 느긋하게 사이다를 쭈욱 빨아 먹었다.

이 미쳐 돌아가는 소문난 잔치에 술이 없어서 유감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모피 코트가 참 잘 어울리는 밤이었다.

“자, 우리도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

사실 유일한 단점은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저렇게 격렬히 싸워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실제로 치명상을 당해 죽는 놈들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상처를 입고 힘이 약해진 범독수리들의 목숨을 확실히 끊는 일은 직접 해야 했다.

“그림자 비술.”

미야앙.

그는 식칼을 든 그림자 요리사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갔다.

범독수리와는 반대로 그림자 하인들은 오히려 어둠 속이 더 친숙했다.

그리고 정다운도 마찬가지.

“개미 더듬이.”

쭈뼛!

미니맵과 개미의 감각 덕분에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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